|
|
시편 51:12(839)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 2026. 2. 1
주일 오전 예배를 드릴 때에 예배순서 중에 감사와 고백의 시간이 있습니다. 네 가지 내용을 두고 서로에게 축복하고 그리고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1. 힘 내세요! 2. 걱정하지 말고, 용기를 잃지 마세요. 3. 사랑합니다 & 축복합니다.’마지막 네 번째 항목에서 ‘예수님 안에서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매주일 오전예배 때마다 고백하는 이 말! ‘예수님 안에서 나는 행복하고, 하나님 안에서 나는 행복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 안에서 나는 정말로 행복하다’라는 이 문구가 진정한 나의 고백이 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얼마 전에 학교 이사회 모임 때문에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극동방송을 시청하였는데, 어떤 성도님이 말씀하시기를 ‘자신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행복하거나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라는 충격적인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런 충격적인 말씀을 하는 분은 모태신앙이었고, 교회에서 집사의 직분을 맡으면서 주일학교 교사에, 찬양대원까지 열심히 봉사하는 분으로 소개되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함으로 다 듣지 못하고 중단하였지만, 그 분의 고백이 저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습니다.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행복한 목회자인가? 그리고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정말로 나는 예수님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진실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 시간‘예수님 안에서 행복한 성도가 되세요’라고 여러분들을 독려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아무리 ‘여러분더러 행복하시라’고 목청 높여 외친들, 여러분들 스스로 예수 안에서 행복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2026년 1월의 시간을 보내고 새롭게 맞이하는 2월 첫 날이자 첫 주일 예배를 우리는 맞이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바랍니다. 보여주기 위한 행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참된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는 2월의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혹여나 나에게 신앙의 즐거움을 빼앗는 이런저런 고민거리가 존재한다고 해도, 이 시간 성령님이 주시는 위로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참도니 즐거움을 받아 누리시길 축원드립니다.
우리가 볼 때, 이 세상에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아 보입니다. 텔레비전을 틀면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이 등장합니다. 많은 돈을 벌어서 성공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 또는 어떤 일을 크게 성공하여 이름을 내는 사람. 이런 저런 사람들이 등장해서 자신이 누리는 행복을 말합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은 저 사람들이 다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한발만 뒤로 물러서서 냉철하게 판단해 보면, ‘과연 텔레비전에 나와서 저렇게 웃으면서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행복할까?’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통계자료를 보니 실제로 행복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나와 있더라구요. 성공하고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사람이 왜 행복하지 않느냐 하면, 진정한 행복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솔로몬 왕과 같이 높은 권세와 엄청난 금은 보화를 소유하면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판단은 결코 행복을 불러 오는 통로가 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성경을 보세요. 솔로몬 왕이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나요? 단 한 줄이라도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 곳이 있나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다 누린 솔로몬 왕도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어떻게 말했나요? 전 1:2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라고 고백합니다. 솔로몬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육체의 쾌락을 위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었고,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었다는 허무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일평생을 바람을 잡는 듯 헛수고했다는 뜻입니다.
10세기 초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사라센 제국 우마이야 왕조를 전성기로 이끈 군주로 압둘라만 3세(Abd al-Raḥmān, 912-961)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라만 3세는 자신을 이슬람 세계의 최고 통치자로 호칭되는 칼리파로 선포하며 49년 오랜 기간을 통치합니다. 단순하게 49년을 통치한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향락과 호화스러움을 누리고 삽니다.
역사 기록을 보면, 수도 코르도바 외곽에 호화스러움의 극치를 달리던 메디나트 알자흐라 (Medinat al-Zahra) 궁전을 건설합니다. 신성로마제국(오토1세)의 기독교 사절단이 이 궁궐을 보고,‘솔로몬의 궁전이 되살아 난 것 같다’라고 기록할 정도로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입니다. (황금 바닥과 기둥, 금실로 짠 옷, 보석장식 터번, 상아와 금 제작 왕좌)
당대 세계 최강의 군대를 거느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3,321명의 왕후와 616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숨을 거두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나는 통치 50년 동안 내가 진정으로 행복을 누린 날을 세어 보니 단 14일 뿐이었다.’라는 말입니다. ‘최고의 영화로움을 누렸으나 인간적 행복은 별개였다’는 압둘라만의 이 고백은 지금까지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고백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허무한 인생입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 또한 정치인, 희곡 작가, 연극 감독, 자연과학자, 철학자로 활동하면서 유럽의 문학과 문화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던 요한 볼프강 괴테(1749-1832)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학창시절 한번은 읽어 보셨을 <파우스트>를 저술한 분이기도 합니다.
괴테가 죽고 난 뒤에 사람들은 괴테의 업적을 기리면서‘시성(詩聖, secular saint)’이라는 최고의 칭송을 합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던 괴테였지만,늘 이런 고백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보고 행운아라고 하는데 사실 외부적인 조건이나 환경을 보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에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하루도 없었다.’라는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1월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얼마나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셨나요? 모쪼록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더 큰 즐거움을 2월의 시간속에서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몸된 교회와 함께 즐거움을 누리시고, 함께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과 즐거움을 누리시고, 가정의 즐거움, 직장의 즐거움을 풍성하게 누림으로 더 하나님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2월이 되었으면 합니다.
1.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12절 상반절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정말로 놀랍고 가슴 벅찬 사실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신앙이 주는 즐거움과 기쁨은 하찮게 여기고, 돈과 물질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을 더 좋아하는 모습’이 허다합니다. 그래서 가끔 교회에 출석하는 분들 중에서도 ‘내가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이 놀라운 구원의 즐거움을 하찮게 생각하는 분들이 존재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러지 마십시오. 성도가 누리는 가장 첫 번째 즐거움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이고,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즐거움입니다. 나에게서 구원의 즐거움이 먼저 회복되지 못하면, 다른 기쁨과 즐거움은 온전하게 나타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칼빈은 말하기를 ‘죄는 불행의 원인이며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죄 가운데 사는 인간에게는 ‘참된 행복과 즐거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들은 모든 죄에서 해방되고 진정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026년은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구원의 즐거움이 먼저 회복되는 한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죄 사함을 받아야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죄를 품고 있는 동안 마음속에 기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잠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잠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자신을 잡으려고 쫓아오는 사람이 없는데도 왜 도망합니까?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죄를 지었고 그 지은 죄 때문에 잡힐까 두려워서 도망가는 것입니다. 무섭고 두려워서 도망가는 사람에게 즐거움과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을 뵙는 것이 두려워서 숨고 도망가는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범죄한 후에 그들의 마음이 평안하고 기뻤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기쁨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낯을 피해 나무 뒤에 숨었던 것입니다.
행 3:19절,‘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죄사함을 받고 즐겁고 유쾌한 2015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국에 에드워드 모트(Edward Mote, 1797–1874)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무신론 가정에 태어나 교회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사람이지만, 가업을 이어받아 큰 부자가 됩니다. 그러다가 1830년 겨울 술에 취해 런던 거리를 배회하다가 한 교회를 발견하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불평과 짜증을 내는 모습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모습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신앙의 즐거움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전하고자 침례교 목사가 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의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그 찬송가 488장 ‘이 몸에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하는 찬송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 모두에게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이 다시금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구원받았다는 기쁨을 회복하고, 구원의 즐거움을 누리는 성도는 신앙생활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 한눈을 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2월의 모든 시간속에서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고, 예배드리는 즐거움을 회복하고, 소중한 가족과 가정이 주는 기쁨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통로가 되고, 예배가 찬송이 되고, 예배를 통해서 충만한 위로를 경험하는 2월의 모든 시간이 되길 축원드립니다.
2. 자원하는 심령이 즐거움을 회복합니다.
본문에 하반절에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라고 말합니다.
자원(自願)이란 단어가 어떤 뜻인가요? ‘스스로 自, 원할 願’이란 단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자원이란 말은 ‘스스로 원해서 결정 한다’는 뜻입니다. 똑같은 봉사활동이라도 자원해서 하는 봉사는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힘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지못해서 하고, 코 꿰듯이 억지로 끌려와서 하는 봉사는 더 힘듭니다.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경험해 보신 분들은 다 동감하는 부분입니다.
입대를 해야 되는 20세가 되면,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들은 군 입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합니다. 입대해야 되는 당사자도 걱정하고, 귀한 아들 군대 보내어 어찌 잘못될까 싶어서 바모님들도 걱정을 합니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나 아직 입대를 하지 않은 남자들이나 ‘모든 남자들에게 군대 생활은 공포와 두려움’을 줍니다. 그래서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 중에 군대 가지 않으려고, 이런저런 불법을 사용해서 입대를 안 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구군 중에 해병대라는 부대가 있습니다. 해병대는 독특하게 징집(강제 배치)이 아니라 100% 지원제(자원입대)입니다. 즉,‘원해서 지원한 사람만 해병대에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해병대훈련소이든, 대한민국 국군 모든 훈련소에서 조교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입니다. 저도 참으로 좋아하는 말입니다. 예전에 저희집 큰 아이나 작은 아이가 입대할 때에 모두 이 말을 해주었습니다. 남자 분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군대라는 곳이 얼마나 낯설고 생소하고, 그리고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고, 내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군대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0년간 부모님 밑에서 온실 안에 화초처럼 성장했는데, 하루 아침에 버려진 것 같이 혼자 방치됩니다. 모든 것이 힘들고 고통이고 괴로움입니다. 힘들다고, 어렵다고, 도망치는 것이 바로 탈영이고 문제 사병이 되는 지름길이 됩니다. 그래서 군대생활 하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것이‘찾아온 힘든 것과 고통을 네가 도무지 피할 방보다 없다면, 스스로 그 고통과 괴로움에 다가서서 즐겨라. 그러면 극복하게 된다’는 결론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어디 군대만 해당되는 말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숱한 어려움과 고난을 겪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고난을 피해 도망친다면, 문제가 발생하면 먼저 꼬리를 내리고 숨을 곳만 찾는다면, 우리는 영원한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앞에 고난이 있다면, 그리고 그 고난을 내가 몸소 겪어야 되는 상황이라면 담대하게 고난과 맞부닥뜨리기 바랍니다. 자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십시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니 내가 두려울 것이 무엇이냐”하는 마음으로 나가면, 고난과 고통은 사라지고 기쁨과 즐거움이 회복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라고 말합니다. 2026년 여러분의 모든 행동과 마음에 자원하는 마음과 행동이 먼저 생기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못해서 하는 봉사는 나를 도리어 힘들게 할 뿐입니다. 반대로 내가 자원해서 하는 봉사와 희생은 나를 더 즐겁게 만들고, 그리고 나에게 또 다른 즐거움과 기쁨을 안겨다 분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전 세계 어디를 가나 한국인들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서 악착같이 돈을 벌어 성공하는 한국인들입니다. 한국인들도 돈을 잘 모으는 민족이지만, 사실 전 세계 상권을 잡고 있는 대표적인 두 민족이 있는데, 유대인과 중국인을 선정하는데 큰 이견이 없습니다.
중국인들의 상술에 모토가 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이 말입니다. ‘웃지 않으려거든 가게 문을 열지 말라’전 세계에서 막강한 화교 상권을 이루고 있는 중국인들이 한 말입니다. 내가 웃으면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야 합니다. 아울러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자원하는 즐거움으로 만족할 때 놀라운 결과가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일소일소 일노일노(一笑一少, 一怒一老)라는 한자성어가 있습니다.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분노하면 한번 늙어진다”는 말입니다.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지만, 내가 자원하는 마음가짐과 행동이 먼저 선행되면 즐거움아 내 곁에 선뜻 다가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교회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일을 마지 못해서 하는 것이라는 불평이 먼저 앞서면, 매사에 짜증과 불평만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일이라는 판단 하에서 자원하는 마음이 먼저 앞서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할 일입니다.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를 기쁘게 살려면 이발을 하고, 한 주간을 기쁘게 살려면 자동차를 사고, 한 달을 기쁘게 살려면 결혼을 하고, 일 년을 기쁘게 살려면 새집을 사라’그러나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기는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2월의 모든 시간과 공간속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풍성하게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