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안 제5시조집, 『일출 만나러 가는 물고기』, 현대문예, 2019
□ 이전안 1939년 전남 영광 출생
2000년 《시조문학》 천료와 함께 문단 데뷔
호남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남부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일출 만나러 가는 물고기들
빨간 드레스
입고
금관 쓴 물고기들
동해의
양수 속에서
일출을 만난다.
봄 하늘
지구촌 위에
해를 띄운 첫 행사다.
축제의 갈채가
먼 물마루에
떠오르고
금관 쓴
물고기의
아름다운 결혼식 날
태양의
축사를 듣고
웃음 들킨 저 하늘.
땅 위에
내려온 뭇별
하늘에 올라가고
눈부시게
떠오르는
태양의 저 학익진
바다를 돌아돌아보며
물고기를 만난다.
서해 낙조
하룻날
짧은 시간
빗살무늬 엮은 오후
빈산에
새소리만
하염없이 엿듣다가
서녘에
선녀 빛 노을
그 앞에 내가 선다.
푸른 숨결
언제나
시름 모를
해맑은 청산에서
머금어
부드럽고 마시면
시원스런
내 숨결
푸른 빛깔로
항상 쉬며 가련다.
소나무는
변함없이
숲 동산을 이루고
가슴 안
가득 채워
숨 쉼도 드맑아라.
지순한
허파 속에 안겨
고이, 고이 재우리.
가꾸며
거두어 가는
청명산 그 속에서
높은 봉
절로 솟고
녹수 또한 굽이 흘러
어기야,
늘 푸른 숨결
절로 쉬며 살리라.
풀벌레 합주곡
그대들의
영혼을
건드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내 마음의 혼을
간직한다 하오리까.
새 아침
풀꽃들을 보며
이름표를 달아주다.
바람에
일렁이는
풀벌레의 합주곡
두 줄의 현에서
한 줄을 엮어내는
연주자 없는 당신들의
감미로운 노래였다.
환희의 길
아침이
보여주는
신선한 시간 앞에
섬광처럼
쏟아진 햇살
환희의 길
차란한
기억의 숲에
노래가 자란다.
우리의
환상 속 늪에
새들이 날고 있는
아주
작은 뜰에 앉아
아침을 펼치면서
넉넉한
산소 더미로
맑은 탑을 올린다.
절을 앉힌 산
종일토록 무릎 꿇고
참선하며 아뢰는 산
한 생을 마음 열고
에불하는 붉은 노을
하늘은
만다라 깔고
부처를 앉힌다.
풀꽃들도 고물고물
예불하는 자비로운 산
스님의 도포자락
찰랑이는 영봉마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절을 한 채 들인다.
피어난 꿈
멀리서 산을 보는가.
푸른 정을 아는가.
웃음이 마를 때도
오롯한 기쁨 있다.
하늘을
열고
별들이 영 넘어 가는데.
창틈을 드나든 햇살
강물보다 맑아서
어둠을 걷어내고
웃음 곁에 피어난 꿈
잔잔히
뜨는 꽃구름
달이 지고 해가 뜬다.
추석날
샛노란
별이 뜨고
달도 밝아 하늘 맑다.
문 열고
달려드는 아손
신명 개워 남친 시간
가족들
웃음소리가
해종일 담을 넘다.
기쁨이
피어난다
별꽃도
다투어 피고.
향기로
퍼지는 빛
여울져 강을 이루네.
그리움
마주 스치면
사랑스런 금옥이다.
빛을 쥔 문명의 해
아침인지
분간할 수 없으므로
창을 연다.
영광의 이 길 위가
빛나야 할 것인데,
하늘은
곁에 머물지 않고
해만 높이 떠있다.
손바닥에
떨어져 내린
빛을 쥐면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는데,
문명의
새 아침 애가
우리 곁에 서성인다.
<평설>
자연친화를 통한 자기성찰의 의미
김준 (시조시인, 서울여대 명예교수)
1.
그는 소재나 형식의 측면에서 실험적이거나 파격적인 시조를 창작하기보다는 전통적이고 정격의 단아한 시조를 창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그의 작품에는 시조다움과 친근감이 깃들어 있다는 말이다. 이 시조다움과 친근감은 그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그만의 것이 아니라 일반 족자의 것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독자들이 하고 싶었던 말과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이전안 시인을 통해 세상에 발언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열변을 토하듯이 혹은 설교하듯이 딱딱하게 발설된 것이 아니라, 마치 아주 친근한 곡조로 노래하듯이 전달되고 있다.
2. 사물(자연)을 바로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현미경을 통해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세세하게 관찰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둘째는 하나의 사물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성을 파악하는데 주력하는 방법, 셋째로 사물과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서 의미한 윤곽을 통해 상상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이러한 방법들은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다양성과도 일맥상통한다.
시인이 세상의 일부분을 현미경을 통해 보는 것처럼 치밀하게 관찰할 경우 그의 시는 구체적 묘사의 힘을 보여주게 된다. 또한 시인이 세상에 드러나 여러 관계성, 즉 사물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인간 사물과의 관계,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 등 다양한 관계들을 파악하는데 주력할 경우 그의 시는 공존공생의 섭리를 설파하는 힘을 담게 된다. 마지막으로 시인이 세상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져 나와 희미한 윤곽으로 바라볼 경우 그의 시는 상상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정안 시인은 바로 이 세 번째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시조는 무엇보다 읽히는 시조로서의 즐거움을 갖게 해야 한다. 시인의 감정과 생각이 시로서 형상화 될 때, 거기에는 아름다움이나 진실이 담겨져 있어, 우리가 그 시를 읽게 되고 즐거움에 젖는다. 만일 난해한 시어의 조립으로 보편의 감동을 상실한 시라면 독자들은 시를 읽는 마음의 여유도 즐거움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일출 만나러 가는 물고기들」 해설에서
이 작품 <일출 만나러 가는 물고기들>은 시조집 표제로서 무엇보다 적절한 비유를 의인법을 통하여 실감 있게 표현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아침의 바다에서 즐거워하리라는 상상을 아름다운 결혼식 날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은 이전안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이서 그만큼 시의 미력을 가지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