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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강해(5) 믿음의 소문이 난 교회
본문 : 살전 1:9-10
바울에게 있어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늘 자랑거리가 되는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그 교회를 통해 교회의 진정한 주인은
사람이 아니고 주님이심을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한 역할에 비해 그 교회는 너무도
훌륭한 교회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그들의 모법적인
신앙생활(너희 믿음의 소문이)이 각 처로 퍼져 ...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8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고 하였습니다.
너무 잘하고 있어 따로 교훈할만한 내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소문>
그래서 바울은 다른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 들은...
‘믿음의 소문’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하여
보내고 있습니다.
첫째, 어떤 과정을 통해 바울 일행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9절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그 당시의 교회들은 데살로니가에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구체적인 고백을 바울이 2:1-2에서 하고 있습니다.
<2:1-2>
1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절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예,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한 일로 인해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빌립보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피신하여 간 곳이 데살로니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을 일종의 “영적 싸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영적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이 고백은 반대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의
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6절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들도 바울 일행과 마찬가지로 많은 환난을 당했습니다.
야손을 비롯한 그 당시 복음을 받아들였던
성도들이 당했던 핍박에 대해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무너지지 아니하고
모범적인 교회로 세워진 것은 바울뿐 아니라....
그 당시 다른 모든 교회에 큰 감동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만일 우리 주변에 역경을 딛고 일어선 교회가 있다면.....
다른 주변의 교회들에게 좋은 귀감(도전)이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곳에 교회가 존재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모범이 되는 교회였습니다.
불가능하게 보이는 환경 속에서 세워진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만으로도 귀감이 되는데 ....
한 걸음 나아가 그 교회는 실제적인 변화를 이룬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다른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 들은...
‘믿음의 소문’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하여 보내고 있습니다.
첫째, 어떤 과정을 통해 바울 일행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둘째,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9절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당시의 그리스(마게도냐와 아가야)는 신화 속에
나오는 우상의 본거지였습니다.
그들이 살던 데살로니가의 서남방 약 50마일
거리에는 헬라 신화의 본산지요,
집산지인 올림푸스(Olympus) 산이 우뚝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상에는 온갖 종류의 신들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러한 신들을 떠나게 되면 큰 재앙을
받게 될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인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그와 같은 우상들이 더 이상 두려워할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어떠한 저주도...., 재앙도
내릴 수 없는 죽은 존재들이며,.....
그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줄 없는 생명이 없는
존재들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실 조상 때부터 섬겨왔고......, 어린 시절부터
습관화된 우상숭배를 온전히 떠난다는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기에
그들은 우상에서 과감히 돌아섰습니다.
성경은 철저히 우상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상은 무엇입니까? 예, 하나님의 모습을
어떤 형상으로 표현하는 것도 우상입니다. (예> 아론의 송아지.)
이방종교의 신상도 우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외적인 모양만을
우상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물질, 명예, 자녀 등등.
특히 바울은 골3:5에서....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기 위해서는 우상, 곧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롯의 아내처럼 뒤를 돌아보는 어정쩡한 태도가
아닙니다(거의 그리스도인, 무늬만...).
단호하게 과거의 죄 된 삶에서 돌이킬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삶의 방향전환).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상을 버렸다”는 것은 과거 자신을 얽어매고 잇던
문화와 관습, 습관으로부터 .....
완전히 돌이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이 참된 회개의 의미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여전히
과거의 습관과 가치, 방법을 그대로 고수하며 산다면...
그것은 아직 진정으로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자신을 얽어매던 모든 것,
곧 우상을 버릴 때(죄 된 삶을 회개) ....
진정한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다른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 들은...
‘믿음의 소문’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하여
보내고 있습니다.
첫째, 어떤 과정을 통해 바울 일행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둘째,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셋째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9절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사신 우상’과 대비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두 가지 특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특징은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인격적‘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특별히 인격적인 하나님과 인격적인
인간의 만남에서는 ‘관계’가 중요합니다.
죽은 사람하고는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비인격인 우상과는 관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과는 ‘관계’가 중요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거나
‘슬퍼하신다’거나 ‘분노하신다’거나 ‘사랑하신다’거나
‘미워하신다’거나 하는 표현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격적인 분이심을 증언하는 표현입니다.
성령님에 대해 표현할 때에도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사63:10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이 사회에서 성공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 가는
사람이 신앙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두 번째 특징은 참되시다는 것입니다.
참되시다는 말은 거짓이 없다는 뜻입니다.
<히6:17-18절>
17절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약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성경)을
믿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전제입니다.
<요일5: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였다면.....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봉사를 말합니다.
'섬긴다'는 말은 '종이 된다. 예속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은.....
인격적인 참 하나님에게 예속되어 봉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생명이 없는
무인격인 우상에게 예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생명이 없는 무인격의 우상을 두려워하며,
그 우상들에게 예속되어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이고 깨닫고 나니 하나님만이
인격을 지니신 살아 계신 유일한 신임을 알게 되었고,
그 분만이 우리의 섬김의 대상이 됨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실 참된 신앙은 반드시 섬김을 수반합니다.
섬김이 없다는 것은 행함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야고보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라고 하였습니다.(약2:26)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행함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다른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 들은...
‘믿음의 소문’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하여 보내고 있습니다.
첫째, 어떤 과정을 통해 바울 일행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둘째,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셋째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0절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사는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숱한 환난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신앙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곧 다시 오실 것이라고 믿는 소망이
그들로 하여금 모든 환난을 능히 극복하게 한 것입니다.
신학자 벵겔(Bengel)은...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 신자의
가장 확실한 특징이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마음의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것만이.....
우리의 마음에 진정한 평안을 줄 수 있는
참된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바로
이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환난 가운데서도 마음의 참된 평안을
누리며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과거의 잘못된 생활에서 돌아섰고,
현재는 사시고 참된 하나님을 섬기면서,....
미래에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맺는 말씀>
하비 콕스라는 사람은 미래의 교회상을
세 가지로 말하였는데,.....
미래의 교회는.....
- '출애굽기의 교회',....
- '시편의 교회'.....
- '계시록의 교회'이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의 교회'란 죄악으로부터 탈출한 공동체,
개혁과 혁신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죄에서 탈출하여
자유를 항해할 뿐 아니라...
세상과 조국에 해방을 갖다 주는
교회를 말합니다.
'시편의 교회'는 시가 있고, 감사가 있는
신앙을 가진 교회를 말합니다.
뜨거운 감격이 있고, 노래가 있고,
춤출 수 있는 신앙을 가진 교회를 말합니다.
그리고 파멸되어 가는 세계에
기쁨의 신앙을 전해 주는 교회를 말합니다.
‘계시록의 교회'는 인류의 멸망이 가까워지고 있는
이 시대에 파멸해 가는 종말이 아니라...
변화하는 종말을 전하는 교회,
절망적인 사회에 소망을 주는 교회를 말합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대망하는 교회,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마라나타의
신앙을 가진 교회를 말합니다.
본문의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로
이런 미래의 교회상을 갖춘 교회였습니다.
우리 금산교회도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우상숭배에서 벗어나.....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만 섬기며.......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가운데 참된 평안을 누리고......
이 시대에 ‘믿음의 교회’로 좋은 소문이 나기를 바랍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