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숲 속, 시끄러운 오리 한 마리
신입 날개 이수지
“동화에 관심 있는 아줌마들의 모임이 아니라 어린이 책을 연구하는 시민 모임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모임의 틀부터 갖추어 나갈 필요가 있다.”
- 『2024년 신입교육 자료집(28기)』, 15쪽
4월 <신입환영회>를 거치고 벌써 8월이 되었다. 오늘은 입추이지만 에어컨을 끌 수가 없다. 삼덕마루작은도서관 <책읽어주기> 활동에 참관을 다녀왔다. 읽어주신 책 중에 유미희 글, 장선환 그림, 초록개구리 출판사의 『태어납니다 사라집니다』가 자꾸 떠오른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아니, 인생을 계획대로 살질 않는다. 올해는 임금노동을 쉬면서, 무임금 돌봄노동을 중심으로 시민단체 활동과 자원봉사, 관심 있는 분야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하려고 했다. 계획된 활동 중 하나인 <어린이도서연구회>를 즐기고 있는데, 자꾸 교육출판부 회원들에게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를 듣는다. 첫 번째 이유는 ‘에너지를 많이 쏟은 사람들이 빨리 나가떨어진다.’이고, 두 번째 이유는 ‘다른 신입회원들에게 부담이 갈 수 있다.’이다. 더 열심히 할 수 있는데 이런 소릴 들으니 내가 <어린이도서연구회>에 너무 집착하고 있나 싶어 관심과 에너지를 분산시키기 위해 다시 취업을 알아보았다. 마침 집 근처 도서관 공고가 나와 지원했고, 9월부터 출근하여 근무 중이다.
<어린이도서연구회 대구지회>는 평일 오전 모임만 있다. 현 직장 생활과 병행하려면 연차를 탈탈 털어 써야 한다. 사실 탈탈 털어도 결석을 해야 한다. 상반기에 결석 없이 성실하게 모임에 참여한 나를 칭찬한다. 아마 3분의 2 출석을 지키고 신입 과정은 무사히 수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아쉬운 것은 연차를 모임 출석에 다 써 다른 활동에는 참여하기 어려워 진 것이다. 예를 들면 포항독서대전, 정책연수 등등에 참여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저녁이든 새벽이든, 온라인이든 연차를 쓰지 않고 출석할 수 있는 부서가 생긴다면 연차가 여유가 생겨 모임 외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이 바빠졌다. <어린이도서연구회>에 들어와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실망하였지만, 스스로 골라 읽지 않을 책을 읽고, 느끼고, 말하고,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누는 것은 영원히 하고 싶다. 훌륭한 체계라고 생각한다. 모든 활동이 온라인 카페에 성실하게 기록, 보관되어 있는 것 또한 정말 소중하다. 이 활동의 끝에 어떤 방향으로든 성장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체계를 기존 회원들과 현 시스템에 시간이 맞는 사람들만 누려서는 아깝다. 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취해봤으면 좋겠다.
마음이 급해진다. 새벽이든 저녁이든 주말이든 시간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면 좋겠다.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사무실도 아쉬우니 온라인 참여도 가능했으면 좋겠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혼자서 생각이 바쁘다. 유령들과 대화를 하는 건지 내가 유령인건지. 허공에 허우적거린다. 잘했다 잘못했다 이러자 저러자 돌아오는 것이 없다. 대안 없는 우려들은 자아가 분열되는 것 마냥 이중, 다중 메시지로 가득해 혼란스럽다. 책임감이 필요하다 했다가 뭔가를 맡길 순 없다고 한다. 단순한 친교 모임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한다. 아직 해보지도 않았는데? 단순한 친교 모임은 다른 영역에서 충분히 누리고 있고, 단순한 친교 모임에 회의를 느껴 시작한 시민단체 활동인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혹시 수동공격의 달인 클럽에 들어온 건가. 맞출 수 없으면 조용히 나가라는 건가. 눈치싸움은 제일 자신 없는 종목인데. 쎄~함은 느껴지는데 더 노련한 가면에 홀랑 넘어간다. 나도 가면(persona) 몇 개 쓸 줄은 아는데, 직구가 편해서 던지곤 방심했다가 이리 터지고 저리 깨져서 아무도 모를 곳에서 끙끙 앓는다.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그 선택권조차 내년에 내 손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더러운 똥 취급을 받고, 유령 취급을 받아도 남고자 한다. 신입환영회 글을 쓰라고 했는데, 오리가 꽉꽉 거리는 소릴 써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쓰고 싶은 글을 썼더니 ‘신입환영회’용으로는 불가하고 ‘사는 이야기’로 남길 수 있게 허락받았다. 서로 다른 사람들과 다양한 생각을 꾸준히 나누는 시간은 소중한 기회다.(어쨌든 나눈다고 생각한다) 신입을 거쳐, 부서원이 되고, 다양한 역할의 임원도 해보고, 강사도 해보고, 연구회도 하고, 책읽어주기 활동도 하고, 창작극도 만들어보고, 신입도 맞이해보고, 행사 부스 지원도 해보며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여 다양한 입장을 경험하고 이해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 성장하고 싶다. 오래할수록 내면을 깊고 넓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 터전에 삐죽빼죽 잎사귀 없이 가시만 돋쳐 말라비틀어진 나무도 한 그루쯤 심겨있으면 안 될까? 시끄럽게 꽉꽉 거리며 호기심에 숲을 헤집어 놓는 오리 한 마리 돌아다니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