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한마디의 격려는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힘을 갖는다. 격려를 받게 되면 자신 없던 일에도 자신감이 생기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리고 어떤 것도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든다. 이를 잘 알게 하듯 격려를 받고 자란 아이와 비난을 받고 자란 아이는 성장해서 완전히 차이를 드러낸다. 격려를 받은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반면 비난을 받은 아이는 거칠고 폭력적으로 변함으로써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격려는 한 사람의 인생을 옥석(玉石)이 되게 하지만, 비난은 한 사람의 인생을 잡석(雜石)이 되게 한다. 그런데 옥석이 된 사람 중에는 자신의 근본을 버리지 못하고 -성공한 인생임에도- 다시 잡석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있다. 이는 문제 있는 자신의 성격을 다스리지 못한 결과이다.
1914년 미국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하여 투수와 타자로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던 베이브 루스는 좌완 투수로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는 타격에 더 뛰어난 재능을 보임으로써 타자로 전향했다. 투수로서의 그의 성적은 94승 68패 방어율 2.28을 기록했다. 타자가 된 베이브 루스는 뛰어난 타격 감각으로 홈런에 독보적인 기량을 과시하며 보스턴 레드삭스를 3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의 자리에 올려놓았지만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 된 베이브 루스는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뉴욕 양키스는 명문구단으로 거듭났다.
베이브 루스는 1914년부터 1934년까지 22시즌 동안 12번의 홈런왕에 올랐으며, 1935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714개의 홈런과 2,217타점, 3할 4푼 2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베이브 루스는 1936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1948년 그의 등번호였던 3번은 영구 결번이 되었다. 이로써 그는 메이저리그의 전설이 되었다.
베이브 루스는 은퇴 후 감독이 되길 원했으나 감독이 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의 문란한 사생활과 거친 성격으로 자신을 관리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나친 음주를 하는가 하면 기자에게 막말을 일삼고 폭행을 가하는 등 특급 선수로서의 인품은 거친 야생마와 같았다. “스스로를 컨트롤도 못 하는 주제에 팀을 감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베이브 루스에 대한 여론이었다. 그는 뛰어난 선수임에도 감독은 하지 못한 채 생을 마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