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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의 길 2코스 역방향 제2부
고막2리마을입구-그런대로괜찮은할아버지-
구름다리갈림길-청룡회관팔각정-홍예문-
헬기장-문수산성장대-전망초소-홍예문-
팔각정-전망대-모란각삼거리-성동마을입구
20241130
1.코스 소개(생략) : 제1부 참조
2.문수산에서 김포반도와 염하강, 강화도 풍경 조망
제2부 : DMZ 평화의 길 2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하고 있다. 용강로에서 용강로103번길로 진입하여 김포시 월곶면 고막리 고막2리 마을을 통과한다. 문수산 동남쪽에 펼쳐진 고막리 지역에서 고막2리 마을은 문수산 자락에 자리하는데, 웅장한 전원주택들이 많다. 그 아래로 문수산에서 발원한 고막천이 마을을 지나 고막저수지로 흘러들어간다. 평화의 길은 고막천을 건너 문수산 숲길로 이어지는데, 문수원 문수산Valley 주택 앞에 '그런대로 괜찮은 할아버지(KGGF, Korea Good Grand Father)' 표지판이 붙어 있다. 이게 뭐지? 그 위쪽 고막천 다리 문주 지붕에도 '그런대로 괜찮은 할아버지(KGGF, Korea Good Grand Father)' 표지판이 붙어 있다. 알아 보니, '그런대로 괜찮은 할아버지'는 지난 2004년 은퇴한 신촌사료 김용태 前대표를 이르는데, 그가 문수산 자락에 조성한 어린이를 위한 자연사학습장도 '그런대로 괜찮은 할아버지(KGGF, Korea Good Grand Father)'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면 문수산 자락을 따라 12개의 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길 이름을 '사랑, 믿음, 평화, 겸손, 기쁨, 자제, 친절, 관용, 온화, 인내, 선함, 감사의 길'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그런대로 괜찮은 할아버지, 이렇게 살아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문수산 숲길로 올라가기 전 왼쪽으로 이어가면 청룡회관과 구름다리로 이어지는 것 같다. 11월 27일 평화의 길 2-1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하면서, 구름다리 북단에 평화의 길 2코스와 2-1코스 갈림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갈림길로 이어지는 길이 바로 이곳인 것 같다. 일행들을 따라 문수산 숲길을 따라 올라가니, 청룡회관 갈림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그렇지. 이곳은 2-1코스 역방향 탐방 때 구름다리를 건너 이곳으로 올라왔지. 여기서부터는 지난 11월 27일 탐방한 곳이어서 낯익은 길이다. 청룡회관 팔각정, 문수산성 홍예문이 바로 위쪽에 있다. 그날 청룡회관 팔각정에서 첫눈이 내린 김포평야의 설경을 감상하며 도취하였다. 그 모습을 상상하며 이번에는 어떤 풍경을 보여줄까 기대하며 한 곳 한 곳 유심히 살폈다.
문수산성 홍예문에서 평화의 길은 문수산성 남문 방향으로 내려간다. 지난 11월 27일에는 시간이 부족하여 평화의 길을 따라 허겁지겁 내려갔지만, 이번에는 시간 여유가 있어서 평화의 길을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문수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오래 전 한남정맥 산행 때 문수산 정상에 왔을 때는 장대가 없었고 헬기장이었는데 지금은 장대가 복원되어 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로스 제독이 6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침략하였을 때 문수산성 성곽과 장대 등이 파괴되었는데, 이를 복원하였다. 문수산성 장대 성벽의 출입문을 통하여 장대 안으로 들어갔다. 장대를 에워싼 성곽을 돌아가며 김포반도와 강화도, 염하강과 조강, 연미정 등을 살폈다. 김포반도와 강화도의 역사적 시련이 몽골 침략으로부터 떠오른다. 김포반도와 강화도의 역사적 시련은 우리 민족의 시련을 대표하는 것 같다.
문수산 장대에서 나와 북쪽에 있는 문수산 전망대로 갔다. 문수산 전망대는 예전 군부대의 전망 초소(OP)(Observation Post)였는데, 초소를 철거하고 전망대로 조성하였다. 전망대에서는 애기봉과 조강, 북한 땅이 훨씬 잘 조망된다. 풍경의 아름다움 속에 분단 조국의 아픔이 솟아오른다. 건너편 황해도 개풍군 지역 뒤쪽의 개성 지역과 송악산이 가늠된다. 개성을 대표하는 세 가지 송도삼절(松都三絶)을 황진이는 박연폭포와 서경덕 그리고 자신이라 하였다. 고려의 도읍지 개성을 떠올리면, 고려의 왕궁 만월대, 이방원의 신하 조영규가 정몽주를 죽인 선죽교가 송악산 아래에 있다. 그곳에 언제 가볼 수 있을까? 작고한 소설가 박완서의 '그 여자네집'은 개성을 배경으로 하여 일제의 정신대 문제와 조국 분단의 고통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평화를 어떻게 파괴하고, 개인에게 어떤 정신 질환을 초래하는지를 묘사한 역작이다. 만득이와 곱단이의 사랑이 아프게 조강 강물에 새겨진다.
평화의 길 2코스 문수산성 홍예문으로 되돌아와서 문수산성 남쪽 성곽을 따라 내려간다. 유비무환의 정신을 함양하고자 성곽에 복원 설치한 옛 군사 깃발이 펄럭이고, 팥배나무 붉은 열매들이 파란 겨울 하늘에 떠있는 흰구름에 붉은 빛을 물들인다. 아름다운 풍경에 심취하다가 자칫 성곽 아래로 추락할 수 있다. 하산길에서 명품 조망지 2곳은 문수산성 남문과 문수산 산림욕장 갈림길에 있는 팔각정과 남쪽 성곽에 조성된 전망대이다. 팔각정에서는 북쪽 지역, 전망대에서는 남쪽 지역을 조망하기에 좋다. 김포반도와 강화도를 가르는 염하강, 이 두 곳을 이어주는 강화교와 강화대교, 강화도 동쪽 해안의 풍경과 염하강 북쪽의 연미정, 강화도의 산들이 더 분명히 확인된다. 해안 쪽의 부새산과 당산, 당산 동쪽의 강화군 6.25 참전용사기념공원, 뒤쪽에는 강화도를 대표하는 길상산, 마니산, 진강산, 혈구산, 고려산, 별립산, 봉천산 등이 서해랑길 탐방의 기억을 되살린다.
강화대교 아래의 갑곶나루터와 진해루, 강화교 왼쪽의 갑곶돈대와 동락천, 염하강의 새우잡이 배들이 초겨울 오후의 햇빛에 반짝반짝 빛난다. 평화의 길 1코스 탐방 때 저곳을 지나오며 얼마나 허둥대었던가. 염하강 남쪽 김포반도의 대명포구와 초지대교는 햇빛에 반사되고 미세먼지 탓에 흐릿하다. 서해랑길 탐방 때 감격한 명마산, 수안산, 가현산, 계양산이 가늠된다. 저곳에서 김포반도 북쪽을 조망하며 감동하였는데, 이곳에서 김포반도 남쪽 조망은 흐릿하여 아쉽다. 그렇지만 위치를 가늠하며 살피는 김포반도와 강화도 지역은 가슴을 부풀렸다. 부푼 가슴으로 평화의 길 2코스 문주 밖으로 나왔다. 이 길은 DMZ 평화의 길 2코스와 평화누리길 2코스와 동행하며, 경기둘레길 2코스와는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같은 탐방길이다. 세 가지로 명명된 길을 모두 탐방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어났다.
탐방을 마치고 김포대로 남쪽보도에 있는 보도여행팀 관광버스로 향하였다. 분단 현장의 아픔과 문수산 아름다운 풍경에 허기를 잊었다가 탐방이 끝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오후 2시 버스 출발 시각을 맞추기 위해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버스에 올랐다. 김포대로를 버스가 달린다. 평화의 길 3-1코스 탐방길 지역 통진읍 마송리 지역을 통과한다. 지금까지 몰랐던 김포 지역이 이제서야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3.탐방 과정
전체 거리 : 10.4km(문수산 정상 왕복)
전체 소요 시간 : 2시간 59분
용강로에서 용강로103번길로 진입하여 고막2리 마을로 이어간다.
용강로103번길 입구에 문수산빌리지(고막2리마을회관)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용강로103번길 입구 왼쪽 뒤에 의료기기판매업체 옥천그룹 건물, 그 왼쪽에 라파요양원 빌딩이 보인다.
문수산 동남쪽 기슭에 전원주택 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맨 오른쪽 끝은 웨스트빌리지타운1차인 것 같다.
용강로103번길을 따라 고막2리 마을을 통과하는데, 문수산 자락에 웅장한 주택들이 많다.
용강로103번길에서 고막천을 건너 오른쪽 문수산 숲길 방향으로 이어간다. 오른쪽 포플라나무에 까치집이 5채나 있다.
문수산 숲길 입구에 문수원 '그런대로 괜찮은 할아버지'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평화의 길은 오른쪽 고막천을 따라 오른다. '그런대로 괜찮은 할아버지(KGGF, Korea Good Grand Father)'가 뭐지?
용강로103번길을 따라 고막2리 마을을 거쳐 오른쪽 고막천의 다리를 건넜다.
고막천길을 따라 문수산 숲길로 올라간다. 고막천 오른쪽 산자락에 '그런대로 괜찮은 할아버지' 12개의 길이 있다고 한다.
고막천 다리 문주 지붕에 '그런대로 괜찮은 할아버지(Korea Good Grand Father)' 표지판이 걸려 있다.
나무계단을 통하여 문수산 숲길로 올라간다. 청룡회관은 왼쪽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문수산 숲길로 올라와 문수산성 남문 방향으로 이어간다.
문수산 숲길에 넓은 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평화누리길 게스트하우스 안내판과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다.
평화누리길 게스트하우스는 김포 문수산 농원펜션에 있으며, 이곳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김포 문수산 농원펜션 : 강화섬까지 약 5분거리에 있으며, 김포대학 바로 옆 약 5000평의 대지에 넓은 잔디 운동장, 체험농장, 관리동, 펜션2개동으로 1개동은 단체룸, 1개동은 가족룸으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고급전원형 펜션입니다. 주인아저씨의 7080 라이브를 서비스로 이용해 주세요.
청룡회관 방향에서 문수산 숲길을 따라 구름다리 갈림길로 올라간다.
평화의 길 2코스 역방향을 따라 청룡회관 방향에서 올라왔다. 왼쪽은 구름다리로 내려가는 숲길, 오른쪽은 문수산성 홍예문으로 올라가는 숲길이다. 이곳에서 평화의 길 2코스와 2-1코스는 갈라지며, 역방향은 이곳에서 만난다.
구름다리와 청룡회관 갈림길에 문수산길 종합안내도와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숲길소개 : 한남정맥의 최 북서쪽에 위치한 문수산은 해발고도는 376m로 아기자기한 등산의 맛을 주며, 사계절 경치가 아름다워 김포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정상에 오르면 산 아래에 염하강과 한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맑은 날 강 건너엔 손에 닿을 듯 북한 개성의 송악산까지 볼 수 있어 산행과 더불어 다른 산에서 볼수 없는 산수의 어울림과 분단역사의 현장에서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문수산에는 조선 19대 숙종 20년(1694)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옛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며 산에 오를 수 있다. 등산로 초입에 산림욕장이 조성되어 있어 피톤치드와 음이온 등을 마시며 가벼운 휴식과 산책하기에도 제격이다. - 종합안내도
이 팔각정을 청룡회관에서 기증한 것인지 청룡회관 팔각정이라 이른다. 청룡회관은 해병대 제2사단에서 운영하는 복지시설로 숙소, 목욕탕, 이발소, 식당 등을 갖추고 있으며, 군인과 군인가족은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청룡회관팔각정에서 김포시 월곶면 지역을 조망한다. 왼쪽은 조강리, 중앙은 고막리, 오른쪽에 고막저수지, 맨 뒤쪽은 하성면 지역이며 한강이 보인다.
김포평야가 왼쪽 김포시 월곶면, 중앙 뒤 김포시 하성면, 오른쪽 김포시 통진읍에 걸쳐 펼쳐져 있으며, 왼쪽에 김포시 월곶면 고막리 고막저수지, 맨 오른쪽 뒤에 하성면 봉성리 봉성산, 그 맞은편 한강 건너에 파주시 심학산이 가늠된다.
왼쪽은 김포시 양촌읍, 오른쪽은 김포시 대곶면, 오른쪽 뒤에 강화해협 염하강이 보인다.
청룡회관팔각정에서 김포시 풍경을 조망하고 내려오면 청룡회관팔각정 이정목이 서 있으며, 홍예문 300m 지점이다.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면 문수산성 홍예문에 이른다.
문수산성 홍예문 바깥 출입구에 안내도와 문수산성의 문지 및 문수산성 옛 군사깃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1.문수산성文殊山城의 문지門址 : 문수산성에는 소규모 출입 시설인 아문 네 군데를 포함하여 총 일곱 군데의 문터가 있다. 남문은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에 의하여 파괴되어 무사석 일부와 홍예석만 남이 있던 것을 *홍예와 **육축부를 고치고 문루를복원하였다. 북문은 깬돌을 이용하여 쌓은 벽면이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하였다. 서문터는 발굴 조사 등을 통하여 기반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정밀한 발굴 조사를 통하여 성격을 파악한 후 복원할 예정이다. 아문은 정상부에 동아문과 남아문 두 군데가 있으며, 서아문과 북아문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남아문은 성 안쪽은 사각형으로, 성 바깥쪽은 홍예식(무지개 모양)으로 장대석을 이용하여 세웠다. 동아문은 외면이 무너져 원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으나, 남아문과 같이 홍예식의 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홍예 : 무지개같이 휘어 반원형의 꼴로 쌓은 구조물. **육축부 : 석축의 기단부분
2.문수산성 옛 군사깃발 : 1866년 프랑스 로스제독이 6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침략하였을때 프랑스군을 기습하여 치열하게 대항한 선조들의 자주의식을 기리고 유비무환(평소에 준비가 철저하면 후에 근심이 없음) 정신을 함양하고자 옛 군사 깃발을 복원 설치하였음. 문기門旗 : 군영軍營의 문門에 설치하는 기旗로 남문과 북문에 각각 2기를 설치. 인기認旗 : 소속을 표시한 기旗로 남문과 북문에 각각 2기를 설치. 영기令旗 : 군중에 명령을 전달할 때 사용하는 기旗로 남문·북문에 각각 2기, 남아문 부근 산성복원 구간에 7기를 설치. 순시기巡視旗 : 죄를 지은 자를 적발하고 처벌하는 임무를 맡은 순군巡軍이 소지한 기旗로 남문·북문에 각각 2기, 남아문 부근 산성복원 구간에 7기를 설치.
문수산성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에 군사깃발이 펄럭이고 있으며, 아래에는 아문(홍예문) 설명안내판이 있다.
문수산성 남아문에서 문수산성 장대로 성곽이 이어진다. 아래에 남아문 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문수산성 안으로 들어와 남아문을 통해 밖을 바라본다.
아문(홍예문)亞門(虹霓門) : 옛 지도를 보면 문수산에는 총 7개의 성문 즉, 문루門樓 3개와 아문亞門 4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아문은 암문暗門이라고도 하며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의 눈을 피해 사람과 가축이 통과하고 양식 등을 나르던 곳이다. 현재 4개의 아문 가운데에서 서쪽과 북쪽의 아문은 잔존하지 않으며 남쪽과 동쪽의 암문만 남아있다. 이곳은 1993년에 복원된 남아문南亞門으로 바깥쪽이 아름다운 무지개 모양의 홍예식 성문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성문 안쪽의 윗면과 바닥에는 기둥을 세우기 위한 확確이 있으며, 좌우측 허리 부분에도 홈을 파 빗장을 걸 수 있도록 하였다. - 안내판
평화의 길은 왼쪽 문수산성 남문 방향으로 이어가지만, 문수산성 장대에 올라갔다 되돌아오기로 한다.
문수산성 성곽이 남문으로 이어지고, 염하강(강화해협) 건너편 강화도에 오른쪽 혈구산, 왼쪽 진강산이 솟아 있다.
김포시 월곶면(오른쪽)과 대곶면(왼쪽)이 펼쳐지고, 염하강 건너 강화도에 오른쪽 진강산과 중앙 뒤 마니산이 가늠된다.
문수산성 성곽이 문수산 정상의 장대로 이어진다.
문수산 헬기장 끝에 여러 설치물들이 있으며 왼쪽에서 등산객들이 점심을 나눈다. 문수산 정상에 문수산성 장대가 있다.
헬기장 끝에 문수제단과 삼국시대의 문수산성 설명안내판, 문수산길 종합안내도, 이정목 등이 설치되어 있다.
서해로 굽이치는 한강수 내려 보며 기름진 김포들을 수천년 지켜온 문수산 호국의 상징이요, 김포의 기상이로다. 이곳에 오르는 모든 산악인의 康寧(강녕)을 기원하며 새천년을 맞이하여 黎明(여명)을 알리는 곳을 향해 제단을 세우다.
문수산성은 최근까지 강화의 갑곶진과 더불어 조강을 통한 외세 침입을 막고 한양 일대를 수호하기 위하여 세워졌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2014년 고려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한 결과 이미 삼국 시대(신라)에 산성을 세웠음이 밝혀졌다. 삼국시대 성벽은 문수산의 꼭대기와 산등성이 높이의 8/10에서 9/10에 해당하는 부분을 따라 돌로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길이는 약 300m, 내부 면적은 4,631㎡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 주변에서 발견된 흙으로 만든 말 1점, '찍은 무늬의 토기 조각' 및 '가로무늬, 문살무늬의 기와 조각' 등 7세기~ 9세기의 유물을 근거로 성벽을 쌓은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이와 같은 유물들이 계양산성, 동성산성, 수안산성 및 강화외성 등에서 출토되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문수산성 또한 주변의 산성들과 같은 시기에 성곽의 기능을 수행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테뫼식 : 산의 봉우리를 둘러 쌓아 만든 산성
문수산성 성곽 위를 걸어왔으나 앞의 나무계단부터 장대까지 성곽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이곳에서부터 나무계단을 따라 문수산성 장대로 올라간다.
나무계단 옆 장대로 이어지는 성곽 옆에 통행제한 문구가 적혀 있는 문수산성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김포 문수산성 사적 제139호 : 문수산성은 갑곶진과 함께 강화 입구를 지키기 위해 조선 숙종 20년(1694)에 쌓았는데, 김포에서 가장 높은 산인 문수산(해발 376m)에 자리하고 있다. 문수산성의 전체 길이는 6,123m로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의 남은 구간은 4,640m, 없어진 구간은 1,483m이다. 원래는 문루 세 군데와 소규모 출입문인 아문 네 군데가 있었으나 바닷가 쪽 성곽과 문루는 없어지고 현재는 북문과 남문, 남아문과 동아문만이 남아 있다. 김포시에서는 북문과 남문의 문루와 북문·남문·남아문 구간의 성곽 434m를 복원하였다.
해발 376m 문수산 정상표석 뒤에는 문수산성 장대가 복원되어 있다.
문수산성 장대를 배경하여 문수산성 정상표석과 함께 문수산 산행을 기념한다.
문수산성 장대 성벽의 출입문을 통해 장대로 들어간다.
문수산성 장대(文殊山城 將臺)터는 군용 헬기장으로 사용되었는데, 2017년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장대를 복원하였다.
해발 376m의 문수산文殊山에 있는 문수산성文殊山城은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 입구를 지키기 위해 숙종 20년(1694)에 돌로 쌓은 산성으로, 고종3년(1866)에 치른 병인양요의 전쟁터이기도 하였다. 이곳은 문수산 동쪽의 가장 높은 지대로 조선시대 장수가 주변 정세를 파악하여 지휘하던 곳이다.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옛 지도를 보면 문수산성에 남문(희우루喜雨樓), 서문(공해루控海樓), 북문 등 문루 3개와 비밀 통로인 아문 4개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는 전쟁 때 사라졌는데, 지도에는 공해루의 위쪽으로 성내의 시설물들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어 당시에 병영터였음을 알 수 있다.
문수산성 장대는 문수산 동쪽의 가장 높은 곳(해발 고도 376.1m)에 있으며, 서해와 한강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장수가 주변 정세를 파악하여 군사를 지휘하던 곳이다. 6·25 전쟁 이후 군용 헬기장으로 사용되면서 유적의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다. 2009년 한울문화재연구원에서 암반을 해체하고 발굴 조사한 결과 장대의 기단부 *석렬과 문터 한 곳이 확인되었고, 다수의 기와 조각과 도자기 조각, 철제 말과 도제(陶製) 말 등 21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2017년 김포시에서는 발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 전체 면적 약 25.74㎡의 장대를 복원하였고, 유적 아랫부분에 남아 있던 돌로 쌓은 부분과 벽돌로 쌓은 부분을 정비하고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석렬 : 돌을 쌓아 올린 구조물
염하강(강화해협)이 김포반도와 강화도를 가르고, 강화교와 강화대교가 강화해협 공중을 가로지른다. 강화도의 맨 오른쪽부터 봉천산, 별립산, 고려산, 혈구산을 확인한다.
문수산성 오른쪽은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 지역, 왼쪽은 내포리 지역이며, 염하강 건너편 강화도에는 맨 오른쪽에 고려산, 그 왼쪽에 혈구산, 왼쪽에 진강산이 솟아 있다.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 지역이 아래에 펼쳐지고 건너편 강화도에는 오른쪽에 진강산, 중앙에 마니산이 가늠된다.
중앙 왼쪽은 김포시 통진읍, 해안 쪽 위는 월곶면, 아래쪽은 대곶면 지역일 것이다.
김포시 월곶면 고막리와 개곡리, 뒤쪽은 하성면 지역이며 한강이 어림된다.
중앙 뒤 하성면 봉성리 지역에 봉성산, 그 왼쪽 한강 건너편에 파주 심학산이 가늠되며, 오른쪽은 양촌읍 지역이다.
황해도 쌍마고지, 도고개산, 한터산이 중앙 앞에, 왼쪽 뒤에 개성의 송악산이 가늠된다.
뒤쪽에서 장대를 바라보았다. 왼쪽에 장대 출입문이 있으며, 오른쪽 성벽 밖에 문수산 정상표석이 있다.
문수산성 장대 북쪽 성벽 밖에 문수산 정상표석이 있으며, 그 북쪽에 전망대 봉우리가 있다.
문수산성 장대에서 나와 문수산 정상표석 앞으로 와서 북쪽의 전망대를 보았다. 전망대로 올라간다.
문수산 정상표석에서 내려와 전망대로 가다가 문수산 정상표석과 문수산성 장대를 뒤돌아보았다.
문수산 전망대로 올라가며 전망대를 다시 보았다.
문수산 전망대는 전망 초소(OP)(Observation Post)였는데, 초소를 철거하고 전망대로 조성하였다.
문수산 전망대에서 남쪽의 문수산 정상에 복원되어 있는 문수산성 장대를 바라보았다.
김포시 월곶면과 하성면 지역이 펼쳐지고, 한강과 그 건너 파주 지역이 조망된다. 왼쪽 뒤에 월곶면 조강리 애기봉 조강전망대, 그 앞에 조강저수지, 왼쪽 뒤에 하성면 봉성리 봉성산, 그 왼쪽에 한강 전류리 포구, 한강 건너에 파주 심학산이 보인다.
왼쪽 뒤에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가 흐릿하며, 그 앞 관산포에서 임진강을 합수한 한강이 애기봉 앞으로 흘러오며, 건너편은 황해도 개풍군 한터산과 석류포마을이다. 오른쪽 아래에 조강1리 마을과 조강저수지, 왼쪽 아래는 월곶면 용강리 지역이다.
오른쪽 뒤 관산폰에서 임진강을 합수한 조강(祖江)이라고 불리는 한강이 남쪽 김포반도와 북쪽 황해도 개풍군 사이로 흐른다. 건너편 왼쪽에 쌍마고지와 도고개산, 오른쪽 애기봉 건너편에 한터산과 석류포마을이 보인다.
문수산 전망대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문수산성 북문이 나오며 그 끝자락에 한강의 하구 유도(留島)가 있는데, 왼쪽 산봉 오른쪽 아래에 유도(留島)가 살짝 보인다. 중앙 뒤에 개성의 송악산이 가늠된다.
오른쪽 산봉 뒤에 유도(留島)가 살짝 보인다. 오른쪽은 한강, 그 왼쪽은 서해 바다이다. 그런데 이 지역민들은 왼쪽 아래 강화해협을 염하강, 그 뒤쪽을 조강(祖江)이라 이른다. 염하강과 조강이 만나는 왼쪽에 강화팔경 연미정이 있다.
건너편 오른쪽 끝 강화도 연미정 앞에서부터 염하강이라 불리는 강화해협이 이어지며, 왼쪽 뒤부터 고려산, 별립산, 봉천산이 북쪽으로 이어진다.
동남쪽 방향을 다시 조망한다. 맨 오른쪽에 문수산성 장대가 있으며, 아래는 김포시 월곶면, 뒤쪽은 하성면, 오른쪽 뒤는 양촌읍 지역이다. 중앙 왼쪽 뒤에 하성면 봉성리 봉성산, 한강 건너 그 왼쪽에 파주 심학산이 보인다.
문수산성 장대를 다시 조망하고 문수산성 남문 방향으로 내려간다.
문수산성이 문수산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으며, 능선 남쪽은 김포시 포내리, 북쪽은 성동리 지역이다. 염하강 건너편 중앙에 강화 최고봉 마니산, 그 오른쪽에 진강산, 왼쪽 뒤에 길상산이 확인된다.
문수산성 장대와 문수산 전망대 사이의 안부에 조성된 뎈 전망대에 누군가 눈사람을 창조해 놓았다. 염하강 건너편 강화도에 왼쪽 진강산, 중앙 혈구산, 오른쪽 고려산이 확인된다.
염하강이라 불리는 강화해협을 사이에 둔 김포반도와 강화도를 잇는 강화대교, 그 왼쪽에 강화교가 있으며, 강화대교 건너편에 갑곶나루터, 강화교 건너편에 갑곶돈대가 있다. 그리고 뒤쪽 왼쪽부터 혈구산, 고려산, 별립산, 봉천산이 확인된다.
올라갈 때는 등산객들이 점심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떠나고 헬기장이 텅 비어 있다.
바로 아래 홍예문이라고도 불리는 남아문에서 평화의 길을 벗어나 문수산성 장대와 문수산 전망대에 올랐다가 내려가고 있다. 왼쪽 뒤에 진강산, 오른쪽 중앙에 혈구산, 그 오른쪽에 고려산이 확인된다.
가을에 붉게 익은 팥배나무 열매들이 겨울에도 붉은 색을 잃지 않고, 하늘에서 빨갛게 빛난다.
문수산성 성곽에 순시기(巡視旗)와 영기(令旗)가 펄럭이고 있다.
문수산성 성곽을 따라 내려가다가 문수산성 장대와 그 왼쪽 문수산성 전망대를 올려본다.
이곳에서 왼쪽 문수산성 남문으로 내려가야 한다. 뒤쪽 팔각정으로 가서 풍경을 조망한 뒤 되돌아온다.
팔각정 앞 전망대 난간 앞에 김포 문수산성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김포 문수산성(金浦 文殊山城) : 문수산성은 강화 갑곶진과 함께 염하(김포와 강화도 사이 해협)를 통한 외세의 침입을 막고 한양 일대를 수호하기 위해 조선 숙종 20년(1694)에 쌓은 산성이다. 김포에서 가장 높은 산인 문수산에 있으며(해발 376m), 전체 길이는 6,123m이다. 그중 산등성이를 연결한 4,640m가 지금까지 남아 있으며, 해안가의 1,483m는 없어졌다. 원래는 문루(성곽 위에 세운 누각) 세 군데와 아문(작은 출입문) 네 군데가 있었다. 현재는 해안가 쪽 성곽과 문루는 없어지고 문수산 능선을 따라 북문, 남문, 남아문, 동아문 그리고 2017년에 복원한 장대와 성곽 등이 남아 있다.
문수산성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곽과 염하강, 중앙 왼쪽의 진강산, 오른쪽의 혈구산, 강화대교 아래의 갑곶나루터를 조망한다.
염하강의 강화대교 오른쪽 산은 만수산이라고도 불리는 당산, 당산 오른쪽에 강화 6.25참전용사기념공원, 맨 오른쪽 앞은 부새산이다. 뒤쪽의 산은 왼쪽부터 혈구산, 고려산, 중앙 뒤에 별립산, 그 오른쪽에 봉천산이 보인다.
염하강 건너편에 부새산, 염하강 북쪽 끝에 연미정, 조강 건너편은 황해도 개풍군 지역이다.
팔각정 삼거리로 되돌아와서 왼쪽 남문 방향으로 내려간다. 성동검문소 버스정류소까지 1.3km가 남아 있다.
문수산성(文殊山城)의 부속시설 설명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문수산성 남쪽 성곽길을 따라 내려간다.
문수산성(文殊山城)의 부속시설 : 문수산성은 문터 일곱 군데(남문, 북문, 동문, 동아문, 서아문, 남아문, 북아문)를 비롯해 장수가 군사를 지휘하는 장대,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그 취약점에 해당하는 곳에 성벽을 연결하여 설치한 용도(甬道) 등의 시설을 갖추었으며, 돌로 쌓은 대규모 산성이다. 성 밖에는 서문인 공해루와 연결되는 갑곶나루 선착장 석축로(경기도 기념물 제108호)가 있고, 성 안에는 문수사(경기도 전통사찰 제62호)가 있다. 성 안에 문수진, 무검정, 제승당, 남고(南庫), 내사(內舍), 전대동고(田大同庫), 마담(馬潭) 등의 군사 시설이 있었으며, 남문의 동남쪽에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모두 확인되지 않는다.
문수산성 남쪽 성곽길을 따라 앞에 보이는 전망대로 이어간다. 강화교와 강화대교, 강화도 왼쪽의 진강산, 오른쪽의 혈구산, 그 오른쪽의 고려산을 확인한다. 강화군 선원면 신정리 더러미포구 앞 염하강에 새우잡이 배들이 보인다.
전망대에는 문수산성의 문지 설명안내판과 의자, 탁자가 설치되어 있으며, 강화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수산성 성곽이 왼쪽 아래 남문으로 이어지고, 강화교와 강화대교, 혈구산과 고려산, 그 오른쪽 뒤에 별립산, 그 오른쪽에 봉천산을 확인한다. 오른쪽 소나무 뒤 건너편 산은 만수산이라고도 불리는 당산이다. 강화교 왼쪽에 갑곶돈대, 강화대교 아래 갑곶나루터가 있다.
문수산성文殊山城의 문지門址 : 문수산성에는 소규모 출입 시설인 아문 네 군데를 포함하여 총 일곱 군데의 문터가 있다. 남문은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에 의하여 파괴되어 무사석 일부와 홍예석만 남아 있던 것을 *홍예와 **육축부를 고치고 문루를 복원하였다. 북문은 깬돌을 이용하여 쌓은 벽면이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하였다. 서문터는 발굴 조사 등을 통하여 기반 시설이 확인되었으며, 정밀한 발굴 조사를 통하여 성격을 파악한 후 복원할 예정이다. 아문은 정상부에 동아문과 남아문 두 군데가 있으며, 서아문과 북아문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남아문은 성 안쪽은 사각형으로, 성 바깥쪽은 홍예식(무지개 모양)으로 장대석을 이용하여 세웠다. 동아문은 외면이 무너져 원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으나, 남아문과 같이 홍예식의 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홍예 : 무지개같이 휘어 반원형의 꼴로 쌓은 구조물. **육축부 : 석축의 기단 부분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 지역이 펼쳐져 있고, 문수산성 남문이 오른쪽 아래에 보인다. 강화군 선원면 신정리 더러미포구 위쪽 염하강에 새우잡이 배들이 보인다. 맨 오른쪽에 혈구산, 중앙 뒤에 진강산, 왼쪽 뒤에 마니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모란각 삼거리에서 왼쪽 성동검문소 버스정류소 방향으로 내려간다.
평화의 길 2코스 시작 지점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곳에 토지지신비(土地之神碑)가 세워져 있다. 지신(地神)을 모시는 곳이다.
지신(地神)은 대지나 토지 또는 그 힘을 관장한다는 신(神)이다. 대지 및 특정 지역 토지가 지닌 것으로 믿어지고 있는 초자연적 힘을 인격화해서 신앙함으로써 형성된 개념이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평화누리길 2코스 문주 왼쪽에 평화의 길과 평화누리길 이정목, 오른쪽에 경기둘레길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다.
평화누리길과 DMZ 평화의 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으며 평화의 길 이정목 기둥에 평화의 길 2코스와 2-1코스 방문인증 QR코드가 붙어 있다.
평화누리길 2코스 조강철책길 문주 오른쪽에 평화누리길 2코스 설명안내판, 그 오른쪽에 DMZ 평화의길과 경기둘레길, 평화누리길의 김포지역 종합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평화누리길 2코스(조강철책길) : 북한과 가장 인접한 코스로 문수산성 성곽길을 오르면 북한지역을 관찰할 수 있다. 조강 철책을 따라 평화 통일을 생각하며 걷는 길이다.
왼쪽 김포대로는 강화대교로 이어지고 오른쪽 문수산로 성동마을 입구 오른쪽에 평화의 길 2코스 시작지점이 있다.
김포대로 북쪽보도에서 성동검문소 앞 횡단보도를 건너 김포대로 남쪽보도로 넘어와 문수산성을 올려본다.
김포대로 건너편 북쪽 성동마을 입구의 문수산로 오른쪽에 DMZ 평화의길 2코스 시작 지점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