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며
예술의 일상화,
일상의 예술화를 꿈꾸는 디카시
세상이 준 상처는 마음으로 치유해야 한다. 디카시를 쓰는 일은 세상으로부터 상처 입은 나를 치유하며 동시에 내 상처가 세계에 상처 내는 일을 멈추게 하는 일이다. 디카시 창작은 다른 무엇보다 세상의 모든 것과 마음으로 만나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흔히 “누구나 디카시를 쓸 수는 있지만 좋은 디카시를 쓰기는 쉽지 않다”라고 말한다. 사실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디카시 창작을 할 수 있다. 디카시의 가장 큰 매력 요소는 접근성이 수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과 문장이 융합하여 전혀 새로운, 시적인 어떤 세계를 완성하는 일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이 지점이 바로 디카시가 예술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수많은 사람이 예술을 일상화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일상의 예술화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길 중 하나다. 디카시를 통하여 사물이 마음의 언어를 갖게 되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사람의 언어에도 비로소 풍경의 마음이 깃들지 않을까. 이를 통하여 공감과 격려와 위로가 들꽃처럼 무성해지는 신세계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품고 두 번째 디카시 해설집을 낸다. 2021년부터 『경남일보』에 매주 디카시 해설을 연재해왔다. 그곳에 연재한 작품 190여 편 중에서 80편을 『풍경에서 피어난 말들』로 묶었다. 첫번째 디카시 해설집 『세상에 하나뿐인 디카시』에 수록된 작품의 필진 대부분이 시인이었던 것에 비해, 이번 해설집에 인용된 디카시 필자는 시인, 독자, 수필가, 번역가, 화가, 가수, 초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외국 대학생까지 다양하다. 수록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디카시가 본격문학임과 동시에 생활문학으로 누구나 창작하고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하였다.
2024년은 디카시 발원 20년이 되는 해다. 나또한 2006년부터 창신대에 강의를 나가게 된 것을 인연으로 디카시의 창시자인 창신대 이상옥 교수님과 함께 지금까지 디카시 문예운동을 해오고 있다. 2006년 12월 무크지 『디카시 마니아』 발간을 시작으로, 2007년 12월 『디카시』의 창간과 함께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디카시 운동은 한국디카시인협회를 창립하고 전국에 지부와 지회 그리고 수십여 개의 해외 지부를 창립하여 디카시를 K-문학으로 세계에 알리는 일에 주력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디카시가 시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대중만이 아니라 전문 시인들도 적극적으로 작품성 높은 디카시를 창작해야 한다. 이에 시인들을 계간 『디카시』의 필진으로 모시는 일에 주력해왔다. 동시에 디카시를 콘텐츠로 하는 다양한 문화 및 문학 행사를 열어 디카시의 저변을 넓히고자 했다. 서울시가 주최한 디카시낭독회 ‘시가 흐르는 서울’, 대산문화재단이 후원한 ‘교보낭독공감’, 국립중앙도서관이 주최한 ‘SNS 시인시대 展’ 등의 장기 행사를 통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시인과 대중이 함께할 수 있는 문학공간을 만들어왔다.
2014년 8월부터 2017년 7월까지 『머니투데이』에 주 2회 디카시를 연재하면서 디카시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디카시의 사진이 네이버와 다음 포털 사이트 메인에 업로드되면서 디카시는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스마트폰 모바일에 디카시가 큰 화면으로 나오면서 대중이 디카시를 읽을 기회가 폭증했던 것이다. 어떤 디카시는 조회수가 10만이 넘었다. 이어 2018년에는 (앞서 『세상에 하나뿐인 디카시』에 소개한) 디카시가 처음으로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면서 디카시는 제도적으로 더욱 안정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한편으로는 해외 주재 국민과 대학생에게 디카시를 알리기 위해 해외에 거주하는 시인이나 대학에 근무하는 한국어과 교수를 대상으로 디카시를 소개했다. 2019년 5월에는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채인숙 시인의 주도하에 주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과 한국디카시연구소가 ‘제1회 인도네시아 한글 디카시 공모전’을 시행하였다. 2020년 9월에는 나에게 디카시를 소개받은 홍은택 교수가 인도 자와할랄 네루대학교와 델리대학교 한국어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오래된 미래, 인도에 디카시를 전하다’라는 특강을 하면서 디카시를 전파하였다. 현재 홍은택 교수를 초청했던 이명이 교수가 인도에서 디카시 보급에 열중하고 있다. 이에 두 나라 대학생의 한글 디카시를 계간 『디카시』에 소개해오고 있다. 향후 더 많은 해외 대학생들의 한글 디카시를 만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 밖의 대내외적인 디카시 문예운동은 한국디카시인협회의 김종회 회장과 한국디카시연구소 이상옥 대표 그리고 두 기관의 사무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이기영 시인, 계간 『디카시』를 만드는 부주간 천융희 시인이 함께해왔다.
디카시가 생활문학으로 확산하는 데는 각 지자체가 시행하는 공모전이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디카시를 그 지역의 명소, 명물, 특화된 프로젝트 등을 알리기 위한 문화관광콘텐츠로 활용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디카시는 문학 장르이자 동시에 디지털 혁명시대에 최적화된 문화 콘텐츠라는 점에서 지자체가 추진하는 문화관광사업과 훌륭한 조합을 이룬다.
디카시의 확산일로에서 한편으로 우려스러운 점은 디카시의 정체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중이 창작하는 많은 작품은 디카시가 아니라 ‘사진시’다. 사진과 사진 설명에 가까운 글의 조합, 혹은 문장의 완성에만 집중하여 사진이 문장의 보조로 전락한 사진시가 디카시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다. 심지어 시인들조차 디카시라고 말하며 실제로는 사진시를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일부 대중이나 시인들이 디카시를 단순히 ‘사진에다 시를 합치는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데에서 생기는 문제다.
2023년엔 MOU를 맺어 한국디카시인협회 주관의 ‘디카시창작지도사’ 과정을 경남정보대평생교육원에 개설하였다. 1년 과정(48주)의 급수별(4급~1급) 수업을 통하여 디카시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고 창작하며 지도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전문가들을 배출하여 디카시를 올바로 전파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과정이다. 앞으로 제대로 자격을 갖춘 디카시창작지도사들이 양성, 배출됨으로써 도서관, 문화센터, 주민센터, 지역 서점, 학교 등 다양한 현장에서 대중에게 디카시창작지도를 통하여 디카시에 대한 대중의 올바른 이해를 도울 것이다.
지난겨울 70여 일을 포르투에서 보냈다. 지금도 마음속 풍경에서는 산타카타리나 거리의 늙은 댄서 부부가 웃고 있다. 음악에 맞춰 또각또각 절도 있게 그러나 세련되게 스텝을 밟던 그들의 모습에 어떤 삶의 문자를 붙일까. 이 새벽 아름답던 그 풍경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디카시는 모든 풍경을 사랑한다.
끝으로 이 책을 만들면서 시간에 쫓기는 나를 기다려준 진 편집자님, 신 본부장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또 작품으로 함께 해주신 필자님들에게도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린다.
2025년 벽두에
최광임
최광임 지음 [풍경에서 피어난 말들]
2025, 1, 27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