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상봉" - 30분 "3망루" - 30분 "(동문~대륙봉~2망루~남문)" - 30분 "망미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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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걷고 | 금정산성_성벽따라 한바퀴 1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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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걷고 | 금정산성_성벽따라 한바퀴 2 - Daum 카페
3분 (내림) 후
"4망루" 앞 임도와 합류
♠ 우측- "중성" 을 따라
"장대" 방향 갈림길이 있다.
"4망루"
1분 후
여기서 찍어보세요!
"포토존"
♠ 뒤돌아 본
"의상봉, 무명암"
아래 "장전동" 일대
1분 후
"나비바위, 부채바위" 가
더 잘 보이는 지점
진행방향의 긴 성벽
우측에 보이는 임도
(성벽 따라 걸으면)
1분 후
우측 임도에서 들어와서
♠ 좌측 "상마마을" 가는
갈림길이 보인다.
2분 후
사거리 갈림 지점
"성벽 따라" 직진 →
♠ 좌측- "상마마을"
♠ 우측- 임도
2분 후
우측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올라가면
"나비바위"
나비를 닮았나요?
이 바위 이름은??
진행방향의 부채바위
이 바위 이름은??
1분 후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바위
"부채바위"
2분 (오름) 후
울타리 끝 바위에서
이젠 임도와 멀어진다.
● 왼쪽 바위들
♠ 뒤돌아 본
지나온 경로
1분 후
바위 사이를 지나고
1분 후
암릉을 지나고
2분 후
바위 사이로 보이는
"3망루"
1분 후
좌측 "3망루" 를 다녀온다.
▶ 왕복 5분 정도 거리 ◀
"금정산성ㅣ金井山城"
금정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년(숙종 29)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 목적으로
금정산에 돌로 쌓은 산성으로
성벽의 길이는 18,845m,
성벽높이 1.5~3m,
총면적은 약8.2km²에 이르는
국내 산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산성이다.
처음 산성을 쌓은 시기는
문헌상으로는 확실하지 않으나,
남해안과 낙동강 하류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신라시대부터 성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1667년 (현종8) 통제사 이지형(李枝馨)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고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703년 이전에 산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산성의 기초는
1703년(숙종29) 경상감사 조태동(趙泰東)의 건의로
동래부사 박태항(朴泰恒)이 성을 쌓았고,
1707년(숙종33)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중성(中城)을 새로 쌓았으며,
1808년(순조8)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이
무너지고 없어진 성을 고쳐 쌓았다.
산성의 보수정비는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인
1972년부터 복원을 하여
금정산성 정비계획에 의거
연차적 지속적으로 보수 정비하고 있다.
금정산성은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에 대비하기 편리한
낙동강 하구와 동래지방이 내려다 보이는
요충에 위치하고 있어
조선후기 부산지방의 국방상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금정산성 제3망루"
금정산성 제3망루는
동문 북쪽 약 1km지점에 암반이 솟아 오른 절벽 위에
절묘하게 얹혀 있듯이 자리하고 있다.
이 망루는
금정산의 유명한 나비바위와 부채바위 주변의
천구만별(千龜萬鱉, 천 마리의 거북과 만 마리의 자라)의
모습을 한 바위와 어울려
그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찬탄을 자아낸다.
제3망루는
능선 동쪽으로 돌출되게 이어진 암반사이 경사면에
축대를 쌓고
정면 2칸과 측면 1칸의
맞배식(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벽이 삼각형으로 된 집)
망루이다.
망루의 서쪽 10여 m 전방 바위면에는
「번위돈(蕃威墩)」 이라는 음각명이 새겨져 있어
돈대(墩臺, 성안 높짓한 평지에 높게 축조한 포대, 砲臺)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조금 더 들어오면
"3망루"
바위 위에 올라서서
같은 조망을 즐기고
더 뚜렷이 보이는
"회동수원지"
"윤산" 뒤로
"장산"
"금련산 ~ 황령산"
▶▶ 다시 돌아온 갈림길
좌측으로 간다.
1분 후
넓은 평지와 큰 바위들
1분 후
큰 바위 앞에서
우측으로 돌아가고
1분 후
바위 앞에서
우측으로 →
5분 후
★★★
바위 사이로 지나간다.
♠ 좌측 성벽 넘어 보이는
"구서동" 방향 이정목
10분 후
"금강아파트 2.2km" 갈림길
"고당봉 5km"
"동문 0.8km" →
5분 후
임도와 합류하고
1분 후
넓은 쉼터 지나
2분 후
동문 안쪽 모습
동문 바깥쪽 모습
"금정산성 동문ㅣ金井山城 東門"
동문은 금정산 주능선의 해발 415m의 잘록한 고개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망이 아주 뛰어나고 동래읍성에서 가장 근접하기 쉬워
금정산성의 으뜸 관문으로 자리하고 있다.
<금정산성 부설비>의 기록에 의하면
1807년(순조 7년) 늦가을에 토목공사를 일으켜
한 달 만에 동문이 완성되었다고 전해진다.
동문은 홍예식문(虹霓式門 : 무지개 형태)으로
문폭은 300cm, 홍예의 높이는 340cm이다.
동래부사 정현덕(재임 1867~1874)이
동문과 서문의 재건에 힘을 쓰고 있을 때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두 성문을 아주 완벽하게 세우기 위해
이름난 석공을 수소문한 끝에
사제지간인 두 석공을 찾아 스승에게는 동문을,
제자에게는 서문을 짓게 하였다.
서문을 맡은 제자는
기술이 앞서 정교한 아름다움을 살려
스승보다 먼저 짓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스승은 제자의 뛰어난 기술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사람들은 그 스승을 미워하고 제자의 기술을 칭송하였다.
그러나 이들 사제는
동문과 서문 공사가 끝난 뒤에는
힘을 합쳐 밀양 영남루 공사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정표- 1
이정표- 2
"남문 2km" 방향으로 간다.
金井의 문화유산
장승지대
작은 장승들
안쪽으로 들어와
"동문" 을 뒤돌아 보며
"남문" 으로 향한다.
2분 (오름) 후
"다목적광장 0.75km" 갈림길
직진 →
"남문 1.85km" →
1분 후
우측 갈림길에서
직진 →
♠ 우측은 마을 방향
2분 후
"산성고개"
직진 →
♠ 왼편 아래 쉼터
"(203번) 남문정류소"
♠ 오른쪽 "금성동" 방향
"남문" 으로 바로 가는
임도 입구가 보인다.
5분 (성벽 따라) 후
데크 계단
5분을 오르면
넓은 "대륙봉"
높이를 수정한
"대륙봉/ 510m"
"윤산" 아래
"부곡동" 일대
"장산 ~ 마린시티 ~ 금련산~황령산"
119 조난 위치 표지판
"망미봉, 파리봉"
능선 뒤쪽으로
"상계봉~1망루~파리봉"
"파리봉" 에서
"서문" 내려가는 능선
2분 후
각 방면 거리 이정표
(작은 봉우리 지남)
7분 후
사거리 갈림길에서
호국사 0.6km"
"대륙봉 0.3km"
"남문 0.5km"
정면 (방향표시 없음) 으로
올라간다.
6분 후
"2망루" 에 올라서면
"2망루"
"1망루, 파리봉" 을 보며 ~
"장골봉 ~ 미륵봉 ~ 고당봉" 능선
"대륙봉" 뒤로
차례대로
"3망루, 4망루, 의상봉, 원효봉"
우측으로
성벽을 따라가면
"케이블카" 갈림길
포장임도가 아닌
정면 산길로 내려간다.
3분 후
아래 보이는
"남문"
"남문"
금정산 등산로 안내도
"금정산성 남문ㅣ金井山城 南門"
남문에서는
북쪽으로 고당봉이
정면으로 올려다 보이고
남쪽으로는 백양산이 보인다.
백양산과 남문사이는
만덕고개와 만덕동이 자리한다.
그리고 금강공원에서 출발하는 케이블카 종점이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금정산성부설비>의 기록에는
"1808년 초봄에 기둥과 들보를 백리 밖에서 옮겨오고,
벼랑 끝에는 험준한 바위를 깎아내어
메고 끌어당기는 사람이 구름처럼 많이 모여 들어서
만(萬)사람이 일제히 힘을 쓰니
149일만에 남문의 초루(譙樓)가 완성되었다" 고 한다.
남문은 평거식문(平居式門)으로
문의 상부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익공계 팔작지붕의 단층문루이며,
문폭은 290cm,
높이는 280cm이다.
남문 바깥쪽 모습
이정표가 좀 복잡하다.
안으로 들어와
뒤돌아 보면
● 우측- "2망루" 에서 내려온 길
● 좌측- "대륙봉" 가는 길
"망미봉" 방향으로 오르면
"남문" 에서
정면 "망미봉" 으로 오른다.
♠ 우측 1시- "수박샘" 가는 길
♠ 우측 3시- "남문연못" 내려가는 길
♠ 우측 5시- "댸륙봉" 가는 길
♠ 좌측- 남문 바깥쪽은 "만덕" 방향
5분 후
데크 계단을 오른다.
2분 후
★★
그냥 지나칠 수 있음
우측으로 들어가면
큰 바위 옆으로
"望美峰(망미봉)/ 605m"
■ 잘 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
"산성마을" 에서
"고당봉" 까지
4분 후
갈림길에서
계속 직진 →
1분 후
데크 계단을 오르고
♣ 사진을 4페이지로 넘긴다.
보고 걷고 | 금정산성_성벽따라 한바퀴 4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