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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리오(Rio de Janeiro)’ 대신 '보고타(Bogotá)'로
그렇게 남아메리카 대륙의 대도시이자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Santiago de Chile)’에 도착했다.
‘라파 누이(Rapa Nui)’ 섬은 칠레령이었기에, 인야는 국내선 공항에서 국제선 공항으로 터미널을 옮겨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때까지는 인야가 큰 짐가방을 끌고 다녔지만, 값싼 항공권을 산 탓에 무게 초과로 인한 추가 요금을 피하려면 이 시점에서 최종적으로 짐을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미 섬을 나오기 전에도 상당히 줄여둔 상태였지만.
그 대표적인 것이 큰 짐가방이었는데, 아직은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거라서, 그냥 버리기 아까워...
일단 작은 가방을 먼저 챙긴 뒤, 그 조금 전부터 관찰하고 있었던 청소부 부인에게 다가가 사실 설명을 했다. 이럴 때 인야는 자신이 스페인어를 할 수 있어서 그런 일마저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흐뭇했다.
“이 안에 들어있는 옷 중, 두어 개는 충분히 재 사용할 수 있는 거니... 보신 뒤에 처리하세요.” 했더니,
“아, 그래요? 아무튼, 거기에 그냥 놓고 가세요. 그럼,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하며 그녀는 무척 좋아했다.
그때부터는 좀 단출한 모습으로 여행을 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끌고 다니던 짐은 없앴지만, 부풀어진 등가방을 메고 공항에서 화장실을 가는 등의 움직임도 만만치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인야 자신이 보기에도, 한국에서부터 신고 몇 나라를 돌아다녔던 운동화가 너무 누추해보였다.
라파 누이 섬을 걸으면서, 현지의 검붉은 화산토 물이 들어 더욱 꾀죄죄해졌던 것이다.
‘내가 아무리 없는 처지라지만, 이런 꼬질꼬질한 신발로 여행을 계속해야만 하는구나......’ 하고 절로 나오는 한숨까지 내뱉고 말았다. 그러면서 스스로도 애틋한 연민이 일어, 인야는 무심한 듯... 자신의 신발을 핸드폰 사진으로 한 컷 남겨두기도 했다.
이제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비행기는 다음 날 새벽 5시 넘어 출발이라 공항에서 밤을 새워야만 했다.
한국과는 정반대의 남반구의 9월, 이제 봄이 오는 길목이라 공항에서 밤을 새우는 일은 추위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었다. 어차피 하룻밤의 숙박료를 절약하는 셈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몇 시간을 옷을 껴입어가며 힘겹게 버틴 뒤, 두 시 반 넘어 체크인이 시작되었다.
인야는 등가방을 짐칸에 보내려고 했으나 항공사 직원들은 그마저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가방을 메고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큰 짐가방이 있으나 없으나... 짐 때문에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쨌거나 그런 우여곡절 속에 인야는 콜롬비아 ‘보고타’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가 왜 콜롬비아로 향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두 달 전 산티아고에서 시작된 사소한 인연과 마주하게 된다.
두 달쯤 전 인야가 '칠레'의 ‘산티아고’에 처음 도착하던 밤, 힘들게 찾아갔던 한 '에어비엔비' 숙소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축제와 맞닥뜨렸었는데, 숙소 주인 부부와 투숙객들 모두 모인 자리에서 뜻밖의 환대를 받았던 인야는, 그 자리에서 흥이 올라... 역시 뜻하지 않게 하모니카까지 불었던 일이 있었다.
그렇게 축제의 밤을 보낸 그는 다음 날 '뿐따 아레나스(Punta Arenas)'로 떠났고, 거기서도 아르헨티나의 또 다른 땅끝이었던 ‘우수아이아(Ushuaia)’에도 들렀다. 그리고 한 달 만에 '라빠 누이 섬'에 가기 위해 다시 '산티아고(Santiago de Chile)'에 왔을 때도 그 숙소를 다시 찾게 되는데,
이 모든 일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인야는 남미여행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라빠 누이 섬'에 들어가기 위해 사흘의 여유를 두고 산티아고에 돌아온 상태였다. 그런데 서류 준비와 PCR 검사 등, 본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어쩌면 섬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는, 난관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야가 다시 그 숙소를 찾았을 때, 한 달 전 축제에서 알게 된 칠레 젊은이 두 명이 아직 그곳에 머물고 있었고, 너무나도 다행히... 그 젊은이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너무 고마웠던 나머지 인야는 다음 날 그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외부 식당 대신 숙소에서 직접 요리를 해서 초대하기로 했는데,
메뉴는 현지에서 준비 가능했던 ‘까미노 덮밥’이었다.
이 음식은 인야가 2,000년대 초반, 10년에 걸쳐 ‘스페인의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을 걸으면서 개발했던 자신만의 주 메뉴였다. 밥에 소스를 얹어 먹는 덮밥식이었는데, 거기다 먹음직스런 토마토 샐러드와 비노도 함께.
이때 숙소 주인 부부는 여름휴가를 가 부재중이었고, 칠레 젊은이 둘과 셋이서 막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때마침 장을 본 먹거리를 들고 또 다른 손님이었던 콜롬비아 젊은이 하나가 들어왔다.
인야는 그에게도,
“너도 원한다면, 우리와 함께 식사할래? 음식은 넉넉하니까!” 하고 제의를 했다.
사실, 별 뜻은 없었다. 인야의 평소 모습이기도 했고, 그 숙소에 머물고 있던 다른 독일인 청년과 미국인 처자까지 먹을 정도로 여유 있게 음식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물론 콜롬비아 친구 ‘후안(Juan)’은 흔쾌히 합류했고,
그날 저녁은 그 숙소에 묵고 있던 총 여섯 명이 어우러져 대만족하며 식사를 마쳤다.
다음 날 인야는 섬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조건인 PCR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 오후 늦게서야 ‘음성’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검사의 결과는 비행기 출발 24시간 전까지만 유효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인야는 다음 날 새벽에 '라빠 누이 섬'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했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른 아침 출발이라, 숙소에서 아무리 일찍 나간다 해도 지하철을 타고 갔다가는 공항에 늦게 도착할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는데,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택시를 타고 공항버스 환승 지하철역까지 간 뒤 공항버스 첫차를 타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날 밤 택시를 미리 예약하려 하자, 택시 기사들은 인야가 있는 숙소에서 환승역까지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예약을 받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인야의 핸드폰으로는 전화 통화가 쉽지 않아 직접 그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었고, 숙소의 젊은이들이 여기저기 전화를 걸며 도와주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바로 그때, 전날 저녁 식사를 대접받았던 콜롬비아 친구 후안이 나섰다.
“인야, 걱정 마세요. 내가 내일 새벽에 '우버'에 전화를 해서, 택시를 불러드릴 게요. 맘 놓고 주무신 다음, 새벽에 저를 깨우기만 하세요.”
뜻하지 않았던 그 친구의 호의에, 인야가... 어찌 아니 고마웠겠는가.
사실, 인야는 새벽에 조용히 혼자 나갈 생각이었기에, 가급적 그 밤에 그들과 작별인사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호의는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인야는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했는데,
후안은 전날 식사대접에 보답해야 한다며 간단한 '송별회'를 제안해 왔던 것이다.
그는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괜찮은 비노 두 병을 사왔던 것이고, 인야에게 권하는데,
“내일 새벽에 나갈 사람이 비노를 마시면......” 하면서도 그의 진심어린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럼, 한 병만 마시기로 해!" 하면서 결국 둘이서 꼴짝꼴짝 비노 한 병을 비우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다 보니, 인야가 화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안이...
인야에게 더욱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두 사람 사이엔 묘한 친밀감까지 싹텄는데......
다음 날 새벽, 인야가 나갈 준비를 마치고 방에 노크하자 후안은 곧바로 눈을 비비며 나왔다.
그는 우버에 전화를 걸어 택시를 불러준 것은 물론, 무거운 인야의 짐을 숙소 바깥까지 들어다주는 수고도 아끼지 않을 정도로 인야를 배려했다.
그 진실된 언행에 인야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고,
덕분에 비용도 절약하고, 아무 문제없이... ‘라빠 누이 섬’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뒤 인야가 '라빠 누이 섬'에 머물다가 그 다음 행선지를 정해야만 할 순간이 왔다.
먼 한국에서 남미 대륙까지 온 마당에 ‘페루’거나 ‘볼리비아’도 가고는 싶었지만, 자신의 형편으로는 도무지 그럴 수 없었다. 대신 천혜의 지형적(산과 바다) 조건을 가진, 아름다운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Rio de Janeiro)' 만큼은 꼭 한 번 들렀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사진으로만 보고 만족하기엔 너무 아쉬워서.
하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조금 서둘러 일찍 표를 구했더라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었는데,
섬의 인터넷 사정이 안 좋은데다, 인야의 경제력이 불안해서 미적대다 보니 그 시기를 놓쳐... 결국, 눈물을 머금고 '리오'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과정 역시 한국으로 귀국하는 길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물론 인야에게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은, 미국 경유와 유럽 경유의 두 옵션이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미국 경유를 택해야만 했다.
그런데 인야는 그 길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더러, 유럽 경유쪽으로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인야에게 유럽하면 '스페인'이었고, 게다가 스페인에 가면 점검해야 할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항공권 검색과 예약을 하던 중, 인야는 남미에서 스페인을 가는 항공료가 제일 싼 곳이 바로 콜롬비아의 '보고타 출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는 자연스럽게 그 콜롬비아 친구 후안에게, 그 사실을 메일로 알렸던 것인데...
아주 잘 됐네요!
하고 후안이 적극 찬성 문자를 보내온 건 물론,
보고타에 가면 자기 어머니가 살다가 돌아가신(올 1월) 빈집이 있으니, 거기서 편하고 안전하게 지내면 좋을 거라고 추천까지 하는 바람에... 망설임 없이 바로 보고타행을 결정하게 된다.
어차피 여행 끝이라 인야는, 안전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스페인에 갈 준비도 하고, 6개월 여 이어졌던 남미 여행에 대한 총 점검도 해볼 생각으로.
어딘가 낯선 곳에 가서 숙소를 구하기가, 더구나 돈에 쪼들리는 상황에서의 숙소 찾기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지를 너무나 잘 알던 인야에겐, 게다가 오랜 여행 끝에 지쳐있던 그에겐...
너무나도 좋은 옵션(기회)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되돌아 보니,
굳이 초대하지 않아도 될 친구에게 '식사 한 끼' 대접했던 사소한 인연이, 이렇게까지 이어졌던 것이기에,
'참내! 여행의 경로와 거처까지 결정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하고 인야 스스로 탄성을 지를 정도였다.
뜻하지 않은, 너무나 안전하고 조용한 숙소라는 보상으로 돌아온 것이라서. 물론 후안에게 다른 곳 숙박료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하기로 했지만.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게다가 후안은 인야가 경험했던 남미 사람들과 달리 상당히 성실하고 믿음이 가는 친구였다. 인야가 멕시코 등에서 사람들을 알긴 했지만, 남미 사람들은 좋긴 하지만 약속을 잘 안 지킨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후안 같은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친구와는 앞으로도 계속 관계가 이어질 예감도 드는 등,
이번 여행에서 인야는 쿠바와 칠레 등에서 만난 몇몇 젊고 믿음직한 친구들을 새로이 얻게 되는 뜻밖의 수확도 거둔 꼴이었다.
‘인생의 마지막 여행’이라는 각오로 떠나왔다가, 코로나를 피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입장이기도 했던 인야는, 어느덧...
‘어차피 '리오'도 못 가보고 돌아가는 길인데, 여기 남미에 한 번 더 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도 품게 되는 계기로도 작용한 일이었다.
초반 쿠바에서도 그랬지만, 이처럼 여행 중에 만났던 인연을 따라 경로가 정해지는 여정을 보며... 인야는,
'이런 것도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할 수 있을까? 이번 남미 여행은, 이래저래 그런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게 되네!' 하면서, ‘인생이란 그런 거구나!’ 하고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고도 있었다.
보고타행 비행기가 출발했다.
이번엔 운이 좋았던지 창가에 앉게 된 인야가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는 사이, 먼동이 터 왔다.
처음에는 바다 위인 줄 알았으나, 점점 날이 밝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광활한 구름바다였다. 그 면적이 어찌나 넓은지, 온 남미 대륙을 다 덮었나 싶을 정도로 장대했고 지루함마저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러다 해가 솟아올랐다.
그 거대한 구름대가 끝나자 비로소 바다와 해안선 섬들이 보였다.
‘여기는, 아마... 칠레의 맨 위쪽 국경 쯤 될 거야......’ 하고 짐작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인야가 그렇게 추측한 데에는 그 만한 근거도 있었다. 콜롬비아로 가기 위해선 어차피 그 위로는 내륙을 지나야 할 테니까.
이윽고 안데스 산맥이 펼쳐졌다.
완전히 달라진 풍광에 인야는, 언제 졸렸냐는 듯... 연신 사진을 찍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평소에도 지형에 관심이 많은 인야에겐 더 없이 좋은 기회이자 흥미로운 볼거리였던 것이다.
'저 산들의 높이는 어느 정도일까?' '저런 산중에도 사람들이 살까?' '그 사이 골짜기로 흐르는 물은, 어디로 해서 어디까지 이어질까?' 하는 끝없는 의문과 함께,
비행기 창을 통해 찍는 사진이라 그리 선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열성적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자신을 보면서, 인야는 스스로...
‘나에게 이렇게 세상을 떠돌도록 짙은 '역마살'이 낀 건, 어쩌면... 지형에 대한 남다른 관심 때문일지도 몰라......’ 할 정도니까.
그런데 그 산맥의 풍광도 잠시, 이제는 초록 대지 위에 반짝이는 곡선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존 중상류의 강줄기일 것이었다.
한동안 그 장엄한 풍광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는데, 인야 자신이 내려다보는 것은 그 거대한 강의 지류일 뿐일 텐데... 브라질 본토의 아마존은 얼마나 거대할 것인가 생각하니 자연의 위대함에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러다 또 풍광이 바뀌었다.
아마 콜롬비아에 들어선 모양이었다.
원래 비행시간이 다섯 시간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지칠대로 지쳐있던 인야에게는... 열 시간도 더 날아온 기분이었다.
얼마 뒤, '보고타'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인야는,
‘근데, 내가 여기 보고타에 온 과정도 너무 희한하기만 하다!’ 하는 심정이었고, 숙소 잡을 걱정이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후안의 어머니가 살았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