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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불쏘시개?”
검부의 1대 제자들은 부주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어떤 것인데 국 끓이는 데 사용한단 말인가?
“이미 타서 재가 된 것을 어찌하겠나!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네.”
“아니, 대사형. 그것은 또 무슨 말씀이오?”
다혈질 장석(長石)의 우렁찬 목소리가 부주가 긴급하다면서 연 회의가 진행되는 대검부청(大劍府廳)을 울렸다.
“북청파의 포우자는 그것이 혈도에게 다시 돌아갔다고 믿고 이곳을 떠났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우리가 어제 저녁에 먹은 국을 끓이는 데 불쏘시개로 사용되었으니 지금 무정혈도에겐 비급이 없네. 무정혈도 같은 인물이 그것이 우리 검부로 흘러들었다는 것을 계속 모를 리 없다는 것이 문제지.”
“사실대로 말해도 믿지 않을 짓을 했으니 난감하게 되었군요!”
무정혈도 장막은 천하를 오시하는 고수였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재 검부에는 그를 막을 고수도 없거니와 잘못하면 그의 손에 검부가 떼로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북청파 장문인이 직접 나서서 복수해주겠지만, 이미 북청파에 쫓기는 무정혈도 장막의 입장에선 그것은 전혀 고려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원, 세상에 그것을 태우다니….”
“그럼 사형 어쩌실 겁니까? 대사형의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
“그보다 먼저 해노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좋겠네. 현석아, 네가 해노 어르신을 모셔오너라!”
“예, 부주 사형!”
라혼은 늦은 아침 식사의 뒤처리를 이제 막 마치고 잠깐 한숨을 돌리려는 참에 현석의 손에 이끌려 현 검부를 이끄는 1대 제자들의 회의가 열리는 대검부청에 끌려나왔다. 그리고 대검부청에 들어서자마자 쏟아지는 검부 1대 제자들이 원망과 질문 세례를 받아야 했다.
“아니, 어떻게 그것을 태울 수가 있습니까?”
“이제 우리는 장막을 막을 만한 고수가 없는데, 어찌하여 그런 일을 하셨습니까?”
“시끄럽다! 늙은이를 불러다 놓고 젊은 것들이 무슨 신세 한탄들이냐?”
“해노, 고정하시지요!”
“내가 지금 고정하게 생겼느냐? 천하에 이름을 드높이겠다고 큰소리만 뻥뻥 치면서도 수련은 게을리 한 것들이 위험이 왔다고 칭얼대는 꼴을 보이는데…. 돌아가신 네놈들 선사 보기가 부끄럽지도 않느냐? 저기 조사상이라고 만들어 모셔놓고 앞에서 하는 짓거리들하고는….”
아닌 게 아니라 대검부청은 문파의 조사(祖師)를 모시는 조사전(祖師殿)을 겸한 곳이라 동인검협 조식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사형제들은 해노의 말에 저도 모르게 선사(先師)의 초상화를 보았다.
“내가 그걸 태웠기에 망정이지 잘못했으면 동인검협 조식의 검부가 아니라, 고독혈마의 마부가 될 뻔했구나.”
“….”
“하지만 무정혈도의 일은….”
“죽음이 두렵거든 모든 일을 북청파의 그 푸우잔가 포우자인가에게 말하고 이참에 아예 북청파 문하에 들면 되잖은가?”
검부의 부주 천석을 비롯한 사형제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힘없는 늙은이를 데려다 뭘 물을 셈이었나? 나는 검부에 얹혀사는 불목하니에 불과한데?”
“저희는 해노를 남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 현석이 할아버지로 모시고 계시니, 우리 모두의 할아버지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러니 노여워 마시고 가르침을 주십시오!”
천성이 순후한 법석의 말이었다. 다른 사형제들도 은연중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그러자 당황한 것은 해노(海老) 라혼이었다. 이 녀석들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생각해주리라곤 진정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단지 죽은 벗 조식을 하늘같이 모시던 이들이기에 선사의 안면을 보아 함부로 이놈 저놈 해도 참아주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었다.
“내 손자는 현석뿐인 줄로만 알았건만, 내가 생각을 잘못했네그려. 나는 자네들이 그리 생각하는 줄 몰랐네.”
“할아버지.”
현석이 가만히 할아버지를 불렀다. 라혼은 크게 한숨을 쉬더니 부주인 천석을 보며 말했다.
“이보시게, 부주.”
“말씀하십시오.”
“무정혈도인가 하는 그는 지금 중한 상처를 입은 상태라네. 그래서 그 산적 놈이 그에게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덤벼든 게지. 그러나 그는 고수네. 비록 중상을 입어 운신하기 힘들었지만 애초에 그 산적은 그의 상대가 아니었네. 그것은 시신을 들고 간 포우자도 눈치챌 것이 분명하네. 그가 장막의 실력을 잘 알고 있다면 그 산적 놈의 몸에 난 상흔을 보면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지.”
천석은 해노의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 고수라는 소리를 듣는 장막이 녹림 화적 따위에게 비급을 탈취당할 가능성이 무척 적었고, 설령 탈취당했더라도 회수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포우자가 알게 되면 추적은 더욱더 활기를 띨 것이다. 그에게 비급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근처에서 요양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기에…. 아무리 검부에 이렇다 할 고수가 없다 하더라도 중상을 입은 자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들었는가?”
“예, 부주!”
“상대는 어차피 혼자다. 또 그가 아무리 무정한 혈도라 하지만 그 또한 한 사람의 무인. 천하무림엔 그 정도의 고수는 모래알처럼 많다. 우리는 그중 한 명을 상대하는 것이다. 상황 또한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하다.”
회의는 끝났다. 젊은 청년들이 이끄는 검부는 호기로운 부주의 말 한마디에 곧바로 기세가 올랐다.
***
야차도보(野次刀譜). 라혼은 야차십팔도법(野次十八刀法)이 기록된 비급을 읽어 내려갔다.
“허 참, 이거 진짜 보물이로세.”
야차도보는 무명의 무사가 자신의 심득(心得)을 기록한 무서(武書)였다. 아직 완성된 무공은 아니었지만 라혼의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귀신(鬼神)의 이름인 야차의 칼부림이라는 야차십팔도법은 그 초식의 명칭이 참두(斬頭), 분시(分屍), 단비(斷臂) 등등….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이거 쓴 놈은 문(文)과 거리가 먼 놈이었군.”
“뭘 보시는데 그렇게 중얼거리시는 거예요?”
“오늘 수련은 끝났느냐?”
“예, 그건 태우지 않은 비급이잖아요?”
라혼이 방 안으로 들어온 현석에게 들고 있던 비급을 건네주며 말했다.
“시간 날 때 한번 읽어보거라!”
“예, 할아버지! 그보다 사형들에게는 유운검법을 가르치지 않으실 거예요?”
“글쎄다…. 내가 보기에 네 사형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수련을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굳이 내가 끼어들 필요가 없어 보여서 말이지….”
“….”
“검부의 제자라 하여 모두 검부의 유운검법에만 매달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본다. 각자의 성정이 다르듯이 각자에게 맞는 무리(武理)가 있는 법이니 말이다. 유운검법은 멀고 먼 무의 길에 시작이면 족하다.”
그리고 두 조손은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 현석은 검부 문하 전체가 참가하는 아침 수련에 갔고, 라혼은 수련 후 검부의 문하들이 먹을 아침 준비를 위해 주방으로 들어섰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쌀을 씻고, 국을 준비했다. 산에서 뜯어온 산나물을 겉절이하여 찬을 만들고, 뒤뜰 땅에 묻힌 절임 채소를 꺼냈다. 그러는 사이 쌀은 밥이 되고, 물은 국이 되었다. 커다란 나무 밥통에 밥을 옮겨 푸고, 국통에도 국을 옮겨 담았다. 검부 제자들이 먹을 식사가 실린 수레를 끌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식당으로 옮겼다. 그것으로 라혼의 일은 끝난다. 배식과 밥 수레의 수거는 검부의 2대 제자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휴우~! 그런대로 마무리되었나?”
라혼은 심공(心功) 운용을 하기 위해 한적한 곳을 찾았다. 고독혈마의 혈세록에 기록되어 있던 흡성대법(吸盛大法)은 라혼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외기(外氣), 즉 자연의 마나를 이용해 심공을 운용하는 라혼에게 타인의 기를 빨아들이는 흡성대법은 통하는 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자가 있었다. 그는 소리 없이 나타나 결가부좌를 틀고 흡성대법이 분명한 무공을 수련하는 노인의 목에 핏빛 혈도(血刀)를 갖다 댔다. 그러나 노인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창백한 안색의 무정혈도 장막은 혈도로 노인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거참, 고얀 놈이로세….”
“내놔라!”
라혼은 심공 운용을 중단하고 살벌하게 생긴 놈의 살기 어린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따라오게.”
장막은 말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을 이 힘없는 노인에게서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것을 부정이라도 하듯이 혈도에 힘을 주어 노인의 주름 가득한 목에 상처를 내었다.
“이런 막돼먹은 놈을 보았나! 내가 주나 봐라!”
장막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다시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는 노인의 행동에 당황했다. 그러나 그런 내심과 달리 살기가 진득하게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죽고 싶은가?”
―딱!
“…!?”
장막의 무표정하던 표정에 그제야 변화가 생겼다. 천하의 고수라 이름난 자신이 힘없는 노인의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머리에 ‘꿀밤’을 맞은 것이다.
“무박자? 너는….”
―딱!
“존댓말.”
장막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갑자기 이 볼품없는 노인이 엄청난 고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며칠간 이 노인을 관찰한 결과, 비록 불목하니 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검부 문하들에게 공경(恭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 노인은 천하의 북청파 장로 포우자도 그리 어려워하지 않았다는 것도 떠올랐다.
―딱!
세 번째 꿀밤을 먹고 나서야, 무정혈도는 혈도를 거두고 몸을 피했다. 라혼은 그 살벌하게 생긴 놈이 떠나자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심공 운용을 시작했다. 그런 라혼의 모습을 무정혈도 장막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아니면 나 정도는 무시해도 상관없다는 건가?’
***
“뭐라고요? 그놈이 나타났다고요?”
현석은 할아버지의 난데없는 말에 놀라 다시 물었다.
“그럼, 근처에 그가 있다는 말이잖아요?”
“그러니까, 네가 그놈을 잡아주어야겠다.”
“예? 제가요?”
“너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하는구나. 그만한 실전 상대를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라혼이 그렇게 결정하자, 현석은 한마디 항변도 못하고 무정혈도 장막과의 대결을 준비해야 했다. 다음날, 현석의 살아남기 위한 눈물겨운 수련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고 석 달 가까이 고된 수련을 한 현석은 무정혈도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한 달 보름 전 북청파의 포우자도 북청파로 돌아갔고, 검부의 사형제들 사이에서도 무정혈도 장막의 일은 옛날 일이 된 지 오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현석은 할아버지에게 이끌려 한적한 곳까지 산책을 했다.
“여기쯤이면 되겠지.”
“예?”
“거기 있는 거 다 아니까, 어서 나오게.”
라혼이 육신의 회복을 위해 운용하는 심공은 주위의 마나를 이용하는 것이다. 거기다 흡성대법을 기반으로 한 흡기공(吸氣功)은 그것을 더욱 쉽게 만들어주었다. 그런 라혼이 주위에서 얼쩡거리는 존재를 감지 못할 리 없었다.
“안 나오면 북청파에 자네가 어디 숨어 있는지 알리겠네.”
―부스럭.
현석은 할아버지가 가리킨 수풀 사이로 걸어 나오는 냉막한 표정의 사내를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현석아, 그럼 부탁하마!”
“무슨 속셈이냐?”
“별거 아니다. 내 손자 실전 경험을 쌓게 해주려고 그러는 거지!”
장막은 자신이 놀림을 당하는 것 같은 느낌에 살기를 줄기줄기 뽑아내며 혈도를 빼들었다. 그리고 일언반구 말도 없이 라혼에게 일도를 내쳤다.
―깡!
“…!”
“….”
현석은 어느새 검을 뽑아들고 할아버지를 보호했다. 그러나 현석은 경험 부족으로 약간 주춤하는 기색을 띠었고, 장막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헉!”
현석은 시뻘건 칼이 코앞까지 접근하자 검을 휘둘렀다. 할아버지에게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수련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삼재검 중 횡소천군이었다.
“….”
현석의 횡소천군 초식에 장막의 앞섶이 예리하게 잘려나가며 선수(先手)의 기세가 꺾여버렸다.
“횡소천군?”
얼떨결에 코앞(?)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시전한 횡소천군에 유운(流雲)의 도리가 녹아 있고, 천하의 고수라는 장막에게 그것이 먹히자 현석의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 이번엔 현석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선인지로? 겨우 삼재검법 따위로 날… 헉!”
우습게도 무정혈도 장막의 무공은 무정도법(無情刀法)이었는데, 그것은 냉심(冷心)으로 상대 기의 흐름을 끊고 날카로운 반격을 하는 무공이었다. 그런데 단순하기 그지없는 삼재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었다. 무정도법상의 도리(刀理)로 흐름을 끊었지만 상대는 그 끊어진 흐름에 개의치 않고 역으로 흐름을 끊고 다시 흐름을 타고 오르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손발이 어지러운 장막과는 달리 현석은 그동안 자신이 수련한 유운삼재검법의 오의(奧意)를 하나하나 실전에 응용하면서 대각(大覺)의 시점에 와 있었다.
“혈인(血刃)!”
장막은 계속 손발이 어지러워지며 일방적으로 밀리자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병법을 사용했다. 그래서 허점이 큰 대신 위력이 강한 무정혈인강(無情血刃罡)를 시전했다.
―빠강!
쇠몽둥이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장막이 뿌린 도강(刀罡)은 산산이 깨져버렸다. 현석은 그 위기의 마지막 순간, 대오각성(大悟覺醒)을 해냈다.
―덥석!
그러나 현석에게 도강(刀罡)은 아직 버거운 것이었다. 패자(敗者)는 서 있고 승자(勝者)는 누워 있는 묘한 상황 속에서 라혼이 멍하니 서 있는 장막에게 한마디 던져주었다.
“혈세록은 내게 없네. 혈세록은 이미 재가 된 지 오래니 더 이상 미련 갖지 말게나.”
라혼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멍하게 서 있는 그를 그대로 둔 채 창백한 안색으로 기절한 현석을 업고 검부로 걸음을 옮겼다. 장막은 자신을 이긴 상대를 업은 노인의 모습이 멀어지자 그제야 피를 토해냈다. 아직 몸이 낫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공력(功力)을 운용하다 내상(內傷)을 입은 것이었다.
현석은 무정혈도 장막과의 생사결(生死決)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갑자기 강해진 것은 아니다. 현석의 깨달음이란 그동안 모호하던 앞길이 보인다는 의미가 컸다. 현석은 장막과의 결투에서 입은 내상이 수습되자, 검부의 부주인 대사형을 찾았다.
“부주 사형, 할 말이 있습니다.”
“그래, 현석아! 몸은 이제 괜찮은 것이냐?”
“걱정해준 덕분에 모두 나았습니다.”
천석은 무정마도의 손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 막내 사제가 무척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이번에 철사성의 무림 대회에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너도 가려고 하느냐?”
“예, 장막과 검을 섞어보니 제 경험이 너무도 미천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네가 그렇게 부탁하지 않아도 널 데려갈 생각이었다.”
철혈사자성(鐵血獅子城)에서 천하무림대회가 열리기로 한 날짜가 벌써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천하는 넓고 넓어 지금쯤 출발해야 늦지 않게 원주(元州) 청인성(靑寅城)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동인성의 이름 있는 방파의 제자들이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부주에게 자신의 뜻을 밝힌 현석은 다시 할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러냐? 잠시 기다리거라.”
라혼은 현석을 위해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는 기(氣), 마나(Mana), 신성력(神聖力), 마력(魔力) 등의 힘에 관한 것을 정리한 책을 손자에게 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네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내공심법이다. 그러나 나는 네게 어울릴 만한 내공심법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혈세록을 읽고 내공심법을 만들어보려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기(氣)와 이곳 고수라는 자들의 기(氣)의 개념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어울림이란 것은 무척 중요하다.”
“….”
“그래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기에 대한 정의와 몇 가지 무공을 적어 네게 주려 한다.”
“그럼 이것은?”
“비급이지!”
라혼이 만든 책은 일종의 참고서 같은 것이었다. 현석은 할아버지가 지은 책을 읽어나갔다. 거기에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깨달았지만 뭐라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해놓았고, 또한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도 거론되어 있었다. 그러다 문득 현석이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런데 책 제목이 없네요?”
“책 제목? 그냥 네게 조금 도움이 될까 몇 자 적어놓은 건데, 제목까지 붙일 것까지야!”
“그래두요. 제가 한번 지어볼까요?”
“이제는 네 것이니 알아서 하려무나.”
현석은 책을 계속 훑어보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더니 드디어 책의 제목을 정했다.
“무(武)에 대한 지침서 같은 것이니까? 무도경(武道經)? 아니지 대략적인 큰길이니까, 클 대(大)를 붙여서 대무도경(大武道經)이라 부르겠어요!”
“너무 거창한 것 아니냐?”
다음날 검부에서도 원주 청인성에서 철혈사자성 주최로 열리는 천하 무림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검부의 살림이 넉넉지 않아 검부의 부주인 천석과 현석, 지석 등 일곱 명의 조촐한 검부 대표단이 구성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먼 길을 떠났고, 라혼은 왠지 허전함을 느끼며 남은 검부의 제자들을 위해 불목하니 일을 계속했다. 그것이 라혼이 현석을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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