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관포의 남원양씨
거제 관포의 남원양씨는 병부공후 묵재공 양우의 자손이며 병부공 21세 양처해 선조님께서 임실 오수에서 거제 관포로 이거하신 후 구족이 번성하였고 후손들이 거남사에서 입향시조 이후의 선대조부를 매년 향사하고 있다. |
1. 고려의 충신 묵재공 양우[병부공 10세]
양우는 고려의 충신으로 판도판서를 지냈으나 조선이 개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셨다. 태조께서 묵재의 문장이 뛰어나심을 들으시고 대제학의 벼슬로 세 번이나 불렀으나 나가지 않으셨다. 낮에는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지 않으시고 밤에는 옷을 벗으시지 않으시고 문 밖을 나가지 않으시고 언제나 말씀을 않고 웃으시지 않았으니 그 때 사람들이 묵재(黙齋)라고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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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락은사 양우룡[병부공 11세]
묵재공 양우의 장자이며 고려의 신공시승(繕工寺丞)을 지냈으나 조선이 개국되자 아버지와 함께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셨는데 세상 사람들은 동락은사(東洛隱士)라고 불렀다.
동락은사(東洛隱士) - 낙동강 동쪽의 숨은 선비, 낙동강의 동쪽이면 경상우도이다. 경상우도에 은거한은 선비들은 동인중에서도 북인으로 분류된다.
임진왜란이 일어날 때 까지 세상 밖으로 크게 나서지 않으셨던 동락은사(東洛隱士)의 원조 이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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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사간 양사귀[병부공 12세]
묵재공 양우의 장손이며 경상우도로 은거하신 양우룡의 장자이시다. 조선 개국초기 사간원의 대사간이라는 청요직을 지냈지만 김해부사로 내려오시고 아버지를 따라서 동락은사(東洛隱士)가 되셨다.
6子를 두셨는데 첫째 아들 양결은 창원 부사를 지내셨고 둘째아들 양민은 정의 현감을 지내셨고 셋째아들 양역은 연일혐감을 지내셨고 넷째아들 양기는 만호를 지내셨고 다섯째 아들 양교는 현감을 지내셨고 여섯째 아들 양준은 군수를 지내셨다.
거제 관포양씨는 양준 선조님의 자손이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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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군수공 양준[병부공 13세]
대사간 양사귀의 6子이시며 내직으로 사헌부에서 감찰, 지평을 지내셨고 육조의 정랑과 사재감정을 지냈으며 외직으로 진보현감, 전주판관, 영광군수를 지내셨다. 고려가 무너지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경상우도에 은거하셔서 그 자손들은 경상우도에 세거하였으나 정랑을 지내셨던 양준 선조께서 원종공신에 책록되셨고 아들 양보 선조께서 음덕으로 정3품 통정대부에 책록되시고 실직으로 임실지역의 역참을 관리하는 종6품의 찰방을 지내셔서 그 자손들은 남원도호부 임실현에서 세거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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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장수군 산서면 귀후재
원종공신 양준의 아들 양보 선조께서 음덕으로 임실 오수의 역참을 관리하는 찰방을 역임하시고 그 자손들은 남원도호부 임실현과 남원도호부 장수현에 세거하였다. 임실 오수의 인접 고을이 장수 산서인데 장수군 산서면은 묵재공 양우를 배향한 월곡서원이 있었던 곳이고 양준의 자손 재실인 귀후재가 있는 곳이다. 통정대부 양보의 장자 양구수는 참봉을 지내셨고 참봉 양구수의 장자 양홍제도 참봉을 지내셨다. 양준의 장손 양홍제의 3子 양주, 양발, 양호는 임진왜란의 충신이다. 충신 자손이 충신을 낳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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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충신 자손 충신 형제
임진왜란 초기 일본은 파죽지세로 북상하였고 경상도와 충청도를 무너트리고 한양까지 점령하자 호남지역도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성웅 이순신 장군께서 남해를 가로막아 호남의 바다를 지켰고 의병들이 일어나서 호남의 곡창지대를 지켰다. 의병들이 봉기하여 호남의 곡창지대를 지켰기 때문에 군량과 병력을 조달할 수 있었고 관군의 재정비가 가능하였으며 왜란을 극복할 수가 있었다. 남원 의병장 중에 형제가 함께 창의 하였으니 양주(梁澍)와 양호(梁浩)이다. 석계공(石溪公) 양주(梁澍)는 남원을 지키지 못하면 호남 일도가 모두 적굴이 될 뿐 아니라, 충청도 한 지방도 장차 차례로 함락되어 서울의 적과 합세하게 되면 회복하는 일을 결코 바랄 수 없으니 목숨을 바쳐 성을 굳게 지켜야 한다면서 목사 정염(丁焰)과 함께 창의 하였고 고을에서 가장 연장이었던 도탄(桃灘) 변사정(邊士貞)을 도장(徒長)으로 추대하였다. 양호(梁浩)는 큰 형님 석계공(石溪公)이 의병을 일으키고 변사정(邊士貞)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자 사재를 털어서 군량을 마련하였고 가동(家凍)을 데리고 석계공과 함께 동참하였는데 부사(府使) 윤안성(尹安性)이 군사를 도와주고 체찰사 정철이 부장(副將) 이잠(李潛)을 시켜 변사정(邊士貞)을 보좌하게 하니 이웃 고을의 군사도 또한 따라 일어나서 도합 천여 명이 모였다. 권율 장군은 한양성을 수복하기 위해 호남 의병을 이끌고 북상하였고 마침내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어서 일본군을 궤멸시켰는데 권율 장군이 북상하여 수원의 독산성에 주둔하였을 때 한양에 있던 왜군 수 만명이 쳐들어 왔다. 왜적의 공격이 거세지자 권율 장군은 충청도와 전라도의 체찰사 정철에게 보고하여 지원을 요청하였다. 체찰사 정철은 호남지역의 관군과 의병에게 독산성을 구하라고 하였고 의병장 변사정과 휘하 의병들은 즉시 달려서 공주에 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천여 명이 넘는 거대한 병력과 군량을 빠른 시일 내에 운반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체찰사 정철이 변사정에게 영남과 호남의 경계에 있으면서 목사 김홍민(金弘敏)과 합세하여 적을 방어하라고 하였다. 변사정(邊士貞)과 남원 의병은 충청도 옥천에 본대의 진영을 꾸렸고 영남으로 왕래하는 왜적을 차단하였다. 부장(副將) 이잠(李潛)과 함께 정예병 300명이 황간(黃澗)에 들어갔는데 23세의 젊은 의병장 양호(梁浩) 또한 이잠과 함께 황간의 요해지에서 매복하였다. 강화 협상으로 왜적이 한양성을 떠나고 남쪽으로 내려갈 때까지 6개월 동안 매복하면서 많은 적을 물리쳤고 상주와 금산을 왕래하는 적을 막았다. 체찰사 정철이 상주(上奏)하여 석계공은 사옹원(司饔院) 참봉(參奉)에 양호(梁浩)는 사재감(司宰監) 첨정(僉正)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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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첨정공 양호의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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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보(1686년)에는 정2품 판사를 지내셨다고 등재하였고 장수황씨 황적의 묘갈명에는 사위이신 양호는 정3품 사재감 정을 지내셨다고 등재하였다. |
7. 거제 관포의 입향시조 양처해[병부공 21세]
거제 관포의 입향시조이신 가의대부 양처해 선조님께서는 임진왜란의 충신 양호 선조님의 현손이시다. 사간공 양사귀 선조님의 여섯째 아들이신 군수공 양준 선조님께서 원종공신에 오르시고 그 아드님 이신 양보 선조님께서 음덕으로 임실의 역참을 관리하는 찰방이 되신 후 그 자손들은 임실 오수와 인접 고을인 장수 산서에 세거하였는데 양처해 선조님께서 거제 관포로 이거하시어 양처해 선조님 이하 자손들은 대대로 거제 관포에 세거 하시었다.
고향 마을인 남원도호부 장수현 산서에는 선대조부이신 묵재공 양우를 배향한 월곡서원이 건립되었는데 월곡서원에는 문양공 양성지와 금헌 이대윤을 함께 배향하였다. 월곡서원을 건립할 때 양처해 선조님의 동생이신 양처복의 장자 양보구 선조께서 배향위 3위(양우, 양성지, 이대윤)에 대한 허락을 예조에 올렸고 예조에서 정조임금에게 재가를 받았다. 월곡서원의 건립은 양처해 선조님의 혈족들이 주관하였고 거제 관포로 이거하신 이후에도 자손 및 혈족들과 함께 고향에 건립한 월곡서원의 향사에 대한 일을 주관하시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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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월곡서원
전라도의 유생 양덕주, 양제현, 양함, 양보구가 월곡서원을 건립하고 묵재공 양우와 문양공 양성지와 금헌 이대윤을 배향하는 것을 예조에 올렸고 예조판서 민종현이 정조 임금의 재가를 받았는데 월곡서원의 건립을 주관한 양보구의 백부가 양처해 선조님이시다.
월곡서원에서 배향위에 대한 향사에 정성이 부족해지자 거제 관포문중의 입향시조가 되시는 양처해 선조님께서 월곡서원 구재통문을 발기하였는데 통문에 의하면 양처해 선조님의 아들 양성구 선조께서 월곡서원의 유사이셨다. 문양공의 자손인 양몽대와 양중대도 월곡서원의 유사이셨는데 부산 삼절사의 남원양씨 문중의 자손으로 밀양 덕암마을에 입거한 병부공 21세 양태수의 자손이시다.
월곡서원을 건립한 남원도호부 장수현 산서에는 사간공후 군수공의 자손과 문양공후 군수공의 자손이 세거하였는데 사간공후 군수공의 자손중에 양처해 선조님의 혈족들은 묵재공 자손에 대한 근본을 바로 세웠으며 세거지 인근 문양공의 자손들과 함께 월곡서원을 수호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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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월곡서원 구재통문
7-3. 월곡서원을 전승하시는 남원양씨 미래는 과거의 거울이다. 부산 삼절사의 남원양씨와 거제 관포의 남원양씨는 임진왜란 충신의 자손이다. 충신 양조한의 자손과 충신 양호의 자손이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셨던 묵재공 양우 선조님의 향사를 함께 하셨고 월곡서원의 유사를 함께 하셨다.
거제 관포 양씨의 고향인 임실에서는 월곡서원을 건립할 때 문양공후 군수공의 자손과 함께 하셨다.
세월이 200년이 지났지만 거제 관포문중의 양처해 선조님의 자손이신 양방수, 부산 삼절사 문중의 양몽대 선조님의 자손이신 양입모, 장수군 산서면에서 월곡서원을 함께 건립하셨던 문양공후 군수공의 자손이신 양용모 - 월곡서원의 정신을 전승하신다. 선대로 부터의 인연 또한 전승하셨다. |
7-3-1. 사간공후 군수공파 거제 관포양씨 
| 양 방 수
현) Korean American Broadcasters Association, Inc. 미주방송인협회/여의도클럽USA 총무국장 TEL : (714) - 725 - 9837 E-MAIL : bangyang@hotmail.com |
7-3-2. 문양공후 평창공파 부산 삼절사의 남원양씨 
| 두산 梁立模 전)大邱鄕校 掌議 /전) 成均官 典學 전)成均官儒道會 대구시본부 총무부국장 현)南原 重光原 /묵재공 한식제 /진성단 /숭모당 執禮 H.P : 010 - 3512 - 9403 E-MAIL : yangibmo@daum.net |
7-3-3. 문양공후 군수공파 장수 산서의 남원양씨 
| 양 용 모 전) 전주시의회 의원 현) 전라북도 문인협회 회원 현) 전라북도 도의회 교육위원회 위원장 H.P : 010 - 3683 - 2115 E-MAIL : yym2115@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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