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권력의 존재론]
명제 2 — 권력의 크기는 위임의 크기에 비례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사자 무리에서 수사자의 권력은 함께하는 암사자의 수에 비례한다. 암사자가 많을수록 수사자의 영역이 넓어지고 외부의 도전자를 막는 힘이 커진다. 암사자들이 수사자를 따르는 것은 강제가 아니다. 수사자가 포식자로부터 무리를 보호하고 새끼를 지키는 한 암사자들의 위임은 유지된다. 그 위임의 총량이 수사자 권력의 크기다. 수사자가 늙거나 약해져서 보호의 능력을 잃는 순간 암사자들의 위임은 철회된다.
프란스 드 발이 관찰한 아른험 동물원의 침팬지 무리에서 가장 힘센 수컷이 항상 알파가 되지 않았다. 예어론은 몸집이 크고 힘이 셌다. 그러나 루이트가 알파가 됐다. 루이트는 더 많은 침팬지들의 위임을 모았기 때문이다. 약한 개체들을 보호하고 암컷들과 동맹을 맺었다. 그 위임의 총량이 루이트를 알파로 만들었다. 힘이 아니라 위임의 크기였다.
여왕벌의 페로몬이 강할수록 더 많은 일벌이 따른다. 여왕벌의 권력은 페로몬에 반응하는 일벌의 수에 정확히 비례한다. 여왕벌이 늙어 페로몬이 약해지면 일벌들은 새로운 여왕벌을 키운다. 위임이 철회되는 것이다.
1. 뜻풀이
권력의 크기는 집단 구성원이 의사결정을 위임하는 크기에 비례한다. 그것이 강제든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든.
이것은 단순한 명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중요한 함의가 있다.
첫째, 권력의 크기는 권력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구성원이 결정한다. 권력자가 아무리 강하고 능력이 뛰어나도 구성원의 위임이 없으면 권력은 없다.
둘째, 강제된 위임도 위임이다. 총칼로 위임을 받아낸 독재자도 구성원의 위임 위에 서 있다. 다만 그 위임은 언제든 철회될 수 있다. 강제된 위임은 가장 불안정한 위임이다.
셋째, 위임의 크기가 곧 권력의 크기다. 100만 명의 위임을 받은 자와 10명의 위임을 받은 자는 권력의 크기가 다르다. 이것이 왜 권력자들이 끊임없이 더 많은 위임을 원하는가의 이유다.
권력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성원으로부터 위임받는 것이다. 그 위임의 총량이 권력의 크기다.
2. 관중과 마키아벨리의 생각, 그리고 다른 주요 인사들
관중은 권력의 크기를 구성원의 지지와 신뢰로 측정했다. 《관자》에서 그는 말했다.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안다(倉廩實則知禮節). 백성의 배를 채우는 자가 백성의 위임을 얻는 자다. 관중이 환공을 섬기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경제 개혁으로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고 그 안정이 위임으로 돌아오게 했다. 환공의 권력이 커진 것은 환공이 강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백성의 위임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관중은 또 말했다. 군주의 힘은 백성의 수에 있지 않다. 백성의 마음이 얼마나 군주를 향하는가에 있다. 같은 백성이라도 마음이 향하면 백만의 힘이 되고 마음이 떠나면 허수아비만 남는다.
맹자는 이것을 가장 직접적으로 말했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장 가볍다(民貴君輕). 권력의 크기는 백성의 위임에서 온다. 백성의 위임을 잃은 군주는 아무리 높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이미 권력을 잃은 것이다. 맹자의 역성혁명론도 같은 맥락이다. 위임을 잃은 군주를 몰아내는 것은 반역이 아니다. 위임이 사라진 권력은 이미 권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 **맹자** 孟子, 기원전 372~289. 중국 전국시대 유가 사상가. 성선설(性善說)과 민본주의(民本主義)를 주창했다. 민귀군경(民貴君輕) — 백성이 가장 귀하고 군주는 가장 가볍다는 선언으로 위임의 원천이 민심임을 동양에서 가장 선명하게 말했다. 저서 《맹자》.
마키아벨리는 위임의 문제를 가장 냉정하게 분석했다. 《군주론》 9장에서 말했다. 민중의 지지 위에 서는 군주는 탄탄한 기반 위에 있다. 귀족들의 지지만 받는 군주는 사상누각 위에 있다. 민중의 위임이 귀족의 위임보다 넓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동시에 경고했다. 미움을 받는 것은 견딜 수 있지만 경멸을 받는 것은 치명적이다. 경멸은 위임의 완전한 철회다. 경멸받는 권력자는 아무리 강해도 이미 권력을 잃은 것이다. 마키아벨리에게 권력의 크기는 군주가 얼마나 많은 자들의 의사결정을 좌우할 수 있는가로 측정됐다. 민심, 귀족, 군대. 이 세 축의 위임을 동시에 유지하는 자가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자였다.
3. 역사적 사례
항우와 유방 — 위임이 결정한 승부
항우는 군사적으로 압도적이었다. 유방은 항우와의 직접 대결에서 번번이 패했다. 그러나 유방은 끝내 이겼다. 이유는 단순했다. 유방은 가는 곳마다 위임을 쌓았다.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폐지하고 약법삼장(約法三章)으로 백성과 약속했다. 진나라 수도 함양에 입성했을 때 약탈을 금지하고 백성을 안심시켰다. 항우가 함양에서 불을 지르고 학살을 자행할 때 유방의 위임은 조용히 쌓이고 있었다. 해하 전투에서 항우의 군대가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무너진 것은 군사력의 패배가 아니었다. 위임의 총량에서 이미 승부가 결정나 있었다.
세종대왕 — 위임을 깊게 한 군주
세종은 신하들에게 말했다. 내가 틀릴 수 있다. 경들이 말하라. 이것은 미덕의 표현이 아니었다. 권력 전략이었다. 신하들이 기꺼이 의견을 내고 책임을 지는 구조를 만들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의사결정을 세종에게 위임한다. 집현전 학사들의 지식이, 장영실의 기술이, 황희의 행정 경험이 모두 세종에게 위임됐다. 세종의 권력은 이 위임들의 총합이었다. 훈민정음, 측우기, 칠정산. 이 모든 성취는 세종 혼자의 능력이 아니라 수많은 위임의 결과였다.
임진왜란 — 선조와 이순신의 엇갈린 위임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난했다. 백성의 위임은 급속히 무너졌다. 선조가 피난길에 오를 때 도성의 백성들이 경복궁에 불을 질렀다. 왕에 대한 위임의 철회가 불꽃으로 표현된 것이다. 반면 이순신은 연전연승했다. 군사적 승리가 위임을 키웠고 커진 위임이 더 큰 승리를 가능하게 했다. 선조가 이순신을 두려워하고 결국 백의종군을 명한 것은 이순신에의 위임이 자신에의 위임을 능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 위임이 무너지는 순간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의 혼돈 속에서 민심의 위임을 폭발적으로 끌어모았다.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의 권력은 유럽 역사상 전례 없는 크기였다. 그러나 러시아 원정의 실패로 위임은 급속히 무너졌다. 60만 대군을 이끌고 떠난 나폴레옹이 10만도 안 되는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을 때 그의 권력은 이미 껍데기였다. 나폴레옹의 흥망은 위임의 크기가 권력의 크기라는 명제 2의 가장 극적인 증명이다.
박근혜 탄핵 — 위임 철회의 현대적 장면
2016년 10월부터 2017년 3월. 1700만 명의 촛불. 이것은 위임 철회 선언이었다.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국민의 위임을 받는다. 그 위임이 광장에서 철회됐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은 이 위임 철회를 법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권력의 크기는 위임의 크기에 비례한다. 위임이 사라지면 권력도 사라진다. 이 명제는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한번 확인됐다.
4. 종합정리
권력의 크기는 권력자가 결정하지 않는다. 구성원이 결정한다. 강제로 받아낸 위임이든 자유의지로 받은 위임이든 그 총량이 권력의 크기다.
관중은 백성의 배를 채워 위임을 쌓았다. 유방은 가는 곳마다 약속으로 위임을 모았다. 세종은 신하들의 지식과 경험을 위임받아 권력을 깊게 했다. 나폴레옹은 승리로 위임을 쌓고 패배로 잃었다. 잡스는 성과로 위임을 쌓아 애플을 세계 최대 기업으로 만들었다. 방법은 달랐지만 모두 같은 원리 위에 서 있었다.
관중은 말했다. 백성의 마음이 향하면 백만의 힘이 된다. 맹자는 말했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군주는 가장 가볍다.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경멸은 위임의 완전한 철회다. 2600년의 간격을 두고 세 사람이 같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권력을 원하는 자에게 — 위임을 키워라
위임을 키우려면 구성원이 원하는 것을 먼저 보라. 권력을 감시하는 자에게 — 위임은 무기한 백지수표가 아니다. 우리가 선거에서 투표하고, 납세하고, 법을 따르는 모든 행위가 위임이다. 이 위임이 어디로 가는지, 제대로 쓰이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1700만의 촛불이 보여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위임을 줄 수도 있고 거둘 수도 있다. 이것이 명제 2의 결론이다.
명제 2 — 권력의 크기는 위임의 크기에 비례한다. 더 많은 위임을 받을수록 권력은 커지고, 위임이 사라지면 권력도 사라진다. 항우의 대군도, 나폴레옹의 제국도, 박근혜의 대통령직도 위임이 무너지는 순간 함께 무너졌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leewys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