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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1장~2장 10절 주해와 적용]
거룩한 백성이 돼라
최홍진 / 호남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베드로전서는 외부의 박해로 인해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소아시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해 큰 근심에 싸여 있었다(벧전1:6). 이방인들에 의해 악을 행한다는 비방을 받기도 하고(벧전 2:12) 애매하게 욕을 먹기도 하며, 부끄러움을 당하기도 했다(벧전3:16).
때로 재산을 빼앗기기도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하며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그 때문에 신앙이 약해지는 사람들도 있었고, 배교의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을 향해 베드로는 지금 당하고 있는 시험은 잠깐이고,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고(벧전4:7), 그때까지 참고 견디면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이니 믿음 안에서 굳게 서라고 권면하고 있다(벧전1:7)
또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시련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즐거워하고, 지금은 나그네의 길에 지나지 않으니(벧전1:1;2:11)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벧전1:5)” 내세를 바라보며 인내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베드로전서는 히브리서와 요한계시록과 함께 신약성경의 박해 문서라 할 수 있다.
위로와 격려의 서신
곧 베드로전서는 고난의 현실에 직면해 흔들리고 약해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적으로 격려하며 당시에 널리 퍼져 있던 박해와 고난을 이기고 종말론적 신앙을 굳게 지키자고 권고하는 문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벧전1:1)’라고 발신자를 밝히고 시작하며,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벧전5:14)’는 인사말로 끝을 맺는 편지 형식을 제대로 갖춘 문서이다. 그러나 바울의 서신처럼, 특정 교회에 보내는 게 아니라 광범위하게 여러 교회에 보내는 것이며, 어느 교회에서나 받아들일 수 있는 일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공동 서신으로 분류된다.
이 서신의 1차 수신자는 소아시아의 다섯 지방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다. 베드로전서는 1장 1절에서 밝힌 대로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던 나그네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러나 2차 수신자는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다.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들은 주로 이교적인 배경을 갖고 있었다. 본서에 나오는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벧전1:14)’,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벧전1:18)’,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벧전2:10)’ 등의 표현들을 고려해 볼 때 그러하다. 계층적으로 당시 정부의 고급 관리에서 하급 공무원들까지(벧전2:13~17), 노예 계급의 사람들(벧전2:18~21) 및 일반 가정의 주부와 남편들도 포함하고 있다(벧전3:1~7). 대부분의 그들은 직접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했다(벧전1:8).
본문의 구조와 내용
베드로전서는 서두의 인사(벧전1:1~2)와 마지막의 문안과 복 선언(5:12~14)을 제외하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하나님의 구원 받은 자녀의 산 소망과 거룩한 생활(개인의 신앙 생활)에 대한 설명 및 권면이다(벧전13~2:10). 다음으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무, 곧 일상과 질서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건전한 사회인으로서 처신해야 할 바에 대한 권면(벧전2:11~4:11)과 세상에서 시련을 이길 것에 대해 권고이다(벧전4:12~5:11). 본문은 본론의 첫 번째 부분에 속한다.
1. 하늘의 기업을 바라보는 믿음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자. 베드로는 편지를 하나님에 대한 교리로 시작한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시며 인간을 구원하실 능력이 있는 분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베드로는 먼저 하나님을 찬송하고 이어서 예배와 감사의 표현을 연상시키는 특별한 행위를 언급한다. 곧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셨는 지에 대해 묻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시며(벧전1:3),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케 하심으로써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영원한 소망을 갖게 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이 메시아임을 입증하는 것으로써, 단지 그분만의 부활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한 모든 사람들의 부활을 내포하는 사건이기에 그것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은 찬송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그 이유를 밝힌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산 소망을 주셨다는 것이다(벧전1:3). 베드로는 계속해 좀더 구체적으로 산 소망을 설명한다. 이 소망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으며 쇠하지 않는 유업이다(벧전1:4).
베드로는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박해를 받으면서 어려움 가운데 살고 있지만 세상적인 썩어질 기업을 가진 게 아니라 없어지지도 않고 더럽혀지지도 않으며 쇠하지도 않는 하늘에 있는 기업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확신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 산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좀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가진 자이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으로 지키시는 자들이다(벧전1:5).
베드로는 두 가지 사실을 들어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준다. 비록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어려움과 슬픔을 당하더라도 기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첫째로 시련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잠깐 동안 겪는 고통은 영원한 행복과 영광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벧전1:6). 둘째로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은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벧전1:7).
이 세상에서 부당하게 경험하게 되는 그리스도인들의 시련과 슬픔은, 마치 금을 연단해 정금을 만들듯이 믿음의 연단을 거쳐 순수한 믿음을 갖게 만든다. 그 믿음으로 인해 영혼이 구원을 얻게 된다(벧전1:9) 이 구원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태고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으로 예언자들을 통해 이미 구약 시대에 예언하신 것이다(벧전1:10).
2.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는 인간의 거룩함
그리스도의 수난과 영광은 성령이 선지자들을 감동시켜 미리 증언하셨을 뿐 아니라 신약 시대에도 복음 전도자들에게 임하셔서 전하게 하셨으며, 천사들도 동경하는 사건이다. 곧 천사들과 예언자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거나 감춰진 구원을 그리스도인들이 얻게 되었다.
이와 같이 소중한 구원을 그리스도로 인해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베드로는 본문에서 윤리적인 권면으로 개인적이고 원칙적인 의견을 밝힌다. 이 권면은 ‘그러므로(διό, 벧전1:13)로 시작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어서 나오는 권면들을 앞의 말씀의 결론으로 유입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소중한 구원의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그에 따른 윤리를 제시한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현재와 미래의 구원 행위가 그리스도인들의 행위의 토대이고 동기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윤리는 독립된 것이 아니라 구원 행위의 결과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첫째,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고 명한다(벧전1:13). 마지막 때에 주님의 종말론적 현현에 대비하라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 임할 은혜를 소망하고 그에 대비하라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베드로전서 4장 1~11절에 제시되고 있다.
둘째, ‘거룩한 자가 돼라’고 명한다(벧전1:15).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과거의 삶에 빠지지 말고 과거의 행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완전히 속하는 것으로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구별되어 하나님과 연합한 생활을 한다는 의미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베드로는 또 하나의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각자의 행한 대로 편벽됨 없이 공평하게 심판하시는 분이다(벧전1:17).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하게 생활하는 데에 하나님의 절대적 공평무사를 생각하며, 그 앞에서 우리도 공평한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한 동기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두려운 마음으로 나그네 시기의 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어 거룩하게 생활해야 하는 그리스도교의 특유의 동기를 덧붙인다(벧전1:18~19).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 구원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믿음을 통해 아는 것이다. 곧 조상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여러 가지 몹쓸 행동과 생각과 죄로부터 속죄를 받았다는 사실과 그것은 썩어질 금이나 은 같이 하찮은 게 아니고 흠 없이 순전한 어린양 그리스도의 피로 얻은 구속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에 근거 한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말미암아 거룩하다고 인정받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을 근거로 신자들끼리 서로 사랑할 것을 권고한다(벧전1:22~25).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영혼이 깨끗하게 된 것은 서로 사랑하게 하려는데 한 가지 목적이 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권고한다(벧전1:22). 이 사랑은 썩지 않을 씨로부터 나서 구원의 기쁨으로 전해지는 영원한 것이다.
이어서 베드로는 악한 것을 벗어버리고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이 순수한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여 완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야 한다고 권고한다(벧전2:1~2).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우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연결돼야 한다. 곧 예수님께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산돌이다. 건축자가 쓸모없다고 버린 돌이 하나님의 집의 가장 중요한 모퉁이 돌이 된 것처럼, 우리도 그 산 돌인 예수님과 연합해 하나님의 거대한 집을 이뤄야한다.
이어서 베드로는 구약 본문을 선택해 그 사실을 보다 자세하게 설명한다(벧전2:4~10). 여기서 인용된 구약 본문은 두 가지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째는 하나님에 의해 선택 되었으나 일부 사람들에 의해 거부된 돌로서 그리스도에 초점을 두고 있다(벧전2:6-8; 사28:16). 둘째는 예전에 아무런 백성도 아니었으나 이제 하나님의 백성인 신앙 공동체에 초점을 두고 있다(벧전2:9~10).
이런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출애굽기 19장 6절을 인용하고 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의 특권이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으로 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예전에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어서 긍휼을 얻지 못하더니,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긍휼을 얻게 되었다(벧전2:10)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의 위상과 특권을 설명하고 개인적인 생활에 대해 권면한 다음에, 본론의 다음 부분에서 이방인들 가운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생활에 대해 권고한다(벧전2:11~4:11).
설교 구성을 위한 제언
1. 나그네와 행인의 삶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해 나그네임을 인식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베드로는 애매하게 고난을 당하는 수신자들을 향해 ‘나그네’와 ‘행인’이라고 칭하고 있다. ‘나그네’(παρεπίδημας)는 본국이 아닌 타국에 거주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또 일시적으로 어떤 곳에 거주함으로써 그의 집이 본국이 아닌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거주하고 있는 나라의 시민권을 갖지 못한 채 다른 나라의 시민권을 소지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또한 구약 성경에서 선택받은 백성들의 진정한 고향인 팔레스타인 지역 밖에 살던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수신자를 향해 나그네라고 지칭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를 통해 볼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태어나 잠시 살다가 죽어갔다.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 영원히 머물고자 소망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이 땅에 잠시 살다가 어느 때인가 떠나야 한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나그네 정신,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 정체성을 위해 비기독교 사회로부터 어느 정도 분리돼 있어야 하는가?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변 사회와 분리돼 세상의 법과 질서를 어기는 생활이 아니라 자신들이 속한 사회의 질서와 법은 따르면서도(벧전2:17~3:7) 근본적인 삶의 태도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여 구별된 생활을 해야 한다고 권한다. 성실한 시민으로서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안으로 국가에 대한 의무(벧전2:13~17), 종과 주인의 관계(벧전2:18~20), 부부간의 윤리(벧전3:1~7) 등을 제시하고 있다.
2. 찬양의 제사를 드리는 삶
그리스도인들은 늘 하나님을 찬양하되, 분명한 이유를 알고 찬양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본문은 하나님이 찬양을 받으셔야 할 이유에 대해 제시한다. 첫째는 우리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이다(벧전1:3). 하나님의 부성은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향했다(출4:22). 포로기에는 개인화되었고, 신약성경에서는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시는 자체만으로도 찬양 받으실 조건이 충분하다.
둘째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이다. 요한1서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큰사랑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요일3:1).
셋째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갖게 하셨 기 때문이다(벧전1:3).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만의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한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내포하는 사건이기에 그것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
3. 하늘의 기업을 소유한 삶
그리스도인들은 산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의 기업을 소유한 사람임을 인식케 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땅의 기업인 가나안 땅을 선물로 받았다. 그런데 그들은 이 땅의 기업을 소중히 간직하지 못했다. 우상숭배로 인해 더러워지고 스스로 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하늘의 기업은 이와 전혀 다르다. 하늘의 기업은 썩지 않는다. 여기서 사용된 ‘썩다(ἄφθαρτοςu)’라는 단어는 군대에 의해 파괴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곧 이 기업은 파괴시키는 군대가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 있다.
또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더럽혀지지 않고(ἀμίαντος) 시간이 손상시키지 못하며, 쇠하지 않는(ἀμάραντος) 영원한 기업이다. 그리고 악에 물들지 않고 강도나 도적이 와서 빼앗아갈 수 없으며 하나님이 친히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기업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의 기업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한다. 땅의 것에 마음을 두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에 소망을 두며 하늘의 기업을 사모하며 나아가도록 권고해야 한다.
4. 영적 민감성을 소유한삶
시련과 어려움 중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들을 대하시는지에 대해 볼 수 있는 영적 시각을 갖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베드로는 고난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크신 능력 안에 보호받는 사람들임을 알려준다(벧전1:5). 베드로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보호를 받는 원인과 방법과 결과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ἐν),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διά) 구원을 얻기 위해(εἰς)서다.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이 보호는 성도들의 믿음을 통해 발효된다. 따라서 그 결과로 구원이 주어지는데, 사탄의 권세 아래서의 구원이다. 곧 그리스도인들이 시련과 고통을 당하지만 결코 홀로 있지 않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 안에 있다.
그로 인해 결국 구원을 얻는다.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종말에 나타나기로 예비된 구원을 약속 받은 자라고 말하는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이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도움의 손길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 영적 눈을 가져야 능히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다(엡1:16~19, 참조).
5. 고난 중에 기뻐하는 삶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때에 도리어 기뻐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 이유는 첫째, 그 모든 것이 잠깐이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해 잠시 근심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라고 권고한다(벧전1:6). 잠시 근심하고 그 시간이 지나가면 모든 어려움이 지나가기 때문에 그것을 생각하며 현재의 고난을 기쁨으로 이겨내라고 한다.
둘째, 어려움을 당할 때에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그리스도인이 시련과 고통과 슬픔을 당하는 것은 마치 금을 연단하여 순금을 만들어 내듯이 순수한 믿음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인해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이 선한 상급을 바라보면서 고통 중에 도리어 기뻐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6. 구원의 신비를 깨닫는 삶
구원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구원에 대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피라고 한다(벧전1:10).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피라’는 열심에 대한 강조적인 표현으로 마카비 1서 9장 26절을 인용한 것이다. 이렇듯 구원의 비밀은 성령께서 예언자들을 감동시켜 그리스도의 수난과 영광에 대해 미리 증언하실 뿐 아니라 신약 시대의 복음 전도자들에게 전하게 하신 것이며, 천사들에게 비밀로 하신 것이다.
천사들은 구원의 신비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기를 원했다. 베드로전서 1장 12절에서 사용된 ‘살피다(παρακύψαι)’는 단어는 문이나 창문을 통해 ‘힐끗 쳐다보다, 슬쩍 보다, 엿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천사들은 곁눈질이나 힐끔 보는 것으로 구원의 비밀을 알기 원했으나 전혀 허락되지 않았다.
그것을 천사들에게 비밀로 하신 이유에 대해 히브리서 2장 16절에서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같이 구원은 비밀스럽고 소중한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로 하여금 구원의 가치를 깨닫고 소중하게 간직하며, 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7.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된 삶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권면해야 한다. 거룩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이것은 우리가 본질적으로 거룩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기에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세속적인 것과 분리시켜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소유로 선포한 것들은 모두 거룩하다고 인정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부르신 분에 의해 규정된다. 불안정한 욕망에 의해 더 이상 규정되지 않는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자신의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적극적으로 거룩한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면(살전4:3, 7) 이미 거룩한 자이고 거룩하게 된 자로서 행동하는 것이지, 거룩하게 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행실에서 거룩하게 돼야 한다는 권면의 근거이고 동기이다.
그리스도의 성화는 인간의 모든 차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제 그리스도인은 몸의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거룩하게 할 수 있다(롬6:19). 요한1서에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분이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을 줄 아는데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분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ἁγνίζει)’라고 말씀한다(요일3:2~3).
자녀는 부모를 닮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과 같이 깨끗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소망과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지금 이곳에서부터 자신을 세상과 구별하여 깨끗이 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곧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이미 거룩하게 된 것이다. 또 장래에도 구별된 자가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우리들도 스스로를 거룩하게 해야 한다.
나가는 말
주후 1세기 말에 비두니아 본도 지역의 총독 플리니(Pliny)는 트라얀(Trajan) 황제에게 보낸 서신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했다. 그들에게 가할 벌의 종류 혹은 그 정도에 대해, 그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해야 할 근거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버린다면 처벌해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단순히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때문에 벌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 트라얀 황제의 대답은 그리스도인들을 추적할 필요는 없으나 고소가 있으면 체포하고 죄가 입증되면 벌을 주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부인하는 경우에 로마의 신들에게 기도를 드리게 하고 그것을 행할 경우에 과거의 행위가 의심스럽더라도 회개의 결과로서 용서해 주라고 했다. 다만 무명으로 유포되는 문건들은 고소에서 어떤 역할도 해선 안 된다고 명령했다. 트라얀 황제의 칙령이 당시 로마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대하는 원칙이 되었다.
이 편지를 통해 우리는 당시의 기독교에 대한 로마의 일반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로마는 특정 시기를 제외하곤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해 형벌을 가하지 않았지만, 고소가 있을 경우에는 제재를 가했다. 이 때문에 평상시에 아무 문제없이 생활하다가 이웃과 좋지 않는 관계로 되었을 때 모호하게 고소를 당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잘못이 없는데도 옥에 갇히기도 하고 죽임까지 당하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베드로는 이 서신을 통해 먼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하고 지금의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과 방안을 제시한다. 이 권고는 단지 베드로전서를 기록될 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여러 모로 어려움을 당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과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가? 또한 그리스도인들을 부정적인 태도로 대하는 세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과연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어떤 자세로 이겨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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