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이는 건강하게 태어나서 잘먹고 잘자고 특별히 잔병치레 하는 일 없이 잘 자라주었습니다.
돌이 지난 추석때 열이 많이 나서 시골에 내려 가지 말라는 의사를 지시가 있었으나 해열제를 먹이며 내려갔고 지원이는 오고 가는 내내 아파서 결국 중이염에 걸렸습니다.
그 뒤로 중이염은 또 한차례 재발을 하였고 목이 자주 부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잘먹고 잘 뛰어 놀고 말도 잘하는 총명한 아들이었습니다.
2월 3일 생일을 친구들과 고모랑 형아들이랑 신나게 보내고 잠도 잘 잤습니다.
다음날 교보문고에 가서 책도 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월 5일 저녁부터 밥을 잘 먹지 않으려고 하더니 밤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지원이는 3일정도 열이 났다고 금방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기에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2월 6일 아침..
일요일이라 문을 연 동네 병원을 찾아 갔습니다.
기관지가 약간 부었다고 하면서 약을 주었습니다.
약먹고 밥먹고 그럭 저럭 나아 지는 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2월 7일 아침.. 열이 너무 많이 나서 연세 이비인후과에 갔습니다.
평소 지원이를 늘 진찰해 오셨고 언제나 친절하고 실력도 있었기에 제가 아주 믿는 분이었지요.
열이 40도가 되어서 해열주사를 한대 맞고 왔는데 먹은 것을 토하더니
"엄마 밥 주세요" 하면서 김밥을 아주 잘 받아 먹었습니다.
먹고는 잠이 든 지원이..
열은 그렇게 많이 오르지는 않았으나 힘이 없는 지원이를 다시 데리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별로 심각한 증세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다시 집으로 왔습니다.
감기 몸살로 입맛이 없고 쳐질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
명절 때만 날맞춰 아프냐는 가족들의 생각이 부담스러워 시골에 내려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계만 보았지 지원이가 이렇게 많이 아픈 줄 몰랐습니다..
결국 시골가기를 포기하고 지원이에게 이것 저것 먹여 보려 했지만 지원이는 잘 먹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열은 그렇게 심하게 나지 않았습니다.
2월 8일 아침..
다시 최지원 소아과로 지원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설날 연휴라 지원이가 다니는 소아과는 문을 닫았기에 그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너무나 세심하게 지원이의 모든 몸을 살피시더니 별 문제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좀 더 지켜보고 먹는 것이 나아지거나 열이 내리면 집에서 데리고 있어도 된다고...
지원이는 스프랑 파인애플을 조금 먹었고 열은 고열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월 9일 설날 아침..
그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심각한 일이 될 줄 몰랐습니다.
남편도 못내려가는 마음이 죄송스러워서 일어나자 마자 시골에 전화부터 드렸고...
상태가 너무 이상한거 같아 소화 아동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물이 많이 찼다"........
세브란스로 옮겼습니다.
"물이 많이 찼고 간이 부었고 급성 신부정증이고 탈수증세를 보이고.....하지만 때맞춰 잘 오셨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원이는 눈도 말똥말똥 뜨고 엑스레이 찍는 것이 무섭다고 하였습니다.
...
이렇게 지원이는 응급실로 들어가 의사들의 일방적인 처치를 받으면서 잠들었습니다.
잠에서 깬 지원이는 너무 아파 하는 표정으로 " 엄마 물주세요 엄마 사탕주세요"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의사들은 아무것도 주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세균성 폐렴인데 염증도 심하지 않았고 물이 찬 것만 빼고 치료하면 될 가벼운 증세로 여기로 담당의사는 명절이라 퇴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파도 참아야 해" 하는 엄마말에
"네"
"엄마 보고 한번 웃어보자"
^^
이렇게 웃어주던 지원이는 호흡이 곤란하게 되어 중환자실로 가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어이가 없었기에 우린 중환자실에서도 호흡곤란 증세만 해결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2주 뒤
의사가 1시간이나 지켜보고 있었는데 음식물을 토하고 심장박동이 멎을 때까지 지켜보는 의사는 그 조짐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그 날은 "일반병실로 다음주면 올라갑니다" "희망이 보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저를 진료했던 의사선생님께서 폐사진을 보시고 아주 좋다고 싸인을 보내주신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담당의사는 놀라 뛰어내려와 심폐소생술부터 하여 지원이의 모든 장기가 망가졌으나 결국 원인은 인공호흡기가 가래로 막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지원이는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
어떻게 억울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의료사고는 아닐까요?
지원이가 처음 병원에 갔을 때 동네병원에서는 정말 무엇을 한 것일까요?
그리고 세브란스에서는 1시간이나 의사가 지켜보는데 무얼 보고 있었던 것일까요?
응급실에서도 지원이에게 음식을 먹이고 스스로 이겨낼 힘을 주었다면 이렇게 호흡곤란까지 갔을까요?
하루에도 몇번씩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살고 있습니다.
미친 듯이 소리치고 싶은 마음도 제대로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게 싫습니다.
이 마음에 맺힌 한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간의 실수로 지원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싫어서 지원이를 사랑하셔서 천국으로 데려가신 걸까요?
이렇게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내곁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을 막연히 생각하고는 있었으나 절실하게 내가 겪는 일이 되어 버릴 줄은 모르고 살았습니다.
지켜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미안합니다.
열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열이 내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면역체계가 과반응하여 열이 내릴 수도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더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왜 엄마들은 몰라야 하며 동네 병원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걸까요?
뭘 잘못먹어서 그런건지 호흡기로 균이 들어가서 그런건지 도무지 아무것도 밝혀진 바 없이 급한 불 끄다시피 모든 항생제만을 투여해야 하는 것이 의료의 현실인 건지요..
사진에서 보듯이 너무도 해맑은 우리 아들 지원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내 분신같은 첫 아기...
많은 사랑과 축복속에 자란 우리 아들..
천사가 되어 천국에서 웃으며 지내고 있기를 .. 그곳은 제가 힘들어하는 30년이 하루처럼 길어서 곧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