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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좌담┃
창립 20주년을 맞는 한국댄스테라피협회
「가나다순」 김향숙(金香淑 / 한국무용/동작심리치료학회장) 류분순(柳粉順 / 한국댄스테라피협회 이사장‧순천향대 교수) 신금옥(辛金玉 / 한국댄스테라피협회 사무국장) 사회 이동우(李東祐 / 춤평론) ∎때 : 4월 27일 오전10시 ∎곳 : 본지 편집실
20주년을 기념하여 13개국이 참가하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
이동우 - 이번 춤지 좌담회는 5월의 이미지에 맞게 춤으로 정신을 치유하는 댄스테라피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으려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는 류분순 한국댄스테라피협회 이사장과 김향숙 한국무용/동작심리치료학회장, 그리고 신금옥 한국댄스테라피협회 사무국장이자 KDTA 공인무용/동작치료사께서 자리를 함께하셨습니다. 벌써 한국댄스테라피협회가 6월로 20주년을 맞는다고 들었습니다. 이 댄스테라피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요? 류분순 - 미국같은 경우는 1970년 대부터 댄스테라피 과목이 막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필라델피아 같은 경우에는 댄스테라피 과목이 듀렉셀이라는 의과대학안에 있어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수강자들 대부분은 춤을 전공하는 사람들이고 또 철학을 전공하거나 문학을 전공하는 등의 비 무용 전공자들도 많이 있지요. 그런데, 이렇게 여러 전공자들이 함께 모여있다보니까 훨씬 더 자극이 되고 훨씬 더 다양한 정보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더라고요. 이동우 - 피나 바우쉬의 무용단 단원들중에서도 춤 전공자 외에도 제가 듣기로는 물리학자나 철학 전문인도 포함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류분순 - 맞습니다. 우리 테라피 구성원중에서도 수녀님, 스님 등 종교인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런분들과 함께 있다보면은 우리가 춤 공연가서 우리 무용수들이 관객과 공감이 안 되고, 무용수만 자기도취를 한다거나 할 때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춤을 전문으로 추지 않는 사람들, 수녀 같은 분들이 자기 내면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걸 보면 아름다워요. 제가 1980년 초에 대구 창작무용회 회장을 맞고 있을 때 「춤」지(誌) 조동화 선생께 자문을 구하느라 편지를 드린 인연이 있어요. 나중에 제가 무용치료를 한다고 했을 때 무용계에서는 무용수들 발 다쳤을 때 치료하는 거라고 많이들 잘못 인식 하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춤」지 조동화 선생계서 힘을 많이 주셨지요. 초기에 저한테 ‘정말 필요한 거다. 한국의 무용가들한테 직업을 하나 만들어 주는 거야.’ 그러면서 힘을 주셨어요. 김향숙 - 뭔지 잘 모르셨을 것 같아요. 류분순 - 아니, 남의 이야기를 조용히, 정확하게 들으시고, 지혜가 많으시니까 잘 알고 말씀하신 거죠. 이동우 - 「춤」지와는 처음에 춤으로 만나시 거죠? 류분순 - 그렇죠. 창작무용회 활동과 공연을 하면서 만났죠.
‘무용치료’라는 개념은 인간의 모든 움직임을 심리 치료적으로 쓰는 것을 의미
이동우 - 그런데 벌써 한국댄스테라피협회가 창립 20주년이 되었군요. 미술이나 음악 테라피는 많이 있는데, 댄스 테라피의 경우는 대중화가 많이 안 된 것 같아요. 이제 20주년을 맞았는데,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부상 치료에 국한해서 생각한다든지 대중들의 오해가 많아서 초기에는 어려움이 컸을 것 같아요. 20년을 회고해보시니 어떠신가요? 우선 어떻게 댄스 테라피를 접하게 되셨는지요? 류분순 - 저는 영남대 사범대와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발레와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무용학과에서 현대무용과 창작무용을 가르쳤어요. 27살 이른 나이에 대구에 있는 전문대학에 교수 발령을 받았죠. 현대무용을 가르치다 보니까 당연히 안무도 해야 했는데, 제 개인적인 성향이 심리학 쪽에 관심이 훨씬 많았던 것 같아요. 분석학이나 심리학 책을 많이 봤어요. 그러면서 춤 동작이나 공연을 만들 때 그냥 몸짓이 아닌 인간의 특성적인 몸의 움직임과 내면적인 성격이 몸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에 관심을 두었어요. 그러나 제가 대학, 대학원을 다닐 그 당시만 해도 댄스 테라피에 대한 과목도 없고, 아무도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막연히 심리학과 무용,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다가 우연히 어떤 책을 읽게 됐어요. 트루디 스쿠프의 책인데, 댄스테라피의 선구자예요. 마임이스트였는데 전 유럽을 순회하면서 사람들이 심리를 이끌어 냈어요. 2차 대전 상황에서 유럽 사람들의 마음이 아주 어두웠을 때도 아주 코믹하게 히틀러를 풍자한다든지 하면서 사람들이 마음을 흔들었죠. 이 사람이 나이가 먹어서 정신병원에서 무용을 가르치게 되요. 워낙 유명한 무용수가 와서 무용을 가르친다고 하니까 정신병원 의사들이 무조건 환영을 했어요. 그런데 무용을 가르치면서 자신이 늘 무용가로서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높이 뛸 수 있는지, 얼마나 다리를 벌릴 수 있는지, 얼마나 팔을 멋있게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뽐내려고 하는 성향이 자기 안에 있는지 깨닫고 진솔하게 보고를 해요. 자신의 그런 춤 동작이 환자들에게는 전혀 다가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적어놓은 책이에요. 나중에는 환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쓰고 있어요. 무용가가 뽐내려 하지 말고, 환자들의 몸 상태에서부터 같이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죠. 그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게 이거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제가 찾기 시작했죠. 찾아보니 이 무용치료 분야가 미국에서는 벌써 1966년도에 ‘미국댄스테라피협회(ADTA)’라는 협회가 생기고, 70년도부터 이미 전공학과도 생겼더군요. 그런데 저는 트루디 스쿠프 때문에 스위스나 독일 쪽을 가고 싶었어요. 제 생각에는 독일이 훨씬 더 내면적이고 심리적인 깊이가 있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독일어를 전혀 못 하는 상태여서 ‘괴테 인스티튜트'에서 1년간 독일어 공부를 했어요. 그리고 독일의 학교 몇 군데에 원서를 냈죠. 다행스럽게도 내가 대학교수라서 그랬는지 독일의 3개 학교에서 오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무용치료 석사, 박사가 있는 게 아니라 전문학교가 있더라고요. 독일은 소 잡는 데도 자격증이 필요한 나라잖아요?(웃음) 김향숙 - 그 때 결혼 안 하셨을 때인가요? 류분순 - 독일 갔을 때는 결혼하고 난 후였죠. 아무튼 독일에 가서 보니 특별한 무용치료 학교는 대학이나 대학원이 아니라 그냥 일반학교인 거예요. 그 때만 해도 이름 있는 대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쾰른 대학에 지원을 해서 승낙을 받았어요. 그런데 독일 갈 당시 상황 속에 개인적인 아픔이 있었어요. 제가 스물일곱 살에 대학 전임교수 발령을 받을 당시에 결혼을 했어요. 남편이 경상도 대구 사람인데, 시댁에서 아들을 꼭 낳아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첫째 아이가 딸이었어요. 그 애를 낳았을 때 남편은 외국에 가고 없는 상황이었는데, 시어머니께서 오셨다가 딸이라고 그냥 가버리시는 거예요. 그리고 결혼 초부터 저는 대구에서 대학교수를 하고 있고 남편 직장은 서울에 있었어요. 그러니까 남편이 ‘당신이 학교를 그만 두고 서울로 와라, 다 같이 서울에 가서 살자, 더 이상 왔다갔다 못 하겠다’ 하면서 계속 괴롭히는 거예요. 하지만 그 당시 저는 대구에서 젊은 유망주 무용수로 포커스를 받고 있었어요. 김기전(金基田)선생님이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계실 때 객원 안무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러다가 저의 모든 뒷바라지를 해주시던 친정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그 때 딸이 4살이었는데, 저에게 심각한 우울증이 왔어요. 길었던 머리도 짧게 잘랐어요. 즐거운 것도 없고,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게 없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남편은 무조건 강압적으로 서울로 올라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어 서울로 올라왔죠. 대구에 있는 대학에 사표를 낼 수는 없으니까 꼭두새벽, 5시에 기차를 타고 대구에 내려갔어요. 그 당시 제 차가 포니1이었는데 동대구역에 세워 놓았던 그 차를 타고 출근을 했죠. 월, 화, 수, 목 강의를 하고 목요일 밤에 서울로 다시 올라와서 금, 토, 일은 서울에서 지낸 거죠. 그러니 생활이 어땠겠어요? 게다가 그 당시는 교무처장이 교수들의 출퇴근을 체크하고, 수시로 연구실로 전화해서 있나 없나 확인을 했어요. 안 좋은 학교일수록 더 했죠. 그래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또 둘째를 임신했는데, 내 생활과 처지가 너무 비참한 거예요. 또 집안일은 집안일대로 힘들고, 시어머니한테는 충실하지 못한 며느리가 되고, 학교는 학교대로 학생들이 면담하러 연구실 가면 연구실 문이 잠겼다고 하고요. 배는 점점 불러오고... 나중에 배가 불러서 새벽 5시에 기차를 타러 서울역에 가는데 눈물이 펑펑 나는 거예요. 이렇게 살아야 되나 싶은데, 남편은 남편대로 매일 전화해서 ‘사표 냈나? 내일은 꼭 사표 내라’ 그러니까 너무 괴로웠어요. 그렇지만 남편 고집이 너무 세서 내가 고집을 더 부리다가는 이혼을 하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제 사전에는 이혼은 없었어요(웃음). 무슨 말이냐면 제가 하회 류(柳)가인데, 골수 유교 집안 피가 내 안에 있는 거죠. 이혼은 절대 하면 안 되고, 창피한 일이라는 생각에 할 수 없이 사표를 냈어요.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 한 달은 좋았어요. 그런데 친정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한 달 정도 후부터는 우울증이 굉장히 심각하게 왔어요. 제가 무용한국사 20주년 때 국립극장에서 춤을 추고, 92년도인가 한국 <현대춤 작가전> 2회 때 춤을 췄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그게 끝나고 나니까 너무 우울했어요. 그러니까 남편이 ‘이 여자 잘못 하면 큰일 나겠다’ 싶었던 거죠(웃음). 그래서 나보고 다시 대학교수를 할 수 있으면 어디든 다시 해보라고 했어요. 김향숙 - 아들을 낳으셨나 봐요? 선물이네요. 아들선물.
인간은 정서적인 조재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부분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임상적으로 알게 돼
류분순 - 그런데 제가 지금 생각하면 대구에서 27살에서 34살 때 한창 왕성하게 활동을 했기 때문에 내가 서울 가도 얼마든지 대학교수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런데 막상 서울에 오니까 나는 별 존재가 아닌 거에요. 나 같은 사람은 수두룩하고 어디 명함도 하나 못 내미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심리학 쪽에 관심이 많아서 공부를 하다가 독일에 갔죠. 처음에는 피나 바우쉬가 있는 부퍼탈로 갔는데, 남편의 사촌 누나가 초기 간호사 파견 때 독일에 가서 독일 남자와 결혼해서 완전 독일 사람이 다 돼서 부퍼탈에 살았거든요. 남편이 죽고 혼자 살고 있었는데 우리 남편이 저를 거기에 머무를 수 있도록 누나한테 부탁한 거죠. 그래서 ‘부퍼탈’로 갔어요. 거기서 제가 마음이 힘들면 ‘피나 바우쉬’ 극장에 갔어요. 객석 뒤에 앉아서 피나 바우쉬가 안무하는 것을 보는데 작업이 너무 조용해서 제가 많이 놀랐어요. 우리는 소리 지르고, 막대기 맞으면서 연습을 했거든요(웃음). 그런데 피나 바우쉬가 안무하는 것을 보고 내가 감동을 받았어요. 그리고 모든 단원들이 ‘피나’, ‘피나’ 이렇게 불렀어요. 그피나가 ‘사랑’이나 ‘고통’같은 주제를 하나 주면 무용수들이 계속 그 주제를 가지고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사랑이나 고통을 표현하고, 나중에 피나는 그것을 픽업해서 무대에 올렸어요. 그리고 또 놀란 게 성악하는 여성이 무릎 한 쪽을 꿇고 무대 제일 앞에서 계속 노래를 부르면 거기에 영감을 받아서 무용수들이 자기 작업을 하는 거예요. 이렇게 조용하게도 안무를 하는구나, 그리고 서로 존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거기에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갔어요. 그런데 쾰른 대학을 다니기는 했는데 독일어도 안 되고 해서 굉장히 외로웠어요. 처음에 가서 학생 의료보험하고 학교 서류 내는데, 1년간 나름 열심히 독일어를 공부했는데 아무도 제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하는 독일어도 내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오고…. 바보가 따로 없고, 내가 아무 것도 아니고, 내 존재감도 없고 그랬어요. 당시에는 쾰른 대학에 댄스 테라피 과목이 체육교육학과에 있더라고요. 그런데 찾아보니까 댄스 테라피 학교들이 있었어요. 독일과 미국이 다른 게 독일의 댄스 테라피에서는 신체의 각 부분에 다 정서가 들어있다고 보는 거예요. 제가 독일에 가서 배운 게 그거예요. 독일 사람들은 굉장히 철학적이에요. 예를 들면 세익스피어의 <삶의 일곱 무대(Seven Stage)라는 시가 있어요. ‘우리는 다 배우다, 영유아기부터 노인까지 무대에서 역할극을 하고 무대 뒤로 사라진다’ 이런 철학을 가지고 접근을 했어요. 또 ‘신체는 각각 다 말을 한다, 어깨에는 책임이 붙어 있고, 위축이 되면 등이 굽어지고, 내가 너무 많고 복잡한 생각을 하면 위가 아프고, 손과 발은 무엇을 말하는지, 발은 대지와 언제부터 서 있게 되었나’ 등 하면서 굉장히 심리적으로 들어갔어요. 무용치료라는 개념이 인간의 모든 움직임을 심리 치료적으로 쓰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용이 체육과 다른 점은 내 생각과 정서를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그 클래스 중에 아프리카 댄스가 있는데 블랙맨이 북을 치면 우리 심장을 계속해서 흥분시키고, 원시적으로 몸에서 반응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배우는 수업이에요. 그들의 이론에서 제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바디-마인드 인테그레이트(body-mind intergrate)’예요. 원래 서양의 이론은 데카르트 이후로 이원론적 이론인데, 댄스 테라피 학교에서는 다 ‘몸과 정신이 하나다, 그리고 네 몸에 이상이 있으면 네 마음과 정신에 이상이 생기고, 네 마음과 정신이 이상이 있으면 네 몸에서도 그게 드러난다’고 가르쳤어요. 그런데 그 내용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고, 한국적인 우리 것이잖아요? 제가 영성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데, 이미 우리 선 문화에 다 있는 거예요.그리고 소리를 길게 내고, 짧게 내는 것이 신체적, 정서적으로 어떤 변화를 주는지 이런 것들이예요. 그렇지만 실제적인 것은 귀국하고부터 시작되었어요. 독일에서 배운 것은 계속 느끼고, 내 세계와 인간의 존재, 심리, 정신, 마음이 어떤 것인지 계속 자극을 받았던 것 같아요.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저에게 처음 연락한 사람이 ‘한국임상예술학회’의 정신과 의사예요. ‘김유광’ 박사라고 사이코 드라마를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한 분이에요. 이미 1983년도에 한국임상예술학회라는 것이 있었고, 거기에 정신과 의사들이 다 모여 있었어요.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들인 서울대학교 이부영 교수, 이화여대 이근우 교수, 유석진 박사 등. 유석진 박사는 화가 이중섭 씨가 정신분열로 대구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주치의였어요. 이런 분들 말씀이 정신분열증 환자에게 함부로 약을 주는 것이 환자를 고치기보다는 훨씬 나쁘게 만들 가능성이 많다는 거예요.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사람들 중에 우리가 잘 아는 배우 최진실 씨도 상담치료를 받았으면 자살 안 했을 거예요. 제가 나중에 뇌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는데, 정신분열증이나 우울증, 아이들 ADHD 약은 결국 두 가지 호르몬을 조절하는 거예요. 하나는 도파민, 또 하나는 세로토닌이 나오는 호르몬을 조절하는 거죠. 도파민은 예를 들어 좋아하는 선수가 경기에서 이겼을 때 등 흥분 시에 분비되지요. 그래서 의사들이 정신과 환자들에게 예술을 통한 치료를 도입한 겁니다. 사이코드라마, 음악과 노래를 하고, 악기를 두드리게 하고, 자기 내면의 세계를 그리게 했어요. 정신분열증 환자들 그림을 보면 피카소 같은 그림들이 많아요. 큰 종이에 눈 하나만크게 그리고, 온 도화지를 빨갛게 칠한다든지, 손만 하나 그려 놓는다든지, 나무도 그로테스크하게 그리거든요. 그러면서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하는 작업을 했어요. 독일에서 병원 임상경험을 했는데, 그 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여자 환자가 의사한테 침을 뱉고, 팔을 잡는 간호사들한테 욕을 하면서 발작을 심하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회복지를 하는 예술치료사가 나와 있었어요. 그 사람이 노래를 조그맣게, 천천히 부르는데 그 노래가 참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이 환자가 갑자기 목소리가 작아지더니 그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거예요. 처음에는 그 노래 내용을 몰랐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아기가 엄마하고 꽃밭에 같이 가서 아기가 장미꽃을 따고 있어. 꽃을 따다 보니까 갑자기 온 주위가 조용해서 순간적으로 무릎에 떨어진 꽃잎을 보고 아기가 울고 엄마가 쫓아 와서 ‘아가 왜 우니?’ 하니까 아기는 무릎을 가리키며 ‘엄마 피’ 하니까 엄마는 조용히 ‘아가 그건 피가 아니란다. 괜찮아, 괜찮아’ 그러면서 엄마 품에 안기는” 그런 내용이에요. 아름다운 기억 중의 하나예요. 인간 내면의 마음은 인지적으로 아무리 이해시키려고 해도 내 정서에 와 닿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거죠. 92년 가을에 ‘국립서울정신병원’서 정신과의사들, 심리학자들을 모아놓고 무용치료에 대해서 학술 발표를 하게 되요. ‘어떻게 환자들의 정서적 움직임이 드러나는가, 위축이 되고 우울하면 어깨가 내려가고, 자신감이 있으면 올라가고, 그리고 호르몬으로 인해서 사람 마음이 굉장히 복잡해 졌을 때 왜 인지적으로 똑바른 사회 룰 속으로 들어오라고 해면 안 되는가? 그 때 몸의 말은훨씬 더 정직하다’ 이런 내용이었어요. 국립서울정신병원의 드라마 극장에 심리학자들과 간호사들이 꽉 찼어요. 그러니까 저는 데뷔 자체를 무용계에서 안 했어요. 무용계가 아닌 정신과 의사들하고 처음부터 같이 일을 하게 됐어요. 발표를 하고 난 뒤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졌고, 그 다음에 바로 김유광 박사가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무용치료를 해달라고 한 거예요. 그러니까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임상을 하게 된 거죠. 의료부장님인 김유광 박사님이 있었기 때문에 지원을 많이 받았었죠.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했던 것 같아요. 한 그룹에 환자 12명, 정신과 의사가 한 명, 정신과 간호사가 한 명 들어와서 저까지 15명이 되도록 하고, 적어도 여기 들어오면 4개월 동안 퇴원도 안 시키고 새로운 환자도 안 들어오게 했어요. 그래야 변화를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자폐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자기 안으로 들어가 있다가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고, 말을 한 마디도 안 하던 사람이 자기표현을 하고, 표정이 생겼어요. 나중에, 인간은 정서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망가져도 그 사람 안에 아주 작게 남아있는 긍정적인 부분을 자꾸 발전시키면 긍정이 커진다는 것을 임상적으로 알게 되었죠. 박사 논문을 사람들의 불안감정과 대인관계에서 무용치료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주제로 썼죠. 정신과 주치의들이 약물을 준 그룹과 무용치료 한 그룹의 상태를 비교해 보니 무용치료를 한 그룹이 훨씬 좋아졌다는 내용으로 쓴 거죠.
기독교 영성과도 맥이 닿아있음을 느껴
이동우 - 동서양을 넘나드셨고, 중국도 가보셨는데 민족마다 움직임이 다를 텐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류분순 - 1995년도에 미국 ADTA에서 처음으로 인터내셔널 패널이라는 국제위원회를 만들었어요. 세계의 각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거죠. 미국이 중심이 되고, 보통 9~12개국 대표들이 패널을 하는 거예요. 그 나라의 민속적인 춤이 어떤 치유의 힘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발표했어요. 저도 해마다 발표를 했어요.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니 우리가 원래는 풍류를 좋아하는 민족이고 샤머니즘, 불교, 유교적 문화로서 ‘몸을 많이 움직이면 천박하다, 자기를 쉽게 드러내면 상스럽다’는 문화가 생긴 것 같아요. 이동우 - 그건 서양과 비슷하지 않나요? 류분순 - 서양과는 다른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미국에서 했는데, 우리나라는 군불문화가 있는데 군불을 때면 금방 안 따뜻해지잖아요? 한참 불을 때야지 밑에서부터 미지근하기 시작해서 위로 올라가서 뜨뜻해서 좋다고 자다보면 나중에 뜨거워져서 장판까지 타지 않나요? 서양 그룹과 워크샵을 할 때 표현력과 발표력이 좋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죠. 항상 ‘이 말이 맞을까? 이 사람들이 비웃으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옳게 말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시간이 걸릴 뿐이지 불만 딱 당겨주면 미지근하게 시작되어 우리 안에 불이 타오르는 거예요. 일단 불이 지펴지면 엄청 뜨거워지는 게 서양과 우리의 차이예요. 우리는 기다림이 좀 필요하고, 서양 사람들은 많이 표출을 하는 것이 다르죠. 우리는 나보다 우리가 중요하고, 자기는 좀 뒤로 가야 예의가 있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들이 한국에서 임상을 할 때 힘들죠. 예를 들면 완전히 다 망가진 정신분열증 환자의 경우에 서양의 음악을 들으면 가만히 있어요. 그런데 우리 음악, 우리 박자를 들려주면 손가락이 움직인단 말이에요. 문화적인 뿌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서양의 이론 과정과 우리 문화의 뿌리를 같이 알아야 해요. 이동우 - 같은 동양이라도 중국은 어떤가요? 관찰해 보신 적이 있는지요? 신금옥 - 저는 사실 공부를 시작한 병아리 단계예요. 중국에 있을 때 같은 동양이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굉장히 다른 면이 많아요. 중국은 오히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요. 이동우 - 중국 본토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신금옥 - 네,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 제가 받은 느낌은 중국은 개인적이고, 전반적으로 철저하게 물질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가치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동우 - 공산주의적인 마인드, 유물론적인 사상 말이죠? 신금옥 - 공산주의 이전부터 중국 사람들은 집단보다 개인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기중심 적이고, 물질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중국이 겉은 화려하게 무척 빨리 변한 것 같지만 정신은 그렇게 빠른 시간에 변하는 건 아니잖아요? 중국인들은 움직임이나 목소리 표현이 커요. 언어 자제도 그렇고, 제스츄어도 그래요. 흔히 일본, 한국, 중국 통틀어서 다 비슷하다고 하는데 사실 굉장히 다른 것 같아요. 김향숙 - 옛날 중세 시대 기독교에서는 춤을 굉장히 죄악시 했잖아요? 크롬웰 시대에도 그랬고. 불교에서는 범패에서 춤도 추는데 기독교에는 춤 문화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최근에는 그나마 워십 댄스가 있는데, 그래도 춤 문화가 짧아서 인위적인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이동우 - 마찰이 많았을 것 같아요. 옛날에는 교회에서 피아노 아닌 다른 악기 연주도 큰 논란이 되었고, 복음성가 부르는 것도 난리가 났었잖아요(웃음). 김향숙 - 지금은 다 하죠. 이동우 - 교회 안에 춤을 도입해 보신 적이 있나요? 혹시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요? 지금 교회에서 춤과 관련해서 워십 댄스는 힙합 문화와 밀접한 관계고, 아니면 수화 정도가 전부인데 우리만의 것이 없는게 아쉬워요.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의 문화를 굉장히 유치한 프로파간다(propaganda)처럼 전락 되어버렸고요. 춤이란 굉장히 심오한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건데 말이에요. 아무튼 교회에서 댄스테라피, 혹은 그 어떤 새로운 장르의 도입에서는 마찰이나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김향숙 - 결론적으로 말하면 춤은 신체를 움직이는 거고, 몸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도구거든요. 결국은 댄스 테라피는 우리의 몸을 사용하는 거고, 그 몸은 사탄이 아니라 하느님이 만드셨다는 거죠. 이동우 - 정말 그렇죠. 김향숙 - 우리 몸을 기가 막히게 설계하고 디자인하셨어요. 댄스 테라피를 하면 할수록 얼마나 기독교 영성하고 맞닿아 있는지 깨닫게 되요. 제가 류교수님 밑에서 공부를 한지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아요. 교수님께서는 전 종교를 아우르시죠. 하지만 저는 목회자 가족이다 보니 크리스찬들을 많이 대하게 되고, 댄스 테라피를 진행하더라도 역시 결론은 하나님이고, 영성이거든요. 결국 이것과 만나지 않으면 궁극적인 회복이 될 수 없고, 제가 진행하는 댄스 테라피 역시 자연스럽게 기독교 영성을 접목하게 되죠. 기독교에서 춤이 역사적으로 단절되고 부정적인 것이 되었어요. 하지만 성경 전체에 걸쳐 춤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와요. 구약시대에 춤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이스라엘 사람들의 문화였어요. 축제에서도 춤을 추고, 치유를 위해서 춤을 굉장히 많이 사용했죠. 류분순 - 다윗 왕도 춤 췄다고 하는 부분 있지 않아요? 김향숙 - 옷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춤을 춘다는 부분이 있죠.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근본주의자들은 춤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저는 늦게 댄스 테라피에 뛰어 들었는데, 가만 보니까 이전에 우리 크리스찬들도 춤을 많이 접했더라구요. 그런데 기독교 안에서 보면 거기에 사용된 음악도 너무 이상하고, 불을 꺼놓고 어두운 데서 춤을 추게 시키고 그랬어요(웃음).
보통 사람들이 자기 내면을 드러내지 못할 때 아주 작은 움직임에서부터 치유가 시작돼
류분순 - 지금 그게 심각한 문제에요. 미국이나 유럽, 한국에서도 댄스 테라피 치료사 자격 얻는데 최소한 3년 이상 걸리거든요. 이 두 분도 자격증 받는데 3년에서 5년 정도 걸렸어요. 그런데 이 자격증을 3개월 만에 준다고 하고, 교회에 사람들 모아놓고 돈 받고 장사하고 이런 부류들이 지금 있어요. 김향숙 - 그 사람들이 진행하는 댄스 테라피의 이론적 배경이 바로 근본주의자들이 공격하는 내용이에요. 무당들이 접신하는 것 같다고 근본주의자들이 공격을 하거든요. 실제로 불을 꺼놓고 계속 무의식 상태로 몰아가고 그렇게 해요. ‘한국댄스테라피협회’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제일 큰 차이는, 자아의 중심이 서있는 상태에서 나의 움직임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거예요.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자기를 다 털어 없애버리고 그냥 미친 듯이 무의식 상태로 끌고 가버리거든요. 이런 춤들은 정말 근본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무당 접신이라는 이야기 듣기 딱 알맞은 거죠. 류분순 - 그런데 외부에서 볼 때는 구별을 못하는 거예요. 김향숙 - 네. 제가 교수님을 만나서 정말 제대로 된 학문을 공부하면서 이런 분별을 할 수 있게 되었죠. 제 미션은 결국 기독교에 제대로 된 무용치료를 접목시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곳까지 인도하셨을까?’ 실제로 댄스 테라피를 진행 해보면 참 아름다운 변화들이 많이 생겨나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기독교의 제일 큰 문제가 교육 커림큘럼이나 프로그램의 수준이 크게 떨어진다는 거예요. 인지적인 교육만 계속 시키고 있잖아요? 크리스찬들의 삶과 생활이 언발란스인 게 가장 큰 이유에요. 성격도 전부 머리로만 교육시키죠. 류분순 - 그렇죠. 머리로 다 하죠. 김향숙 - 그런데 댄스 테라피는 통합적인 교육이라서 똑같이 부부를 치료하더라도 우리가 몸을 사용해서 치료를 했을 때 효과가 가장 크죠.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었더라’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호흡을 불어 넣으신 분이 하나님이시잖아요. 그 호흡을 원래 만드셨던 그 설계대로 되돌려 주는 것도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이동우 - 김향숙 회장과 신금옥 사무국장, 두 분은 어떤 계기로 댄스 테라피를 하시게 됐나요? 신금옥 - 학교 다닐 때부터 움직이고 몸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전공은 중국어를 했는데 개인적으로 여행 등 활동적인 것을 좋아했어요. 회사를 다니면서도 여행을 꾸준히 하고, 춤도 했어요. 그런데 춤을 추고 나면 심장이 뛰면서 ‘아 내가 살아있구나’ 이런 느낌이 드는데, 이 느낌을 ‘내가 살아가는데 긍정적인 에너지로 사용할 수 없을까’ 이런 생각을 가졌어요. 그러다가 제가 중국에서 일하다가 건강이 나빠졌어요. 그래서 회사를 잠시 쉴 때 마침 시간이 맞아서 호기심에 수업을 들었는데 정말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거예요. 춤으로 시작이 돼서 끌려 왔지만 저에 대해서,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3년 정도 회사 다니면서 시간이 될 때 조금씩 공부를 하다가 이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그만 뒀죠. 류분순 - 공공기관인 신의 직장을 그만두고, 순천향대학원의 심리치료학과를 졸업했어요. 석사논문도 아주 훌륭하게 잘 썼어요. 신금옥 - 사실은, 할 수 있다면 병행을 하고 싶었죠. 하지만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이 왔고 남들이 말하는 신의 직장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춤이 너무 재미있고 매력적이기 때문에 시작을 하게 되었고, 아직까지도 더 궁금하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일이에요. 김향숙 - 저는 갱년기 지나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우울증이 심하게 찾아와서 거의 1년 가까이 무기력증에 빠져서 아무 것도 하기 싫었어요. 가정 사역을 하는데 강의도 하기 싫고, 사람들 만나기도 싫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싫더라고요. 많은 시간을 누워서 보내다가 우연히 댄스 테라피를 만나서 제 정서가 회복되는 것을 몸으로 직접 체험했죠. 신체를 움직이다 보니까 제 정서가 바뀌는 거예요. 우리는 부부 치료를 오래 해왔는데 가정 사역에 조금씩 접목하면서 다른 사람의 내면도 똑같이 회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통합과 전인에 관심을 갖게 됐죠. 전에는 주로 교육 세미나를 많이 했었거든요. 손, 발 다 묶어 놓고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웃음). 그런데 실컷 가르쳐도 못 해요. 그 분들이 더 나빠질 때가 많았어요. 왜냐하면 차라리 모르면 무식하게 그냥 살 텐데, 아는데 실천이 안 되니까요. 특히 사춘기 부모들에게 ‘이렇게 하세요, 아이들과 이렇게 소통하세요’ 하면 알겠다고는 해요. 류분순 - 책에 다 나오기는 하잖아요. 김향숙 - 네. 아는데도 또 애들 만나면 소리 지르고, 그러고 나면 죄책감, 좌절감을 더 키우는 거예요. ‘왜 나는 배웠는데 안 되지?’ 하면서요. 그래서 머리만 교육하는 것은 더 이상 안 된다는 게 결론이었죠. 그래서 아까 말씀처럼 정서와 몸이 함께 가야 변화가 되는 거예요. 그동안은 머리만 계속 두드려서 깨우려 했지 정서적으로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데 댄스 테라피는 마음을 만져줘서 부모의 분노가 억제되니까 아이를 다룰 수 있게 되는 거예요. 내 스스로 분노로 가득 차 있으면 아이를 바로 볼 수가 없죠. 많은 사람을 회복시키고, 치료해서 가정 사역의 새로운 도구를 얻을 수 있었어요. 이동우 - 그런데 최근 뉴스에서 아이들의 폭력을 주도한 일진회 학생 중 타워 팰리스에 사는 부유층 자제들이 끼여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발산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학교 폭력 역시 아이들이 발산할때 발산하지 못해서, 정신적 발산이 왜곡되어 나오는 거 아닌가 싶어요. 저도 어렸을 때 몸 쓰는 것을 좋아해서 한국무용도 배우고, 발레도 배우고, 기계체조도 배웠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못 하게 하셨어요. 아들이 둘만 돼도 춤을 추게 하겠는데 외아들이라 안 된다고 하셨죠. 그래서 춤은 못 추고 기계체조를 배우는데 제가 관절이 약해서 땅 짚기를 할 때 많이 아파서 그만 뒀어요. 그러다 춤은 못 추게 하니까 궁여지책으로 서울예고 음악과에 들어가게 된 거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미국에 가서 대학에서는 드라마를 전공했어요. 그런데 드라마는 춤과 다른 점이 말을 해야 되는 거예요. 네이티브 영어가 아니니까 그게 걸림돌이 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거예요. 대사를 외울 때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노래나 안무를 이용해서 어떤 부분에서는 손을 얹고, 어떤 부분에서는 앉고 그러면서 신체와 말을 연결시켜서 기억장치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아까 류 교수님 말씀하셨듯이 거기서 지브리쉬(gibberish)라고 언어가 아닌 소음이나 소리를 내는 즉흥을 하는 워크샵이 있었는데 제가 드러내지를 못 하겠더라구요. 제 정서상 드러내는데 너무 시간이 걸리는 거예요. 선생님이 굉장히 인내를 갖고 저를 지켜보시는데 도저히 못하겠어서 미안하다고 말씀 드리고 중간에 제가 끊은 적이 있어요. 류분순 - 자기 표현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한 거죠. 이동우 - 춤은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자유롭거든요. 드라마는 어떤 캐릭터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설정을 해서 의상을 제대로 갖춰 입고, 소품도 갖춰 놓고 이렇게 함으로써 해서 느낌을 받는데, 춤은 일단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느낌이 솟아나요. 춤은 반대로 ‘일단 움직여라, 그러면 거기서 느낄 것이다’이지요. 마사 그레이엄도 춤의 원리로 배우들을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무용하는 사람들이 이런 심리적인 움직임에 관한 것을 공부하면 춤이 많이 바뀔 것”
류분순 - 댄스 테라피에서 핵심이 바로 그거예요. 보통 사람들이 자기 내면을 드러내지 못 할 때 아주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해요. 우울증이 아주 심해서 오랫동안 약을 먹은 사람들도 그냥 여기서부터 시작하거든요. 리듬이 나오고 이렇게 조금씩 세게하면서 (손바닥으로 가슴을 치는 동작, 점점 크게) 감정이 일어나는 거예요. 굉장히 단순한데 그 다음에 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답답해, 답답해, 답답해’라고 하면서 내 감정이 묻어나면서 ‘뭐가 답답하지?’라고 생각하게 되요. 심리치료에서 언어는 계속 거짓말을 할 수 있어요. 내가 A를 이야기 하고 싶은데 B, C가 계속 나와서 A는 숨어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거꾸로 댄스 테라피는 그냥 호흡하고 작은 움직임으로 시작해서 리듬을 타고 좀 더 확장시키면서 내 안의 정서가 일어나죠. 결국은 내가 진짜 원하는 욕구가 움직이고 나서 정리가 돼서 나중에 인지적인 언어로 나오는 거예요. 언어가 먼저가 아니라 움직이고 나서 정화가 된 후 정화된 인지적 언어가 나오게 된다는 거죠. 이동우 - 그래서 제가 드라마를 하지 않고, 실기는 아니지만 다시 춤으로 되돌아 온 이유도 말에 대한 부담감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현대 창작무용 쪽에서는 너무 머릿속으로만 창작을 하고, 무대 디자인도 유명 디자이너에게만 의존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창작 쪽에서도 댄스 테라피의 임상실험 등을 보고 자기의 움직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심리를 파악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아직 춤과 테라피의 접목이 활발하지 않은 것이 안타깝군요. 류분순 - 박사 과정에서 제 강의를 한 학기나 1년~2년씩 들은 사람들의 춤이 바뀌었다고 말하는데, 처음에는 자기들 안에서 갈구하는 게 뭔지 몰랐대요. 그러다 강의를 듣고 ‘아, 이거구나’하고 자기 진짜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됐대요. 무용하는 사람들이 이런 심리적인 움직임에 관한 것을 좀 더 공부하면 춤이 많이 바뀔거라고 봐요. 지금 한창 좋은 작품을 내고 있는 현대 무용가들이죠. 이동우 - 무용과에 댄스 테라피가 교양 과목이라든지 어떤 식으로든 같이 접목이 되어야 겠습니다. 아직도 현직 무용과 교수님들과 마찰이 있지 않나요? 류분순 - 아니,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춤」지에서 제일 먼저 기사가 나왔었는데, 제가 95년부터 미국에서 인터내셔널 패널을 하면서 미국 자격증 받을 준비를 했거든요. 우리나라에서 진행한 3천670 시간의 임상시간과 정신과 의사들의 추천서, 논문 세 편, 미국의 슈퍼바이저 두 사람의 추천서 등등을 제출하고 200년 2월에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BC-DMT라는 미국의 무용치료사 교수 자격증을 받았어요. 그 내용이 「춤」지에 나온 거죠. 기사를 읽고 많은 학생들이 문의 전화를 「춤」지에 했다고 들었어요. 무용치료공부를 하려고 미국이나 유럽에 꽤 많이 나가게 되고요. 그러면서 서서히 대학에도 댄스 테라피라는 과목이 생겼어요. 2000년부터니까 벌써 한 십몇 년 되었네요. 이동우 - 그 때만 해도 춤지라는 잡지를 통해서 접했지만 이제는 인터넷으로도 접하게 되면서 일반인들이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건가요? 홍보면에서는 어떤지요? 많은 사람들로부터 문의가 오는지요? 신금옥 - 아직까지는 많이 찾아야 되는 것 같아요. 누구한테나 노출이 되어 있다기보다는 열성과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서 오시는 것 같아요. 류분순교수를 알고 오시는 분들도 있구요. 댄스 테라피라는 분야는 다른 여러 경험을 해보고 오시는 분도 계시고 다양해요. 이동우 -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특히 연예인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운동이나 다이어트도 되니까 그런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류분순 - 협회로 KBS 뉴스타임이나 MBC 방송국에서 전화가 자주 오는 편이예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등 저희가 안 나간 데가 없어요. 그런데 지금은 일절 안하는데, 시간을 너무 뺏기는 거예요. 처음에는 우리도 사람들에게 좀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응했어요. 그 중에 가장 좋았던 프로그램은 SBS ‘황홀한 소통’이에요. 국립서울정신병원 정신과 과장의 인터뷰, 제 인터뷰, 우리 치료사들이 아이들 치료하는 과정 들을 내용으로 담았어요. SBS에서 참가자를 공개 모집해서 데려왔는데, 5주 만에 아이들이 확 바뀌는 게 눈에 보이자 엄마들도 인터뷰에서 무척 놀랍다고 했어요. 그런데 대부분 방송국에서 제안하는 것은 탤런트 누구누구 나오는데 교수님 오셔서 탤런트들이 움직이면 심리 상태가 어떤지 말해 달라는 등 잘못 나가면 굉장히 위험한 내용인거예요. 또는 알콜 중독 여성들과 경기도 한 펜션에 2박 3일 묵으면서 내가 3시간 동안 뭘 해주면 어떻게 변하는지 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진행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방송은 더 이상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왜곡되겠다 싶어서예요. 대신 저희는 3~4년 전부터 서울, 대전, 안양, 의정부, 수원 등 법원에 이혼 소송을 낸 부부들을 대상으로 댄스 테라피를 진행해요. 이혼 소송을 내고 한창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는 부부들에게 판사들이 숙려기간에 이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거예요. 전에는 그 부부들을 데리고 상담 치료사들이 2~3시간 강의 등을 했는데 그게 효과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2~3시간은 안 된다, 나한테 맡기려면 1박 2일을 나한테 확실하게 맡기라고 했어요. 그래서 이 부부들을 데리고 양평의 힐 하우스나 다른 리조트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그런데 이혼을 하려고 하는 부부가 아침에 법원에서 만나서 거기까지 올 때 어떻겠어요? 들어 올 때는 누가 부부인지 몰라요. 서로 꼴 보기 싫으니까(웃음)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앉아요.몸의 움직임이 얼마나 사람을 변화시키는지 당장 그 날 저녁부터 변화가 와요. 그 날 판사가 부부 한 쌍에게 방 열쇠를 하나만 줘요. 이혼 소송 냈다고 한 사람한테 열쇠 하나씩 줄 수는 없잖아요? 처음에는 열쇠를 들고 와서 판사한테 막 신경질을 내면서 ‘저는 방 따로 주세요. 저 사람하고 절대 같이 못 자요’하면서 난리라고 해요. 판사님이 저에게 오셔서 ‘이거 어쩌면 좋아요? 전부 방을 따로 달라고 하는데...’ 하면서 난처해 하죠. 그러면 지금은 어떤 말도 하지 말고 끝나고 보자고 말해요. 그런데 저녁에는 부부가 다들 한 방에 들어가요. 제가 마지막에 “여러분 한 침대에서 주무시지 마십시오. 이 쪽 벽에 한 분 주무시고, 저 쪽 벽에 한 분 주무세요”하고 제가 이렇게 농담까지 해요. 그 다음날 아침에 부부들에게 어깨에서부터 신체 터치를 시키는 게 가능해요. 나중에는 제가 “여러분 이 프로그램은 여러분들을 다시 결합시키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이 프로그램은 싸우지 말고 헤어지는 프로그램입니다. 싸우지 말고 헤어지십시오” 이렇게 말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열 쌍, 스무 명이 참여했는데 그 열 쌍 중에 일곱 쌍이 이혼소송을 취하했어요. 나머지 세 쌍도 안 싸우고 헤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법무부에서 지원금을 주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올해도 계획이 잡혀 있어요. 댄스 테라피 말고는 안 되는 거지요. 이동우 - 예전에 80년도에 MBC에서 <당신>이라는 사이코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사이코 드라마라는 장르가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죠. 류분순 - 그 때 김유광 선생이 관여를 많이 하셨어요. 이동우 - 저도 어렸지만 무척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얼마전에 이혼 위기에 처한 부부들을 대상으로 스포츠 댄스를 가르쳤던 프로그램이 있었지요?
학교폭력예방 프로그램 등 무용을 도구로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해와
류분순 - 학교 폭력이 심각해지니까 서울시 교육청에서 저희 협회에 학교 폭력 예방프로그램을 프로젝트를 지원해 주었어요.학교 폭력 가해자 그룹과 피해자 그룹, 그러니까 주로 때리기만 하는 그룹, 맞기만 하는 그룹이 모였어요. 그런데 사실 가해자들이 대단할 것 같은데 이 아이들은 피해자가 안 되려고 가해자가 되는 거예요. 이 아이들에게는 그룹 안에서 자존감이나 자발성과 창의성을 키워주는 게 중요해요. 댄스 테라피를 통해 아이들이 변해요. 그리고 양육스트레스 프로그램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지난주에 우울증 때문에 아이를 죽인 엄마가 있다고 하던데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굉장히 많다고 하더라구요. 양육 스트레스가 심각한 거죠. 또한 지금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1위라고 해요. 노인 자살이나 10대 청소년 자살이 많아요. 우리 사무국장이 늘 그런 말을 하는데, 우리가 무용이라는 도구로써 90년대부터 우리 협회에서는 가장 그늘지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어요. 이동우 - 무용이라는 게 저 어렸을 때만 해도 여자들만 추는 거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힙합 등 대중문화가 들어오면서 춤에 대해 많이 관대해졌어요. 이제는 공교육에 많이 적용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어떤 분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한 초등학교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이 전교생에게 [춘행무]를 가르쳤대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몸가짐도 좋아지고 예의가 바르게 되었다고 해요. 음악, 미술, 무용 중에서 무용이 제일 어렵다고 사람들이 인식을 하는데 그 인식을 타파하는 게 중요하죠. 그리고 음악, 미술은 독립된 과목인데 무용만 체육과 섞여 있잖아요? 과목이 분리가 되거나 조회 시간에라도 단체 팀워크를 기를 수 있게 춤을 추는 시간으로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류분순 - 교도소도 그래요. 필리핀의 교도소에서 체조 대신에 춤을 추게 했더니 정서 상태가 많이 변했다고 하잖아요? 이동우 - 자살이 많은 이유가 돈 때문이 아니라 남들 시선과 체면 때문인 것 같아요. 이 험한 세상에 춤이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제 댄스 테라피 협회가 20년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행사에 대해서 소개를 좀 해주세요. 2013 KDTA 20주년 댄스테라피 국제 컨퍼런스 행사 안내책자도 나왔는데, 어떻게 준비하시는지 소개해주세요. 주제를 댄스 테라피를 통한 힐링, 커넥션, 하모니(HEALING, CONNECTION, HARMONY through Dance Therapy)로 선정하셨죠? 류분순 - 그게 핵심이에요. 지금 제 3의학 시대로 의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어요. 보통 병이 생기면 일차적으로 약을 먹이고, 수술을 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방이고, 재활이에요. 그리고 지금 사람들은 삶이 질을 중요시 하고, 100세 시대라고 고령화 사회고 가고 있잖아요? 우리가 농담으로 이야기 하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사람들이 모두 리듬을 타고 춤을 출 수 있어야 해요. 화가 난 상태에서는 절대 춤을 못 춰요. 화 났는데 춤추라고 하면 싸울걸요? 이동우 - 그런데 지금 말씀하시니까 생각나는 게 있어요. 옛날에 대한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70년대 재일교포 모국성묘단이 있었잖아요? 그 때 한 남자가 늙은 노모를 찾아갔는데, 노모가 형은 어떻게 됐냐고 하니까 죽었다고 하면서 마당에 무릎을 꿇고 울었어요. 그러니가 노모가 어쩔 줄을 모르면서 탈춤에서 나오는 동작을 하면서 마당을 막 돌아다니더라구요. 아, 저게 한국적인 춤이구나 하고 느꼈어요. 행사는 어떤 내용으로 진행되나요? 신금옥 - 6월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 진행되는데, 하루씩 각각“힐링”, “커넥션”, “하모니” 라는 주제로 무용치료 임상연구물 발표와 실제 체험워크숍이 함께 진행됩니다. 크게 개인의 건강과 회복을 위한 댄스테라피, 가정과 조직, 지역사회의 행복을 위한 댄스테라피, 학교에서의 평화와 화합을 위한 댄스테라피가 진행됩니다. 또한 13개국 전문가의 국제패널 토의와 논문 발표, 국내 무용가들의 무용공연, 다함께 어울리는 네트워킹 파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류분순 - 댄스 테라피라는 학문이 2차 대전 후 30~40년대에 출발을 했고, 6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 어소시에이션이 만들어지고, 그 후에 대학원 과정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미국은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되고, 유럽은 유럽대로 하나의 어소시에이션을 만들어서 모이는데 아시아는 없는 거예요. 모든 아시안들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배워서 하는 상황이죠.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20년 가까이 유럽이나 미국에 가서 느낀 것은 우리가 원래 갖고 있던 내용, 우리 것이 더 좋다는 거예요. 지금 미국의 사회적인 철학은 무척 혼란스럽고, 난잡하고, 오히려 이 사람들은 동양철학을 추구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왜 우리의 좋은 것을 내세우지 못하는지 너무 속상했어요.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우리나라 살풀이의 ‘여백’, ‘빈 공간’을 왜 중요시 하는가 발표를 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과연 치유라는 것이 동서양과 앞과 뒤, 오른쪽과 왼쪽, 안과 밖이 어떻게 커넥션이 되어 조화를 이루는가 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에요. 그래서 크게 “힐링, 커넥션, 하모니”라는 주제를 잡게 되었어요. 그 다음에 서양에서는 아시아를,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모르니 와서 보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 것을 알리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가장 기본적인 철학이었어요. 그래서 2년 전부터 마음속으로 이런 내용으로 준비를 했었죠. 그러나 자신은 없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외국에 동료들이 많기는 하지만 한국의 상황들이 외국에서 보기에는 안정적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준비를 하면서 서양과 동양의 어느 한 쪽만으로는 안 되니 만나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특히 우리의 우수한 것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자신을 갖게 된 것은 그동안 국제 워크샵에 초청되어 온 세계적인 대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한국 사람들이 뛰어나고, 우수하다고 하는데 그게 빈말이 아닌 거예요. 그런데 또 문제는 20주년 행사를 국제행사로 준비하는데 우리가 돈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지원을 받을 수도 없어서 할 수 없이 우리의 뜻과 철학이 이렇다고 하면서 논문 제출 신청서를 내보기로 했죠. 비행기 값이나 숙박비를 못 내주고, 100% 자비로 와야 하는 거지요. 그런데 작년 8월에 1차적으로 ‘콜 포 페이퍼’를 냈는데 놀랍게도 13개 나라에서 40개 팀이 오기로 한 거예요. 놀라운 일이죠. 오기로 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아 정말 이 사람이 오다니’ 할 정도로, 임상 경험이 30년이 되는 그 나라의 파이오니아들이 와서 굉장히 기쁜 거죠. 이동우- 어떤 분이 방문하는지 이 자리에서 소개해주시지요. 김향숙 - 헬렌 페인(Helen Payne)이라고 영국의 댄스 테라피 어소시에이션 회장, 미국의 컬럼비아대학의 댄스테라피학과 주임교수, 또 솔트레이시티의 정부 지원을 받아서 학교폭력 예방하는 프로그램 진행하는 사람, 이스라엘, 네델란드 전문가들, 인도 의사들이 오기로 했어요, 호주 어소시에이션 대표 등, 대단히 재미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보통 국제대회 하면 5~6개국 정도 오는데 13개국이니까 우리를 제대로 보여줄 있는 기회가 될 것 가아요. 무엇보다 당당한 게 우리가 이 사람들에게 제공한 게 하나도 없는데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이죠.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댄스 테라피스트들 중에 가난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몇 사람은 오고 싶은데 차비가 없어서 못 온다고 해요. 에스토니아에서 두 명이 오고 싶어해서 우리가 에스토니아 대사관에 스폰서를 요청하려고 했는데, 에스토니아 대사관 자체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노력해 봤는데 결국 못 오게 됐어요. 이동우 - 그곳까지는 어떻게 홍보가 됐나요? 신금옥 - 유럽하고 미국 쪽 치료사들 리스트를 뽑아서 메일을 보내고 SNS를 통해서 행사 소식을 알렸어요.
『강강수월래』등 한국 춤의 힐링 효과를 알릴 계기로
이동우 - 파급력이 대단하군요. 보통 국제학술대회 하면 서양의 정보를 배우는 거라고 생각 하는데, 이런 계기를 통해서 한국 춤의 힐링 효과를 알릴 수 있겠네요. 여기 책자 사진에도 나왔지만 [강강수월래] 등 우리 춤을 소개하면 좋겠네요. 류분순 - 제가 미국에서 발표할 때 미국 치료사들과 했던 게 강강수월래예요. 강강수월래 안에 있는 14개의 놀이가 얼마나 치유적인가 하는 이론에 대해서는 국문학자 김열규 선생이 이야기를 하고 있죠. 달과 여성에 대해서, 여성의 달거리와 우리 농사와 밀물, 썰물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 보름달에서 시작해서 그믐으로 갈 때까지의 음양의 조화를 비롯, 우리는 늘 곡선으로 움직이고, 삶에서 죽음으로, 또 다시 부활하고 재상하는 것을 강강수월래를 통해서 이야기를 하는 거죠. 외국의 치료사들과 청여 엮기 등을 하니 난리가 났어요. 우리나라의 [강강수월래]는 수출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신금옥 - 이 강강수월래를 풀어 보면 노래부터 시작해서 남성들이 없는 보름달 아래서 여성들이 숨겨 놓았던 성적인 것을 드러내는 과정이 대단히 재미있어요. 김향숙 - 정말 한국적인 게 세계적인 것 같아요. 싸이 음악도 다 통하는 것 보면 우리나라가 세계를 향해서 나가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 같아요. 이동우 - 이번에 그런 서양의 것을 답습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것이 정말 치유의 장점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을 세계에 많이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무용/동작 치료사들은 주로 어떤 곳에서 일하고 있나요? 직업으로서 무용/동작치료사의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신금옥 - 국립서울정신병원, 서울대학교병원, 용인정신병원, 국군수도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대현 병원을 비롯하여 각종 의료기관, 사회복지기관, 아동발달센터, 가족상담센터, 학교 및 교육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무용/동작치료사를 필요로 하는 곳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각종 미래보고서, 미국노동통계청, 의료 및 보건복지 동향을 살펴볼때 전망이 밝다고 예상됩니다 이동우 -한국사회에서 무용치료의 역할과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향숙 - 세계적으로 신경과학의 발전으로 뇌와 정서의 연결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무용치료의 효과성 검증, 무용치료가 의료, 사회 변화에 따라 신체와 정신의 연결을 통한 정신건강과 정서소통을 돕고 있어요. 한국댄스테라피협회는 앞으로 인간성에 대한 고유한 가치를 소중히 하며 사회에 필요한 우수한 치료사를 양성하는 일에 힘쓸 예정입니다 이동우 - 장시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좌담을 통해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습니다. 저도 많은 분들께 댄스테라피를 소개하면서 이번 행사 때 꼭 참석하도록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류분순 - 미래적인 전망을 볼 때 무용/동작치료는 자신의 본성과 아름다움을 찾고 타인과 공감하며 도움을 주는 직업이라고 봅니다. 더 많은 무용 전공자들이 이 공부를 하기를 바랍니다. 신금옥 - 무용/동작치료에 관심이 있다면 이번 국제 행사가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13개국의 저명한 임상가와 학자들을 이렇게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지 않으니 많은 분들이 참여하고 체험하시면 좋겠습니다. 김향숙 - 이번 대회는 한국무용/동작치료의 우수성과 탁월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무용전공자는 물론이고, 아픈 영혼들을 치유하는 일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구요. 온 세상이 행복으로 춤추는 그날을 앞당기는 일에 한국댄스테라피 협회의 행보는 계속될 것입니다. 이동우 - 계획하시는 모든 일정 순조롭게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