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림굿을 한 어머니는 천상도사와 천상동자의 신이 내렸다.
명두를 동자라고 했고, 천상도사는 우리의 조상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무아지경에 이를 때는 신이
눈에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주로 목소리만 들린다고 했다. 몸에 들어온 신은, 머무는
곳이 심장이며, 전기가 전선을 통해서들어오듯이 신도 혈맥을 통해서 심장 속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내림굿을 한 이튼날부터 우리집 대문 앞에는 <천왕대> 라는 대나무를 오색천에 묶어서 세웠고, 이
제 부터는 신이 잠을 재우고, 신의 놀음을 놀아야 하고, 신의 밥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안방에는 양
쪽 벾을 가로질러 신당을 모셨고, 어머니가 계시지 않을 때는 붉은 천으로 가렸으며, 어머니가 계실
때는 천을 열고 촛불과 향을 피었다. 유리관 속에는 관세음보살님이 계시고, 벽에는 무섭게, 때로는
인자한 얼굴을 하고 계신 여러분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양옆에는 빨간색과 흰색의 연꽃이 조화로
만들어져 세워있고, 놋새로 만들어진 물그릇과 갖가지 음식들을 올려 놓기도 하고, 돈이 얹혀져 있
기도 했다.동자신이 들은 어머니는 점을 볼 때는 긴 휘바람 소리가 나고, 동자가 말을하는지 아이
소리를 내곤 했다. 동자신이 점퀘를 말해준다고 하는데, 신통하게 잘맞춘다고 했다. 그런 소문이 퍼
지면서 집에는 연일 손님이 끊어지는 날이 없었다. 그런 덕분으로 생활은 안정되어가는지 그나마
보리밥이라도 먹을 수 있었고, 떡이며, 밤, 대추 같은 것들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싫었다. 동네 아이들은 그런 나를 보고 <얼라리 꼴라리. 무당아들. 무당새끼. 얼치기 떨치
기, 귀신아들 .....> 그렇게 놀려대며 신나듯 신작로를 뛰어 다니는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기에 어
머니의 그 행동이 싫었던 것이다. 그럴라치면 나는 집안으로 들어와 마당에서 멍청하게 앉아있곤
했다. 손님이 계시지 않을 때는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손님이 계실때는 유독 어머니는 나를 방
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책가방도 누나나 형들이 갖다두도록 했고, 방에 무엇을 꼭 꺼내야 하면 누구를 통해서 가능했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그날 장사를 마치고 돌아온날, 내가 무서운 꿈을 꾸엇던 그날부터 나를 싫어하
기 시작했다. 그 시퍼런 눈빛으로 나를 멀리하고, 내몰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붕위에 검붌은 빛이 번져나오면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돼지우리위에 걸터앉아 마지막 남은 붉음
이 은은하게 보라색으로 변하면서, 검음이 보라를 야금야금 먹어가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점점 어
둠워지고, 윗집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지켜보아도 손님이 끝나지 않으면 그땐 정
지문 가마니를 들어올려 칡줄로 묶어놓고 정지로 들어간다. 내가 빈 풍로를 돌리고 있으면 방에서
누나가 나와 창고안에 있는 안겨를 들고 들어온다.
(불떼고 있으라, 시장에 갔다올께.)
(오늘은 맛잇는 것 사와여? )
( 뭐가 먹고 싶은데 ? )
누나는 늘 사랑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애처롭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면 내
눈에서는 금방 눈물이 뚝뚝 떨어지곤 했다. 풍로를 돌리고 안겨를 한움큼씩 넣어주면 가늘고 긴 연
기가 한줄한줄 피어올랐다가 노란 불꽃이 생겨나고, 풍로를 힘차게 한 번 돌리면 빨간 불꽃이 아름
답게 피어난다. 가마솥에 물끓는 것도 잊어 버리고 계속해서 그렇게 반복을 하다보면, 등 뒤 흙담에
서 구수한 흙마른 냄새가 배어 나오곤 했다. 그 냄새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온 식구들이 해가 지
는 들녘에서 가을 추수를 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 남매들은 깔깔거리며 논밭을 뛰어다니
며 놀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런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하얀 웃음을 머금는, 그 아름답던
들녘에 풍성한 수학이 가족의 평안을 말해주던 그 순간에, 아버지는 나를 목마태우고 황혼녘을 뒤
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행복했던 그 순간이 아련한 흙냄새와 함께 전해오는 것이다. 형들이 나와
서 솥에 물을 떠다가 씻고 자기들끼리 떠들어대며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이미 나역시도 익숙
해져 있기에 그들과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들이 부러워 보였고, 정말 나는 저들과 다른
, 다리밑에서 주어온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씩 해봤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할수록 사실만
같았고, 이 세상에 정말 나혼자만 내동뎅이 쳐진 듯하여 슬프기 그지없었다. 혼자가 될수록 더욱 침
체되고 음울해지면 책을 붙들고 억지로 씨름을 하다가, 그것조차 엮겨워지면, 동네를 싸돌아다니며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식구들은 더욱 냉대해졌고, 동네 아이들은 저희 부모들
이 나하고는 놀지 말랬다고 더욱 약을 올리는 것이다. 혼자서 산과 들을 할 일없이 돌아다니기도 하
고,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며 놀기도 하고, 입이 궁금해지면 철뚝길에 가서 쇠못을 빼다가 엿장수에
게 강냉이나 엿으로 바꿔먹고 그렇게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보냈다.
대나무가 꽂힌 대문 옆에는 작은 샘이 있었는데 그 샘은 아무리 흉년이 와도 물이 마르는 법이 없
었다.그러나 그 옆에 세워둔, 늘 경멸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대마무는 이미 죽어서 하얀 알몸을 내
놓고서서 이집이 무당의 집임을 표시해주고 있었다.
어느날 밤. 그날도 어머니는 대나무 창을 들고 나를 찌를 듯이 달려왔다. 나는 안갖힘을 쓰며 도망
을 다녔는데, 절벽에 떨어지면서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숨이 턱에 찼
다. 손을 가슴에 대고 진정하려고 머리를 들었는데, 신당이 보였다. 붉은 천이 걷어져 있었고, 관세
음보살님과 동자가 보였고, 두 개의 촛불이 넘실거리며 돈과 과일들을 낼름거리고 있었다.한줄기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은은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물을 마셔야겠다고 방문을 여니, 사물을 구분
할 수 있을 정도로 달빛이 밝은데, 장독대 앞에서 머리를 길 게 풀어헤치고, 지성들여 빌고 있는 어
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참으로 아름답고 신성하며 청아했다. 어머니는 저 지성을 신에게 드리며 무
슨 부탁을 할까 생각했다.그러면서 혹시 내가 밖같에 나가면 저 지성이 잘못될까 걱정되어 나는 목
마른 것을 참고 조용히 문을 닫고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자꾸만 꿈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보니 어머니는 놋새 그릇에 정한수를 받쳐들고 들어오셨다. 그리고 신당
에 가지런히 놓으시고 머리를 틀어올려 비녀를 꽂으신다음, 옷메무새를 만지시고, 크게 양팔을 벌
려다가 모으며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때 어머니가 어떤 선녀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
머니의 고운 자태는 마치 정갈하게 빚어놓은 석고상 같았다. 그리고 무서운 엄숙함이 있었고, 어머
니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오랫동안 그렇게 계셨는데 나는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하얀 소복을 입은 할머니가 큰 비녀를 꽂고 단정히 앉아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주위는 온통 갖가
지 꽃들이 있었고, 나는 그 할머니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할머니는 웃지도 않으시고, 그렇다고
화난 얼굴도 아닌, 그냥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누구시냐고 묻자 할머니는 입
을 벌리지도 않았는데 말소리가 들려왔다. <너의 고조모이지 > 라고 했다. 여기가 어딘데 이곳에
게시냐고 물으니 이곳은 저승이고, 네가 올곳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내 목에 이상한 목
걸이를 걸어주고는 홀연 듯 사라지셨다
나는 할머니를 부르다가 어머니가 나를 치는 바람에 깨어났다.
어머니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이마에 맺힌 땀을 딱아주면서 앞으로는 신당 근처에는 얼씬도 말라
고 했다. 그럴수록 나는 그곳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학교를 가서도 선생님께 그런 것에 대
해 질문을 많이 하기도 했다. 이때만해도 무당이 많지 않았고, 또 귀신집으로만 보았기에 무관심했
고, 지대한 관심을 가지신분이 없었다. 어머니가 안계신날은 몰래 들어가 붉은 커텐을 걷고 촛불을
켜고 어머니처럼 크게 절을 하고 가만히 앉아있어 보기도 하다가 심술이 생기면, 돈과 과일들을 집
어들면 어김없이 나는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말을 듣지를 않는 것이다.
그러면 들킬까봐 혼자서 용을쓰며 빠져나올려고 해도 꼼짝도 안했다. 결국 무서워 울음을 터트리면
온 식구들이 다달려왔고, 어머니는 연신 손을 모아 절을해가며 잘못을 빌고, 그저 철없는 것이 몰라
서 그러니 용서해달라고, 수차례 그러면 내몸은 마치 얼음속에 갇혔다가 풀려나는 것처럼 삐걱삐걱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날은 어김없이 밥도 굶고,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들도록 두들겨 맞고 대문
밖으로 쫒겨나기 일쑤였다. 그러기를 수차례. 나는 이제 집안에 함부로 발을 들여놓을 수도 없었다.
도독 고양이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금살금 움직여야 했고, 그렇치 않으면 아예 창고에 들어가 촛
불을 켜놓고 밤세 책을 읽곤 했었다. 무슨 책이든 닥치는데로 읽었고, 아침이면 병든 닭모양 졸며
학교에 가곤 했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누나방에 가서 잠부터 실컨 자곤했었다. 그러다보니
학교 성적은 정신없이 떨어졌고, 몸은 쇠고쟁이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머리가 어지러워
몇칠씩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몸이 불덩어리처럼 끓어오르기도 하곤 했다. 내가 그렇게 심하
게 아픈데도 어머니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누나가 미음을 끓여오고 이마에 수건을 갈아주곤 했
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러다가 죽는구나. 그래서 고조모가 계시는 그곳으로 가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쪽눈이 찌부러진 장씨라는 아저씨가 오셨다. 그분은 내 이마를 짚어보
고, 내 눈을 노려보곤 하시다가 불쑥 나에게 제안을 해왔다.
( 너 많이 아프냐 ? )
( 모르겠어요.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겠고, 머리가 몹시 아픈 것 같아요. )
( 그래. 그럼 너 나따라갈래 ? 그곳에 가 있으면 아프지 않을 것이야.)
( 어디로요 ? )
( 절에. 나는 절에 있는데 그곳에 가면 니가 아프지 않을거야. 그럴래 ? )
나는 절이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장씨는 밖으로 나가 문앞에 계
시던 어머니와 말씀을 나누셨다.
( 애가 몹시 허약하군요. )
( 그래요. 어떡하면 좋겠어요 ? )
( 내가 데리고 가지요. 어차피 저 녀석은 이곳에 두어도 보살님 앞에는 장애가 될 것이니 제가 데리
고 가서 잘 다듬어 보겠습니다. )
( 어린 아이에게도 신명이 있다니 참으로 신도 야속하군요. 나 혼자서도 감당키 어려운데 저 어린
것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이 고통을 받아야 한는 것인지. 휴우...이제는 저녀석 보기도 미안하군요.
먹고 살기위해 이짓을 해야 한다면 당장 집어 치우고 저녀석을 선택하겠지만. 신명에서 하는 장난
이니 제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군요. )
( 그것이 저녀석의 운명인 것을 어찌합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최선을 다해서 신명을 다루어
봅시다. 제가 보기에는 지금 저녀석에게는 높은 신명이 왕래를 하고 있는 듯 한데 잘 다루어 질지는
모르겠군요. )
( 그래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녀석이 옆에 있으면 점퀘가 나오지 않거든요. 그래
서 나도 의식적으로 피하곤 하지만, 그래도 애아버지가 저녀석을 가장 아끼고 사랑했었거든요. 이
것도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지요. 그렇다면 지금 저녀석의 신명을 눌러놓는다면, 언제쯤 다시 되살
아날까요 ? )
( 글세요. 아예 지금 스님의 길로가게 인도를 하든지, 아니면 나중에 저녀석은 천기를 다 읽을 수
있는 영검한 힘을 지니게 될 것이고, 또한 무당이 되든지, 아니면 아주 이름난 풍수가 되든지 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잘 다스려보아야지요. )
그리고 한동안 말이 끊어졌다가 어머니의 말씀이 들려왔다.
( 그러세요. 먹는 것하고, 입는 것은 보낼테니 잘 좀 부탁드려요. )
( 예.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
그러자 장씨는 다시 방으로 들어왔고, 이어서 어머니와 누나가 보따리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장씨
는 등을 보이며 업히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와 누나를 번갈아보며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울먹울먹 하
고 있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괞찮다고 하시며 잠시 요양하는 것이니 따라 가라고 했다. 그러자 누나
는 돌아서서 흑흑거리며 울고 있었다.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장씨의 등에 업혔다. 대문을 나서는데
도 어머니의 표정은 굳은채 말씀이 없으셨고, 누나는 연신 치마자락을 들고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
다. 나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도착한곳은 충북 영동 이었다. 시내에서 조금벗어나 개울을 타고 올라가니
이암사라는 작은 암자가 나왔다. 이미 어둑어둑 해진 그곳은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공양주라는 나
이드신 할머니 한분이 계셨고, 절당 한채와 요사채 두 개가 있었다. 나는 그날부터 장씨 아저씨와
한방에 같이 머물 게 되었는데, 처음 며칠동안은 여전히 이불속에 누워 있었고, 장씨 아저씨는 새벽
에 일어나 법당으로 가서 염불하고, 낮이면 요사채 뒤편에 있는 밭에 나가서 일을 하시고, 밤이면
내 옆에 앉아서 한차례 염불을 한 다음 주무시곤 했었다. 나는 이제 아무에게도 부딪치는 일이 없으
니 편하기 이를데 없었고, 그럴수록 더 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곤 했었다. 장씨가 오시든
날, 어머니와 나누시던 대화를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어머니와 같은 신인지
뭔지 하는 것이 있고, 동자신처럼 어린아이 말도 할 수 있고, 휘파람도 멋지게 불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도 나이가 들면 어머니처럼 무당이 된단 말인가. 그 무서웠던 꿈들이 전부 나에게 어떤
암시를 하는 것인가....이런저런 생각들이 연신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는 장씨 아저씨
가 묻는말 외에는 절대 말한적이 없었다. 그런 생각들로 그럭저럭 한달이 지나갈무렵 나는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고, 절도량을 산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가끔씩 어머니가 보고 싶고, 누
나와 형들이 보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러면 나는 절뒷쪽 산으로 올라가 망연히 앉아 어느쪽이 점촌
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마음 내키는데로 앉아서 조용히 입으로 불러보곤 했었다. 그리고 눈물이
나오면 실컨 앉아서 울고나면 그래도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그렇게 또 한달이 지나가고 이제는 법
당에 들어가 정한수도 받칠 수 있고, 초가 다타면 초를 갈고, 향도 꽂으며, 마음놓고 절도 할 수 있
었다. 장씨 아저씨랑 풀도 같이 베고, 군불을 넣기도 하며, 이제 완전히 건강해 졌다고 생각했다. 그
러던중에 어머니가 한 번 다녀가셨고, 누나가 옷가지를 들고 찾아왔으며, 나보고 백일이 되면 집으
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기에 너무나 기쁘기 그지없어 매일 날짜를 세고 있었다. 이제 절도량도 익숙
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져서 책이라도 볼라치면 장씨 아저씨는 보지 못하게 했다. 책은 학교에 돌아
가서 보도록하고, 이곳에서는 마음편히 있는 것이 상책이라고 했다. 그렇게 백일이 되었는데도 집
에서는 데리러 오지 않았다. 백하루, 백이틀, 백사흘...백열흘이 지나가도 집에서는 오지를 않았다.
궁금하고 조급증이 생겨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매일 산아래를 쳐다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그러자 백스물하루만에 장씨 아저씨는 나를 데리고 집으로 갔다. 대문을 들어서면서 어머니와 누나
를 크게 불러보았지만 집안이 조용했다. 왠지 상당히 침울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의 신당 방
문을 벌컥 열었지만 신당의 커텐은 닫혀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장씨 아저씨와 나는 문턱에 걸터앉
아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간 있으니 셋째형이 들어왔다. 어머니는 지금 병원에 계신다고 했다. 우리
가 병원으로 찾아가니 어머니는 잠들어신 듯 가만히 누워계셨고, 누나는 죽을 끓이다가 화들짝 놀
란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 누나, 무슨 일이여 ? )
누나는 장씨 아저씨를 향해 인사를 하고 앉으시라고 자리를 권했다.
( 누나. 무슨 일이냐니까 ? )
누나는 나를 보고 억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 별일 아니여. 조금 아프셔....)
라고 말꼬리를 감추었다. 장씨 아저씨가 되묻자 누나는 미음을 저으며 말했다.
( 큰 아들 경식이가 서울에서 여자를 하나 데려왔는데, 결혼을 하겠다고 해서, 어머니가 반대를 하
니, 며칠동안 여자는 시내 여인숙에다 데려다놓고, 술만 마시면 어머니에게 방이라도 얻어달라고
행패를 부리곤 했는데, 어머니는 손톱도 안들어가자 며칠전에 경식이가 술김에 어머니의 옆구리를
발로 차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숨쉬기도 곤란하시고 해서 병원으로 왔어요. )
큰형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가 삼촌이 경영하는 재제소에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언제 부터인
가 성질이 괴팍해지고 멋대로 놀았다. 그러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니 어머니를 이렇게 했던 것이
다. 누나가 미음을 다끓여 어머니를 깨우니, 어머니는 온갖 인상을 쓰며 눈을 뜨고 몸을 뒤틀었다.
그러자 우리를 발견하고 일어나 앉으려고 했다. 장씨 아저씨가 그냥 누워계시라고 극구 말려도 어
머니는 배개를 등에 기대고 반쯤 일어나 앉으셨다. 장씨 아저씨와 어머니는 오랜 이야기를 했다. 나
에 대해서...식사도 한그릇 하지 않으시고 장씨 아저씨가 돌아간 뒤, 누나는 집에가서 밥을 해놓고
오겠다고 나갔다.
어머니와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그러니까 어머니가 무당이 되시고는 처음으로 같이 있는 것이
다. 나는 왠지 부모와 자식간인데도, 아직은 철이없고 어린 나이인데도 그 자리가 왠지 어색하고,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홀로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남달리 일찍 사고에 성숙해져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오늘따라 어머니가 몹시도 불쌍하게 여겨졌다. 나는 어머니옆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내 손을잡아 당기며 두손을 포갰다. 그 느
낌이 너무나 따뜻해서 그동안의 모든 것을 잊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나는 어머니의 무릅에
머리를 대고 한동안 울었다. 그러자 어머니도 우시는지 손이 가늘 게 떨렸다. 어머니가 등을 쓸어내
리며 그만울라고 하셨다. 나는 고개를 들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수건으로 눈물을 찍어
내며 한동안 말씀이 없어시다가 눕겠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편안히 누우신채 눈을 감으시고 말씀하
셨다.
( 이 엄마가 몹시 원망스럽지...? )
( .......)
( 그래, 엄마가 원망스러울거야. 엄마 노릇도 다 못하고, 그래도 니 아버지가 너를 가장 아끼고 사랑
했었는데...)
어머니는 말씀잇지 못하시고, 감은 눈에서 눈물이 한줄기 내려 핼쑥한 볼을 타고 내렸다.
( 아들 앞에도 죄를 진 것 같구나. 그러나 얘야. 이 엄마는 너를 진실로 사랑한단다.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너를 아끼고 사랑한단다. 그러나 내가 사랑을 다 보이지 못한 것은 네가 크면 알 수 있
겠지만 신의 조화란다. 너는 내 뱃속에서 키워 낳았지만 내 자식이 아니란다. 다른 형제들도 있지만
너는 그 중 특별한 아이란다. 신이 너를 항상 보호하고 지키며, 너의 등뒤에는 높으신 신이 열두분
이 지키고 있단다. 그래서 너를 가까이 하면 내 신이 안내려온다. 그래서 너를 멀리하려고 했고, 장
차 커서 너는 이런 세계를 짊어지고, 세상에 이름나며, 높은 공인이 될거야. 그래서 내 자식이라도
내가 함부로 할 수가 없기에, 부모의 사랑도 다 하지 못했구나. )
어머니는 여전히 눈을 감으신채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씀이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그립고, 가정이 그리운 것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며칠을 더 누워
계시다가 퇴원을 하셨고, 몸을 추스린 다음 다시 점상을 펼쳐 놓으셨다. 이제 어머니를 어느정도 이
해를 하려 노력을 하면서, 그래도 최소한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그 말씀의 위안으로 될
수 있으면 어머니가 하시는 일에 방해를 하지 않으려고 멀리서 바라보며, 나는 정상적인 아이로 돌
아가기 위해 무척 고전분투 했다. 그런 노력도 오래 갈 필요가 없었다. 어느날 어머니는 굿을하러
가셨다가 삼일만에 반죽음이 되어서 차에 실려오셨다. 입은 이미 굳어서 말씀 한마디 하실 수 없었
고, 사지를 떨면서 동공이 허옇게 변하는가 하면,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진채 계시다가, 갑자기 숨을
몰아쉬며 가슴이 한참을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증세를 보이기도 하셨다. 누나의 말에
의하면, 남의 동네에 굿을 하러 가시면서, 고을 입구에 있는 성황당에 인사도 안하고 휘적휘적 들어
가셔서, 굿할집 마당에 앉아 밥상을 받으며 쓰러지셨다고 했다. 그날부터 어머니는 신당앞에 이불
을 깔고 누운신채 열이틀을 정신을 잃고 헤메셨다. 식구들이 용하다는 침쟁이, 점쟁이를 불러보았
고, 굿도 해보았지만, 다시 일어설 기색이 없었다.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하였고, 식구들이 모
두 매달려 온갖 정성을 다 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이제 집안에는 알 수 없는 어둡고 칙칙한 음율
이 흘럿고, 습기가 가득하여 온 방안에는 곰팡이가 득실거리는 것 같았다. 낮과 밤을 식구들은 거의
뜬눈으로 새다시피 하는 열이틀째 되는 날 아침, 온 식구가 잠깐 잠들은 사이, 어머니는 언제 아팠
냐는 듯이 얼굴에 화색이 돌며 깨어나셨다. 그리고는 마당에 나가셔서 세수도 하시고, 천천히 마당
을 거닐기도 하시다가, 신당에 촛불을 밝히시고, 정한수도 갈으시고 하시면서 은은하게 웃어시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식구들은 이제 한시름 넘겼다고 긴장들이 모두 풀려 기진맥진을 하고 있
을 때. 그날 밤. 어머니는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을 치켜뜬채 사지를 뒤틀었다. 입을 열지를 못하시고
호흡이 가빠지니 가슴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고, 곧 숨을 넘길 듯 헉헉거리시다가 다시
조용히 죽은 듯이 잠들고, 다시 몇차례 반복을 계속 하는 동안 아침이 밝았다. 우리들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신의 벌을, 성황님의 벌을 맞았다고 하니 우리들은 막무가내 신당에 대고 살려달
라고 애원하며 비는 도리밖에 없었다. 햇살이 방안을 밀고 들어와 신당의 관세음보살님의 턱까지
차오를 때, 어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번쩍떳다. 그리고 무엇인가 말씀하시려는 듯 입술을
달삭였지만 말라터져 피가 맺힌 입술은 결국 열리지 않았고, 어머니의 눈은 천천히 주위의 사람들
을 바라보시다가 그대로 동공이 멈추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깊은 죽음의 잠으로 빠져들었다.
첫댓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는데.. 너무 고된삶을 살으셨네요 그리고 어머님이 불쌍하시고..ㅠ.ㅠ 제가 다 슬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