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Gagman,1988) - 배창호, 황신혜, 안성기, 주호성
코미디 | 한국 | 127 분 | 개봉 1989-06-24
감독 : 이명세 李明世 Myung-se Lee
출연 : 안성기 (이종세 역), 황신혜 (오선영 역), 배창호 (문도석 역), 양일민, 조주미, 전무송, 최종원
자신이 천재라는 환상 속에서 위대한 영화 감독의 포부를 안고 사는 29세의 삼류 캬바레의 개그맨인 이종세와
장차 영화 배우가 꿈인 31세의 변두리 이발소 주인인 문도석,
그리고 무위도식하는 처녀 오선영은 무더운 여름날 서로 만나게 된다.
그들은 영화의 탄생을 장담하며 손을 잡고, 꿈에 도전한다.
개봉 당시는 관객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
이전의 한국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실험적인 영화기법을 제시해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변두리 이발소를 내부 풍경을 더듬는 유려한 롱테이크 장면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관습들을 마음대로 유희하며 뫼비우스 띠처럼 영화와 현실, 현실과 환상을 엮어낸다.
할리우드 장르영화에 대한 영화광적 자의식은 인물설정에서 채플린이라는 아이콘을 비틀어 끌어온 데서 쉽게 엿볼 수 있으며,
코미디, 갱스터의 문법들 또한 마구 동원되고 있다.
영화는 관객의 관습적인 기대를 배반하며 자꾸만 다른 이야기로 건너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한 개그맨과 이발사라는 영화 초반의 인물 설정은 <개그맨>을 ‘영화에 대한 영화’로 상상하게 하지만, 그 지점에서 영화는 갱스터 영화로 비약한다.
영화제작을 향한 이들의 욕망은 어이없게도 강도 행각으로 실현되며,
장난만 같던 이들의 강도짓이 실제 살인 사건을 불러일으키면서 이야기는 다시 한번 도약한다.
이어 경찰의 체포가 임박한 위기의 순간,
모든 것이 꿈이었음이 밝혀지면서 그 동안 축적된 영화적 긴장감은 한순간에 풀어지고 만다.
코믹한 톤을 유지한다는 점에서만 일관성을 가질 뿐,
<개그맨>은 전통적인 드라마트루기와는 거리를 둔 채
이처럼 이질적인 요소 사이를 마음대로 누비며 어떤 전통에도 묶이지 않는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런 까닭에 이 영화에 대해 ‘낯설다’거나 ‘어설프다’거나 하는 식의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이것이야말로 뒤늦게 진가를 발휘하게 된 이 영화의 의중이었다.
(영화 감상)
개그맨 (Gagman, 1988)- 배창호, 황신혜, 안성기, 주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