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네스트 고든(Ernest Gordon)의 자전적 소설, To End All Wars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영화로 제작되어 <투 엔드 올 워>(To End All Wars)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도 개봉된 바 있는 작품이다. 스물네 살의 고든은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인도 침공을 위해 일본군이 울창한 태국 정글에 건설 중이던 철도 공사현장에 보내졌다. 일본군은 포획한 전쟁 포로들 중에서 직접 노동력을 징발했다. 국제법을 어기면서 일본군은 장교들에게도 육체노동을 강요했으며, 고든은 매일 수천 명의 포로들과 함께 정글을 베어 길을 트고 낮은 습지를 통과하는 철도 노반을 깔아야 했다.
그 작업장은 지옥 그대로였다. 허리에 간신히 천 하나만 두른 채 포로들은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찌는 듯한 태양 아래서 일했다. 온몸은 벌레에 물렸고 날카로운 돌멩이에 맨발이 베이고 멍들었다. 일본군 간수는 포로가 게으름을 부린다 싶으면 때려죽이거나 총검으로 찔러죽이거나 다른 포로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잘라 죽였다. 그렇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과로, 영양실조와질병으로 죽어 갔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적절한 영양 공급과 휴식, 치료를 받지못해 8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철도 1마일당 393명의 인명이 손실된 셈이었다.고든은 각기병, 기생충, 말라리아. 이질, 장티푸스가 한꺼번에 겹쳐 쇠약해진상태에서 악성 디프테리아가 발병해 먹지 못할 뿐 아니라 그 부작용으로 다리의 감각을 완전히 잃었다. 그는 소생할 가망이 없는 포로들이 호흡이 멈출 때까지 누워 있는 ‘죽음의 집’에 이송되었다. 견딜 수 없는 악취가 나는 그곳에서 고든은 빈대, 이, 몰려드는 파리 떼를 쫓을 힘도 없지만 한쪽 팔꿈치로 몸을 지탱해 가며 부모님에게 최후의 편지를 쓴 후 드러누워 죽음을 기다렸다.
그러나 고든의 친구들에게 다른 계획이 있었다. 친구들은 습지에서 떨어진 고지대에 있는 그들의 오두막 옆에 새로 대나무를 덧붙여 공간을 만들었다. 그들은오염된 ‘죽음의 집’ 땅바닥에 뒹굴던 고든의 오그라든 몸을 들것에다 싣고 대나무 침상으로 데려가 몇 달 만에 처음으로 깨끗한 숙소에 눕혔다. 수용소에 뭔가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고든은 그것을 “콰이어 강의 기적”이라고 부르곤 했다.
전쟁 기간 내내 수용소는 모두가 자신만을 위한 적자생존의 실험실이었다. 식량배급을 받을 때 수프에 떠다니는 야채 몇 조각이나 쌀 몇 알을 놓고 싸움을 벌였다. 장교들은 그들의 특별 배급을 자기들끼리만 먹었다. 숙소에서는 절도가 흔했으며, 사람들은 야수처럼 살았고, 그 때문에 그들 안에는 증오가 이글거렸다.
그러나 최근에 일어난 한 가지 특별한 사건이 포로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일본군 간수가 어느 날 작업 도구를 점검하던 중 삽 하나가 없어졌다며 고함을 질러댔다. 그는 포로들을 헤집고 다니면서 훔친 사람을 찾아내라고 성화를 했다.
아무도 자백하지 않자 그는 “다 죽인다!”고 소리를 지르며 줄 맨 앞에 있는 사람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다. 바로 그 순간 한 징집병이 앞으로 나와 차렷 자세를취하고는 말했다. “내가 했습니다.” 화가 난 간수는 그 포로에게 덤벼들어 발로 차고 때렸고, 분노를 이기지 못한 간수는 총을 높이 치켜들어 개머리판으로 그 포로의 머리를 찍었다.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 포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간수는 그 시신을 계속 걷어찼다. 마침내 구타가 그치자 다른 포로들은 동료의 시신을 들고 숙소로 되돌아갔다. 그날 밤 작업 도구의 재고 조사를 다시 했을 때 간수는 실수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삽은 하나도 없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죽어 간 포로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성경구절을 기억했고, 삶으로 살아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다른 포로들의 태도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이상 죽어 가는 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합당한 장례식을 치르고 매장을 한 뒤 각 사람의 무덤에 십자가를 꽂아 주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포로들은 서로를 돌보기 시작했고, 절도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고든은 매일 찾아오는 동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그 변화를 직접 느꼈다. 그들은 그의 다리에 난 종기를 열심히 치료했고, 위축되어 쓸모없어진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음식을 가져다주었고 그의 배설물을 치워 주었다. 따뜻한 몇 주 동안의 보살핌 후 고든은 몸무게가 약간 늘었고 놀랍게도 다리도 부분적으로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정신은 계속해서 수용소 전체에 퍼져 나갔다. 죽음은 여전히 그들 곁에 있었지만 그들은 그 파괴적인 지배력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생명을 이루는 힘과 죽음을 이루는 힘 사이의 극명한 대조를 직접 보고 있었다. 이기심, 증오, 시기, 질투, 탐욕, 방종, 게으름과 교만은 모든 생명을 거슬렀다. 그러나 사랑, 자기 희생, 동정, 자비, 인격과 창의적 믿음은 진정한 삶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것들은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주신 선물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증오도 있었다. 그러나 사랑도 함께 있었다. 죽음도 있었지만 생명도 함께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들과 함께 계셨고, 그들이 서로 교제하면서 신성한 삶을 살도록 그들을 부르셨다.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 그것이 포로들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였다.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고든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단편적이나마 다시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는 몇 년 동안 하나님에 대해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가 표현한 바와 같이 “하나님 외의 다른 소망이 없을 때 믿음은 번창한다.” 적당한 적임자가 없는 터라 고든은 수용소 내의 비공식 군목이 되었다. 포로들은 작은 교회를 지었고 매일 저녁 모여서 가장 어려움이 큰 사람들을위해 기도했다. 고든의 책은 수용소에서 일어난 각 사람의 변화를 들려주고 있다. 그 변화가 얼마나 완전했는지 마침내 해방이 되었을 때 포로들은 자신들을괴롭히던 간수들을 친절하게 대했고 그들에게 보복하지 않았다. 고든 또한 뜻밖의 삶의 전환을 겪었다. 그는 이전의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신학교에 입학해장로교 목사가 되었고 프린스턴대학의 교목으로 섬기다가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가 완성되기 직전인 2002년 초에 세상을 떠났다.
가망이 없는 지옥과 같은 그곳에 뿌리내린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마을이었고,죽음의 세력에 대해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공동체였다. 그러나 도처에 널린 죽음과 절망의 그림자로 덮여진 세계를 향해 강력한 말씀의 영향력을 끼친 말씀의 실천과 영적 교제의 공동체를 이룩하였다. 폭력이 난무하는 왜곡된 세상의토양에 말씀을 실천하려는 한 무명의 죄수를 통해 그곳에 말씀의 대안 공동체가세워지고 계속해서 확장되어 갔다. 이것은 바로 누룩과 같이 퍼져갈 것이라고말씀하신 예수님이 그린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과 같은 그런 자리에 믿음과 사랑, 돌봄과 치유의 공동체를 세워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