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 스승의 은혜
군사부(君師父) 일체는 우리 선조들의 스승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요즘의 스승관으로
보면 고식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군(君)·사( 師)·부(父)에서 군(君)은 우리
의 현실에 맞춰 우리 자신이 선택하고 뽑은 지
도자로 해석해 사 (師)·부(父)와 함께 일체로 본
다면 고루한 것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시공간을 뛰어 넘는 스승의 상
(像)을 시사한다.
물론 스승과 교사라는 말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
지만 교사가 지식 전수나 학습자의 학습을 도와
주는 역할과 아울러 인성교육을 담당한다면
교사와 스승은 동열(同列) 이라고 할 수 있다.
훌륭한 스승은 훌륭한 제자를 길러 국가를 지탱
하는 중심이 되어왔음을 퇴계와 율곡선생을 통
해서 우리는 알고 있다. 역사 속에 훌륭한 스승
은 인· 의·예·지를 몸소 실천하며 불의에 물들지
않고 정의에 어긋나는 일에는 목숨까지 두려워
하지 않았다.
오늘날 “선생은 있으나 스승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올바른 스승이 많지 않다는 뜻이겠으나
결국 올바른 스승을 많이 배출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모든 교사가 존경받는 사회가 되도록 함께 노력
해야 하며 교사들은 선비사상을 깊이 새겨 고결
한 정신을 가지고 교육현장에 임해야 한다.
특히, 선비라고 할 수 있는 교사를 노동자와 동일
시하는 것은 아주 부적절한 표현이다. 스승은 자
신이 가르친 제자가 훌륭한 사회인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학교 현장
에서의 학습과정을 살펴보면 교사에 따라 학생들
의 학업 성취도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에는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인 것
은 교사의 인품이나 인격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
하고 있다.
이것은 학생들이 학습과정에서 교사의 영향을 직간
접적으로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사는 의도적이
든 아니든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며 부모와 함께
자라는 2세들을 올바르게 키우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
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혈육으로 맺어진 것이라서 맹목
에 가까운 사랑일 수도 있지만 스승의 제자 사랑은
보다 냉정 하고 객관적이어서 부모가 깨닫지 못하거
나 그냥 흘려버릴 수 있는 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 장
점도 있다.
그리고 부모보다 더 심화된 인격적인 감화를 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스승의 지위는 보존되어야 하며
또 존경 받을 자격도 있다. 적어도 인격적인 감화에
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스승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그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면
구태여 스승의 은혜를 거론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요즘처럼 교사의 위상이 일그러지고 매사를 물질적인
척도로 가늠하고 있는 세태에서 이런 것을 거론한다
해서 크게 변할 것은 없다.
그렇지만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삶의 지표를 제시한다
는 점에서 스승의 은혜를 일깨워 주는 것이 곧 부모
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최소한 일년에 한번쯤 스승을 찾아뵈면 더 좋고 그렇
지 못하면 편지나 전화로 안부를 전하는 그것만으로
도 스승은 기뻐하기에 충분하다. 때문에 우리들은
스승의 날을 정해 그 날을 기념하며 스승의 은혜를
일깨워 주고 있다.
그러나 스승의 날 행사가 형식적이고 요식적인 일과
성 행사로 흐르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 내실 있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으로 교사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것이 진정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
는 것을 우리 사회 전체가 청소년들에게 깨닫게 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이런 일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이 곧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천하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