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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산
계사년 마지막 산행을 담양 추월산으로 향한다. 연일 날씨가 좋다. 아침기온이 영하 3~4℃로 내려갔지만 낮에는 영상 7~8℃ 정도이다. 전라남도를 갔다 올라오는 길목에 커다란 바위가 우뚝 솟아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산이다. 전라북도 순창에 있는 강천산과 연이어진 곳이기도 하다. 담양은 예부터 대나무로 유명하다. 죽록원이 자리하고 있고, 한국정원의 대표적인 소세원과 송강 정철이 정계에서 물러나 머물며 사미인곡을 쓴 곳이기도 하다. 추월산(秋月山) 산 정상에 달을 매달아 놓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 가을 달 밝은 밤에 찾아야 정수다. 호수에 비친 달빛이 문학적인 감정을 자아내리라. 담양에는 추월산을 비롯하여 병풍산, 삼인산, 가마골 용소가 있는 용추산, 금성 산성이 있는 산성산 등이 있다.
운동장에서 6시30분 출발이다. 운동장에서 기다리는 회원들이 서너 명이다. 자리는 맨 뒷좌석 예약한 회원 중 3명이 불참하여 42명이 출발이다. 버스는 서해안을 타고 달린다. 고창에서 순천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담양으로 향할 예정인가 보다. 대장은 유인물을 나누어 주고 등산 코스를 설명한다. 위쪽 복리마을에서 출발하여 수리봉을 거쳐 추월산 보리암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정한다. 역코스를 택한 산행이다. 그리고 저녁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예년 같으면 장성, 고창 쪽의 온천장에 들러 목욕을 했는데, 올해는 군산에 와서 저녁을 같이 한다고 한다. 복리마을에 도착한 시간이 9시다. 화창한 날씨에 수리봉은 하얀 눈을 안고 있다. 지난번 소요산을 다녀오면서 아이젠을 준비치 않아 고생해서 오늘 그것보터 챙긴다. 20여분을 오르니 복리암 정상이다 여기서부터 아이젠을 한다.
산속에는 커다란 건물이 있다. 대법원 연수원인가 보다. 산속에 흉물스럽게 세워진 건물이 어찌 자연 파괴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다.
이 연수원의 이름은 가인(街人)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가인 김병로 선생은 전북 순창 출신인데, 이곳이 담양군과 순창군의 경계 근방인데, 순창군에 속한 지역인가 보다. 가인 김병로 선생은 일제치하 시 우리 군산지역 예전에는 옥구지역에서 지주들의 횡포에 반기를 들고 소작인들이 쟁의를 벌인다. 그때 소작인을 위한 변호를 담당하기도 한 인물이다. 김영삼 정부 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김종인 장관이 그의 아들이다. 당시 추계 체육행사로 우리소장과 직원들이 이곳 추월산행을 하고 난후 순창의 김병로 선생의 생가를 보고 가야 한다면 늦은 밤까지 복흥면 을 돌아 본 기억이 새롭다. 벌써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시간이다. 김종인 전 장관은 최근에는 박근혜 대선캠프에 합류하기도한 인물이다. 가인 연수원은 2008년 착공하여 2010년에 완공한 건물로 충남이남지역의 법원관계자들의 연수원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법률신문이 알린다.
수리봉에 오르니 이정표는 밑둥이 부러진 체 한쪽에 세워져 있다. 동쪽으로 가인연수원(사법연수원) 2km 북쪽 복흥면으로 향하고 추월산은 남쪽으로 향하는 방향이다. 이곳은 호남정맥을 잇는 곳이다. 백두대간에서 중재를 넘어 백운산을 지나 영취산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뻗은 금남 호남정맥으로 가지 친 첫 번째 산이 장안산 그리고 7구간은 추령(내장산에서 백양사 넘어오는 고개)출발 담양의 밀재까지 이곳은 아마 8구간이 될 것 같다. 밀재에서 금성산성이 있는 산성산을 지나 방축리 24번 국도까지이다. 우리는 수리봉에서 추월산 정상까지 호남정맥 8구간을 역으로 맛을 보는 것이다. 북동쪽에 있는 내장산 호남정맥 마루금이 확연하다. 북서쪽의 고창의 방장산 머리에는 먹구름이 쌓아 있다. 동쪽 저 멀리 희미하게 덕유산이 보일 듯 말듯 한다. 산성산 쪽은 지척이다. 남쪽의 무등산은 보리암 뒷산에 가려 있다. 수리봉을 지나니 마루금 동쪽으로 단애를 이룬다. 서쪽등선 밑에는 임도가 수리봉 밑까지 나 있다. 월계 삼거리에 이르니 날씨가 점점 흐리더니 이네 눈이 내린다. 11시가 되었다. 수리봉에서 멀리 방장산쪽의 구름이 벌써 이곳 까지 온 모양이다. 추월산 정상에 도착한다. 눈이 내리고 있다.
정상에는 언제 세웠는지 조그만 화강암 표지석이 추월산 정상(731m)을 알린다. 최근에 세운모양이다. 아리 전 회장 임진구님과 함께 기념을 남긴다. 이정표는 밀재 2.4km을 알린다. 뒤 딸아 온 비응도 송사장도 기념을 남긴다. 보리암 뒷산에서 점심을 하기로 하였기에 계속 전진이다. 눈은 조금씩 내린다. 보리암 쪽에서 오는 등산객이 한명이 하산 길을 묻는다. 월계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된다고 하니 눈이 내리고 혼자 몸이라 위험하다며 오던 길로 되돌아 우리와 함께 보리암 쪽으로 향한다. 밀재쪽 광암리 들판에는 비닐하우스들이 하얀 눈발에 간간이 보인다. 물통골 삼거리 을 지나 무인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에는 산죽이 자라고 있다. 암릉을 지나 나뭇가지에 노란색 군산 진포여성 산악회 시그널이 나부낀다. 태양광 산악위치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위부분의 빨간색으로 되어 있다. 사용설명서를 보니 단추를 누르면 점등이 되어 30분간 작동 된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누르면 재 작동된다고 한다. 황색 단추를 누르면 경적이 울려 주위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 또한 휴대전화 충전도 가능하다고 설명이다. 검정색으로 쓰인 부분은 보이는데, 빨간색으로 쓰인 글씨는 바래서 잘 보이질 않는다. 이렇게 햇빛으로 퇴색될 염려가 있는 글씨는 검정색으로 설명글을 표시 했으면 한다. 눈발은 더욱 굵어진다. 보리암 뒷산에 가까이 오니 많은 등산객들이 있다. 젊은 경상도 사람들이다. 보리암정상이란 표시석이 추월산 정상이라 쓰인 표지석과 같은 재질이며 글씨체도 같다. 이곳에서 점심을 하려고 하나 경상도 내기들이 차지하여 보리암에서 하기로 한다. 시간은 11시 50분 임회장이 시장 끼가 든 모양이다.
보리암으로 향하려면 급한 비탈길인데, 라고 생각하다. 나의 뇌리는 10년 전의 산행을 기억한다. 몇 개의 철 계단으로 이루어진 아주 험악한 곳인데,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는 목재로 된 계단을 놓아 안전을 도모하였다. 당초의 길은 보리암을 오르기 위한 길만 있었고 정상을 향하는 길목은 저 밑에서부터 암벽 밑으로 우회하여 돌아가야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추월산은 겨울 등산이 처음이다. 담양호 물길을 건너 놓은 생태다리는 눈바람으로 인하여 가물거린다. 전망이 좋을 것이라고 출발 할 때와 달리 눈으로 인하여 담양호의 아득한 운치가 보이질 않는다. 저 남쪽의 무등산은 어디 매인가? 앞을 가려 볼 수 없다. 내려서는 계단도 가파르다. 그 옛날 놓은 철 계단은 임무를 다하고 이제는 조용히 나무계단을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을 연신 보며 예전에는 내 등을 밞고 갔지 하며 뽐내는 자세다. 보리암 입구로 들어선다. 몇몇의 등산객이 가벼운 차림으로 아이젠도 없이 오르고 있다. 보리암 입구에는 오석에 갓을 쓴 비석이 있다. 충장공 김덕령 장군 의 부인흥양이씨 순절비다. 임진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맞서 싸운 이곳 출신의 의병장인 김덕령 장군의 부인이 왜군에 몰려 이곳까지 피신하다. 끝내 몸을 던져 순절한 곳이다.
담양에오니 송강정철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국문학사에는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송강 정철의 글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까지 실고 있다.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을 말이다. 허나 정치적인 면에서 보면 송강 정철은 매우 권모술수와 편협한 사람으로 평한다. 정여립의 난을 국문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처형하여 지금도 그의 이름만 들먹여도 치를 떠는 지방 사람들이 있다. 그가 이곳 담양에 머물면서 묵었다는 송강정은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임금께 잘 보이기 위한 글)을 쓴 곳이기도 하다. 그는 어렸을 적 김윤제의 문하생이 되어 수학한다. 이 김윤제가 여기 김덕령 장군의 작은 할아버지이다. 조선시대 사색당쟁의 회오리에 송강정철이 서인으로써 동인을 축출한다. 대표적인 것이 정여립 사건의 국문을 맞는 판관으로 제수되어 많은 동인들을 죽게 만든다. 이른바 기축옥사이다. 이때 죽은 인물들이 4대 사화(무오, 갑자, 을사, 기묘)로 죽은 사람보다 많다고 한다.
송강 정철이 쓴 사미인곡의 한 구절을 소개 해 본다.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시라도 임 생각을 말아 가지고 이 시름을 잊으려 하여도
마음속에 맺혀 있어 골수까지 사무쳤으니,
편작과 같은 명의(名醫)가 열 명이 오더라도 이 병을 어떻게 하랴.
아아, 내 병이야 이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죽어서 범나비 되오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 데 족족 앉았다가
향 묻힌 날개로 님의 옷에 옮으리라
님 이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내 님 좇으려 하노라
여기서 님 은 바로 임금(선조)이다.
보리암에 미리 도착한 임회장 송사장 그리고 두 명의 일행들이 연신 강과장을 부르며 기다린다. 커다란 비석 밑에는 조그만 비석 두 개가 자리하고 있다. 흥양이씨가 순절할 때 같이 떨어져 죽은 사람들이다. 보리암 입구의 간이 화장실문은 테이프로 감겨져 있다. 고장이란다. 겨울철에 사용금지인가 보다. 보리암 옆구리가 입구이다. 소박히 눈을 덮고 있는 암자가 정갈하다. 언제 대나무로 울타리를 했는지 대나무담장은 회색을 더해 검정으로 변해가고 있다. 보리암 이름을 같고 있는곳 어디에 있더라 저 남해 금산에 보리암이 유명하다. 바다를 앞마당으로 삼고 있는 곳이다. 이곳도 장성호를 앞마당으로 삼고 있는 암자이다. 암자 뜰에 서성이는 스님이 주지인가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나 곱디고운 비구니이다. 담장 비탈에 서 있는 나무을 보고 이름이 묻는다. 귀목이란다. 아마도 느티나무 같다. 한 삼사백년은 됨직하다. 암자에 필수품을 나르는 곤도라가 눈을 맞으며 대롱거린다. 암자 입구 옆구리 토방에서 점심을 먹는다. 송사장이 무 굴국을 끓여와 나눈다. 산행 길에 국을 다 먹어 본다. 점심을 마치니 12시 40분이다. 암자 토방 벽에 이런 글이 코팅되어 걸려있다.
六 然 (육연)
초연하게 지내고
남에게 온화하게 대하며
일이 없을 때는 맑게 지내며
유사시에는 감연히 대처하고
뜻을 얻었을때는 담담하게 행동하며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히 행동하라
조금 내려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보리암의 전경이 멋있다. 눈밭에서 점심을 먹는 두 광주 분들이 권한 보드카 맛이 라면국물과 어울려 지금도 군침이 돈다.
전망대 설명 판은 눈을 맞고 서 있다. 굴이 있는 대피소 앞에는 추월산 보리암 중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이곳이 아마 일주문 격인가 보다. 자연 굴은 임진왜란 때 이곳으로 피신을 하였다고 한다. 노송이 우거진 곳이 이른다. 주차장이 가까워진다. 등산로 옆에는 소나무 틈에 옛 전봇대가 세워져 있다. 나무로 된 것이다. 허리춤엔 이름표가 달려 있다. 七二(27) 갑오다. 문득 내년이 갑오년인데, 하며 피식 웃는다. 소나무 숲에는 의병전적지와 임징왜란근왕창의장 청계언양 김공 응회 모부인창녕성씨 순절비가 세워져 있다. 저 보리암 앞에 세운 흥양이씨 순절비 밑에 세운 조그만 비석중의 한 분 이다.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1시 30분이다. 담양호 주변에 가마골 생태 공원을 조성중이다. 담양호 을 건너 생태다리를 연결하여 산성산 쪽으로 이어 놓았다. 다리 중간에서 보리암 뒤 바위를 보니 마치 거대한 바위얼굴상이다. 이곳사람들은 담양 쪽에서 보면 스님이 누워 있는 상이라고 한다. 생태다리를 건너 가 본다. 매서운 바람이 뺨을 때린다. 중대장님은 어느새 혼자 건너와 산책을 하고 있다.
처음 산악회에 따라온 회원들이 송총무와 함께 도착한다. 차는 2시 반에 군산으로 향한다.
아침에 대장이 말한 것처럼 저녁은 군산에서 물메기탕으로 한다고 한다. 장소는 가구점골목에 있는 식당이다. 저녁을 함께 한 회원은 모두 30여명이다. 올해 마지막산행을 끝내고 시내를 돌아 집으로 향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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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사진도 잘 보구요. 내가 마침 산에 오르는 것처럼 가슴과 함께 읽어갑니다 친구 잘 계시죠!
새해 소원성취 하시고 온 가정에 만복이 가득하시길 기원 합니다.
가을달빛산은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산이지요?
글세요. 가을 달밤에 오리질 않아서 그러나 기대해도 좋을듯 합니다. 호수가 있어 물빛에 달이 떠있을것이니 이백이 말한것 같이 여러개의 달이 떠 오를것 같습니다. 갑오년 신년운수는 어떠한지요. 건강하시고 행복 하세요.
보리암의 시원한 물맛이 좋더군요
이번에는 마시질 못하고 내려왔습니다. 겨울이라 따뜻한 온수가 좋아서. 갓파른 오르막 목이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