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어원이 된 '힌두'란 산스크리트어로 신두(Sindhu)의 페르시아 발음으로 이는 큰 강(대하:大河)인 인더스 강을 말하며, ‘인디아’나 ‘힌두스탄’도 다 인도를 말한다. 인도하면 생각나는 것은 불교이고, 다음은 카스트 제도로 인한 천민이 고통받는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으며, 우리는 인도와 연관이 적어서 그런지 좀 생소한 나라이다. 또 한 오래된 역사이면서도 역사서의 서술이 이루어지지 않은 보기 드문 민족으로 인도 고대사와 중세역사까지 인도인에 의해 써졌다기보다는 인도를 방문한 외부인에 의해 써졌기에 자세한 역사를 알기는 쉽지 않다. 그 예로 AD635년 당나라 시대 현장이 이곳을 다녀간 후 남긴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기행문에 기록을 남겼고, 100년 후 통일신라 사람 *혜초(AD704~787)가 인도를 다녀간 후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BC25 세기경 인도 서북쪽에는 인더스 강이 흐르고 강 유역은 다른 지역보다 조금 늦게 문명이 시작되었는데 이 문명을 만든 사람은 드라비다 족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것 같다. <인더스 문명의 부분지도(모헨조다로).> *혜초 (AD704 ?-787 ?) 혜초는 신라 출신의 스님이나 723년 당나라 광저우에 건너가 활동하였고, 인도인 금강지의 제자가 되어 그의 권유로 인도를 다녀왔으며, AD727 년 성덕여왕 26년 '왕오천축국전'을 지었다.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5개의 인도나라를 갔다 온 이야기'라는 뜻으로, '천축'은 인도라는 의미하며, 5개 나라는 인도가 너무 커 (동, 서, 남, 북, 중앙) 국으로 구별한 것이다. AD1908 년 프랑스인 P. 펠리오가 중국 간쑤성에서 발견하였고, 중국 '나오진'이 출판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서역의 종교와 풍속을 기록하였는데 몇 가지 적어본다. 여려 형제가 아내 한사람과 사는 것, 간장과 된장은 없고 소금만 있는 것, 나체생활의 풍습, 살생하지 않는 것, 흙 솥에 밥을 짓는 것, 각 절의 사정을 기록하였다. 773년경 대흥선사(大興善寺)에서 금강지 제자인 불공(不空)삼장의 6대 제자가 되었고, 또 다른 제자로 신라 사람 신방이 있었는데 혜초는 당나라에서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주민 본래는 드라비다족으로 전역에 살았으며, BC15 세기경 이란과 중앙아시아지역에서 아리안계가 이주하면서 북쪽은 아리안계, 남쪽은 드라비다족이 살았으나 남하 할 때 일부는 아리안족과 혼열 또는 동화되었다. 아리안 족은 인도 게르만에서 분열 된 족으로 키가 크고, 피부는 백색에 가깝고, 코가 높으며, 눈이 깊숙하여 유럽인에 가깝고, 드라비다 족은 키는 중간이고, 코는 편 평하며, 피부 검어 멜라 네시안 비슷하다. 언어 인도 고대 언어를 산스크리트(Sanskrit) 언어로 한문으로는 범어(梵語)라고 하며, 현재 인도 언어는 700가지 정도되는데 헌법에는 아리안계의 힌디어를 표준으로 정했으나, 드라비다계가 거세게 반발했다. 현재는 영어가 공용어로 병용되어 사용하는 덕분에 P.C(pernal computer) 발전에 공헌하였다. 종교 [힌두교(Hinduism)] 인도인 80%정도가 믿으며, 본래는 아리안족의 원시 종교 브라만교로 자연의 신 번개, 태양, 불, 소, 등을 믿는 신앙이 발달하였으며, 브라만은 여러 신중 비슈누를 최고의 신으로 하는 비슈누파가 있다. 시바를 최고의 신으로 하는 시바파, 그리고 둘가 여신을 신앙하는 샤리티파, 그 외에 여려 파가 있으나 이것을 총괄하여 힌두교라 한다. <시바 신을 표현하는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 1.정의: 문자 상은 ‘인도의 종교’로 불교, 자이나교, 바라문(브라만)교 등도 포함되지만 좁은 의미로는 문헌인 베다(Veda: 지식)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 자이나교를 제외한 것을 말한다. 또 마니교, 조로아스터교, 시크교도의 기원도 힌두교에 있다고 하며, 힌두교는 네팔과 인도의 사회조직, 관습, 전통, 문화 등의 생활방식을 의미한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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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역사: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로 기록이 없는 BC3000(선사시대)부터이지만 BC1500년경부터 형성되어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BC6세기부터 타종교의 변화를 받았다. BC5~6세기 모든 생물은 전생의 업보를 안고 살며, 그 업보가 사라질 때까지 윤회하다가 깨달음을 얻어 해탈에 이르면 윤회를 벗어난다는 석가모니가 시작한 불교는 마우리 왕조와 굽타 왕조(BC317~AD5세기)까지 성행하였고, AD1206 노예왕조에 의해 회교가 들어왔다. BC6세기경 초기 힌두교의 동물희생제로 인한 만연한 살생의 베다의례를 반대하여 어떠한 생명도 살상하지 않을 것을 윤리의 핵심으로 하며, 지나교(Jina: 승리자) 또는 자이나교가 출현하였다. A15세기말 나나크는 ‘신은 오직 하나이고, 우상이나 신상을 만들지 않으며, 인간영혼이 윤회하여 신과 합일될 때까지 신의 명령에 따라 선한 생활과 기도하고, 특히 신의 이름을 되풀이하여 부르라‘는 회교와 힌두교가 혼합된 교리를 가진 시크교를 탄생시켰다. AD1510 유럽의 포르투갈이 고아에 도착하였으며, 90년간 영국의 지배로 기독교가 들어왔다. 3.신: 초기에는 많은 신을 믿었으나 후에는 기독교와 비슷하게 ‘삼위일체’ 즉 ‘삼신일체(三神一體)’가 성립되어 주신으로 최고신은 창조신 ‘브라마’가 있으며, 창조를 유지하는 신 ‘비슈누’가 있고, 가장 유명한 창조를 파괴하는 신 ‘시바’로 정착했으나 다신(多神)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정의 신 ‘라마’, 충성의 신 ‘하누만(원숭이 왕)’, 장애 제거의 신 ‘가네샤(코끼리 머리)’가 있고, 여성신도 숭배한다. 비슈누 신이나 시바 신이 여러 가지 동물의 화신(化身)으로 나타났기에 동물도 숭배의 대상이 되며, 살생을 하거나 육식을 하지 않게 되었고, 또 남근 숭배신앙은 선사시대부터 있었다. 후에 시바신의 원형이 되었고, 이것은 시바신은 파괴 뿐 아니라 재생산을 의미 신이기도 한데 남근은 시바신을 표현하고, 맷돌은 시바의 부인 깔리를 표현했으며, 소는 시바신의 이동수단이다. 4.신앙: 모든 결과는 과거의 행위(업)에 원인이 있으며, 생사(生死)를 끝없이 반복하는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 즉 해탈하는 것이 신앙의 목표이다. 5.특징: 그 유명한 카스트제도는 범어로 '인간' 또는 '정신'이라는 뜻을 가진 ‘푸루샤’의 머리에서 종교를 주관하는 종교계급인 브라만계급(성직자, 학자 등)이 발생했다고 한다. 팔에서 무사계급인 크샤트리아(왕족, 귀족, 무사 등)가 발생했고, 허벅지에서 농상계급인 바이샤(농민, 상인, 공업 등)가 발생했으나 각종 직업에 따라 다시 목축업, 수공업 등의 2차 바이샤가 생겼다. 발에서 하층계급인 수드라(잡역, 하인, 노예, 정복당한 자 등)가 발생했으며, 같은 카스트 내에서 결혼하고 직업을 가지는 이 제도를 '4성제도'라고도 한다. 카스트는 포르투갈어로 카스타(caster)에서 온 말로 뜻은 혈통보존을 위한 탈법(脫法)이며, 영국인이 그대로 사용하였고, '4성제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불가촉천민도 있다.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4성에도 들러가지 않는 천민을 '아웃 카스트(out caster)' 또는 *파리아(천민)이라고도 하며, 천민 중에 천민으로 이들은 주거지가 제한되며 직업 등이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이들과 접촉만 하여도 천민이 옮는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간디는 이들을 해방하기 위하여 신의 아들이라 높이고, 해방을 위하여 노력했다. 헌법에는 차별 법을 해지하였으나,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며, 대도시는 점차로 완화 되어간다고 한다. *천민자본 파리아(Pariah) 독일의 사회역사학자인 막스 베버는 유대인이 스스로 천민민족으로 분리시켜 상업과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종교나 도덕적으로 비천하게 여겼던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런 영리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종교나 도덕적 비난 받는 자본을 파리아(Paria)이라고 하였고, 이런 형태의 '근대 자본주의'을 천민자본주의(賤民資本主義: Pariakapitalismus)이라고 한다. <가장 규모가 큰 엘로라 석굴의 카일라쉬 힌두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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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佛敎, Buddhism)] 1.불교의 탄생: 붓다의 탄생은 남방불교는 BC 624년으로 믿고 있으나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으며, BC 6세기 혹은 BC 5세기 경이고, 탄생일도 한국, 일본 등은 음력 4월 8일이지만 남방불교는 4월 보름날이다. 탄생신화와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artha)의 이름도 힌두교에서 온 것으로 붓다가 옆구리에서 태어난 것은 무사계급인 ‘크샤트리아(왕족, 귀족, 무사 등)’을 의미한다. 붓다의 성(姓)인 고타마는 '가장 탁월한 수소'를 말하며, 소는 힌두교의 신앙대상이고, 이름인 싯다르타는 산스크리트(범어)로 '목적을 달성한 자'라는 뜻이므로 아마도 후대에 붙인 이름일 것이다. 붓다의 아버지는 코살라 국에 종속되었지만 자치권을 가진 샤키아 부족의 우두머리인 정반왕 Suddhodana)이다. 어머니는 마야부인으로 석가모니를 낳기 전 아름답고 은처럼 하얀 코끼리가 그녀의 옆구리를 통해서 자궁 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고, 출산을 위하여 샤키아 족의 수도 ‘카필라바스투’를 떠났다. 친정인 ‘데바다하’로 가던 도중 룸비니 동산에서 붓다를 낳은 후 죽게 되어 이모 마하파자파티(Mahapajapati)에 의해 양육되었고, 카필라국의 전반왕(淨飯王)은 2명의 부인은 자매이다. 왕비인 언니가 붓다의 어머니 마야이며, 붓다가 태어 난지 7일 만에 죽었다고 하는데 붓다는 7의 숫자와 인연이 많으며, 붓다 태어나자 직후 사방으로 7발자국을 걸었고, 7발자국에는 7송이의 연꽃이 피었다고 한다. 부인 ‘야소데라’에게서 얻은 첫 아들을 문제가 있다는 뜻으로 '라훌라'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하며, 붓다가 어느 봄날, 들녘을 산책하다가 농부의 연장에 찍혀 괴로워하는 벌레를 작은 새가 입에 물고 날아갔다. 그 새도 더 큰새에게 채어가는 것을 보고, 양육강식과 생노병사에 대하여 번민하다가 23세에 출가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6년의 고행과 7일간의 좌선으로 깨달음(불타 )얻어 35세에 부처가 되었다고 한다. 깨달음은 고행 속에 있지 않고, 욕심을 버리고 자비로 남에게 대하면 고통에서 벗어 날 수가 있다고, 처음설법( 초전법륜)한 녹야원에서 5명의 수행자가 깨닫고 귀의를 했다고 한다. 이로써 남자가 출가하여 걸식으로 생활하는 승려, 비구(比丘:bhikkhu)가 처음 생겨났고, 이것이 최초의 불교 교단이 생긴 것으로 여기며, 인도 전역과 아시아에도 퍼졌다. 힌두교의 영향으로 쇠퇴하였고, 그 후 회교가 들어와 불교를 배격하였다. <석가모니가 최초로 설법을 시작한 사르나트의 녹야원은 현장과 혜초가 다녀갔다.> 2. 석가모니(釋迦牟尼): 한문표기로 석가(釋迦: 샤키아)는 부족의 총칭이고, 성자 뜻의 ‘모니(牟尼)’는 ‘무니
(muni)’의 음사로 따라서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는 의미이다. 3. 부처: 부처(불타: 佛陀)는 범어 ‘붓다(Buddha)’의 음사로 '깨달은 자'를 뜻하며,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데 이것을 성불(成佛)이라 하고, 더 약칭하여 '불'(佛)이라 부르며, 일반적으로 부처는 석가모니를 가리킨다. 4. 종파: 크게 소승불교(小乘佛敎)와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있으며, 소승불교는 작은 수레는 한문처럼 작은 사람이 탈 수 있는 뜻으로 중요한 교리는 '중생 구원이 각각 개인이나 소수의 수양(修養)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믿는다. 그리고 불타의 뜻대로 한다는 재래 보수불교는 초기불교를 말하며, 그들은 감히 부처상을 만들 수 없다는 믿음으로 불상이 없는 대신 사리탑이나 법륜으로 부처를 표현했다. 대승불교는 고대 인도의 대승불교 전통을 따르는 무리들이 붙인 이름으로 아소카왕이 불교에 귀의하여 세력이 커질 때에 보수불교에 반하여 큰 수레는 많은 사람을 구제하여 태우는 큰 수레라는 뜻으로 대승이라 했다. 진보불교는 자기들이 좀 더 개방적이며, 진리가 탁월하다고 믿어 자신들을 높이어 대승불교라고 부르고, 보수 불교를 폄하(貶下)하여 소승불교라고 불렀기에 보수불교는 자신들을 소승불교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승불교는 AD 1세기 이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빨리 깨닫기 위해 불상을 만들어 숭배했다. 소승불교는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등에 널리 전파되었고, 대승불교는 한국, 중국, 일본, 티베트에 전파되었으며, 대승불교에는 삼론종, 법상종, 화엄종, 천태종, 진언종, 율종, 선종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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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탑(舍利塔)과 스투파(stupa)] 사리를 지금은 스님들을 화장한 후 유골에서 나온 구슬모양의 작은 결정체를 말지만 본래는 인도의 고대 언어 산스크리트어(범어:梵語) 사리라에서 온 유골을 의미하던 말이며, 사리탑은 한자이다. 본래 범어로는 '스투파(stupa)'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파고다(Pagoda)’라 하며, 사리를 봉안하는 일종의 묘인데 일반적으로는 사리탑은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것을 말한다. 부처는 인도전통 따라 열반에 든 쿠시나가라에서 화장하여 유골을 여덟 등분하여 여덟 나라로 보내져 사리탑을 세웠는데 이 탑을 근본팔탑(根本八塔)이라고 하며, 아쇼카왕 때 불교를 널리 포교하기 위해 여덟 개 탑 속의 유골을 꺼내 인도 전역에 팔만사천개의 사리탑을 세웠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진흥왕 10년인 549년 당나라 사신이 불사리를 가져와 왕이 백관에게 흥륜사 앞길에서 봉영하게 했다는 기록이 최초이며, 이후 황룡사, 월정사, 정암사, 통도사, 화엄사 등에 사리탑을 세웠다. 751년(신라 경덕왕 10)에는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에 사리를 봉안했다. <스와얌부 나트 불교 사원의 사리탑(수투파)> *보리수(菩提樹: bodhi druma) 보리수하면 두 가지가 생각나는데 하나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중에 작품 89번인 독일 나무의 '보리수' 이고, 다른 하나는 석가가 수행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인도 나무의 보리수(樹: 나무)이다. 이 두 보리수나무는 다른 보리수라고 생각되어 지며, 독일의 보리수(린덴바움-Lindenbaum, Der)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보리수이고, 인도의 보리수는 벵갈 보리수로 인도산 무화과라고도 한다. 열대 지방에 가면 걸어 다니는 별명의 나무들을 볼 수 있고, 이 나무 크기가 대단해서 알렉산더의 군대 7000명이 야영을 했다고 하며, 이 정도 나무라면 석가는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석가가 수행한 보리수나무가 지금까지도 살아 있지도 않겠지만 석가가 수행한 보리수나무 잎을 찾는 사람이 많아 잎 파리 하나가 양 한 마리 값이라고 하며, 줍는 것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근 가게에서 은밀히 매매되기 때문에 진품여부를 두고 갈등이 잦다고 한다. 석보상절과 아승기겁(阿僧祗劫) 이야기 석보상절: 세종 때에 수양대군(세조)이 지었으며, 내용은 '아승기겁'이전 석가모니가 세상에 오 기전 저승의 세상에서 석가모니가 한 보살 있을 때에 '구이'라는 처녀에게서 꽃 일곱 송이를 결혼 해주는 조건으로 받았다. 부처님께 받쳐 중생을 구할 지혜를 얻었다고 하는 이야기인데 그 약속의 이행으로 이 세상에 와서 야쇼다라와 16세에 결혼하였고, 아들 라훌라도 얻었다고 한다. 아승기겁: 아승기겁이나 겁이나 다 불교에서 사용하는 시간 단위 중 하나로 헤아릴 수 없다는 뜻으로 예로 1겁(劫)은 사방 40리의 성안에 채운 개자를 백년마다 한 알씩 집어 낸 시간, 사방 40리나 되는 바위를 백 년마다 한 번씩 엷은 옷으로 스쳐서 그 바위가 닳아 없어지지는 시간, 천지가 한번 개벽한 뒤부터 다음 개벽할 대까지의 시간, 갠지스강의 모래만큼 많은 시간, 우리가 많이 놀랄 때 '십겁' 했다고 하는 것은 10겁라는 뜻이라고 하니... 삼장법사(三藏法師),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서유기(西遊記) 이야기 삼장법사: 불경에는 석가의 가르침을 경(經:경장), 가르친 윤리와 도덕적인 실천규범을 율(律:율장), 가르침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철학 체계를 논(論: 논장)이며, 장이란 이것을 간직하여 담고 있는 광주리를 뜻한다. 이 것을 총칭한 것이 삼장이며, 화엄경, 반야경, 법화경처럼 '경'자가 붙은 모든 경전이 이에 포함되며, 또 경장을 가르치는 스승을 강사(講師), 율장을 가르치는 스승을 율사(律師), 논장을 가르치는 스승을 논사(論師)라고 하며, 이 모두 것에 정통한 사람을 삼장법사라고 한다. 삼장법사는 '성전에 밝은 스님'의 뜻으로 최고의 학승을 일컫는 영예스런 호칭로 가장 알려진 사람은 중국 최대의 번역승려인 현장삼장(玄裝三藏)이다. 대당서역기: AD635년 당나라 현장이 인도를 다녀 온 기행문으로 인도, 네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중앙아시아 지역의 고대역사, 지리, 종교, 문화 및 중국과 서역의 교역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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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현장이 인도에서 불경을 들여온 일을 소설화한 명나라 때의 저자 오승은 쓴 장편백화소설이 '서유기'로 서유기는 당나라 황제의 칙명으로 불전을 구하러 인도에 가는 현장삼장의 하인 손오공(孫悟空)이 주인공이다. 원숭이 손오공은 돌에서 태어났으며, 도술로 천제의 궁전이 발칵 뒤집히는 소동을 벌인 죄로 500년 동안 오행산에 갇혀 있었는 것을 삼장법사가 구출해 주어 종이 되었다. 그밖에 돼지의 괴물이며, 머리가 단순한 낙천가 저팔계, 약삭빠른 사오정과 하천의 괴물이고, 충직한 비관주의자 등을 포함한 일행은 요괴의 방해를 비롯한 기상천외의 고난을 갖가지 비술로 이를 극복하여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하여 그 공적으로 부처가 된다는 내용이다. [이슬람교(Islam敎)] AD10세기 경 회교군대가 델리 지방을 점령하여, 힌두교를 개종시켰으나 하층 계급만 주로 믿었고, 회교는 유일 신이라, 다른 교에는 관용성이 없어 수시로 힌두교와 충돌이 생겼다. 인도 독립 시 회교를 국교로 하는 파키스탄과 분리 독립했으며, 인도 헌법에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명시되었고, 파키스탄의 대통령도 회교에서 선임되나 *펀잡 지방에는의 시크파(힌두교 계파)가 있다. 이 시크파는 회교 탄압에 무장 단결하여 충돌을 일으키며, 소수종교로 배화교(조로아스터)는 이란 계통에서 들어 왔으며, 캬톨릭, 그리스도교는 영국 식민지 시대에 왔고, 유대교, 불교, 자이나교 등의 소수 집단이 있다. *펀잡(펀자브) 인도 북부와 파키스탄('청정의 땅'의 뜻) 중 북부에 걸친 광대한 지방으로, 인도령과 파키스탄령이 있고, 인더스의 5대 지류가 흐르는 지방으로 '5강의 지방' 뜻이며, BC4 세기경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으로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역사 1. 고대시대: BC 25-15 세기경 '모헨조다로(죽음의 언덕 뜻)'와 하라파 등지에도 유적을 남겼는데 만든 사람은 잘 알 수 없으나 드라비다족이라고 생각한다. 모헨조다로는 인도 문명의 중심지인, 파키스탄 서쪽 인더스강 연안의 신드 지방 라르카나 지구에 있고, 이 도시는 계획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규모도 컸으며, AD1921-31년에 발굴이 되었다. 주택은 벽돌로 지었고, 학교, 신전, 시장, 창고 등으로 목욕탕은 공중 목욕탕으로 잘 짖어 졌으며, 도로는 잘 포장 정비되었고, 하수도까지 갖추었으며, 청동기구, 보석도 있었고, 무명실로 짠 옷을 입었다. 도장에 새겨진 문자는 아직 해독하지 못하였으며, 약 천년 동안 유지하다가 아리안의 침입으로 망하였다. <모헨조다로 유적지의 목욕탕> 2. 아리안의 침입: BC15 세기경 이란과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편잡 지방에 침입하여, 철제무기와 기마병을 가진 아리안 인이 드라비다족을 정복한 후 BC1000년경 성전인 리그베다(Rigveda: 경전)의 성립에 의해 세습제도로 지배하였으며, 아리안 인은 농업과 목축에 종사하면서 자연신을 섬겼다. 이들이 갠지스강 지역으로 이동하여 많은 도시국가를 만들었으며, 밀, 보리만 재배하다가 벼도 재배하게 되였고, 이 시기부터 도시국가에서 엄격한 카스트제도가 생겼다. 3. 마가다 왕국: BC7-6 세기경 갠지스강에 아리안이 이주하면서 많은 도시 국가를 세웠는데 그 중에 힘이 강한 10개 도시가 통일했는데 그 중에 마가다와 코살라라 강력하였다. 마가다 왕국이 펀잡을 제외하고 북 인도를 통일하였으며, BC4 세기경에는 찬드라굽타가 나타나 마가다 왕국를 빼앗아 마우리아(BC321) 왕조를 열어 서북 인도를 통일하였다. 찬드라굽타의 3대 왕이 유명한 아소카 왕으로 북 동쪽 갠지스강에는 잠깐동안 난조 왕국(BC341-321)지배하였고, BC326년 알렉산더가 인도에 침입 할 때 싸운 왕이 난조 왕국의 '다나난다' 이다. 그는 기병2만, 전차2천, 코끼리 3천 이상을 이끄는 강대한 왕이 이었으며, BC321년 난조 왕국의 '다나난다'는 알렉산더와 싸우는 중에 찬드라굽타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 중원을 통일한 찬드라굽타의 막대한 힘에 알렉산더는 굴복하였고, 코끼리 500마리와 정복한 땅을 맞바꾸고, 알렉산더는 인더스 강을 넘지 못하고 되돌아 갔다. <인도의 고대 [아키메네스, 간다라, 데칸고원, 마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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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