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그러나 절에 가면 부처님 전에 절하고 교회에 가면 함께 머리 숙여 기도합니다. 누추한 영혼을 가진 중생이 인류의 스승을 만나 인사조차 드리지 않는다면 교만하다 생각해서지요.
그런 제가 한때 CCC(대학생 선교 연합회)에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만난 고교 선배의 유혹 때문이었지요.그러나 그때도 종교적(?)이지 못해서 독서 클럽 활동에나 겨우 참가했었을 뿐, 일년 남짓 지난 뒤 그만 두고 말았습니다. 그만 둔 이유는 거기의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나 오게 품어 주고, 누구나 등 두드려 주며 칭찬하는 그 분위기가 어쩐지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것만 같아 불편함을 참다 못해 그만 둔 것이었지요. 그 시절 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시애틀 문학상>에 응모하게 된 동기는 며느리 때문이었지요. 오랫 동안 일본에 살다 여기에 온지 이제 6개월 남짓한 그애는 요즘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일본에 도착했었을 때 느꼈던 문화적 충격을 여기에서 다시 경험해야 하는 것에 대해 무력감조차 느끼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늙은 나도 해내는데 젊은 너는 더욱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능력은 알량하나마 글쓰기밖에 없었습니다. 게다 이제는 다시 글을 쓰지 않겠다고 작심한지 몇년 지나지도 않았습니다. 응모할까 말까 수없이 망설이고, 드디어 지름신이 강림하셔서 저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 다음은 마치 호랑이 등에 탄 것같이 일이 진행 되어 얼떨떨한 사이에 이 자리에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앉게 되기까지 전혀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모임에 참석을 해야 하나마나 또 결심하기가 어려웠으니까요. 이십여 년 전의 실패를 다시 되풀이해야 하나, 주저하다 결국 다시 지름신이 강림하셨습니다.
그러나 첫 모임에서 제 기우는 보기 좋게 깨졌습니다. 남의 작품엔 말을 아끼면서도 자기 작품에 대한 언급은 목을 늘여 바라던 예전의 그런 모임이 아니였던 것이지요. 이건 빼고 저건 넣고 줄 바꾸고… 이건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습니다. 일일이 문장 하나하나 검토하는 엄격한 평은 문우에 대한 선의가, 아니 사랑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까요. 내 작품에 왜 참견이야, 하는 반발이 없는 것은 문우에 대한 신뢰이구요. <시애틀 문학>을 읽었을 때, 영어를 흰 밥에 콩 섞듯 한 문장이 없어서 바람직하다 생각하며 그 이유가 궁금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런 담금질의 과정이 있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공동 목적 아래의 관심과 사랑을 나누는 광경은 경이롭기조차 했습니다.
그 위에 더욱 놀란 것은 모임이 끝나고나서였습니다. 서로 등 두드려주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분위기에 저는 순간 교회에 온 줄 착각하게 되었던 거죠. 사십여 년 전으로 돌아간 CCC모임에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똑 같이 따뜻하고 사랑하는 분위기, 달라진 건 오직 저 하나였습니다. 그 시절엔 그 분위기가 그토록 불편했었는데, 지금은 왜 이리 감동적일까? 이걸 꼭 나이 탓으로 돌려야 할까요?
제가 어려선 반기를 돌리는 풍습이 있었죠. 제사나 잔치가 끝나면 참석한 사람들에게도 이웃들에게도 마련했던 음식을 몫지어 나누어 주던 풍습이지요. 그 음식이나 그릇을 반기라 했고, 나누어 주는 행위를 반기하다 또는 반기 돌리다 라고 했습니다. 저희 집에선 그 일이 제 몫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준비해 주신 반기를 돌리러 이집저집 돌아다니면 어른들은 그 음식을 제가 준비한 것처럼 치사하시며 칭찬해 주시곤 했지요. 이것은 이웃이 서로 관심과 사랑을 나누던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 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서로 관심과 사랑을 나누기는커녕 반기란 말조차 잊혀져 사전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제 와 돌이켜 보니, 그동안 제가 살기 힘들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바로 이 관심과 사랑이 그리웠던 때가 아닌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상실했었는지도 그간 깨닫지 못했습니다. 비로소 이 자리에 와서 그것을 알아차렸지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신에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김기창 선생님이 만년에 왜 그리 바보 산수에 매달리셨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인간 관계의 잠긴 문을 여는 열쇠는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야 이처럼 알게 되었는데,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멍청하기에 종교가 없는 제게 황금 열쇠를 되돌려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