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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체험기 스크랩 수많은 생명을 구한 性命雙修의 佛法
자비 추천 0 조회 108 12.02.18 09: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쇠파이프가 머리를 치고도 무사했던 그 사람
 
ㅡ 사부님께서 창춘에서 법을 전하던 시초의 증인
  
글/ 창춘 수련생 구술(동수정리)
 
[명혜망 2010년 5월 13일]
 
나는 올해 81살이고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실 때의 제1회 수련생이다. 다시 말해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쇠파이프가 건물 꼭대기에서 떨어져 머리에 꽂혀도 무사했던 그 사람이 바로 나다. 사부님 안녕하셔요! 저는 사부님이 그립습니다! 저는 제가 말하면 사부님께선 저라는 것을 곧 아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저는 사부님께서 돌아오시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1992년 봄, 창춘 승리공원 허우산(?山) 부근에서 사부님은 功을 전하고 法을 전하기 시작하셨다. 당시 사부님께서는 낡은 회색 스웨터를 입고 계셨고 입은 옷은 모두 낡은 것이었다. 딸 메이거(美歌)를 데리고 계셨으며 도시락을 갖고 계셨다. 사부님은 그 때 너무 고생스러우셨다.
 
가장 첫 시작은 허우산 남쪽의 차오양(朝陽)이란 곳이었는데 사부님께서 5, 6명 정도 되는 사람들에게 대체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에게 功法이 있는데 우리 연마해 봅시다.” 5, 6명이 연마를 시작하자 곧 몇십 명이 됐고, 이후에는 학습반을 만들기 시작하셨다.
 
창춘 제5중학교에 출근하는 한 교사가 제5중학교 교실을 한 칸 빌렸는데 사부님의 제1회 학습반이 바로 이곳에서 열렸다. 당시 표 한 장에 10위안이었다. 그 때 나는 부친이 세상 뜬지 사흘 만에 가서 강의를 들었다. 나는 사부님께 나에겐 몇 위안 밖에 없다고 말씀 드렸더니 사부님은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당시 사부님께서는 받은 돈을 모두 책을 만드는데 쓰셨다.

사부님은 강당에서 강의하시고 메이거는 교실 밖에서 놀았다. 나도 손자를 데리고 갔는데 메이거와 함께 놀았다. 한 번은 내가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서 손자와 메이거에게 하나씩 주었다. 메이거는 아무리 말해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는 사저사매(師姐妹)이므로 받으라고 했다. 메이거는 다 먹고 나서 사부님 옷자락을 살그머니 당기면서 돈을 달라고 해서는 또 한 개를 사서 내 손자에게 주었다.
 
사부님의 딸은 아주 철이 들었었다. 메이거는 “사부님께서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중생이 고생하는 것을 두려워해요, 중생이 고생하기만 하면 사부님은 눈물을 흘려요”하고 말했다. 모두들 사부님께서 책을 만들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발적으로 돈을 드렸다. 어떤 사람은 1백 위안을, 어떤 사람은 50위안을 드렸다. 또 어떤 사람은 연공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사부님이 훌륭하다며 돈을 냈다. 그 때 돈을 낸 사람이 4, 50명은 됐다. 만들어 낸 책이 바로 『法輪功(파룬궁)』이었는데 당시 한 권에 8위안이었다.
 
92년 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93년도에 와서는 아주 많아졌다. 허우산의 남쪽, 동쪽, 서쪽에 모두 신 수련생이 많아서 천지를 다 덮을 것 같았다.(주: 지금은 승리공원을 개축했다) 사부님은 또 학습반을 열었는데 항공 클럽에서 열었고, 자동차 공장에서도 열었으며 나도 갔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위아래층에도 모두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외지 수련생도 있었고 외국 수련생은 통역까지 데리고 왔다.
 
당시 승리공원 부근의 공군 호텔은 모두 만원이었다. 산해관(山海關) 관내에서 온 두 노인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오고 할아버지는 집에 손자볼 사람이 없어 결국 올 수 없게 되자 조급한 김에 울음을 터뜨렸다. 한 시골 사람은 꿈에서 ‘목자(木子) 성을 가진 사부가 창춘에 있다’고 알려 주길래 왔다고 한다.(역주-리(李)자는 木,子 두 글자로 이루어진다) 동수들은 그녀에게 법륜 도형을 주었다.
 
하루는 보도원이 20대 미국인 여수련생을 데리고 나를 보러 왔다. 이 미국 수련생은 내 앞에 다가와서 나를 앞뒤전후로 훑어보면서 나에게 합장(合十)을 하는 것이었다. 그 때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쇠파이프가 내리꽂혀도 무사했다는 말을 듣고 모두 나를 보러 왔다. 그러면 나는 당시 내가 어떻게 쇠파이프에 맞았고 大法이 어떻게 나를 보호해 주었는지 이야기하겠다.
 
당시 나는 4분국 인근에 살고 있었는데 우리 집 부근에 높은 건물을 짓고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이곳을 지나는데 갑자기 쇠파이프 하나가 높은 곳에서 내 머리를 향해 곧장 떨어졌는데 내 머리를 치고 땅에 떨어져 꽂혔는데 넘어지지도 않았다. 내 머리는 맞아서 구멍이 났지만 피도 나지 않고 아프지도 않았다. 나는 “누가 날 때렸어?”라고 하면서 머리를 돌리는 순간 새하얀 커다란 法輪이 돌면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 법륜대법은 너무도 좋았다. 나는 정말로 믿었다!

나는 날마다 빗자루나 삽을 들고 새벽 2, 3시면 승리공원에 갔다. 날이 어두워 길에는 사람이라곤 없었고 공원은 더구나 어두웠지만 나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고 손전등도 갖고 다니지 않았다. 대부분은 내가 가장 일찍 가서 공원에서 연공하다가 날이 밝으면 여러 사람과 함께 연공장을 쓸었다. 당시 많은 수련생들이 모두 이렇게 했다. 톄베이(鐵北)에 사는 한 할머니는 밤 12시에 집에서 나와 연공했고 진쳰바오(金錢堡)라는 할머니는 아침 3시면 나와서 연공했다(그녀 집은 창춘 교외 아주 먼 곳에 있었다).
 
겨울에 큰 눈이 내리면 모두들 눈을 털고는 가부좌하고 앉아서 연공했다. 그 때는 조건이 나빠서 오리털 잠바 같은 옷은 못 입었고 솜옷, 솜바지를 입었다. 그 때는 정말로 마음이 일치했다! 그 때 연공할 때면 사부님께서는 층계에 서 계셨고, 수련생들은 남쪽 수풀 속에서 연공했다.
 
이후에 사부님은 학습비를 20위안만 받으려 했다. 그런데 기공협회 사람이 와서 왜 다른 사람은 50위안을 받는데 당신은 20위안만 받느냐고 물었다. 사부님께선 나는 단지 책을 만들 돈만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기공협회 사람은 동의하지 않으면서 나중에는 30위안으로 정했다. 당시 다른 기공반은 모두 돈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기공협회는 상관하지 않았지만 유독 파룬궁만은 돈을 적게 받는다며 상관한 것이다.
 
그 해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실 때 신기한 일이 많고 많았다.
 
항공클럽에서 학습반을 열었을 때 한 남자가 들것에 실려 왔다. 사부님은 들것을 강단 위로 올리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보지도 못했는데 사부님 말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십시오.” 그가 일어났다. “땅에 내려 걸어 보십시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자 그가 땅에서 걸을 수 있었다. “당신 스스로 강단을 내려가 보세요.” 그러자 그가 강단을 내려서 걸어갔다. 그 당시 감동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었다!
 
연공장에서 한 수련생이 사진기로 사진을 찍었는데 한창 2장공법인 법륜장법을 연공하고 있는 수련생의 머리 위에 백룡 두 마리가 있는 것이 찍혔다. 이 수련생의 이름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이름은 말하지 않겠다) 또 옛날식으로 머리를 틀어 올린 한 할머니가 있었는데(회춘해서) 생리가 왔다. 나는 연공해서 몸이 좋아졌다. 내 아들에게 친구가 있었는데 내 몸이 좋아진 걸 보고 그의 부모도 연마하게 했다.
 
그의 부모는 연공한지 반년이 되자 곧 설이 다가왔다. 설에 가족들이 마작을 즐겼는데 할머니는 참지 못하고 마작을 하기 시작했고 끝도 없이 놀았다. 그 후부터 연공을 하지 않았다. 이후에 이 할머니는 암에 걸려 사망했다. 당시 집에서 죽었는데 3일을 집에 두고 4일째 출관하기로 했다. 그 때 수의도 다 입혔다. 그런데 3일째 되는 날 그녀가 또 살아났고 일어나서 수의도 다 벗어버리고 보통 옷을 입었으며, 밥도 먹었고 2장 공법 포륜도 연마했는데 건강한 사람 같았다.
 
그녀는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파룬궁은 좋아요! 내가 돌아온 것은 바로 당신들에게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입니다. 나는 수련을 잘하지 않았으며 잘못했습니다.” 그녀는 3일을 더 산 다음 죽었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죽었다. 그녀 남편은 천(陳)씨인데 공원에 와서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이 일을 얘기하고 사람들에게 “파룬궁은 좋아요! 파룬궁은 좋아요! 이 공법은 참 신기해요”라고 하면서 어디를 가나 알려 주었다. 또 天目이 열린 동수는 연공장의 천공이 온통 붉은 구름이었고 사부님의 法身이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당시 사부님께선 몸소 功을 가르치셨고 수련생에게 동작을 교정해 주셨다.
 
이 몇 해 동안 나는 날마다 책을 읽고 연공했으며 몸에는 아무런 병도 없다. 아들 몇은 모두 자신들이 엄마보다 건강이 못하다고 말한다. 나는 또 발정념으로 사악을 소멸하여 박해받는 동수들이 하루빨리 마의 소굴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으며, 지폐에다 ‘대법은 좋다’를 써넣어 사람을 구하고 있다. 나는 사부님이 보고 싶고 메이거가 보고 싶다. 사부님 생각을 하면 울고만 싶다. 나는 사부님 사진을 오래오래 바라본다. 내가 집안에 앉아있다고만 보지 말라, 여전히 승리공원에서 사부님과 함께 있을 때와 똑같다. 나의 신체는 튼튼하다. 잘 살아서 사부님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겠다. 이 모든 일은 정말이라는 것을 나는 사부님께 증명하겠다. 나는 살아있는 증거다.
 

  

 

法輪大法은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글/ 대륙 수련생

[명혜망 2010년 5월 8일]
 
나는 99년 ‘7.20’ 이전에 大法을 얻은 제자로 사부님을 직접 만나 뵌 행운아다.
‘세계 파룬따파 일’이 곧 다가 오는데 이 기쁜 날을 경축하기 위해 나의 약간의 경력을 써서 이것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리려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강해 무슨 일이던 원인을 끝까지 파고 들었는데 특히 사람의 기원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나는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했다는 말을 믿은 적이 없었지만 누구도 나에게 이 문제에 대해 해답하지 못했다. 나는 늘 유치한 생각을 했다. 만약 가장 원시적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나는 뭐나 다 알 것인데. 그래서 사는 게 줄곧 착실하지 못했고, 무언가를 늘 찾고 있으나 찾을 수 없는 그런 감각이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마음이 편안하지 못했다.
 
또 있는데, 매번 나에게 생명위험이 닥쳤을 때마다 언제나 기적이 나타난 것이다. 예를 들면 어릴 때 두 번 물에 빠졌는데 물이 너무 깊어 정수리까지 물에 잠겼어도 나는 조금도 숨 막히는 감이 없이 뭍에 있는 것과 똑같았다. 또 한 번은 내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데 길 양 쪽에다 돌과 모래를 가득 부려놓아 길이 아주 좁았다.
 
단번에 마차 몇 대와 자동차, 견인차들이 나를 중간에 끼워 넣어 주위에는 공간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나는 속으로 끝장이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긴장하지는 않았고 그저 별수 없어 눈을 감고 죽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나 혼자만이 자전거에 앉아 있었다. 그 외에도 또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1995년 내 정신과 몸은 붕괴 상태에 처해 나는 독약 한 병을 마련하고는 모든 것을 끝장내려고 했고, 더욱이 부모님이 억지로 강요한 결혼에서 벗어나려 했다. 나는 죽음이야 말로 나에게 가장 행복한 것이라고 여겼다. 왜냐하면 내가 산다는 게 너무나 괴로웠기 때문이다. 이때, 동료가 나에게 다시 한 번 파룬궁을 소개해 주었다.
 
중공의 오랫동안의 무신론 교육으로 인해, 게다가 어려서부터 중공이 잇달아 일으킨 사람을 못살게 구는 운동 때문에 부모님이 받은 고통을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으며, 그야말로 이 세상에는 내가 믿을만한 사람과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때 동료가 나에게 재차 파룬궁을 소개했고, 나 또한 무슨 영문인지 파룬궁 서적을 보기를 몹시 갈망했다.
 
내가 이러한 모순, 호기심, 갈망하는 마음을 지니고 책을 펼치니 첫 눈에 사부님 사진이 보였다. 아니, 어쩌면 이리도 낯익을까? 눈물이 저도 모르게 흘러내렸다. 나는 단숨에 <전법륜> 책을 읽어 내려갔다. 한 번을 다 읽으니 나의 몸이 정화됐고, 어려서부터 풀지 못했던 문제를 모두 알게 됐으니 마음속으로 느낀 그 홀가분하고, 유쾌하며, 즐거운 기분 어디에 비할 바 없었다!
 
어느 날 밤, 금빛이 사방을 비추면서 아주 눈부신 거대한 法輪이 웅웅 소리를 내면서 내가 누워있는 몸으로 날아왔다. 그 때부터 나는 길을 걸어도 바람에 나는 듯 가벼웠고, 자전거를 타도 힘들게 페달을 밟을 필요가 없었고, 계단도 날듯이 올랐으며, 어디에 있던 늘 고무풍선처럼 위로 떠오르려 했다. 이어서 사부님의 法身은 연속 드라마처럼 날마다 나에게 한 회씩 내가 하늘에서 층층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오게 된 정경을 보여 주셨다. 마지막회에서는 거대한 法輪이 쾌속으로 위에서 돌면서 사부님께서 “ 파룬따파를 수련하여 돌아가라”고 나를 점화해 주셨다.
 
이 신기한 일체는 나의 모든 고통을 일소해 주었고, 이 때문에 가족 및 주변의 모든 친척친구들이 잇달아 大法에 들어섰다. 그 중에는 생명의 막바지에 처한 한 경찰이 있었는데 그가 사부님 설법 녹화 몇 강의를 막 보고 났을 때, 신체는 철저하게 정화됐으며 C형간염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다. 20여일 후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전부 정상이어서 의사는 놀라워 하며 자신이 검사한 결과마저 믿지 못했다. 이후에 또 한 번 큰 도시 병원에 가서 검사했는데 역시 모두 정상이었다.
 
2003년 한 친구가 ‘사스로 의심되는 환자’여서 소탕산(小湯山)(사스환자들이 사는 곳)으로 이사하려 했다. 소문을 듣고 나는 급히 달려갔다. 그가 경찰이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파룬궁이 정법임을 믿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즉각 “믿습니다, 파룬궁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므로 나는 또 아주 많은 大法 책을 보호했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온 병실 사람들에게 大法의 아름다움과 공산당의 피비린내 나는 탄압에 대해 말하자 그가 갑자기 말했다. “저는 나았습니다. 열이 나지 않습니다!” 이튿날 그는 퇴원했다. 그의 아내는 이 때문에 법륜대법 수련에 들어왔고 그의 모든 친척들이 대법의 아름다음을 알게 되어 지금은 모두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했다. 또 암환자 두 사람이 있었는데 역시 대법 수련을 한지 얼마 안 되어 건강을 회복했고, 지금은 모두 대법에서 수련을 하고 있다.
 
2007년 나의 불법 노동교양이 만료됐는데 ‘610’(파룬궁을 전문 박해하는 중공의 기구)은 올림픽을 빌미로 ‘전향’되지 않은 사람에게 형기를 연장했다. 나는 동수와 함께 발정념을 했고 가족들은 사흘이 멀다하고 ‘610’에 찾아가 따졌다. 노교소는 드디어 나를 집에 돌려보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후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이 경찰이 날마다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외지에 있는 친척 집으로 갔다. 어느 날 밤에 잠을 자는데 사부님 法身이 아주 뚜렷하게 나에게 어서 떠나라고 점오하는 것이었다. 내가 잠도 깨지 못하고 친척집을 막 떠나자 경찰을 가득 실은 커다란 차가 나를 잡으러 왔다. 그 때부터 나는 유랑생활을 하게 됐다.
 
경찰은 나를 잡지 못하자 미친듯이 나의 모든 친척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더욱이 나의 연로한 모친께서는 너무나 큰 놀라움을 겪었다. 올림픽 전야에 그들은 또 나의 큰 오빠 집으로 갔다. 큰 오빠는 심장수술을 막 하고 난 후인지라 허약한 몸으로 도리를 따지면서 증명서를 내놓지 않으면 절대로 집을 수색하지 못한다고 했다. 한 차 가득 온 경찰들은 무뢰하고 난폭했지만 큰 오빠는 한사코 문을 열어주지 않아 하루 동안 대치 상태에 있었는데 나중에 경찰들은 풀이 죽어 돌아갔다. 그 때부터 큰 오빠의 병은 전부 나았다. 건강해 졌을 뿐만 아니라 또 많이 젊어졌고 운전기술을 배워 새 차까지 사서 몰고 다닌다.
 
둘째 오빠는 고혈압에 또 많은 병을 몸에 달고 있다. 매번 경찰이 소란을 피울 때면 그 역시 도리를 따지면서 그들을 집안에 들여놓은 적이 없다, 아울러 따진다, “그녀가 합법적인 공민인가요?” 경찰은 그렇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다리가 있어 어디로 가고 싶으면 갔겠으니 다음부턴 이곳에 와서 찾지 마시오. 썩 물러가시오!” 둘째 오빠의 말이다.
 
올림픽 전에 경찰은 날마다 와서 소란을 피워댔는데 어떤 때는 하루 몇 번씩 왔다. 둘째 오빠는 장기간 정신이 긴장상태에 처해 있었고 또 내가 잡힐까 봐 근심하다보니 나중에 중풍에 걸렸다. 하지만 이틀 후 기적이 나타나 걸을 수 있게 됐다. 지금 둘째 오빠도 70여세나 됐어도 몸이 건강할 뿐만 아니라. 차를 몰고 이곳 저곳을 다닌다.
 
이러한 사례가 아주 많고도 많다. 사부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제자들에게 주셨고, 또 정념이 있는 선량한 일반인들에게도 주셨다. 사부님의 은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으니 오직 정진실수(精進實修)로 보답할 뿐이다!
 
 
법륜대법이 가져다 준 생명의 기적
 
 글/칭롄
 
【명혜망 2010년 5월 8일】둘째 오빠 부부는 1999년 7월 공산당으로부터 박해받기 이전에 법을 얻었다. 늘 우리 식구에게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려, 우리 가족은 신기하게도 위험한 상황에서 거듭 무사히 지나왔다. 최근 2년 동안만 해도 큰오빠, 조카딸, 조카, 조카손자가 사부님의 보호로 위기에서 살아나 大法의 위력을 체험했다.
 
1. 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가 조카딸을 살려
 
둘째 오빠의 딸 쇼화(가명)는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남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2008년 가을 심각한 급성병을 얻어 병원에 갔는데, 40분 후 혈압이 없어지고, 호흡과 심장박동이 정지하여 인공호흡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의사는 아이를 흰 천으로 덮고, 둘째 오빠에게 이미 사망했다고 말하고, 40분이 지나면 옷을 입히지 못하므로 빨리 갈아입히라고 했다.
 
둘째 오빠는 집에 전화를 걸어 장례를 치를 준비를 하라고 했다. 둘째 올케는 “아이의 귀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말하고, 사부님께 구해달라고 빌어”라고 했다. 올케는 일이 있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병원에 있는 아이를 생각하며 “얘야, 빨리 엄마하고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 사부님 저를 구해주세요! 라고 말하자” 라고 계속 말했다. 올케는 아이가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고, 사부님이 반드시 딸을 구해서 무사하게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반시간 후, 각종 검사기기를 떼어내던 간호사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기적이다! 심장박동이 반시간을 멈췄는데 어떻게 다시 뛰고 있지?!” 의사와 병실 사람들도 모두 기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응급조치가 다시 시작되었다.
 
병원에서는 전력을 다해 구하고 있었다. 의사는 호흡이 중단되면 두뇌에 산소가 부족하고, 6분 동안 산소가 부족하면 뇌세포가 죽는다며, 병원에서는 아직 이렇게 중한 환자를 성공적으로 살려낸 적이 없다고 했다. 설사 살아나더라도 식물인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둘째 오빠는 의사에게 살려달라고 말하고, 계속 아이에게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은 좋습니다! 사부님 저를 살려주세요!”라고 외쳤다. 그날 오후 아이는 호흡을 시작했고, 의식이 돌아왔으며, 3일 만에 뇌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2. 수련한지 9일 만에 조카가 다시 살아나
 
2009년 초 둘째 오빠의 아들 쇼강(가명)은 큰 병을 앓고 몸이 허약해졌다. 의사는 고가의 인혈알부민을 주사해야 하는데 병원에는 이런 약이 없으니 외지에 가서 사오라고 했다. 이 약을 쓴 후 쇼강은 갑자기 호흡이 약해졌다. 호흡기를 달았지만 여러 가지 합병증이 나타났다. 의사는 그 중의 한 가지 증상도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 아무리 치료해도 낫지 않았고, 인혈알부민을 사용하기만 하면 아이의 호흡이 힘들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때는 약을 멈추려고 해도 너무 늦었다. 병원은 CT와 엑스레이를 찍고는 양쪽 폐의 섬유화가 심각하다며 이미 중?말기라고 했다. 무엇 때문에 쇼강이 갑자기 이런 심한 병에 걸렸는지 의사는 아무리 연구해도 알아내지 못했다. 의사는 국제적으로 폐가 섬유화되는 증상에 대해서는 아직 약이 없고, 명확한 치료 방법도 없으며, 이런 병은 걸리면 악화되기만 할 뿐 되돌릴 수 없다고 했다. 쇼강은 이미 중?말기이므로 퇴원 후 짧으면 2, 3개월, 늦으면 3, 4년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말했다.
 
둘째 올케는 大法을 굳게 믿고 식구들에게 “의사가 좌우지 하는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 좌우지 하신다. 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즉시 아이를 퇴원시켰다. 퇴원한 후 아이는 틈만 나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은 좋습니다!”를 외웠고 이튿날부터 파룬따파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3일 만에 연공 동작을 배웠다. 열흘 후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 섬유화가 많이 좋아졌다.
 
둘째 오빠는 전후로 찍은 두 엑스레이 필름을 들고 진찰한 의사를 찾아가 대조를 해보라고 했다. 의사는 필름을 볼 생각을 하지도 않고 악화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며 절대로 좋아질 수는 없다고 했다. 둘째 오빠가 계속 부탁하자 하는 수 없이 필름을 받아 쥔 의사는 깜짝 놀랐다. 섬유화 말기가 짧은 시간에 이렇듯 뚜렷한 호전이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라고 했다.
 
쇼강은 한 달 입원하여 거의 20만 위안을 써서 콜린에스테라아제 지수(????指?)가 120에서 1100으로 간신히 올라갔다. 하지만 법공부하고 연공한지 10일도 안되어,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콜린에스테라아제 지수가 1100에서 4300으로 올라가 정상이 되었고, 의사는 다시는 검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조카는 회사에 다시 나갔으며, 1개월 후 다시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을 때 의사는 거의 나았다고 했으며, 현재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다.
 
쇼강이 퇴원한 지 며칠 되지 않아, 매체에서 입원한 사람이 가짜 인혈알부민을 사용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둘째 오빠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이 가짜약을 샀던 것이다. 둘째 오빠는 그제서야 가짜약이 큰 병에서 금방 벗어난 쇼강의 생명을 위급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대법을 수련하고 사부를 믿고 법을 믿었기 때문에 자비로운 사부님의 法身이 줄곧 곁에서 지켜주어 쇼강은 다른 환자처럼 저승으로 가지 않을 수 있었다.
 
3. 위중한 오빠가 살아나다
 
2009년 7월, 뇌혈전 후유증을 18년간 앓던 큰 오빠가 조심하지 않아, 두 번이나 넘어져 움직이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지만 호전이 없었다. 의사는 뇌간이 막혀서 치료할 수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집에 온 후 밤낮으로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 옆집 사람들이 시끄러워 했다. 20여 일 후 기력이 빠지고 나흘이나 먹지 못해, 때로는 깨어나 있고, 때로는 혼미해 있었다. 가족은 묘 쓸 자리를 준비하고 친척 수십 명이 큰 오빠의 마지막 모습을 보러 왔다.
 
둘째 오빠도 왔는데 그는 가족들에게 “나는 너의 아버지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구해주려고 왔다”고 말했다. 둘째 오빠는 집에 들어서자 곧 큰 오빠 귀에 대고 “형, 진심으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은 좋습니다’ 라고 말하면 사부님이 형을 구해줄 것이오!”라고 속삭였다.
 
큰 오빠는 곧 따라 외웠다. 5시간 후, 일어나서 죽을 4숟가락 떴고, 정신도 많이 맑아졌다. 가족은 상을 치르려고 쳤던 천막을 얼른 뜯어냈다. 그날 저녁 통증도 많이 가라앉고, 4시간 가량 깊은 잠을 자 이웃들도 편하게 쉬었다. 이튿날 큰 오빠는 죽을 반 그릇 들었고, 셋째 날에는 밥 한 공기를 먹고 휠체어에 한참 앉아 있었다.
 
친척과 이웃 사람들은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다. 큰 올케와 자녀들도 대법이 좋다는 것을 굳게 믿었고, 그 후부터 큰 오빠에게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은 좋습니다”라고 외우라고 일깨워 주었다. 의사를 모셔와 검사를 했더니, 이제는 살아갈 일만 남았다고 했다.
 
4. 조카 손주가 살아나다
 
셋째 남동생의 외동 손자 밍밍(가명)은 3살 반인데, 2010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밥을 잘 먹지 않고, 수시로 열도 나며,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았다. 3월 초에 고열에 시달리고 복부에 가스가 차서 먹지도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했다. 현?시 병원을 돌아다니며 약을 짓고, 링겔을 맞고, 주사를 맞히고, 물리치료를 받고, 머리에 얼음주머니 3개를 연달아 올려놓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8일 동안 고열은 내려가지 않았다.
 
CT를 찍은 결과 전신의 림파, 간, 비장비대라고 했고, 채혈하고 골수를 채취해 검사한 결과, 특수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백혈병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의사는 특효 치료약을 써야 하는데, 부모가 사인을 해야만 쓸 수 있다고 했다. 셋째 남동생이 설명서를 보니 한 무더기의 부작용과 암을 초래할 수 있는 성분이 있었다. 일반 약은 목숨을 구할 수 없고 특효약은 감히 쓸 수가 없다. 셋째 남동생은 손자를 구하기가 힘들자 화가 치밀어 머리가 빙빙 돌고, 갑자기 길을 걷지 못했고, 밍밍의 부모와 할머니는 급해서 울었다.
 
동생은 병실 밖 의자에 앉아서 절망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둘째 오빠가 말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은 좋습니다’를 외우고 기적을 일으킨 사례가 떠올랐다. 그는 벌떡 일어나 둘째 오빠 집에 찾아가서 둘째 올케까지 병원으로 모셔와 아이에게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은 좋습니다”라고 말해주면서 사부님이 아이를 구해주기를 희망했다. 아이에게도 가르쳐줘서 함께 외웠는데, 한 시간 후 체온이 36.6도로 떨어졌고, 죽도 조금 먹었다.
 
가족은 희망이 생겼다. 아이도 열이 나지 않을 때 외웠고, 할머니가 집에 물건을 가지러 갔을 때도 틈만 나면 외웠다. 그 후 이틀간 아이는 열이 세 번 났는데 매번 열이 낮게 났다. 마지막 한번은 37.7도로 올랐고 한 시간 외운 후, 열이 36.1도로 내려갔다. 그때부터 체온이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밥도 잘 먹었으며, 배에 찬 가스도 사라졌고 아이의 정신도 뚜렷해졌다. 나흘 후 의사는 퇴원하라고 했고, 셋째 남동생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정밀검사를 한 번 더 하자고 했다. 검사결과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 남동생은 아이를 데리고 기쁘게 퇴원했다.
 
파룬따파가 우리 식구 삼대 4명을 살려냈다. 이 사실을 안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  했고, 법륜대법을 믿지 않던 사람과 무신론자도 진심으로 대법이 목숨을 살려준 은혜에 감사했다. 대부분이 대법의 진상을 알고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를 했으며, 어떤 사람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대법의 일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어떤 이는 대법서적과 연공동작 테이프를 가져가 대법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를 한 어떤 사람은 몸이 건강해지고, 어떤 사람은 장사가 잘 되어, 친지들에게 진상을 안 후에 복을 얻은 사실을 전했다.
 
현재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은 좋습니다’를 진심으로 외우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소식이 친척과 친구 사이에서 전해지고 있고, 막지 못할 기세로 확산되고 있다.
 
 
사부님, 제자는 무엇으로 보답합니까?

글/ 대륙 수련생 백옥(白玉)

[명혜망 2010년 5월 11일] 차마 지난 날을 돌아볼 수 없다. 18년 전 어느날 저녁. 3살 된 아들이 열이 나서 병원에 가서 검사했는데 갑자기 치아를 꽉 물고 호흡이 멈추며 두 눈이 뒤집어지고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인사불성이 됐다. 의사가 즉시 응급치료를 한 후에야 깨어났다. 비록 깨어났지만 그때로부터 다른 아이로 변했다. 원래 총명하고 영리하고 활발하고 귀엽던 아들은 볼 수 없었다. 두 눈이 거슴츠레하고, 반응이 둔하고, 눈, 입, 얼굴 신경 및 상지 근육이 수축되고 모양이 괴상하게 변해 무서웠다. 병원에 가서 진단하니 간질병이라고 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로 인해 성격이 강한 나도 충격을 받아 무너졌다. 아이에게 병치료를 해주기 위해 크고 작은 병원을 다 다녀도 소용 없었다. 매일 장애아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칼로 에이는 듯했고 온종일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보니 순간적으로 아이와 함께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1995년 말, 친척이 나에게 파룬궁이 아주 좋다고 알려 주면서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게 가르치고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병을 치료한다는 말에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이 풀이라도 잡은 것처럼 아이를 데리고 친척을 따라 연공장에 갔다. 연공장에서 먼저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본 후 공법을 가르쳤다. 신성한 사부님을 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 나의 아이를 구해주십시오!”하고 외쳤고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곁눈으로 아이를 보니 6살 된 아들이 거기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눈 한 번 깜박하지 않고 사부님을 보고 있었고 설법을 몰두해 듣고 있었는데 주위 일체가 마치 그와 격리된 것 같았다.
 
공법을 배울 때 아이는 아주 성실답게 매 동작을 배웠다. 그 며칠 나는 날마다 온 하루 법을 듣고 공을 배우는데 푹 빠져있다 보니 아이의 질병에 대해 중시하지 않았다. 며칠 후 학습반이 끝날 때 나는 갑자기 며칠동안 아들의 간질병이 발작하지 않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아이는 마치 정신상태가 좋아진 것 같았고 말하기를 즐겼으며 아빠에게 동작을 교정해 주었다.
 
연공하면 이렇게 큰 변화가 생길 줄 정말 생각지 못했고 파룬따파는 너무 좋았다. 친척 친구들이 아이의 변화를 보고 모두 잇따라 파룬궁을 연마했다.

우리는 모두 사부님의 요구대로 ‘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고상한 사람이 되고 가는 곳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세속의 사람과 논쟁을 벌이지 않고, 타인을 선하게 대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었다. 학교에서 아이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면서 ‘때려도 받아 치지 않고’ 어른을 존경하고 동학지간에 우애하고 학습 성적이 줄곧 앞자리를 차지했다.
 
품행과 학업이 다 훌륭하여 매년 모두 삼호(三好)학생이 됐다. 아이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좋은 아이라고 공인했고 모든 아이들의 모범이었다. 모습도 갈수록 예뻐지고 초탈, 총명, 활발, 다재다능하여 많은 기술을 배우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익혔다.
 
완미한 아이를 보면서 행복의 눈물을 금할 수 없고 특히 아들이 대학 입학 통지서를 가져왔을 때 기쁘고 감동되어 만감이 교차됐다. 나는 더이상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사부님, 제자는 무엇으로 보답합니까?” 나는 꿈에도 오늘과 같은 날이 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당신은 우리에게 일전 한 푼도 요구하시지 않고 우리의 밥을 한 숟가락도 잡수시지 않았으나 당신은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부여하셨습니다. 당신은 아이를 구하셨고 우리집을 구하셨으며 천만 개 가정을 구원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당신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사부님, 과거 간질병 아이가 오늘 멋진 청년이 되고 고급 인재가 되었으며, 과거의 어린 제자가 청년 제자로 되었습니다. 사부님, 제자는 보고할 실마리를 찾지 못해 오직 마음으로, 일심으로 대법을 수련하고 용맹정진하겠습니다!
 
 
 大法을 수련하니 온 가족이 복을 얻어(사진)
 
글/ 대륙 수련생 心美
 

 

[명혜망 2010년 5월 10일]

 

나는 온 가족이 법을 얻고 수련한 후의 신기한 일로 법륜대법의 초상(超常)함과 아름다움을 실증하려 할 뿐만 아니라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에 감사드리려 한다. 

 

 

1. 연분이 있어 법을 얻다

 

 

1995년 7월, 친구가 우리집에 와서 당신에게 책 한 권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내가 보니 『전법륜』이었다. 펼쳐보다가 십여 분이 지나 눈을 뜰 수 없이 졸렸다. 이상하게 십 몇 분후 또 졸렸다. 이렇게 한창 이상해하다가 이틀 동안 『전법륜』을 한 번 보았다.

 

 

나는 책에서 心性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된다는 이치에 마음이 움직였다. 나는 친구에게 “만약 책에서 말한 대로 한다면 인생에 무슨 고뇌가 있을까?”라고 말했다. 회사에서 사람사이에 명리를 위해 쟁투하면서 아주 고생스럽고 힘들고 번뇌스럽게 느끼던 것이 나로 하여금 온 몸의 병을 만들었 뿐만 아니라 이전에 내가 배운 기공은 병을 치료하는 수법이고 어떻게 심성을 수련하는가를 이야기 하지 않았으며 겉만 다스리고 근본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하여 나는 친구에게 “이 책은 너무나 좋네, 어디서 샀지? 나도 살거야”라고 말했다. 친구는 빌린 것이라고 했다. 나는 즉시 『전법륜』을 전부 복사했다. 그 후 대법이 보급되면서 나는 새 『전법륜』을 주문했고 연공장을 찾았다.

 

 

 

 

 

 

그 때로부터 나는 마치 오래 동안 가뭄에 시달리던 새싹처럼 단비를 얻어 대법수련의 거세찬 물결 속으로 용해됐는데 이미 16년이 됐다. 16년의 수련과정을 회상하면 정말 감개무량하여 얼마나 많은 눈물로 옷깃을 적셨는지 모른다. 만약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가 없었다면 나는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지린(吉林)성 파룬궁수련생들의 1999년 7.20 이전의 연공 장면, 엄동설한과 폭염을 막론하고 연공을 견지했다

 

 

 

연공 과정에서의 다른 신기한 일은 이야기하지 않고 바로 우리 연공장을 이야기하겠다. 몇 번은 아침에 연공하고 가부좌 했는데 큰 눈이 내렸다. 북방의 겨울은 영하 십 몇 도이고 천지지간은 백설로 뒤덮인다. 대법 제자들은 매 사람마다 모두 눈사람처럼 한 시간 가부좌했지만 추위를 느끼지 못하고 몸에서 오히려 열기가 났다. 그런 미묘한 느낌은 지금까지 기억에 생생하다.

 

 

 

 

 

 

그로부터 온 몸의 병이 많아 별명이 ‘약상자’였던 나는 16년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약 한 알도 먹지 않았다. 업무량이 많아 신체가 감당하지 못해 사직하려 했지만 신체가 건강해지자 업무효율도 배로 늘었다. 이전에 쟁투심이 많던 것이 이익을 담담히 보고 사람을 상냥하게 대하는 사람이 됐다. 모두들 나의 변화로부터 법륜대법의 아름다움을 목격했다.

 

 

 

 

 

2. 어머니가 법을 얻다

 

 

 

 

 

 

1996년 9월, 나는 회의에 참가하다가 갑자기 69세의 어머니가 뇌혈전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병원으로 갔다. 어머니는 눈과 입이 삐뚤어져 침대에 누워 있었고 오른쪽이 반신불수가 됐다. 의사는 뇌에 혈전이 있어 두 가지 치료 방안을 가족들에게 제시했다. 첫번째는 뇌수술을 해서 혈전을 빼내는 것이고, 두번째는 보수적인 치료법으로 누워서 움직이지 않고 자연적으로 혈전을 흡수하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두 번째 치료방안에 동의했다. 이 치료법을 실시할 때 머리 부분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한번 움직이기만 하면 연속 이틀간 누워있었고 줄곧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나는 『전법륜』들고 “어머니, 이전에 법륜대법을 수련하시라고 말하면 시간이 없다고 하셨는데 오늘 제가 어머니께 『전법륜』을 읽어드리겠으니 들으세요”라고 말했다. 한참 읽은 후 어머니는 법을 읽는 소리를 들으니 마치 샘물을 정수리에 쏟아 넣는 것 같으며 온 몸이 아주 편안하다고 하셨다. 이렇게 힘들 때마다 내가 『전법륜』을 읽는 소리를 듣고 편안하다고 하셨고 주사를 맞고 약을 먹는 것은 효과가 없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대법을 공부하면 감각이 이렇게 뚜렷하다는 것은 대법과 연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법공부 팀에 가서 공부하고 연공한다면 병원보다 효과가 더 좋을 것인데 믿기세요?”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믿는다! 믿어! 나는 퇴원해서 법공부 팀에 가겠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좀 기다리세요! 어머니는 반드시 백 분의 백 믿어야 해요. 어머니의 생명을 갖고 장난칠 순 없어요”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정말 백분의 백 믿는다고 하셨다.

 

 

 

 

 

 

 

 

 

내가 의사를 찾아 퇴원하겠다고 하자 의사는 “농담 하세요?! 아직도 한 달 이상은 치료해야 퇴원할 수 있는데 이제 경우 18일에 입원했습니다. 어머니를 죽이고 싶은가요?!”라고 했다. 이후 병원에 모든 결과를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각서를 남겼다.

 

 

 

 

 

퇴원한 그날 저녁 나와 언니는 어머니를 법공부 팀에 모셔갔다. 신통가지법을 연마할 때 어머니는 “내 오른손이 움직여! 뜨거운 한 줄기 흐름이 어깨로부터 손끝까지 통한다!”고 말씀하셨다. 장내의 수련생들은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다. 연공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어머니를 부축하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어머니는 나를 도와 만두피를 밀었다.

 

 

 

 

 

우리 집에 숙박한지 10일이 되던 날 어머니는 ‘어제 저녁에 내 병은 다 나았고 집에 아버지가 홀로 지내니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딸과 어떻게 말해야 할까’라고 생각하다가 저녁에 꿈을 꾸셨다. 꿈에서 구름 안개가 감도는 하늘에 마치 체육관과 같은 관람대에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었는데 한 층씩 더 높이 앉아 조용히 사부님께서 칠판에 법륜도형을 그리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가 입장하니 자리가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어머니를 보시더니 한 사람이 금방 입문 했는데 잘 공부하지 않고 근심걱정이 많은데 이런 수련생은 힘들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일어난 후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를 지적하신 것이다! 나는 한 동안 잘 공부하고 돌아가야한다’고 생각하셨다.

 

 

 

 

 

그 때로부터 어머니와 나는 매일 저녁 법공부 팀에 가서 사부님의 설법비디오를 보았다. 어머니가 사부님의 비디오를 볼 때, 허리와 머리 부위에 법륜이 돈다고 하셨다. 이렇게 50여 일이 됐을 때 나는 어머니를 시골집에 보냈다. 차에서 어머니는 머리의 혈전 부위와 혀끝 부위에 법륜이 도는데 사부님께서 청리해 주신다는 것을 안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께서 집에 돌아가신지 일주일 후, 나는 고향에 어머니를 뵈러 갔다. 내가 문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나에게 “사부님의 말씀은 한 마디도 가짜가 아니야, 이전에 나는 사부님의 ‘노년부녀도 달거리가 온다.’(『전법륜』)는 말씀을 별치 않게 생각했고 몸만 회복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내가 돌아온 그날 22년 만에 달거리가 왔어. 이 공법은 너무나 신기하구나! 나는 정말 69세 노인에서 젊은이로 돌아갔어!”고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대법을 수련한 신기한 효과는 전 마을을 뒤흔들었다. 당장 2,30명의 주민들이 어머니를 따라 대법을 수련했다. 그 해 우리 마을에는 뇌혈전에 걸린 노인이 6명이었는데 그 중 4명이 수련하지 않고 매월 4,5백 위안의 약을 복용하다가 지금은 모두 세상을 떴고 대법을 수련한 두 명은 지금까지 모두 건강하다. 어머니는 날마다 웃으시며 “사부님께서 나의 생명을 연장해 주셨고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이야기 하신다.

 

 

 

 

 

 

3. 언니가 법을 얻다

 

 

 

 

 

 

내 언니는 어머니가 대법을 수련한 신기한 효과를 목격하고 법공부 팀에 참가해 이로움을 얻음이 적지 않다. 1999년 7.20 공산당의 박해 때 나의 형부는 무서워서 언니의 연공을 방해했고 더 이상 연공하면 이혼한다고 했으며 대법서적을 보기만 하면 찢었다. 그의 방해로 언니는 연마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간 부위에 통증이 생겨 병원에 가서 CT 검사를 했다. 의사는 좋지 않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형부는 언니에게 연공하라고 했다. 언니는 당초에 연공하지 못하게 한 것은 당신인데 지금에 와서 나에게 연공하라고 빌다니 당신은 나를 뭐로 보느냐고 했다. 형부는 “나도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이전에 탄압이 두려워서 당신에게 연마하지 못하게 했어요. 지금 당신의 신체가 이렇게 됐는데 당신이 연공하지 않으면 직업도 없으니 입원비나 검사비용도 없어요! 지금 나는 직업을 잃고 품팔이로 겨우 생활을 유지하고 있어요! 당신에게 이렇게 비는데 아이를 보더라도 당신이 살고 싶으면 연공해요!”라고 했다. 이렇게 되어 언니는 법공부와 연공을 다시하게 됐다.

 

 

 

나의 형부는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일하고 돌아와 힘들어도 언니가 법공부를 하기만 하면 가사일을 도맡아 했고 언니에게 안심하고 책을 보도록 했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언니를 포기하시지 않았다. 연공한지 한 달 후 얼굴색은 검고 칙칙하던 것이 붉게 변했다.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간부위에 어두운 부분이 전부 사라졌다! 그 후 언니의 집에서는 또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

 

 

 

언니에게는 노인성 치매에 걸린 92세 시아버지가 계신다. 이런 환자를 보살핀다는 것을 겪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힘든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시아버지는 수시로 대변을 누어 벽에 발라놓고는 입으로 케이크! 케이크! 하고 소리쳤다. 언니는 시시각각 자신을 수련인으로 간주하고 노인을 자비롭게 대했다. 매일 반나절 동안 노인의 귀저기와 더러워진 옷을 빨면서 3년간 계속 시중을 들었는데 노인이 사망할 때까지 한 번도 욕창이 생기지 않았다.

 

 

 

 

 

 

 

작년 말, 언니의 이웃들이 나에게 당신의 언니는 60평되는 어두컴컴한 아파트에서 94세의 시어머니와 82세의 친정어머니를 모시면서 또 불쌍한 외조카를 12년이나 부양했고 거기에다가 세상 모르는 세 살짜리 손자까지 있으니 정말 양로원과 탁아소라고 했다. 거민위원회도 모두 이것을 보고 이렇게 좋은 사람은 본적이 없다고 했다. 언니는 오히려 웃으면서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늙은이와 어린이를 보살피기는커녕 자신의 명도 보전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4. 대법은 외조카의 생명을 지켰다.

 

 

 

 

 

 

나의 작은 여동생은 어려서부터 허약하고 병이 많았으며 20살이 좀 넘었을 때 또 빙의가 되어 온종일 비정상적이며 의식이 똑똑하지 못했다. 결혼 후 남편도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온종일 정신이 이상했으며 하루에 5위안을 받고 세차장에서 일하려고 해도 취직되지 않았다.(정상적인 사람은 하루에 2,30위안은 받는다) 그러므로 그의 집 생활비는 온 친척들의 구제에 의지했다. 큰 딸은 태어나서 한 달이 되자 할머니가 부양했다.

 

 

 

 

 

 

동생이 배가 부풀어난 것을 보고서야 그녀가 또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다. 친척들의 협의해 이 아이를 나을 수 없다고 여기고 그녀에게 인공유산을 하라고 했지만 동생은 기어이 가지 않았다. 결국 친척들은 할 수 없이 그녀에게 병원에 가서 태아를 보살핀다고 거짓말을 해서야 나를 따라 병원에 갔다. 의사가 아랫배 부위에 침을 꽂으려 할 때 그녀는 벌떡 일어나 나를 때리면서 “아이를 보살핀다면서? 여기에 찌르면 아이가 죽을거야!”

 

그녀는 또 나에게 주먹질을 하면서 “언니는 알아요? 이건 살인이예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평소에 이렇게 이치에 맞게 말한 적이 없다. 당시 나는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빌어 나를 점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나를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면서 병원 3층부터 1층까지 끌고 나왔다. 아는 사람이 의사에게 청해 이튿날 여동생 집에서 유산시키려 했다. 이튿날 차를 타고 의사와 의료기계를 여동생 집에 가져가기로 했다.

 

 

 

 

 

 

이 일체를 배치하고 저녁에 법공부 팀에 도착하자 모두들 왜 지각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지각한 원인을 솔직히 여러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다. 동수는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은 살생입니다! 당신이 수련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사람은 출생한 후에야 영혼이 있지 않아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살생이라니?”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두 가지 원인 즉 1. 여동생의 큰 애가 태어난지 한 달 만에 시어머니가 부양하는데 지금 시어머니도 직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만약 이 아이를 낳아도 부양할 사람이 없다. 2. 여동생이 부작용이 큰 약을 복용했기에 건강한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보도소장은 내 집착을 보고 여러 사람들에게 오늘 저녁에는 다른 것을 제쳐놓고 전문적으로 그녀를 도와주자고 했다. 동수들은 적극적으로 나를 인도했다. “아이가 출생해 보살필 사람이 있는지, 혹은 건강한 아이인지는 그 본인의 업력의 대소에 의해 결정됩니다. 마땅히 집착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들이 줄곧 나를 저녁 10시까지 인도했지만 나는 이해하지 못해 여러 동수들에게 “여러분은 걱정하지 말세요. 사부님께서 낙태가 살생이라고 하시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나는 개변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보도소장은 “사부님의 금년 3월 『뉴욕 좌담회 설법』에 곧 도착하는데 제가 이미 한권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합시다. 즉시 집에 돌아가 전화기를 드세요. 전화로 들려주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전화기를 들고 그가 읽는 소리를 들었다.

 

 

 

 

 

 

제자: 낙태도 살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부: 그렇다. 임신한 후, 낙태하는 것은 살생이다. 당신이 인류의 도덕이 어떠하든지, 인류와 법률에서 승인하든 말든 법률은 신을 대표할 수 없다. 당신이 살생했으면 곧 살생이다. 당신이 법률상에서 살생하지 않았다는데 그것은 사람이 말한 것이다. 우리는 부인과 병원에 많은 영아가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 공간 장 범위에 사지가 건전하지 못하거나 혹은 사지가 구전하지만 아주 어린고 어린 생명들이 거기에서 갈 곳이 없어 헤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본래 이런 생명들은 전생하여 그의 노정이 있고 가능하게 얼마동안 산 후 다시 윤회에 진입해야 하는데 태어나기도 전에 당신이 그를 살해했다. 그럼 그는 이 기나긴 세월을 몸부림치면서 그렇게 작은 생명이 고독하고 그렇게 가련하다! 그는 줄곧 그가 인간세상에서 살도록 한 하늘이 정한 나이의 전부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다음 윤회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단번에 그를 그렇게도 고생스러운 경지에 처하게 한다면 당신이 말해보라 그것이 그래 살생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업력을 갚으려면 매우 크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낙태는 살생이라고 명백히 이야기 하셨다. 나는 내 행위에 대해 겁이 났다. 이튿날 아침 나는 병원에 달려가 낙태하지 않겠다고 했다. 의사는 소독한 의료기기를 가리키면서 “보세요. 이미 소독해 놓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며칠 안 되어 전 지역에서는 금방 도착한 사부님의 『뉴욕 좌담회설법』공부했다.

 

나는 사부님의 사진 앞에서 고통스럽게 울면서 “자비하신 사부님, 당신은 제자로 하여금 살생하여 업을 짓지 않도록 제때에 사람을 데려다 점화하시고 제자는 사부님께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 제자는 꼭 집착을 버리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여동생이 여자 아기를 낳았을 때 나는 아이가 건강할 뿐만 아니라 건전하며 신선하고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했다. 모두들 예쁘다고 칭찬했다. 일요일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말씀하기를 “여동생이 오늘 고향에 왔는데 아이를 안고 오지 않았던데 한 달밖에 안 된 아기를 누구에게 맡겼느냐?”고 물어보셨다. 내가 역전에 가서 문의했더니 여동생이 차에 오를 때 아이를 안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즉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를 가는 길에서 잃어버린 것이라고 했다. 밤중이 되어 나는 아기를 찾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여동생이 차에 내리다 병이 발작해 아이를 강변 갈대밭에 놓았던 것이다. 당시 강변에는 빨래를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아이와 가까운 곳에서도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아이와 먼 곳에 있던 파룬궁수련생이 울음소리를 듣고 아이를 집으로 안아 갔다.

 

 

 

 

 

 

 

 

모두들 이 아이는 명이 길다고 했다. 임신 3개월부터 태어나서 한 달되는 기간에 세 번이나 생사고비를 넘었다! 만일 사부님의 법신의 보호가 없었다면 어찌 제자의 보호로 위험한 고비를 넘어 편안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이 아이는 여동생이 부양하고 있다. 아이는 총명하고 영리하며 세 살 때 어른이 밥을 지으면 자기는 가부좌하고 비디오에서 나오는 사부님의 설법을 조용히 들었다. 처음 가부좌를 할 때 단번에 30분간 했으며 모두들 가부좌하는 자세가 좋다고 칭찬했다. 지금 그 아이는 이미 12살 되는 대법 제자다! 우리집과 신변의 대법제자의 신기한 일은 아직도 아주 많다!

 

 

 

 

 

정말로 나는 금생금세에 대법수련자로 된 것에 긍지를 느낀다! 더욱이 사부님의 제자로 된 것을 더 없는 영광으로 느낀다! 우리는 꼭 대법을 확고히 수련해 원만으로 사부님께 보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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