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팔정도법회 2주년 기념 및 <미산 스님 초기경전 강의> 봉정법회에서 하신 법문입니다.
법우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이 팔정도법회가 정식으로 출범한지 2주년 되는 기념일이고, 또 <초기경전 강의> 봉정법회 날이기도 합니다. 참석해주신 스님들 불자님들 감사합니다.
여기 오신 도피안사 송암 스님은 십수 년간 불교 서적과 일반 서적 70여권을 출간하는 도서출판 도피안사(종이거울)를 이끌어오셨고 더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계십니다. 전부터 일요법회를 강조하셨는데, 오늘 좋은 축사에 감사합니다.
초기경전 책을 출간한 명진출판 대표이신 한상만 거사님도 축사를 해주셨습니다. 첫 책을 정성스레 내주신 데 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초판 1쇄를 찍은지 3주만에 2쇄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또 어젯밤 지인으로부터 교보문고 추천도서가 되었다는 연락도 받았습니다.
제가 책을 잘 내고 글을 잘 써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요즘 불자들이 쉬운 부처님 말씀을 간절히 원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불교 교리책들이 너무 현학적이고 어렵고 일상과 유리된 형식으로 되어 있었기에, 형식과 격을 깬 경전강의가 호응 받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 이렇게 읽기 쉬운 책들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명진출판이라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대중 상대의 도서를 많이 출판하셔서 노하우를 많이 갖고 계시고, 어린이 청소년 서적도 많이 내고 장애우를 위한 점자 오디오 책들을 위해 디지털 판본을 중앙도서관에 기증하셨다고 합니다. 오는 5월 19일에 대대적인 행사를 통해 장애인들에게 책 내용을 전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명진출판에서 이 일에 처음으로 동참하셨는데 판권을 귀속시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솔선해 이런 일을 하셨다는 소식을 국립중앙도서관장님으로부터 듣게 됐습니다. 장애우를 위한 책 출판위원회를 결성한다고 하시어, 제 이름을 올려 조금이라도 활성화에 도움 된다면 기쁜 일이라 생각해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이것도 명진출판과의 인연입니다. 이 좋은 인연이 앞으로도 법을 전하는 인연으로 발전했으면 합니다.
법을 전하기 위해서는 법회를 꾸준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은 종이거울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읽으며 내가 살아온 모습, 현재 모습, 미래 모습이 그대로 종이거울에 비춰지니 책은 정말 중요합니다. 법회를 통해 부처님 말씀을 전한 것이 지금 책으로 나왔지 않습니까.
컴퓨터 프로그램 중에 디지털 파일을 주면 그 디지털화된 프로그램 파일을 바로 소리로 옮길 수 있고 씨디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또 점자로 전환하면 점자책이 됩니다. 이런 운동을 체계적으로 국립도서관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만큼 시대가 변했으므로 부처님 말씀을 강의하면 얼마 안 되어 책으로, 오디오로 나올 수가 있습니다. 법문을 바로 책으로 낼 수 있는 좋은 인연이 성숙한 것이지요. 모든 분들이 같이 연기적으로 마음을 모아주었기에 이런 일들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한 주에 하루, 저녁 일곱시반부터 아홉시반까지 경전학당을 여는데 이 강의를 할 때 저는 신심이 더욱 납니다. 저녁 강의라 듣는 사람도 쉬운 일이 아니고, 하는 사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듣는 여러분은 퇴근해서 공양도 제대로 못하고, 혹은 집에서 설겆이도 제대로 못 하고 서둘러 절에 와야 하지만 빠지지 않고들 오시는 것을 보고, 부처님 말씀의 위력이 굉장하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좀 힘들어도 여러분과 나누는 것을 게을리 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여러분들의 바람과 공덕으로 책이 나와 좋은 호응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불교의 핵심을 연기법으로 잡았습니다. 제가 잡았다기보다, 실제로 부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연기법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연기법을 중심으로 부처님 교설이 체계화되었습니다. 연기법의 삶 속 실천을 제 나름대로는 쉽게, 접근성 있게 강의했습니다.
제가 정진을 하고 경전, 어록, 논서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제 체험이 확실하다는 것이 구체화되더군요. 어제 지산 스님 3재를 지내면서 티베트 쫑까빠 큰스님의 '연기법 찬탄 게송'을 독송했습니다.
티베트 불교는 사상사적으로는 후기에 정립되었으나 가장 왕성하게 세계화되고 있는 불교 전통입니다. 달라이 라마 스님의 세계 인류에 대한 정신적 영향이 매우 큽니다. 현대 문명을 비판하시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두 큰 현대 선지식께서 티베트 불교를 알리고 있습니다. 이는 오직 달라이 라마의 법력에만 의지한 것은 아니고, 티베트 불교의 바탕이 튼실하기 때문이며, 그 바탕은 바로 연기법에 있습니다. 쫑까빠 대사는 티베트 불교가 신비화, 교조화, 형해화(形骸化)로 가는 것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고 논서를 읽으며 핵심 정신을 다시 정립한 분입니다. 연기에 대한 송(頌)을 지어 부처님을 최고의 성인으로 찬탄하고 있습니다. 연기법을 설해 모든 제반 학설을 다 굴복시켰기 때문입니다.
제가 <연기 찬탄송> 앞부분 일부를 읽어보겠습니다.
공성을 보고 자재로 설하신
위없는 지혜 갖춘 최상의 설법자
연기를 보고 가르치신
승리자에게 예경 올립니다.
세상의 어떠한 허물도
뿌리는 모두 무지에서 비롯되니
연기를 보아 무지가 사라지도록
당신께서 연기를 설하셨다네.
그렇기에 현명한 이라면
이 연기를 깨닫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임을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이러할진대 구제주이신
그분을 찬탄함에
연기 설하심을 찬탄하는 것
이보다 더한 찬탄이 어디 있겠는가.
"조건에 의지하는 어떠한 것도
그 모두 실재가 없도다"
라는 말씀보다
더 경이로운 가르침이 어디 있겠는가.
어리석은 이는 연기를 보며
극단의 견해가 더 강해지고
지혜로운 이는 연기를 보며
무명의 그물을 끊는다네.
이런 가르침은 어디에도 없으니
부처님만이 바른 설법자이시네
여우를 사자로 부르는 것처럼
외도를 칭찬함은 아첨이라네.
아! 세존이시여, 경이로운 귀의처시여!
선서이시여, 위대한 구제주시여!
연기를 바르게 설하신
설법자 당신을 예경합니다.
여기 모이신 분들은 연기법을 늘 듣고 배우고 하셨습니다. 부처님 교설에 너무 어렵게 철학적으로 접근하기에 연기법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심리 현상, 물질 현상에 연기법은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이 법회에 동참하신 여러 인연만 보더라도, 전부 연기적으로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팔정도 2주년 기념 법회 겸 봉정 법회를 열기 위해서는 발의자가 있었습니다. 발의자의 마음 속에서 말로 나오고, 여러 사람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고, 알리고, 식순을 정하고 꽃을 올리고 책을 봉정하고...... 등등 여러 행위들이 같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최초로 뜻을 낸 것을 원인이라 하면 그 뜻을 중심으로 수많은 것들이 조화롭게 관계를 맺으며 오늘 여기서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연기법을 멀리 있다고 생각하기에 삶 속에서 연기법 실천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삶과 수행이 둘이 아니라는 차원에서, 제가 늘 하는 얘기가 반복되지만, 끊임 없이 제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연기법을 삶 속에 실천한다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사무량심을 늘 쓰는 것입니다. 법경(法鏡) 즉 법의 거울에 비춰진 마음, 부처님과 같은 마음을 갖고 태어난 자성불(自性佛)이 바로 우리 본래 마음입니다. ‘불’이란 깨친 자, 늘 그러한 자, 여여한 자를 말합니다. 우리 본래 마음은 늘 거울처럼 밝고 맑게 비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량분별, 미워하고 싫어하고 자기중심적인 심의식에 의해 교란되고 오염되고 불투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한 군데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들에게 행복, 사랑, 자애를 전해주려는 마음이 자(慈)무량심입니다. 나도 어떤 때는 슬픔, 어려움에 빠지는데 그럴 때 바로 다시 회복하는 것이 비(悲)무량심입니다. 고통에 빠졌을 때 연민[悲]을 갖고 밝은 성품을 비춰 거기서 벗어나는 겁니다. 희(喜)무량심은 밝은 성품이 늘 드러나게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발현될 수 있게, 늘 깨어 기쁘고 밝은 마음을 갖추고 모든 존재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사(捨)무량심은 본래 중도자성이 흐려지는 제1 원인인 좋고 나쁨에 끌려가는 마음을 끊어 <신심명>에서 ‘단막증애 통연명백(但莫憎愛 洞然明白)’ 이라고 하셨듯이 본래 마음이 훤칠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강하게 탐착하고 저항하는 심리적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못하기에 그런 본래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평정심[捨]을 가지면 자, 비, 희로 총체적으로 원만해집니다. 그래서 연기 속에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연기란 다른 말로 하면 공성(空性)입니다. 공성 체득이 있어야 연기법을 체득합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법정 스님 표현대로 ‘텅 빈 충만’, 즉 ‘진공묘유(眞空妙有)’가 됩니다. 진공의 상태에서 이처럼 삼라만상이 묘하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중도자성이 흘러나와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삶이 일상이 되게 하는 것, 이것이 법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마음거울을 비추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두 가지 행사를 준비하시느라 사부대중이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제가 학교 일로 여러 가지 일로 바쁜 가운데 이제 상도선원 불자님들이 “스스로도 잘 해요”라고 생각하니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팔정도법회 초기엔 제가 법회에 앞서 여러 가지를 신경 쓰고 마당에 물도 주고 청소도 하곤 했지만, 지금은 시간상 그럴 수도 없고 또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하면 불자님들 또한 자기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하시는구나 하면서, 또 여기서도 연기법을 절감합니다.
부처님께 감사의 삼 배를 올립니다. 부처님의 크나큰 지혜와 자비가 함께하시기를 기원하며 오늘 법문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