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가 일렉트로닉 뮤직을 시도했던 것과 같은 해(1951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Columbia University)은 콘서트들을 녹음할 목적으로 이 학교 최초의 테이프 녹음기(tape recorder)를 구매했다. 당시 구입한 기종은 '앰펙스'(Ampex) 사가 제작한 프로페셔날용이었다. 이 기계는 당시 이 대학 음악학부 교수였던 블라디미르 우사체프스키(Vladimir Ussachevsky: 1911~1990)에게 관할이 맡겨졌고, 그는 이 기계를 지급받자마자 곧장 실험에 착수했다. 헤르베르트 루스콜(Herbert Russcol)은 이 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악기 연주의 녹음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반향들(sonorities)에 대해, 그(=우사체프스키)는 곧 흥미를 갖게 되었고, 이후 하나의 소리에 다른 소리의 포개놓기(superimposing)를 시도했다."(주52) [중략] "테이프 녹음기가 음향을 변형시키는 악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갑작스레 깨달았다."(주52)
1952년 5월 8일, 우사체프스키는 몇몇 테입 뮤직과 효과음들의 견본들을 발표했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의 '맥밀란 극장'(McMillin Theatre)에서, 자신이 주도했던 '작곡가 포럼'(Composers Forum)을 통해 이 소리들을 시연했다. 여기에는 <치환>(Transposition), <반사잔향음>(Reverberation), <실험>(Experiment), <작곡>(Composition), <수중 왈츠>(Underwater Valse) 같은 작품들이 포함됐다. 우사체프스키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뉴욕에서 행한 공개 콘서트를 통해, 전통적인 악기들을 위해 작곡한 곡들과 더불어 내가 발견한 몇 가지 새로운 예들도 보여주었다."(주52)
이 콘서트를 관람했던 [작곡가이자 지휘자이고 플룻 연주자였던] 오토 르닝(Otto Luening: 1900~1996)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그가 사용한 장비들은 '앰펙스'의 테이프 녹음기와..... [중략] 그리고 뛰어난 젊은 엔지니어 피터 마우제이(Peter Mauzey)가 설계한 단순한 상자처럼 생긴 장치였다. 이 장치는 기계적으로 창조한 잔향의 일종인 피드백(feedback: [역주] 끊임없이 이어지는 음) 음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밖의 장비들은 빌려오거나, 사비로 마련했다고 한다."(주53)
(동영상) 블라디미르 우사체프스키는 무선 전파의 소리를 테이프 음악에 도입했던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 <무선 판타지>(Wireless Fantasy).
콘서트가 열리고 꼭 3달 후인 1952년 8월, 우사체프스키는 르닝의 초청을 받아 자신의 실험 내용들을 보여주기 위해 버몬트(Vermont) 주의 베닝턴(Bennington)을 방문했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다양한 작품들을 공동으로 작업했다. 르닝은 이 작업에 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나는 이어폰을 장착한 채 플륫을 들고서, 나의 첫번째 테이프 녹음기 작품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우리 두 사람은 모두 능숙한 즉흥연주자들(improvisors)이었고, 그 장비가 상상력을 폭발시켜 주었다. [중략] 우리 두 사람은 비공식적인 어떤 파티에서 일부 초기작들을 연주했다. 그곳에 있던 수많은 작곡가들이 매우 진지하게 우리를 축하해주면서, '이게 바로 그것'이라 말했다. 여기서 '그것'이란 미래의 음악을 말했다."(주53)
소문은 빠른 속도로 뉴욕에 전해졌다. [음악전문 경영관리자이자 작곡가였던] 올리버 다니엘(Oliver Daniel: 1911~1990)이 두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초대했는데, 르닝은 그 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니엘은 우리를 초대하면서, '미국 작곡가 연맹'(American Composers Alliance)과 [미국의 3대 저작권 기구 중 하나인] '미국 방송음악 저작권 협회'(Broadcast Music, Inc.: BMI)가 후원하는 공연이 10월에 있을 예정이니, 소품들을 작업해달라고 말했다. 이 공연은 '뉴욕 현대 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서, 레오폴드 스토코우스키(Leopold Stokowski: 1882~1972)가 지휘하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동의했다. [중략] [음악가이자 화가이고 흥행가였던] 헨리 코웰(Henry Cowell: 1897~1965)은 뉴욕 주, 우드스탁(Woodstock)에 위치한 자신의 집과 스튜디오를 우리가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는 빌린 장비들을 우사체프스키의 차 뒷트렁크에 싣고 베닝턴을 떠나 우드스탁으로 가서, 2주일 동안 머물렀다. [중략] 1952년 9월 말, 우리의 실험실 전전은 뉴욕에 엤는 우사체프스키의 집 거실에서 끝났다. 그곳에서 우리는 마침내 작품들을 완성했다."(주53)
1952년 10월 28일, 우사체프스키과 르닝은 미국 최초의 테이프 음악 콘서트를 열었다. 이 콘서트에서 발표한 작품에는 르닝의 <판타지 인 스페이스>(Fantasy in Space: 1952년작)도 포함됐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거장의 작품"(주53)으로, 플륫 연주의 녹음들을 기계적으로 조작하는 기법이 사용됐다. 그리고 르닝의 <저속>(Low Speed: 1952년작)은 "플륫의 소리를 원래의 음역대보다 한참 더 저음으로 만든 이국적인 작품"(주53)이었다. 이 두 작품은 모두 우드스탁에 위치한 헨리 코웰의 집에서 창작된 것이었다.
(동영상) 오토 르닝의 1952년작, <저속>.
우사체프스키과 르닝이 뉴욕에서 몇 차례의 콘서트들을 개최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키자, NBC 방송의 생방송 프로그램 <투에이 쇼>(Today Show)가 이들을 초청하여 인터뷰 및 연주를 들었다. 이것은 TV로 방송된 최초의 일렉트로-어쿠스틱 공연이었다. 르닝은 이 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나는 테이프 녹음기 앞에서 [플륫] 음렬들을 즉흥적으로 변형시켰다. 그러면 우사체프스키가 그 소리들을 전자적으로 변형시켰다."(주54)
1954년이 되면, 현재 우리가 어쿠스틱에 참다운 전자적 요소들이 가미된 작품들로 볼 수 있는 작품들이 출현한다. 이것은 전통적인 어쿠스틱 악기들을 녹음한 후 그것을 조작하거나, 아니면 순수하게 전자적으로 생성시킨 소리들을 가미하는 것이다.
이 해에 초연된 3대 작품들에는 에드가르드 바레즈(Edgard Varèse: 1883~1965)가 작곡한 <사막들>(Déserts)이 있었다. 이 작품은 챔버 오케스트라와 테이프의 협연을 위한 곡이었다. 그리고 르닝과 우사체프스키가 함께 작곡한 <루이스빌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위한 광시적 변주곡>(Rhapsodic Variations for the Louisville Symphony)과 <사이클과 벨들을 이용한 시>(A Poem in Cycles and Bells)가 나머지 두 작품들로서, 두 곡 모두 관현악단과 테이프가 함께 연주하도록 편성된 곡들이다.
바레즈는 프랑스에 있던 피에르 셰페르(Pierre Schaeffer: 1910~1995)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전자적 소리보다는 보다 더 구체적인 소리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앞의 제2-1편 '뮈지크 콩크렛'[=구체음악] 참조). 이에 대해 미카엘 크루츠(Michael Kurtz)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관악기, 타악기, 피아노로 이뤄진 악기군이 공장의 소음이나 선박의 고동소리, 자동차 소리와 같이 변형된 소리들을 내는 2대의 확성기 스피커와 교대로 연주했다."(주55)
바레즈의 <사막들>은 파리에서 초연될 당시, '라디오 프랑스'를 통해 사상 최초로 스테레오(=2트랙) 방송으로 전달됐다. 함부르크(Hamburg)에서 개최된 독일 초연에서는, [이태리 작곡가인] 브루노 마데르나(Bruno Maderna: 1920~1973)가 지휘하고, [독일 '일렉트로니셰 무식'(elektronische Musik: 직역-'전자음악')의 선구자인] 칼하인츠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1928~2007)이 테이프 플레이어를 운용했다.(주55)
바레즈가 <사막들>이란 제목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것은 다음과 같다.
"<사막들>이란 제목은 외계에 있는 곳이던 텅빈 노상에 있는 것이든 모래, 바다, 눈(雪) 등으로 구성된 모든 물리적 사막들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동시에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사막들도 의미했다. 그것은 황량함, 초연함, 시간의 무한성 같은 자연의 벌거벗은 측면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동시에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는 머나먼 내적 공간도 의미했다. 그것은 인간은 홀로 되는 공간이며, 미스테리한 공간이고, 본질적인 고독을 의미하는 것이다."(주56)
'컬럼비아 대학'의 '컴퓨터 음악 연구소'(Computer Music Center: CMC)는 원래 1950년대에 '컬럼비아-프린스턴 전자음악 센터'(Columbia-Princeton Electronic Music Center: CPEMC)라는 명칭으로 생겨났고(1996년에 개칭), 그 창립자들은 '컬럼비아 대학' 교수였던 블라디미르 우사체프스키와 오토 르닝, '프린스턴 대학'(Princeton University)의 음악학 교수였던 밀턴 배빗(Milton Babbitt: 1916~2011)과 로저 세션스(Roger Sessions: 1896~1985)였다.
'컬럼비아-프린스턴 전자음악 센터'는 원래 릴 테이프 신기술을 포함하는 음악 작곡을 실험하는 곳이었지만, 이 스튜디오는 금새 전자음악 연구의 무든 부문에 걸쳐 관심을 확장시켜나갔다. 그리고 1959년에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의 기금을 후원받아 공식적인 센터로 출범했다.
이 기금은 1957년에 세계 최초로 이 센터에 설치된 'RCA 마크 투 사운드 신디사이저'(RCA Mark II Sound Synthesizer)의 소유권을 RCA로부터 완전하게 사들이는 데 사용됐고, 이후 'RCA 마크 투'는 이 센터의 주력 장비가 되었다. 컬럼비아-프린스턴 센터의 음악가들도 조언자로서 개발에 함께 참여했던 'RCA 마크 투'는 세계 최초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신디사이저였다.(주57)
(사진) 프린스턴 대학 및 줄리어드 음대 교수였던 밀턴 배빗이 '컬럼비아-프린스턴 전자음악 센터'에 설치되었던 'RCA 마크 투 사운드 신디사이저'를 다루고 있다. 초창기의 컴퓨터가 집채만한 크기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최초의 프로그래밍 가능 신디사이저였던 'RCA 마크 투' 역시 방 한칸 크기의 거대장비였다.
밀턴 배빗은 2011년에 사망하여, 창립 멤버들 중 가장 늦게까지 생존했던 인물이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 <12음계의 조합적 구조의 기능>(The Function of Set Structure in the 12-tone system)은 1946년에 쓰여졌지만, '프린스턴 대학'은 1992년에야 그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대학 당국은 그의 논문이 "이해되기엔 너무 앞선 시대에 작성됐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클래식 음악계와 팝 음악계 모두에 걸쳐 뛰어난 제자들을 많이 배출했고, 그 중에는 양손 태핑(두들기기) 주법으로 유명한 재즈 기타리스트 스탠리 조단(Stanley Jordan)도 포함된다.
저명한 작곡가들이었던 블라디미르 우사체프스키, 오토 르닝, 밀턴 배빗, [퓰리처상 수상자] 찰스 우어리넨(Charles Wuorinen: 1938~ ), [이집트 출신의] 할림 엘-다브(Halim El-Dabh: 1921~ ), [터키 출신의] 뷜렌트 아렐(Bülent Arel: 1919~1990), [아르헨티나 출신의] 마리오 다비도프스키(Mario Davidovsky: 1934~ ) 등이 '컴럼비아-프린스턴 전자음악 센터'에 설치된 'RCA 마크 투 사운드 신디사이저'를 광범위하게 활용하여 다양한 작품들을 작곡했다.(주58)
이집트 출신의 할림 엘-다브는 이 스튜디오 초창기에 함께 했던 음악가들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다.(주59) 그는 이미 1944년에 카이로에서 최초의 '일렉트로-어쿠스틱 테이프 뮤직'(electroacoustic tape music) 작품인 <자르의 표현>(The Expression of Zaar)을 발표한 바 있었고,(주27) [1950년에 미국 유학을 온 후] 1959년에는 <레일라와 시인>(Leiyla and the Poet)을 통해 더욱 유명해졌다. <레일라와 시인>은 일렉트로닉 기법의 작곡을 통한 일련의 작품들로서, 전자음악과 민속음악 사이에 집중적이고 중단없는 퓨전(=융합)이 이뤄진 작품이었다. 그의 작업은 밀턴 배빗과 같은 동시대 작곡가들이 보다 수학적인 접근방법을 사용했던 것과 대조를 보여주었다.
(사진) 1961년에 발매된 <컬럼비아-프린스턴 전자음악 센터> 앨범의 자켓 모습.
엘-다브의 <레일라와 시인>은 1961년에 발매된 <컬럼비아-프린스턴 전자음악 센터>(Columbia-Princeton Electronic Music Center)라는 제목의 앨범 속에 수록되어 발표됐다. 이 앨범은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 작곡가 닐 롤닉(Neil Rolnick: 1947~ ), 뮤지션이자 방송 프로듀서인 찰스 아미르카니안(Charles Amirkhanian: 1945~ ), 여류 작곡가 앨리스 실즈(Alice Shields: 1943~ ), 락 뮤지션 프랭크 자파(Frank Zappa: 1940~1993), 미국의 사이키델릭 락(psychedelic rock) 밴드였던 '더 웨스트 코스트 팝 아트 익스페리멘탈 밴드'(The West Coast Pop Art Experimental Band, 활동기간: 1966~1970) 등 실로 다양한 범위의 뮤지션들이 이 앨범의 영향을 받았다.(주60)
(주52) Russcol, Herbert (1972), The Liberation of Sound: An Introduction to Electronic Music, Englewood Cliffs, New Jersey: Prentice-Hall, p.92.
(주53) Luening, Otto (1968), "An Unfinished History of Electronic Music", Music Educators Journal55 (11월3일), p.48.
(주54) Luening, Otto (1968), 앞의 논문, p.49.
(주55) Kurtz, Michael (1992), Stockhausen: A Biography, translated by Richard Toop., London: Faber and Faber, pp.75~76.
(주56) 익명 (1972), Liner notes to The Varese Album, Columbia Records, MG 31078.
(주57) Holmes, Thom (2008), Electronic and Experimental Music: Technology, Music, and Culture (3rd ed.),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pp.145~146.
소리들을 조작(=가공)하거나 새롭게 합성해내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서 새로운 발전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바로 음악을 작곡하기 위한 목적의 컴퓨터가 출현한 일이다.
[그리스 출신으로 프랑스인이 되었던 작곡가 겸 건축가] 이안니스 크세나키스(Iannis Xenakis: 1922~2001, 우측사진)는 '추정통계학적 음악'(推定統計學的, stochastic music, [프랑스어] musique stochastique)이라 불리는 장르를 시작했다. 이것은 수학적 가능성 시스템을 사용하는 작곡 방법이다. 이 방식은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데, 동일한 매개변수의 조합을 구성한 후, 각기 다른 가능성을 지닌 알고리즘들(algorithms, 연산규칙들)을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크세나키스는 추정통계학적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미 1958년에 <콩크렛 PH>(Concret PH) 같은 초창기 테이프 음악들을 작곡했었다. 그는 전자음악적 공간음악화(spatialization) 및 멀티미디어를 이용해서 실험했고, <폴리타이프 드 몬트리올>(Polytope de Montréal) 같은 여러 폴리토프(Polytope: [역주] 원래는 다면체 도형이나 다각형을 임의의 차원으로 확장하는 기하학적 개념) 곡들을 작곡했다.
크세나키스는 1962년에 작곡한 현악 4중주를 위한 <에스티 포>(ST/4) 및 관현악곡 <에스티 포티에잇>(ST/48),(주61) 그리고 <모르시마-아모르시마>(Morsima-Amorsima), <에스티 텐>(ST/10), <아뜨리>(Atrées)에서 컴퓨터들을 이용했다. 그는 기하학적 이미지들을 음악적 결과로 변형시키기 위해 'UPIC'라는 컴퓨터 시스템을 개발했고, 그를 통해 1978년에 <미케네 알파>(Mycènes Alpha)를 작곡했다.
(동영상) 이안니스 크세나키스의 1978년작 <미케네 알파>. 화면 속의 그래프는 크세나키스가 고안해낸 UPIC 시스템의 입력 그래프이다. 악보를 대신하여 기능한다. 건축가이기도 했던 그는 건축과 음악을 융합시키려고 시도했던 인물이다.
(주61) Xenakis, Iannis (1992), Formalized Music: Thought and Mathematics in Composition, Harmonologia Series, No 6 (revised, expanded ed.), Stuyvesant, NY: Pendragon Press.
2.8. 1950년대 중후반
1954년, 칼하인츠 슈톡하우젠은 <전자적 연구 2>(Elektronische Studie II)를 작곡했는데, 이 작품은 악보로 출판된 최초의 전자음악 작품이었다.
1955년에는 보다 실험적이고 전자음악적인 스튜디오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 중 주목할만한 스튜디오들에는 '프랑스 국영 방송국 스튜디오', 마유즈미 토시로우(Toshiro Mayuzumi, 黛 敏郎: 1929~1997)가 주도하여 일본 도쿄에 만들어진 'NHK 방송 부설 스튜디오', 네델란드 아인트호벤(Eindhoven)에 만들어진 '필립스 스튜디오'(Phillips studio) 등이 있다. '필립스 스튜디오'는 1960년에 '음향학 연구소'(Institute of Sonology)라는 명칭으로 개칭되어, '위트레흐트 대학'(University of Utrecht)으로 이전했다.
미국의 베브 배론(Bebe Barron: 1925~2008) 및 루이스 배론(Louis Barron: 1920~1989) 형제가 작곡을 맡았던 1956년 개봉작 SF 영화 <금지된 행성>(Forbidden Planet)의 사운드트랙(주62)은 그 전체가 수제작으로 만든 전자회로 및 테이프 녹음기들을 사용해 작곡됐다.
(동영상) 1956년에 개봉된 공상과학 영화 <금지된 행성>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음악 연주에 사용된 세계 최초의 컴퓨터는 호주에서는 최초로 개발된 디지털 컴퓨터 '사이랙'(CSIRAC)이었다. 이 컴퓨터는 트레버 피어시(Trevor Pearcey: 1919~1998)와 맷슨 비어드(Maston Beard)가 설계하고 제작한 것이다.
(사진) '멜버른 박물관'(Melbourne Museum)에 전시되어 있는 CSIRAC 디지털 컴퓨터.
수학자 저프 힐(Geoff Hill)은 1950년대의 매우 초기부터 CSIRAC이 대중음악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했다. 1951년, CSIRAC은 [영화 <콰이 강의 다리> 삽입곡으로도 유명한] <보기 대령 행진곡>(Colonel Bogey March)을 공개적으로 연주했지만, 그것을 녹음했다는 기록은 없다.(주63) 하지만 CSIRAC은 표준적인 레퍼토리들만 연주했고, 음악적 사고나 작곡 활동으로 그 역활을 확장하지는 않았다. CSIRAC의 음악은 결코 녹음된 적이 없지만, 연주된 음악을 정확하게 재현할 수는 있었다.
캄퓨터가 생성해내는 음악으로서, 가장 최초로 녹음된 기록은 '페란티 마크 원'(Ferranti Mark 1) 컴퓨터가 연주한 것이었다. 이 컴퓨터는 '맨체스터 대학'(University of Manchester)에서 개발됐던 세계 최초의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stored-program computer)인 '베이비'(Baby: 정식명칭은 SSEM)를 상업용으로 개량하여 1951년 가을에 출시한 것이다. 이 컴퓨터의 음악 프로그램은 영국의 캄퓨터 과학자 크리스토퍼 스트래체이(Christopher Strachey: 1916~1975)가 작성한 것이다.
(동영상) 영국 BBC는 1951년 가을에 '맨체스터 대학'에서 '페란티 마크 1' 컴퓨터가 연주하는 음악 소리를 녹음했다. 이것은 컴퓨터가 연주하는 음악으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녹음 기록이다.
컴퓨터의 충격은 1956년에도 계속됐다. [미국 작곡가인] 레자렌 힐러(Lejaren Hiller: 1924~1994)와 레오나르드 아이작슨(Leonard Isaacson)은 현악 4중주를 위한 작품 <일리악 조곡>(Illiac Suite)을 작곡했다. 이 곡은 알고리듬 작곡법을 사용하여 컴퓨터의 도움을 받았던 최초의 완전한 작품이었다. 엘리엇 슈왈츠(Elliott Schwartz: 1936~ )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힐러는 컴퓨터가 특정한 형식의 규칙들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작곡을 하도록 시킬 수 있다고 상정했다."(주64)
이후의 발전과정에는 [컴퓨터 음악의 선구자인] 맥스 매튜스(Max Mathews: 1926~2011)가 1957년에 '벨 연구소'(Bell Labs)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음악 프로그램인 '뮤직 원'(MUSIC I)을 개발한 일도 포함된다. 보코더(Vocoder: [역주] 사람의 음성신호를 전자적으로 변환하는 것) 기술 역시 이 초창기에 있었던 주요한 발전 중 하나이다.
(사진) 자신이 만든 '클라비복스' 신디사이저와 함께 있는 래이몬드 스콧.
1956년, 슈톡하우젠은 <젊은이들의 노래>(Gesang der Jünglinge)를 작곡했다. 이 작품은 쾰른(Cologne)에 위치한 WDR(서부 독일 방송, Westdeutscher Rundfunk)의 '전자음악 스튜디오'에서 나온 첫번째 주요 작품으로서, <구약성서>(Old Testament)의 "다니엘서"(Book of Daniel) 내용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이 해에 있었던 중요한 기술적 발전에는 [미국 작곡가] 래이몬드 스콧(Raymond Scott: 1908~1994)이 로버트 무그(Robert Moog: 1934~2005)가 만든 테레민을 이용하여, 키보드 형태의 신디사이저인 '클라비복스'(Clavivox)를 발명한 일이다.
1957년에는 [네델란드 작곡가들인] 킷 발탄(Kid Baltan, 본명은 딕 라이마커스[Dick Raaymakers]: 1930~ )과 톰 디세펠트(Tom Dissevelt: 1921~1989)가 자신들의 앨범인 <2번째 달의 노래>(Song Of The Second Moon)을 '필립스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후 발표했다.(주65)
(동영상) 팃 발탄과 톰 디세펠트의 앨범 <2번째 달의 노래>.
(동영상) 팃 발탄과 톰 디세펠트가 1959년 '필립스 스튜디오'에서 자신들이 각종 장비들을 이용하여 음향을 합성해내는 과정을 설명한 다큐멘터리 동영상.
1958년 '브뤼셀 월드 페어'(Brussels World Fair: 1958년 엑스포) 당시, 에드가르드 바레즈가 '필립스 관'(Phillips Pavilion)에서 확성기 400대 이상을 동원한 곡 <일렉트로닉 시(詩)>(Poème électronique)를 시연하여 공간적 혼입을 도출했을 때, 대중들은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던 새로운 사운드에 대한 흥미를 갖고 있었다.
같은 해,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하던 작곡가 마우리치오 카겔(Mauricio Kagel: 1931~2008)은 <과도기 2>(Transición II)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쾰른의 WDR 스튜디오에서 실연됐다. 2명의 뮤지션이 1대의 피아노에서 연주했는데, 1명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연주했고, 다른 1명은 피아노의 현이나 금속 프레임, 혹은 피아노 케이스 부분을 연주했다. 두 연주자는 미리 녹음된 음원이 나올 때 생음악과 일치될 수 있도록 테입을 사용했다. 따라서 녹음된 과거의 부분이 실제 공연에서는 먼저 연주되고 있었다.
(동영상) 마우리치오 카겔의 작품 <과도기 2>. 2011년 6월 21일 이태리에서 행해진 공연.
[연주자] 피아노: Andrea Stefenell, 퍼커션: Stanislas Pili, 엘렉트로니카: Salvatore Livecchi.
(주62) "최소한 베브 배론과 루이스 배론의 <금지된 행성> 사운드트랙이 나온 이후로는, 특별한 합성적 음질을 지닌 전자음악이 영화 속에서 외계를 표현하는 역할을 맡았다." --- Norman, Katharine (2004), Sounding Art: Eight Literary Excursions through Electronic Music, Aldershot: Ashgate Publishing, Ltd.,p.32).
(주63) Doornbusch, Paul (2005), The Music of CSIRAC, Australia's First Computer Music, with accompanying CD recording, Australia: Common Ground Publishers.
(주64) Schwartz, Elliott (1975), Electronic Music, New York: Praeger, p.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