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헤미야 강해(5) 2023. 8. 20
헌신의 기회를 잡으라
느헤미야3:1-32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남자배우 중에 황정민 씨를 아십니까?
[신세계] [히말라야] [베테랑] [곡성] [국제시장] 등, 수많은 흥행작의 주연을 맡았던 배우입니다.
2005년 청룡영화제에서 ‘너는 내 운명’이란 작품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이렇게 수상소감을 밝혔습니다.
"... 솔직히 저는 항상 사람들한테 그래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왜냐하면 60여 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저는 숟가락만 얹고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거든요. 근데 스포트라이트는 제가 다 받아요. 그게 너무 죄송스러워요"라고 말했습니다. 영화 주연배우가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다 받고, 상도 받고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스태프들의 수고가 없으면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느헤미야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결단과 리더십은 참 대단합니다. 위대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며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2장에서 우리는 그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공사는 느헤미야 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헌신이 함께 해야 성벽을 완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의 헌신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3장에서 헌신한 사람들과 가문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힘을 모아준 자랑스러운 백성들의 명단이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간증의 사람, 느헤미야>
앞서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사흘 만에, 소수의 측근들과 함께 몰래 밤에 일어나서 예루살렘 성을 한 바퀴 돌면서 현장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의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처참하게 무너져있었습니다. 이것은 몇 사람의 의기투합으로 이룰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유대인이 다 함께 힘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날을 정해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귀족들, 그리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최대한 한자리에 모으고,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고 격려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자신에게 임하였던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간증하였습니다(18). 느헤미야의 간증을 들은 많은 유대인이 성전을 재건하자고 하는 열정을 회복하였습니다. ‘자, 일어나 건축합시다’라며 동조하였습니다.
<동역의 원리 - 위임과 분담>
느헤미야는 성벽을 40개 구역으로 나누어서 동시다발적으로 성벽을 쌓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구역마다 책임을 맡을 사람들을 세우고 위임하였습니다. 이 공사에는 개인 38명과 42개의 그룹(가문 포함)이 참가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의 헌신을 잊지 않고, 이름과 거주지와 직업 혹은 직책까지 하나하나 다 기록하였습니다.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주의 일을 하는 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그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입니다(느헤미야 - 동기 부여).
둘째는 ‘분담과 위임’입니다. 느헤미야는 혼자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동역자를 세워 그들이 분담하여 책임을 지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느헤미야의 리더십입니다. 그렇습니다. ‘혼자 잘하는 사람’보다 ‘함께 잘하는 사람’이 훨씬 더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전4:9~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주의 일을 할 때에도, 독불장군으로 하지 말고 함께 동역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헌신한 각계각층의 사람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동역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제사장들 모범을 보였습니다.
1절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헌신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제사장은 제사하는 일만 전담하는 특별히 구별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평소에도 백성들과 구별되는 옷을 입었습니다. 가슴에는 흉패를 붙이고, 그 위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개의 보석을 달고, 머리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금패를 단 터번을 둘러야 했습니다. 그들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었기에 얼마든지 성벽 쌓는 일에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물론 성벽의 필요성을 가장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도 육체노동에 기꺼이 참여한 것은 대단한 결단입니다. 아마도 느헤미야에게 힘을 실어 주고, 백성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백성들은 그들의 모습만으로도 큰 용기와 도전을 받았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도자가 먼저 헌신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헌신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역자들이 가장 충성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장로님과 임원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지도자들이 희생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지도자들이 가장 먼저 허리띠를 매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에 앞장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한편, 그들이 맡은 구간은 예루살렘 성전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양문’이었습니다(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 지도). ‘양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성전에서 희생 제물로 바쳐질 양들이 이곳을 통해서 반입되기 때문입니다. 이 문이 기준으로 ‘첫 번째 구간’이 정해졌는데, 이는 예루살렘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과 신앙의 중심임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이 ‘양문’을 기준으로 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다시 ‘양문’까지 도달하기까지 40구간을 정해 각 사람에게 분담하게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먼 곳에서 와서 도운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2절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대부분의 책임자는 성벽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자기 집 앞의 성벽 – 10절).
그런데 멀게는 20~30km 떨어진 곳에 살던 사람들도 와서 함께 헌신했습니다. 여리고 사람들(2), 드고아 사람들(5), 기브온 사람들(7), 미스바 사람들(7, 19), 하눈과 사노아(13), 벧학게렘(14), 벧술(16), 그리고 그일라(17) 사람들도 기꺼이 예루살렘에 와서 공사를 도왔습니다.
당시에 무슨 자가용이나 출퇴근 버스가 있었겠습니까? 그냥 아침저녁으로 그 먼 길을 걸어서 다녔거나, 아니면 예루살렘 주변에서 노숙하였을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들은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 일이 자신들의 안위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족의 안위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원정을 와서 동족을 도왔던 것입니다.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전형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계시는 분들도 있지만, 또 어떤 분들은 먼 곳에서 매 주일 출석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참 감사한 분들입니다.
세 번째는 지역 사람들이 아니라, 한 가문이 맡아 헌신하기도 하였습니다.
3절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한 사람의 개인적인 헌신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온 가족이 함께 헌신하는 모습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부부가 함께 헌신하고, 부모 자녀가 함께 사역하는 그런 모습을 볼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리더십을 세우는 가장 중요한 기준을 ‘가족의 헌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인가 귀도 되는 것이 물론 기본입니다만, 온 가족이 함께 헌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리더십들이 우리 교회에 계속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는 다양한 직군(직업)의 사람들이 헌신하였습니다.
8절 “그 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 등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향품 장사 하나냐 등이 중수하되 그들이 예루살렘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
‘금장색’은 ‘금 세공업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31~32). ‘향품 장사’는 말 그대로 향수를 만들어서 장사를 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전문 직업인(기능공)입니다. 이들은 매우 정교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큰 돌을 나르고 쌓는 노역을 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또 특정 지역을 다스리는 관리자들도 헌신에 동참하였습니다.
9절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의 절반을 다스리는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
12절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의 딸들이 중수하였고.”
예루살렘 성의 절반을 통치하던 르바야와 다른 절반을 다스리던 살룸이 보수 공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관리자입니다.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기꺼이 동참하였습니다.
특히 살룸은 자기의 딸까지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여성들도 성벽 공사에 함께 참여하였던 것입니다.
그 외에도 ‘레위 사람들’(17)도 있었고, 지방 관리(18)도 있었습니다.
17~18절 “그 다음은 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하사뱌가 그 지방을 대표하여 중수하였고/ 18 그 다음은 그들의 형제들 가운데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헤나닷의 아들 바왜가 중수하였고.”
또 ‘상인’들도 있었습니다. 32절 “성 모퉁이 성루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인들이 중수하였느니라.”
상인들의 최대 관심은 장사해서 최대의 이윤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직업상 이득이 없는 일에는 잘 뛰어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음료수나 음식을 팔아서 돈을 벌 생각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이번 새만금 잼버리 때, 공식 후원사인 대기업 편의점이 바가지요금을 받아 논란이 됨). 하지만 이들은 그러한 상업적인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성벽을 쌓는 일에 직접 뛰어들었습니다. 손해를 감수한 것입니다.
이토록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동참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 중에 목수나 석공은 없었습니다. 대부분 건축과 관련 없는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작은 힘이라도 성벽을 쌓는 일에 보태려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예루살렘 주변의 마을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을 텐데, 그들 중에 목수나 석공이 없었을까요? 아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헌신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은 ‘하나님이 사람을 들어 쓰시는 원리’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전1:26~29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헌신하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만을 통해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헌신할 마음만 준비되어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들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데 쓰시는 것입니다. ‘헌신하지 않는 전문가’보다 ‘헌신하는 비전문가’를 통해서 하나님은 더욱 크신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꼭 기억할 것은 ‘모든 사람이 헌신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5절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드고아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는 조그만 마을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어떤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벽 공사를 하기 위해서 출퇴근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헌신한 것은 아닙니다. ‘그 귀족들’, 즉 드고아의 지도층이었던 귀족들은 공사를 분담하지 않았습니다(어떤 유력자들은 공사 책임자들에게 협조하지 않았다는 뜻). 자신들은 너무나 ‘고상하기’ 때문에 그런 힘든 일은 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암시를 주는 내용도 있습니다.
30절a “그 다음은 셀레먀의 아들 하나냐와 살랍의 여섯째 아들 하눈이 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사람이 몇째 아들인 것을 쓴 것은 여기가 처음입니다. 왜 굳이 여섯째 아들인 것을 밝혔을까요? 아마도 그의 가족 중 여섯째 아들 하눈 한 명만 참여했기에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가족들의 반대나 불참에도 불구하고 자원하여 공사에 뛰어들었음을 암시해 준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성벽 재건에 모든 사람들이 참여한 것은 아닙니다. 반대하는 사람도, 조롱하는 사람도, 방관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일에 모든 사람이 다 함께 동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하는 사람도, 방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낙심할 필요 없습니다. 그들도 다 나름대로 다 사정이 있습니다. 비난하기보다는 그들도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격려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여섯 번째, 방관하는 이도 있었지만, 남들보다 배나 더 헌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27절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내민 큰 망대와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오벨 성벽까지 이르렀느니라.”
앞서 5절에서 드고아 사람들이 맡은 구역이 나오는데, 27절에서 또 그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드고아의 귀족들이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드고아 사람들은 마치 보란 듯이 두 구역을 맡아 배나 더 헌신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이 또 나옵니다.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4절a)이라는 사람이 언급되는데, 그의 이름이 21절에 또 나옵니다. 21절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엘리아십의 집 문에서부터 엘리아십의 집 모퉁이에 이르렀고.”
그 역시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로 헌신한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느헤미야가 특별히 강조해서 칭찬한 사람이 있습니다.
20절 “그 다음은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여 성 굽이에서부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문에 이르렀고.”
‘힘써’로 번역된 것은 본래 히브리어로 ‘타오르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삽배의 아들 바룩은 그냥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에너지를 완전히 불태워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마음을 다해’ 일했지만, 유독 바룩이 눈에 확 띌 정도로 열심히 일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구역을 맡아 헌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13~14절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주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까지 성벽 천 규빗을 중수하였고/ 14 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분문'(糞門)은 말 그대로 똥 문, 거름 문, 쓰레기 문입니다. 희생 제사 제물로 쓰이는 짐승의 배설물을 흰놈의 골짜기에 버릴 때 이 문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똥의 문'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더럽고 냄새나는 똥 문 곁에서 성을 쌓는 일은 누구라도 피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학교에서 청소할 때, 가장 하기 싫은 곳은 화장실 청소죠. 그래서 벌칙으로 화장실 청소를 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누구든지 가장 일하고 싶었던 장소는 ‘샘문’이었을 것입니다. 시원한 샘이 있어서 수시로 갈증도 풀 수 있고, 일이 끝난 뒤 목욕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눈과 사노아’에 살던 주민들은 예루살렘 성 주변에 살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성벽 남쪽의 골짜기 문에서부터 분문까지 무려 천 규빗을 중수하였습니다(500m). 아마도 가장 긴 구간이었기에 그 길이까지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분문에 이르기까지 불평 없이 감당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분문의 문은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담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쉽게 인정받을 수 있는 화려한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남들의 인정을 받지도 못하고 눈에 잘 뜨이지도 않고 더럽고 하찮아 보이는 일들을 하려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래서 ‘하눈과 사노아’, ‘말기야’ 같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맺는 말씀 - 헌신의 기회를 잡으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예루살렘 주변에 사는 인구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정확하게 알기 어렵지만, 그래도 수천 명(수만 명?)은 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느헤미야가 기록에 나오는, 헌신한 사람들의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들 중에는 반대자들의 편에 섰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조롱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느헤미야의 간증에 감동했지만, 실제 성벽 공사에는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헌신의 기회를 잡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 헌신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생명책에 기록 - 빌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13:18, 20:12~15, 21:27).
그리고 특별히 기억할 것은,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는 일은 능력 많고 실력 있는 한 사람의 헌신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여러 사람의 ‘동역’이 필요합니다. 비록 작은 힘이라도 헌신하는 마음으로 협력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아름답게, 굳건히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이 무엇이든지 충성된 마음으로 헌신하여,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