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不在)라는 존재(存在)의 흔적을 마주할 때
함께 가고 싶던 돌아앉은 섬 앞으로 뱃머리를 돌린다
“우리는 더는 연인이 아니니
연인의 눈빛을 상상하는 밤이 있지”
서로 다른 시공간을 연결하는 묘사의 힘. 그 초자연적 신비를 보존한 시가 여기 있다. 『나보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간드레, 2021) 이후 3년여 만에 펴내는 이윤학 시인의 열한 번째 시집 『곁에 머무는 느낌』이 간드레출판사 시집 시리즈 ‘간드레 시 03’번으로 출간되었다. 자연과 일상의 이미지를 초월적인 언어로 옮겨내는, 이제는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묘사의 시인 이윤학은 이번 시집을 통해 죽음의 끝에서 삶을 되살리는 경이로운 감동을 선사한다. 4부로 나누어 73편의 시를 실은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상실이 꼭 유실인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저 서로 다른 차원에 있을 뿐이며 그리움이란 어떤 순간, 어떤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젠가 함께 목격했던 ‘거기 앉은 섬’을 확인하러 노 저어 가는 일. 그리하여 당신과 나는 영원한 이별이 아닌 영원한 동경 속에 머무른다.
1부. 상실과 그리움
블라인드를 걷고 슬라이딩도어를 접어 열었지 새벽 어스름의 정원에 엎드린 거위 한 쌍 잔설의 섬이 보였지 반 아름의 뽕나무 밑 자갈이 드러난 맨땅에 엎드려 서로의 날개에 머리를 맞교환한 엊저녁의 일을 알아차리곤 하였지 (중략) 너는 나를 온전히 나로 지켜내는 의지의 발로였지 내가 어쩌지 못할 아픈 신경세포였지 언제나 과분한 현재 사랑이었지 둘이 가고 싶어 안달한 미래의 여름 수국 핀 언덕의 전망 좋은 전원주택지였지 접이식 카약을 주문해야겠지 돌아앉은 섬 앞으로 접이식 카약의 뱃머리를 몰아야겠지 두 손으로 잔물결을 몰아내는 기도를 드려야겠지 밤마다 거기 앉은 섬을 보고 와 눈을 붙여야겠지 땅굴을 파고 들어앉은 당신 문을 열고 나와 눈 감고 입 다물고 바위에 앉을 때까지, 초혼(招魂)의 피아노 연주 이어갈 수 있겠지 -「거기 앉은 섬」
장편 소설의 막장을 쓰는 당신/ 한쪽 눈을 상상하는 밤/ 비 그친 사지(寺址)의 별빛이 있지// 여분의 눈이 있다고/ 상상해 보는 밤이 있지// 긴 머리를 말아 올려/ 볼펜 비녀 꽂은/ 당신의 뒷모습이 있지// 초배지(初褙紙) 발린 벽에 걸린 사진 액자/ 유리 안에 들어간 빛을 태운 원이 번지지/ 번갈아 떠오르는 갈아 끼운 사진/ 사라진 커서가 뒤로 밀리는 밤이 있지/ 턱관절이 오도독뼈를 씹는 밤이 있지/ 사지(寺址)의 별빛과 마주친 밤이 있지// 우리는 더는 연인이 아니니/ 연인의 눈빛을 상상하는 밤이 있지 -「내륙 등대」
우리는 모두 생의 한가운데 외로이 떠 있는 섬을 품고 있다. 그 섬은 “…나를 온전히 나로 지켜내는 의지의 발로”인 ‘너’가 존재하는 곳이다.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삶의 위로, 노스탤지어이자 그리움의 실체가 머물러 있는 너라는 섬은 나를 나로 살아가게 하는 물결이 된다.
만약 어둠이 깊어져 그 섬을 찾지 못하고 우리가 방황할 때 “비 그친 사지(寺址)의 별빛”이 내려앉은 내륙 등대가 추억을 잃은 모든 존재를 기억으로 회귀하는 빛으로 안내해줄 것이다.
2부. 온기 어린 시선
꽃사과가 익어가는 935번 지방도/ 딸내미가 짰지 싶은 벨벳 모자를 쓴 할메/ 전동스쿠터 뒷자리에 영감을 태우고 간다/ 중절모를 쓴 영감 할메 어깨께 인견 블라우스/ 살짝 쥐고 간다 약 타러 도립병원에 간다// 커브길을 돌아 나온 덤프트럭/ 쌍라이트를 켜고 경적을 울리며/ 지나친다 잽싸게 할메 허리를 감고/ 찰싹 등에 붙은 영감 꼼짝하지 않는다/ 벨벳 모자 날아가 굴러가다 멈춘다// (중략) // 시내버스 비상등 켜고 멈춘다/ 선글라스를 끼고 내린 버스 기사/ 할메 벨벳 모자를 주워 씌워준다// 공터에 전동스쿠터 세운 버스 기사/ 할메와 영감을 부축해 태운 버스 기사/ 고마 걱정 붙들어 매고 있으소/ 이따 요기 내려줄 꼬마/ 룸미러로 뒷자리 바라본다 -「혼인관계증명서」
이번 시집에서 눈에 띄는 점은 아버지와 어머니, 남편과 아내의 모습 등 사랑의 대상을 위해 타자화되는 인물에 대한 연민이다. 둘 중 하나의 부재에서 오는 결핍은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의 온전함을 극대화시키며 그리움의 간극을 보여준다. 이윤학은 때로는 능청스럽게, 때로는 집요하고 진득하게, 그리움의 옹이가 된 간극을 예리한 시의 언어로 메꾸어준다. 「혼인관계증명서」에서 전동스쿠터에 올라탄 노부부의 안정감과 틈 없이 밀착된 관계를 시인은 따듯한 시선과 유머로 그리고 있다. ‘룸미러’로 바라보는 노부부의 모습은 삶의 뒤란으로 밀려난 힘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꽃사과처럼 서로의 향기가 되어준 세월의 깊이를 담아낸다.
염색한 지 한참 지난 당신의 반백 머리 원형 탁자 깔판 유리에 볼을 대고 눈을 감았다 얼음이 언 저수지 약방 가는 지름길 얼음장 속에서 머리를 치받았다 서둘러 출구를 휘저어 찾는 손길 무뎌졌다 무녀리가 된 마음 나가 죽지 못한 마음 원형 탁자 깔판 유리에 달라붙은 당신의 웃는 모습 도착할 때까지 깔딱 숨을 쉬었다 -「원형 탁자 유리 깔판」
원형 깔판 유리가 얼음장이 되어 그리움이 투과될 때 그 반대편에 맺힌 상은 무녀리가 된 사랑의 대상이었다. 죽음의 순간까지 맞대 보고픈 차가운 뺨을 그리워하는 모습은 사랑의 대상을 잃어버린 자에겐 현실마저도 얼음의 도가니 속임을 깨닫게 한다. 서로 닿을 수 없는 두 대상을 시인은 원형 탁자 깔판 유리를 매개로 표현하며, 죽음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데칼코마니와 같은 만남을 성사시킨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서야 삶을 기억하듯이 시인은 처절한 몸부림과 같은 사랑의 열병을 삶이 끝난 데에서 수면으로 실어 올린다.
3부. 서부에서의 관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몸인 풍경
낮 전 밭일을 마치고 하우스/ 적부루를 뜯어 샘에 앉아 씻은 부부/ 쌈을 싸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웠다// 밥상을 물린 부부 대청마루에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곯아떨어졌다/ 부룻잎 따이고 입가에 침이 고였다// 적부루 물기를 털어내듯/ 마당에 빗방울 떨어졌다// 처마 및 풍경(風磬)/ 나일론 끈에 묶였다/ 제자리를 맴돌았다 -「서부 -부루쌈」
3부는 서부 시편으로 채워졌다. 시인의 고향인 충남 홍성의 서부와 현재 생활 공간인 안동의 오지 서부, 얼마 전까지 살았던 가평의 산골 마을 서대길이 시공을 초월해 혼재하는 장소이다. 3부의 첫 시는 시인의 부모님이 젊었을 적 한순간을 찍어 뒀다 수십 년이 지난 뒤 인화해낸 작품이다. 힘을 내려놓고 쓰는 한 줄의 묘사에 꽉 들어찬 풍경은 읽을수록 감칠맛이 나고 정감이 있어 허기진 추억에 침이 고이도록 한다.
늙수그레한 남자가 젖병을 흔들어 물렸다/ 우유를 빠는 아이를 지켜보았다 위아래로/ 고개를 흔들어주었다/ 잠이 든 아이를 안고/ 마른걸레를 집어 들었다 평상에 떨어진 오디들/ 구석에 모아 두었다 강보(襁褓)에 싼 아이/ 레이스 달린 모기장 밥상보를 펴 덮었다/ 오남매 젖을 물려 키운 마누라 떠난 하늘/ 오디가 까맣게 익은 하늘 입을 벌려 마중/ 나갔다 뒤집어 들기름 두른 가마솥 뚜껑/ 솔걸에 불붙여 철질하는 소리 간장/ 불고기 굽는 냄새 마누라 산소까지/ 외길을 걸어갔다 -「서부 -오디」
슬픔의 여울목으로 남는 풍경을 옮긴 시편들은 가슴 먹먹한 통증을 전이한다. 「서부 -오디」에서 사내는 젖병을 흔들어 손자 아이의 입에 물려주고, 오남매에게 젖을 물려 키운 아내를 떠올린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아이를 돌보며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아내의 기일에 생전의 아내가 좋아한 간장 불고기를 굽는다. 이별은 모든 오감을 되살아나게 하기에 그녀를 기억하는 호흡마저도 오디처럼 새까맣게 가슴에 멍울이 되어 맺힌다.
4부. 시인의 특권이자 과업 응시.
숨넘어가는 할아버지/ 손목시계를 끌렀다/ 아버지 사타구니에/ 냅다 집어던졌다 -「부엉이」
당신에게 소중했을 손목시계가 혹시라도 유품이 될까 서둘러 아버지의 사타구니에 던진다는 이 시는 짧지만 강렬한 울림을 준다. 예로부터 부엉이는 부를 상징하는 새였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야말로 재물보다 더 값진 의미임을 한 시구로 압축하여 보여주는 탁월한 솜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사랑하는 3대 독자 아들에게 손목시계를 던져주는 아버지의 마지막 한 호흡, 그 순간에도 지나갔을 찰나의 시간은, 우리에게 남은 사랑의 순간이 이토록 간절하고도 터무니없이 짧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바위 동굴에 신접살림을 차리고 새끼 셋을 낳아 키웠다 동굴 언저리 밀사초 군락 바람이 자랐다 바위 절벽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겼다 잃어버린 새끼들에게로 먼저 간 아내 시신을 뗀마에 안치한 남자 노를 저었다 지그재그로 나는 바다제비 먹이를 채 가는 바다제비 허공을 제치며 날았다 바위 절벽 틈 밀사초 군락 땅굴에 알을 낳고 먼 바다와 둥지를 오갔다 풀꽃을 꺾어 아내 시신을 덮은 남자 가족사진을 올렸다 평생을 어부로 산 남자 노를 저었다 -「바다제비」
4부는 이전의 1부로 돌아가 시인이 보여주고자 한 이미지에 마저 힘을 싣는다. 시집의 전반에 자주 등장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자기 반성적이며 고독하고 연민을 자아낸다. 현재(現在) 부재중인 시인의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따라 읽으면 그리움은 과거가 아니며 언제나 현재화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그 어떤 누추한 인간일지라도 우리가 알지 못한 생의 뜨거움이 스며 있을 거라는 사실, 그 진실을 이윤학은 관찰자이자 증인이 되어 담담하게 드러내고 있다.
'나에게 있어 사진이란 머리와 눈과 그리고 마음을 하나의 축에 놓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방식이다.'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말처럼 이윤학은 그의 머리와 눈과 마음을 하나의 축에 놓아 시를 완성한다. 그리하여 시인의 렌즈를 통해 세상으로 나온 시에선 불필요한 피사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짜임새 있고 빈틈없이 정갈하며 감동이 있다. 이윤학의 시집 『곁에 머무는 느낌』은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그리움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기댈 수 있는 따스한 곁이자 흔들리지 않는 축이 되어 줄 것이다.
첫댓글 해설 멋있어요 쌤~♡♡
진원샘밖에 없네요ㅜ
시 자체도, 해설도 비유가 너무 예쁜 것 같아요. 그냥 시만 읽었을 때에도 느껴지는 감정이 있지만 시를 해석하는 데에 미숙한 저로서는 선생님께서 적으신 해설을 읽어보았을 때의 울림이 더 큰 것 같아요. 특히 개인적으로는 <혼인관계증명서>시와 그 해설이 제일 좋았고,
<부엉이> 시의 경우 분량이 짧은 편이라 무슨 의미를 지녔을지 궁금해 몇 번 읽어보았는데, 해설을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의미가 존재한다는 거를 알게 되었네요:D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오호 시를 잘 이해하게 되었다 뿌듯하네용 고마우용^^ 문학적인 좋은 시들이니까 시집 읽어보세용 따봉이에요~
@달꽃 샘도 연송이처럼 윤학 시인님 시 중에 해석이 좀 잘 되지 않았던 부분이 샘도 있었는데, 민주샘 서평을 읽고 너무 잘 이해가 되어서 좋은 서평은 이렇게 의미를 잘 찾도록 도와주는 길잡이가 되어줌을 다시 느꼈지. (진원샘)
그리움은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末)을 인식하게 만들면서도 역설적으로 다시 그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감정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마음의 '섬'으로 남아 자리잡으며 우리가 이따금 그곳으로 노를 저어 돌아올 때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준다. <곁에 머무는 느낌>은 우리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언젠가 그리움이란 교차점에서 다시금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사람에게 그리움이란 우리가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연료이자 걸어온 길에 남긴 향기, 발자취, 또는 과거의 잔상임을 깨닫게 해준다. 남녀노소 관계없이 이 감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며 우리가 내딛는 걸음과 걸음, 그 사이에는 언제나 그런 그리움들이 스며들어 있다고, 그것은 인간에게 필수불가결이자 대체할 수 없는 하나의 원동력이라고 알려준다.
서평을 열심히 읽어주었군요~ 자신만의 해석 좋아용~ㅋ좋은 시집이니 마니마니 읽어보길!!
제가 '곁에 머무는 느낌' 은 이미 구매를 했기 때문에 같이 읽으면서 서평을 보고 있는데요, 제가 아직 내용조차 이해를 하지 못한 시들을 진짜 아름답다는 말 외엔 나오지도 않는 그런 문장으로 해석해주신게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한줄한줄 읽는데 정말 예쁘고 감동적이라 이걸 그냥 서평으로 남기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주쌤 서평을 싹싹 모아서 책으로 보고싶을 정도에요...! 모든 말이 너무너무 좋았지만, '시인의 렌즈를 통해 세상으로 나온 시에선 불필요한 피사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이 진짜 정말 좋았어요. 어떻게 이런 문장을 생각하시지... 이렇게 반드시 읽어야만 한다는 느낌을 받은 서평은 민주쌤의 서평이 처음이었어요. 이런 좋은 서평을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ㅠㅠ!!
문장의 감동보다 어떤 시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에 포인트를 더 주어야, 시 문제 나올 때 제대러 해석할 수 있어요~ 곁에 머무는 느낌 읽어보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 민주샘께 여쭤보며 한 권 정도라도 시를 무서워하지 않도록 해석하는 즐거움을 느껴보길♡
이 서평을 읽으면서 그리움이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나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사람들이지만, 만약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참 짧고 순간적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웅클해졌습니다. '당신에게 소중했을 손목시계가 혹시라도 유품이 될까 서둘러 아버지의 사타구니에 던진다'는 구절은 정말 저의 머리를 강타하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물건들이, 어느 순간 유품이 되어 나를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리움을 그리운 채로 두지 않으려면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움이 후회가 될지, 한때의 추억을 회상하는 매개체가 될지는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뜻깊은 생각을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저 시구의 민주샘 해석이 참 좋다 느꼈는데 희우도 그랬구나 좋은 포인트를 잘 보았네(진원샘) 별 것 아니라 생각했던 사랑하는 사람이 남긴 물건에 담긴 그리움.. 이 시도 참 좋은 시인데, 짧은 구절에서의 긴 여운을 잘 보았구나
첫 문단을 읽자마자, 진원샘께서 마음속엔 바다라는 게 있다고 자주 말씀해 주셨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 바다라는 것에 섬이 있다면, '너라는 섬'에 닿을 수만 있다면 좋을 것만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어둠이 깊어져 그 섬을 찾지 못하고... 내륙 등대가... 빛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등대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어떤 존재들일까에 대한 것이요. 등대가 빛을 아무리 비춘다고 해도, 배가 나아갈 힘을 잃거나 의지가 없다면 일부로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요. 등대는 어쩌면 길을 안내하기만 하는 존재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포기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등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망망대해에서 일어날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서평에서 민주샘이 쓰신 저 문장이 이 시를 정말 더 깊이 있게 이해시켜주는 지점이라 생각하고 이 부분을 샘 역시 너무 좋아함(진원샘) 쌍방향으로 사물의 의의를 생각해보는 방식. 서평의 포인트를 제대로 찾아내는 안목! 좋구나. 의지가 중요하다는 표현 역시 참 좋다.
‘상실이 꼭 유실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저 서로 다른 차원에 있을 뿐이며 그리움이란 어떤 순간, 어떤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젠가 함께 목격했던 ‘거기 앉은 섬’을 확인하러 노 저어 가는 일. 그리하여 당신과 나는 영원한 이별이 아닌 영원한 동경 속에 머무른다.’라는 구절이 인상 깊었습니다. 표현도 표현이지만, 새로운 시각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20년도 못 살아본 짧다면 짧은 인생이지만, 그 속에도 저는 다양한 상실과 각종의 이별을 겪었습니다. 상실이 꼭 유실인 건 아니라는 표현이 무슨 뜻일지 생각해 보았는데, 과거의 모든 상실과 이별을 떠올려 보면 늘 ‘그리움’이란 것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이 밖에도 내면적 성숙이나 회복하는 능력, 새로 느껴보는 감정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흔히 우리는 이별을 떠올려 볼 때 ‘잃다’라는 단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위 서평을 통해, 이는 ‘그리움’이란 것을 남기면서 무언가를 얻게 해주고, 유실과 영원한 이별이 아닌 동경에 머물게 해준다는 전환된 시선을 줍니다.
열심히 읽고 사유화했네요 bb
아직 시의 언어를 꿰뚫는 눈이 흐릿한 저에게 등불이 되어준 해설이었습니다. 무턱대고 읽었다면 그저 아름다운 시구로 넘어갔을 것들도 하나하나 친절하게 해설해주셔서 그 속에 감춰진 그리움의 다양한 형태를 엿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선 저의 마음에 제일 들어왔던 시는 <내륙 등대> 였던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묘사도 아름다웠지만, '우린 더는 연인이 아니니, 연인의 눈빛을 상상하는 밤이 있지' 라는 시구가 보자마자 마음에 멍이 든 것처럼 다가와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시의 주제가 '그리움'인 만큼, 지금도 벅찰만큼 쥐고 있으나 훗날 닥칠 더 거대한 그리움을 두려워하는 저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상실은 꼭 유실이 아니다.' 한 자리가 빠진 내 안의 젠가탑을 보는 것은 분명한 상실의 증거겠으나, 결국 떠나간 것들은 언제나 흔적을 남기고, 비어버린 공간 속에 그 자리만큼의 추억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 헤어짐이란 곧 유실이 아니란 걸 말해주는 것 같아요. 제게 어떤 그리움이 찾아와도 흐르는 눈물 속 이 문장 하나가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서평을 보면서 우리 주변의 결핍이 제 눈으로도 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그리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짧은 생 속 사랑을 전하는 방식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은 되려 삶 주변에 죽음의 문턱이 넘어가져야 발견 됩니다. 이것은 과거이지만 우리에게 현재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의 특권이자 과업 응시.’ 4부를 설명하는 제목입니다. 서평에서「부엉이」라는 시를 소개해줍니다. 이 시를 생각 없이보면 강렬한 이미지라는 수준으로만 보입니다. 하지만 서평에서 말해주듯 부엉이의 상징과 시계가 담고 있는 시간을 언어로 합치며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줍니다. 시인만이 바라볼 수 있으며 바라봐줘야하는 그런 시선을 알려주었습니다.
또한 서평에서 「거기 앉은 섬」에 대해 ‘내륙 등대가 추억을 잃은 모든 존재를 기억으로 회귀하는 빛으로 안내해줄 것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과거에만 있는 것이 아닌 현재에도 보이는 그 그리움을 언어로 잡아주며 저에게 말을 해줍니다. 우리는 그 그리움을 바라보기 위해 살아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우의 경우 전체적으로 시를 읽고 여러 감상평을 정성껏 남겼는데, 그만큼 시에 대한 열정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역시 시반이라 그런가 좋은 작품 핵심 포인트를 잘 정리하고 자기만의 성찰로 이끌어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