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들판의 높은음자리
우리 마을에 처음 철탑이 들어올 때 꽤나 시끄러웠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하필 우리 논이 철탑 자리여서 어머니는 속을 썩이다 못해 몸져누웠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 나지막한 전봇대뿐이던 마을에 들어선 거대한 철 구조물은 낯설었다. 그것이 밤낮으로 도끼눈을 뜨고 동태를 살피는 것 같아 소름 끼친다는 사람도 있고, 그 밑을 지나칠 때 감전될까 봐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철탑이 마을 사람들 눈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렸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났다. 지금도 눈 감으면 고향 집과 함께 들판에 선 철탑이 떠오른다. 철탑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있었다. 그 아래 시멘트 바닥이 제법 넓어서 앉아 쉴만했다. 한여름에 등대고 누우면 찬 기운이 올라와 툇마루인 듯 시원했다. 들일을 할 때 거기서 새참도 먹었다. 흙바닥보다 편편하고 깨끗해서 국수나 막걸리 사발을 펼쳐놓기 딱 좋았다.
철탑은 제철소를 세우기 위한 초석이었다. 산업단지로 확정된 아랫동네는 이미 철거를 시작했고 마을 앞 들판에도 여기저기 붉은 말뚝이 박혔다. 우리 논 열두 마지기를 가로질러 도로가 나고, 변전소와 철탑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어머니는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 땅을 못 주겠다고 논바닥에 드러눕기도 했지만 두 달을 못 버텼다. 나랏일 막을 장사 있겠냐며 어머니 스스로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나서도 미련이 남아 논둑을 어슬렁거렸다. 불도저가 논을 파헤치고 큰 트럭들이 자갈을 쏟아붓자 당신이 마치 돌무덤에라도 깔린 듯 애달파했다.
겨울 공사 끝에 철탑이 완성되었다. 고압선을 양팔에 걸친 철탑이 마을로 성큼 들어섰다. 겅둥겅둥 서산을 넘어와 남성천을 건너 우리 논에 네 발을 딛고 공장 안 변전소로 쑥 들어갔다. 먼 산의 철탑은 콜라병처럼 작게 보였는데 다가올수록 거대해져 올려다보기에 벅찼다. 사람들은 번개와 천둥을 몰고 온다고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철탑 뿌리를 품은 논이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속앓이가 심한지 군데군데 벼가 누렇게 시들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어머니 얼굴도 어두웠다.
학교도 우리 집만큼 어수선했다. 분교까지 있는 큰 학교였지만 철거대상이어서 우르르 전학을 가고 남은 학생들은 새로 지은 작은 교사로 옮겼다. 정든 친구들을 떠나 보낸 산자락의 새 학교는 교실과 책상이 남아돌아 썰렁했다. 운동장 가득 채우며 시끌벅적 뛰어놀던 아이들이 눈에 삼삼했다. 예전 학교는 교실 유리창에 방풍림과 푸른 바다가 가득 들어찼지만 새 학교 주변에는 빙 둘러 야산뿐이었다. 선생님과 함께 산밭에 토마토와 수박을 심고 개울에서 물방개를 잡으며 허전함을 달랬다. 학생 수가 적어 내리 3년을 같은 선생님께 배우고 졸업했다. 그때의 친구들은 지금도 추억의 끝자락을 잡고 끈끈한 정을 이어가고 있다.
학교에 정을 붙이는 사이 철탑도 차츰 낯익은 마을 풍경이 되었다. 낮에는 그 위로 하얀 반달이 쉬어가고 서쪽 하늘 붉게 물들이는 해도 그 위로 넘어갔다. 어둠이 깔리면 기다린 듯 초저녁 샛별이 걸터앉아 반짝거렸다. 철탑은 써레질한 황토물에 발을 담그고, 풋풋한 벼 내음에 취하고, 황금 물결에 둘러싸였다. 눈이 펑펑 내리면 희고 두툼한 눈옷을 입고 들녘을 지켰다. 철탑은 그렇게 우리 곁에 자리를 잡았다.
철탑이 있는 풍경은 가을이 제일 보기 좋았다. 칸칸이 늘어진 전깃줄 그림자가 들판에 내려앉아 한 장의 커다란 오선지를 펼쳐놓은 듯했다. 전깃줄이 윙윙윙 바람 소리를 냈다. 철탑은 높은음자리표라 할까? 음표 없이 부르는 노래에 고추잠자리가 춤을 추고 철탑이 장단 맞추듯 어깨를 들썩였다.
추수가 끝나면 빈 들판에서 떠들썩하니 동네 오빠들이 연싸움을 벌였다. 이리저리 얽혀 실랑이하던 연줄이 끊어지기도 했다. 어느 날 우리 오빠의 연이 끊어져 날아갔다.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며 따라갔다. 휭하니 날아오르던 연은 자석에 끌리듯 우리 논 철탑에 걸렸다. 멀리 날아가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는데 누가 찬물을 끼얹었다. 연 때문에 스파크가 일어나 불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덜컥 겁이 났다. 불이 나면 정말 큰일이 아닌가. 오빠가 벌을 받을 것 같았다. 연에다 이름을 쓴 것은 아니지만 내 책으로 만든 거라 어디 한 곳에 이름이 있을 것 같았고 동네 아이들도 다 보았으니 발뺌을 할 수 없을 터였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다 틈틈이 밖을 내다보았다. 다행히 철탑은 경광등만 깜박일 뿐 불똥이 튀지 않았다. 설핏 잠이 들었을까. 갑자기 ‘불이야!’ 하는 소리에 놀랐다. 철탑이 불꽃에 휩싸였고 순경 모자를 쓴 사람이 우리 집 앞을 서성댔다. 꿈이었다. 잠꼬대하는 나를 어머니가 흔들어 깨웠다.
그 무렵 학교에서 전기에 대해 배웠다. 선생님 이야기는 들을수록 신기했다. 들판에서 천둥 번개가 치면 우산을 접고 피뢰침이 있는 철탑 아래로 피하라 했다. 철탑에 귀걸이처럼 주렁주렁 달린 애자가 전기 흐름을 막아준다는 걸 알았다. 꼭대기에 세운 피뢰침의 접지선이 번개를 땅속으로 흘려보내 큰 나무 밑보다 안전하다 했다. 아이들은 배운 것을 집에 가서 이야기했고 그 덕분에 철탑을 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달라졌다.
철탑은 차츰 마을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제철소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 말고도 마을 입구에 있어 이정표 역할을 했다. 그것을 중심으로 누구네 논이 어디쯤인지 가늠하기 쉬웠다. 보관소 노릇도 톡톡히 했다. 농번기에 마을이 텅 비면 우체부는 편지와 소포를 그 밑에 두고, 이웃끼리 전할 물건을 철탑에 맡기곤 했다. 그 덕에 어머니에게는 철탑이 ‘우리 철탑’이 되었다. 우리 철탑 밑에 두고 가라, 우리 철탑 옆으로 와라, 그렇게 말했다.
프랑스 에펠탑도 처음에는 환영받지 못했다고 한다. 건립 당시부터 해체를 거론했고 파리 시민들은 아름다운 도시에 생뚱맞다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했다. 모파상은 에펠탑이 괴물 같다며 탑이 보이지 않는 곳을 찾아 헤매다, 탑 안에서 식사를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다 기상관측연구와 방송국 기지로 활용하면서 실용성이 인정되었다. 뒤늦게 각광받는 에펠탑처럼 점점 우리 마을의 명물이 되었다.
요즘도 밤이면 철탑 꼭대기에 빨간 불이 반짝인다. 멀리서 보면 뱃길을 밝히는 항구의 등댓불 같다. 어린 날 내 눈에는 정말 그랬다. 그것을 향해 가면 집에 닿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고, 계속 따라나서면 대도시에 다다를 것 같은 희망이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철탑처럼 허리를 곧추세우며 자신감을 키웠다. 철탑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눈에 선한 내 마음의 등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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