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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강해(5) 2024. 7. 17
다윗의 정치적 유언
왕상2:5-12
<다윗의 신앙적 유언>
다윗이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은 두 가지 내용으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선배 신앙인으로서 아들에게 남겨주는 ‘신앙적인 유언’이고, 다른 하나는 선배 정치인으로서 아들에게 남겨주는 ‘정치적인 유언’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신앙적인 유언’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1-3절).
그의 첫 마디는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유언이었습니다.
그 이유도 설명합니다. 싸움이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래야만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온전히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약하면,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고, 상황과 조전에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힘써 대장부가 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다윗 왕 개인의 생각이 아닙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가르치던 ‘형통한 삶의 원리’(신명기 사관)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선배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자녀들에게 남겨줄 유언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힘써 대장부가 되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다.”
우리의 신앙적인 유언도 이와 같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삶’입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실제로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대로 행하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을 따라 걸었던 삶의 모습과 흔적을 더 오래 기억하고 더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너는 그렇게 살아 보라’고 한다면 그 말을 어느 자녀가 마음에 새겨듣겠습니까? 우리가 먼저 부모로서, 신앙의 선배로서 ‘힘써 대장부가 되어 담대히 말씀대로 행하는 본’을 보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의 정치적 유언>
오늘은 다윗이 선배 정치인으로서 아들에게 남겨주는 ‘정치적인 유언’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다윗의 유언에는 몇몇 사람들에 대한 처리 문제가 담겨있습니다.
첫째, 요압에 대한 조언입니다.
5~6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이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그가 그들을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를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6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다윗이 ‘요압’을 지칭하는 데서 벌써 냉기가 흐릅니다. 마치 제삼자를 지칭하듯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라고 부릅니다. 전혀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요압이 누구입니까? 다윗의 누이인 스루야의 큰아들입니다(대상2:16). 그러니까 다윗에게는 손위 조카인 셈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망명에서 돌아온 후 아둘람 굴에 머물던 때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갔다’(삼상22:1)고 하는데, 아마도 그중에 요압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요압은 초창기부터 다윗과 생사고락을 같이 한평생 동지이자 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내 조카’라거나, ‘군대 장관’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마치 제삼자를 지칭하듯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라고 부릅니다.
다윗은 친히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솔로몬이 어리기에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윗은 요압이 ‘자기에게 행한 일’ 즉 그가 아브넬을 살해한 사건을 언급합니다. 아브넬은 사울 왕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사울 왕이 전사한 후에는 이스보셋을 앞세워 북쪽의 10지파에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를 다스릴 뿐이었습니다(7년 동안). 그러던 중 이스보셋과 사이가 틀어진 아브넬이 다윗을 찾아와 이스라엘 장로들을 설득해 ‘다윗을 유다와 이스라엘의 통일 왕으로 세우는 조약을 맺겠다’고 제안합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아브넬은 적장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와 협상하여 평화적으로 통일 왕국을 이룰 기회로 여겼기에 환대하고 돌려보냅니다(삼하 3:21).
그런데 마침 전쟁터에서 돌아온 요압이 이를 알고, 자신의 동생 아사헬를 죽인 원수이므로, 뒤를 쫓아가 아브넬을 죽이고 맙니다(삼하3:29). 이 사건은 사울 왕을 추종하던 남은 세력을 포함하여 하나의 이스라엘을 만들려고 하던 다윗의 계획에 큰 차질을 빚게 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다윗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을 대놓고 죽입니다(삼하18:15). 이일은 다윗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아들이 반역을 일으킨 것도 충격이지만, 자신이 신뢰하는 군대 장관이 자신의 명령을 대놓고 어기는 것에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에 다윗은 요압을 군대 장관에서 물리치고,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던 아마사를 군대 장관에 임명하였습니다.
이것은 요압을 징계하고, 나아가 둘로 나누어진 나라를 화합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질투심과 분노에 사로잡힌 요압이 아마사를 왼손으로 칼로 찔러 죽이고 맙니다(삼하20:10). 요압과 아마사는 이종사촌 사이였습니다. 모두 다윗의 손위 조카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가까운 친척들 사이에 권력욕으로 인한 칼부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는 어떻게든 지파들 사이의 분열을 막고 이스라엘을 하나로 만들고자 노력하는 다윗 왕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었습니다. 요압의 질투심과 권력욕(안하무인)은 늘 다윗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고, 다윗도 그를 어쩌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얼마 전에는 아도니야의 반역에 동조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삼상1:7).
그래서 다윗은 그를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를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요압은 태평한 시대에,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시기와 질투 및 복수심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전쟁터에서나 묻혔어야 할 피를 명분 없이 흘리게 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급기야 다윗은 솔로몬에게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6절)고 유언합니다. 구약시대에 ‘스올’은 선악 간에 모든 죽은 자들이 묻히는 무덤을 지칭하는 표현이었습니다(신약에서는 ‘음부’(게헨나)와 ‘낙원’으로 구분).
그러니까 자연사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반드시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요압을 처단하지 않고 아들 솔로몬에게 그 일을 위임했을까요?
어떤 이들은 당시 다윗으로서는 군대 장관인 요압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즉 다윗은 적어도 자신에게는 충실했을 뿐 아니라 많은 전공을 새운 요압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단하는 것은 오히려 득보다 실이 더 크게 작용하리라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또 혹자는 생각하기를, 다윗은 요압과 공모하여 밧세바의 남편이자 신실하고 용감한 신하인 우리아를 죽게 한 씻지 못할 죄악을 저지른 경험이 있으므로(삼하 11:14-25), 그 일로 인해 양심이 찔려 요압을 직접 처리하지 못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아무튼, 다윗은 요압의 불의한 살해 행위를 잊지 않고 있다가 솔로몬에게 요압을 제거할 것을 명한 것입니다. 솔로몬의 입장에서는 요압이 자신의 반대편인 아도니야의 편에 선 사람이므로 그를 제거해야 할 충분한 이유도 있습니다. 실제로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불온한 시도가 재차 드러나자 그의 동조자였던 요압도 함께 처단합니다(19-25, 28-34절).
둘째,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혜를 갚으라고 유언합니다.
7절 “마땅히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들이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그들이 내게 나왔느니라.”
‘바르실래’는 다윗이 압살롬의 쿠데타를 피해서 길르앗 지방의 마하나임에 도착했을 때,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 일행을 섬겼던 사람이었습니다(삼하17:27-29). 그는 ‘큰 부자’였다고 합니다. ‘큰 부자’였으니까 다윗에게 필요한 것을 가져다가 줄 수 있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부자라고 해서 모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당시의 다윗은 저무는 태양이었습니다. 뜨는 태양인 압살롬에게 잘못 보였다가는 그의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다윗을 섬겼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자리 차지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의 나이는 80세입니다. 그의 고백처럼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삼하19:34). 그렇다면 그는 왜 다윗을 극진히 섬겼을까요? 성경에는 그 이유가 명확하게 기록되지는 않지만, 그에게는 다윗이야말로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유일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목숨을 걸면서까지 다윗 편에 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사람을 돕는 것을 마땅한 일로 여긴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가장 어려울 때 도와주었던 사람은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압살롬의 반역은 다윗에게 가장 큰 위협이었습니다. 이때 자신을 도왔던 바르실래를 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후일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진압하고 다시금 환궁 길에 오르게 되었을 때, 바르실래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으나 바르실래는 자신의 나이가 80세인 것을 들어 완곡하게 거절했습니다. 대신 자신의 아들 ‘김함’을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때 다윗은 바르실래에게 그의 후손들을 보살피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삼하 19:31-39).
다윗은 솔로몬에게 자신이 바르실래에게 행한 약속을 계속 지켜나가도록 유언을 남겼던 것입니다.
셋째, 베냐민 사람 시므이를 처리하라고 유언합니다.
8절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그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악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그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므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시므이는 바후림에 살던 베냐민 지파 사람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서 황급하게 피난 할 때 바후림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곳에 살던 시므이가 나와서 돌을 던지면서 “…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삼하16:7-8) 하며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시므이는 사울 가문의 몰락 원인을 다윗에게서 찾았습니다. 물론 맞지 않는 주장이지만, 그 생각에 사로잡힌 시므이는 하나님께서 압살롬에게 나라를 넘기셨다고 하면서 마음껏 다윗을 조롱했습니다.
이를 들은 아비새가 그를 죽이자고 했으나 다윗은 ‘이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며 참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압살롬의 반란이 실패했고,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는 소문이 시므이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는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유다 지파 사람과 함께 다윗을 영접하기 위해서 요단강으로 가장 먼저 달려 나와서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삼하19:19-20) 하며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시므이는 자신의 저주에 대한 보복의 두려움 때문에 다윗에게 나온 것입니다.
이번에도 아비새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한 사람이니 당장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다윗은 그를 말리면서 “내가 다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니, 오늘은 아무도 죽이지 않을 것이다”(22) 라며 그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 까닭은 시므이가 사울의 출신 지파인 베냐민 지파의 유력한 유지였고, 또 그 무렵은 압살롬 내란 이후 회합책으로 민심을 수습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정치적인 이유로 처단을 잠시 미룬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죽이지 않겠다고 자신이 약속한 것이기에 직접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저주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가 솔로몬에게 대신 처단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9절 “그러나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이므로 그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
다윗은 시므이의 행위를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저주와 모욕이 아닌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시대에는 비록 민심 수습이란 현실적 문제로 그를 처단하지 않았지만 끝내는 처단해야 할 존재로 작정하였습니다. 사실 시므이와 같은 기회주의적 인물은 때가 되면 또다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히 있었으므로, 다윗은 솔로몬의 견고한 왕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므이와 같은 암적(癌的) 존재가 반드시 제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의 죽음>
유언을 마친 다윗은 70세를 일기도 위대한 생애를 마감하였습니다.
10~12절 “다윗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워 다윗성에 장사되니/ 11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십 년이라 헤브론에서 칠 년 동안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다스렸더라/ 12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앉으니 그의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다윗은 그의 나이 30세 때인 B.C. 1010년경에 헤브론에서 왕위에 올라, 그의 나이 70세 때인 B.C. 970년경까지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치리하였습니다. 실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평가받으면서 이후 이스라엘 모든 왕들의 의(義)의 척도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윗은 장차 그의 가계를 통해 오실 메시아의 조상으로서 그 뚜렷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배우는 교훈>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첫째, 자기 이익을 위해 타인을 짓밟는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요압은 한때 다윗의 오른팔로 충성스럽게 헌신했던 사람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권력욕에 눈이 멀어갔습니다. 자신의 이익과 복수와 권력욕에 눈이 먼 그는 왕의 명령도 들리지 않았고, 살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 자신도 불행한 삶의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요압과 같이 눈앞에 이익에 눈이 먼 사람들이 많습니다. 약한 사람들을 짓밟고 올라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약육강식), 더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군대를 동원하여 학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 한 악인들은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을 결단코 피하지 못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흘렸던 피가 결국 하나님의 분노의 화살이 되어 자신들의 머리로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겔34:18).
전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롬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고후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둘째, 하나님은 고난 중에 처한 자들을 돌아보는 의인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다윗은 고난 중에 자신을 도왔던 바르실래를 잊을 수가 없어, 솔로몬에게 자신이 바르실래와 그의 아들들에게 행한 약속을 계속 지켜가도록 유언을 남겼습니다.
오래전 ‘런던 타임즈’에서 ‘어떤 친구가 가장 기억되는가?’라는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 내용은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버릴 때 나를 찾아오는 사람, 자신이 가장 곤궁에 처했을 때 곁에 머무르며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이다”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이는 우리 주님의 약속과도 일치합니다. 주님은 ‘양과 염소의 비유’(마25:31-46)를 통해 마지막 때 있을 심판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모든 민족을 한 자리에 모아서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는 ‘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염소’도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양과 염소가 함께 섞여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모두 비슷비슷합니다. 지금은 누가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주님이 오셔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주님은 어떤 기준으로 그들을 구분하실까요? 우선 양으로 구분된 사람,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25:35-36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양과 염소는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실제로 도움을 주었느냐로 구분합니다. 양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염소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대한 각각의 반응입니다. 주님의 칭찬을 받은 양들은 오히려 어리둥절합니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37) 의인으로 인정받은 양들은 자신들이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구원받기 위해서 착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착한 일을 한 것입니다. 반면 염소로 구분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행위를 했는지 안 했는지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마25:44). 즉 주님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냥 그렇게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그들은 어떤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선택하는 계산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안다’(마7:20)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칭찬받기 위해서, 구원받기 위해서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나무가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좋은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둘째, 저주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시므이는 독한 말로 다윗을 저주하였습니다. 그러나 합당한 저주가 아니었습니다. 사울 왕을 심판하신 이는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의 저주는 자기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저주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 이유를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약3:9~10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어떻게 같은 입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저주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샘이 한 구멍으로 쓴 물과 단물을 낼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마10:11~13(12제자 파송하시면서)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평안이 그렇듯, 저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이 받을 만하지 않으면 그 평안과 저주가 내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14)고 가르치셨습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윗의 유언을 통해, 우리 인생에도 언젠가는 마지막 순간이 온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살아낸 삶의 결과를 보게 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가족의 심판, 역사의 심판,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받는 심판이 있습니다.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요압과 시므이와 같이 그 마지막이 좋지 못한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르실래와 같이 의로운 자가 인정받고, 자손 만대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언젠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란 칭찬을 듣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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