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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랑, 달랏 여행기 (1)
임선빈(25.02.24~28)
1. 1일차 국제인천공항에서 밤 6시55분 아시아나 항공으로 나트랑을 향해출발했다. 우리의 일행들은 수십년간 전국모임을 하고 있는 팀중에 인천, 익산, 여주, 부산, 울산에서 부부동반으전체 18명중 10명만이 참석했다. 롯데 홈쇼핑의 추전 상품을 이용하여 가는 중이었다. 중간에 이상 기류로 기체가 몹시 흔들렸지만 가끔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면서 안심하라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기체의 흔들림이 멈춘다음 기내식 저녁식사가 닭고기 가슴살과, 쇠고기 덮밤 두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우리팀은 모두 쇠고기 덮밥을 선택했다. 포도주 반주까지 곁들여 있었고, 빵과 과일류도 넉넉히 나와 어느 호텔식 못지않는 맛있는 저녁이였다. 승객들 모두 저녁 메뉴에 만족하는 눈치다. 친절한 승무원들의 써비스도 만족스러웠다.
2. 5시간20분 비행 끝에 베트남 나트랑 깜란 공항에 도착했다. 마중나온 베트남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40분의 차량이동 끝에 나트랑 쉐라톤 호텔에 도착했다. 이나라 법은 우리나라 가이드가 있어도 반드시 현지 베트남 가이드가 동행해야만 관광지를 방문할 수가 있도록 법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어 가이드 2명이 안내하게 되었다. 베트남 현지인도 제법 한국말을 잘 했다. 호텔에 도착하여 숙소를 배정받은 후 여장을 풀었다.
3. 2일째 아침에 눈을 뜨니 아침6시다, 7시에 호텔식 아침 식사가 예정 되어 있었기에 밥시간 까지는 한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우리나라 보다 2시간 늦어 시간은 제법 여유가 있었다. 남편과 같이 호텔문을 나섰다. 바로 건너편 백사장이 길게 펼쳐져 있고 넓은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백사장을 거닐어보기 위해 도로를 건너려니 오토바이들이 무법천지로 움직이고 있다. 어쩌다 드문드문 끼여 있는 차량들이 눈에 띄였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신호등이 안보인다. 그런데 현지인들은 무질서 속에서도 도로를 사고없이 잘 건너고 있었다. 신나게 달리던 오토바이의 뜸한 틈을 타서 남편과 손을 잡고 길을 건너 백사장으로 갔다.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지만 바다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몇몇 눈에 띄였다. 그런데 흙탕물이다. 어떻게 저렿게 탁한 물에서 수영을 할 수 있을까하고 가이드가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도착했을 때 질문하였더니 며칠전 태풍이 와서 바닷물이 뒤집혀 그렇단다. 하지만 이곳이 전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휴양지라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했다.
3. 아침 식사 후 여장을 꾸린다음 체크아웃을 하였는데 남편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숙소에 들기전 호텔방에서는 절대로 금연이라고 가이드가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담배를 피운 남편, 호텔측에서 벌금 200달라를 내야 한다고 청구를 하니, 여행이고 무엇이고 다 집어치우고 귀국하겠다고 노발대발이다. 간신히 우리나라 가이드의 중재로 100달러에 합의를 했다. 담배 한 개피가 15만원 비싼 담배를 피웠다. 그래도 여행중 담배를 끊지 못하고 계속 피우는 남편, 대단한 골초아저씨, 하루에 담배 2갑정도는 더피운다. 그래도 건강을 생각하여 담배를 줄이든지 끊으라고 말할라 치면 아픈데 하나도 없다면서 본인은 담배 피우는 낙으로 사니 말하지 말라며 오히려 나에게 으름장을 놓는 고집불통 아저씨다.
4. 담배가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심란해 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마트에 들리게되면 담배부터 챙기게 되니 어쩔 수 없는 한 식구인 것 같다. 항상 건강한 몸으로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이번 계기로 담배를 피울 때 장소를 좀 조심해서 피우게 되길 기대해 본다.
5. 쉐라톤 나트랑호텔을 8시 10분에 출발하여 혼쭝으로 가 귀암절벽을 관광한후 그곳 카페에 들렸다. 10명 이상이 모이면 생음악 연주를 한다는 그곳, 가이드2명까지 12명 현지인들의 생음악 연주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정서를 생각하여 우리나라 음악을 연주해주었다. 우리나라 거문고 같은 현악기, 피아노처럼 생긴 건반악기 암석으로 되어 있는 타악기의 연주는 독특한 음을 연주해 주었다. 3명의 연주자들이 악기를 번갈아 가며 연주했다.
6. 점심식사 후 나트랑에서 맛사지 30분을 써비스 받은 후 2시 30분에 나트랑에서 달랏으로 이동했다. 차량으로 약 3시간 30분 이상이 소요되는 꼬불꼬불한 산길 자꾸만 하늘끝과 닿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다. 군데 군데 길은 패여있고 산에선 여러군데에서 폭포를 이루며 물이 도로로 쏟아지고 있다. 머리가 아파온다. 고산지대라 그런 현상이 있을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가이드의 안내다. 아무튼 패여진 도로를 차로 달리고 있으니 걱정이 되었다. 태풍이 왔던 얼마전에는 나트랑에서 달랏을 들릴 수 없어 그냥 나트랑에서 시간을 보낸 팀도 있다고 했다. 달랏까지 들릴 수 있는 우리는 행운아들인가 보다
7. 오후 여섯시쯤 달랏의 중심지인 쑤언흐영호수가 있는 람비엔 광장을 지나게 되었다. 쑤언흐영호수는 19세기말 베트남 남북 중앙 고원지대에 위치한 달랏을 휴양도시로 개발하면서 홍수를 조절하기 위해 만든호수라고 했다. 1893년 프랑스 탐험가 알렉상드로 에르생이 이 지역을 발견하여 본격적인 개발을 하였다고 한다. 서늘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환경 덕분에 프랑스인들이 여름휴양지와 행정중심지로 허용한후 달랏은 빌라, 학교, 병원 은행등이 건설되어 지금도 세련된 건축미를 자랑하고 있다. 달랏은 이 후 베트남 상류층의 휴양지로 발전, 현재는 관광도시로 유명하며 꽃의 도시로 불리고 있었다
8. 람비엔 광장을 지나 한식당에 들려 삼겹살로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도중 2명의 현지 초보생 가수들이 기타반주를 하면서 생음악으로 노래를 불러주었다. 물론 우리가 좋아하는 한국 노래다. 목소리가 청아하여 듣는 이들의 마음을 신선하게 해주었다. 삽겹살에 곁들여진 김치찌개가 임맛을 더욱 돋구었다. 식사도중 가이드가 어떻게 알았는지 일행중 한 사람의 부인이 전날 생일인 것을 알고 생일 축하케익까지 준비하는 센스를 보여 주었다.
9. 식당에서 나와 숙소에 들리기전 천국의 계단에 들렸다. 인위적으로 만든 꽃밭과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있는 네모진 인공 호수를 만들어 야경에 어울리는 신비스런 멋진 포토존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사진 촬영에 연출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천국의 계단에서 내려다 보니 산골짜기 밑은 비닐 하우스 천국이다. 불야성을 이룬 하우스 안에는 각종 꽃들과 딸기, 란 종류, 커피나무 들이 암막과 전구를 이용하여 순차적으로 출하 할 수 있도록 재배에 여념이 없다고 했다. 이것도 하나의 큰 볼거리를 이루고 있었다.
10. 야간 사진 촬영을 끝낸 후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달낫 야시장에 들렸다. 각종 과일들이 즐비하다. 길거리에서 현지인들이 한끼식사를 때우기 위해 식당앞 바깥 좁은 통로에 앉아 퓨전종류로 한끼 식사를 때우고 있는 장면이 이색적이다. 시장통엔 옷가게도 즐비하였는데 이곳의 서늘한 날씨 때문인지 겨울옷들이 전시되여있다. 마후라가 전시된 한집에 들려 우리일행들은 목도리와 마후라를 샀다. 물론 나도 샀는데 우리원화로도 받는 가게이고 가격도 저렴하여 별로 부담스럽지 않았다. 야시장에서 나와 공연장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어두음이 짙게 깔려 전구들이 별들처럼 빛나고 있다.
11. 비닐하우스 가장 위 계단쪽으로 각종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천막 공연장이 설치되여 있었고 공연장 위쪽으로 더 높은곳에 천국계단이 있고 천국 계단 옆쪽은 꽃밭과 커피숍이 있었다. 커피솝 밖은 우리가 앉아 공연장을 내려다 보며 즐길 수 있도록 긴 의자들이 배열되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우리 일행은 테라코라 호텔에 숙소를 잡았다.
12. 셋잿 날 다음날 아침 7시 이곳에서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하루 더 묵기로 하여 짐을 그대로 호텔에 둔채 8시 30분에 호텔을 출발하였다. 차로 9시 10분에 현장에 도착 다딴라 폭포 루지 알파인 코스터 체험을 하게 되었다. 다딴라는 이름은 선녀들이 목욕 중 모습을 감추기 위해 나뭇잎을 뿌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다딴라 폭포 루지 알파인 코스터는 2,400m의 트랙으로 동남아에서 가장 긴 루지라고 했다. 내려 갈 때는 루지를 둘이나 혼자서 탈 수 있었는데 남편이 뒤에타고 운전을 하고 나는 앞에서 가만히 앉아 손잡이만 붙들고 있었다. 그런데 루지가 코너를 돌때마다 흔들림이 얼마나 심하던지 선로 밖으로 팅겨 나가는 것 같아 무서웠다. 내려가보니 폭포의 물이 맑게 흘러 내려오고 물소리도 제법 컷다. 각종꽃들이 만발 루지에서 내려서는 우리일행들을 엄청 반겨주었다. 올라 갈 때는 루지를 혼자씩 타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자동으로 올라갔다. 올라 갈때는 별로 무섭지 않았다.
13. 10시 55분 장미꽃, 안개꽃, 제라늄 꽃들이 만발한 달랏 언덕위 꽃밭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에 세워진 동물들의 익살스런 모습들이 눈길을 끌었다. 숫고양이가 암고양이 앞에 머리를 푹 숙이고 있는 익살스런 모습은 보는 이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연못속에 인위적으로 고정시켜놓은 배위에서의 꽃밭길을 걸으며 신혼을 회상케 하는 사진 포즈들은 한참 젊은 날을 회상케 해주었다. 11시 30분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은후 12시 50분 커피 체험관에 도착했다.
14. 이곳은 베트남의 아버지라 불리던 김진국 교수님의 생가로 지금은 후배들이 커피체험관으로 활용하고 있었고 최초 농사를 지으셨던 비닐하우스는 딸기와 커피를 재배하고 있었다. 김진국 교수님은 지금은 작고(1945~2012) 하고 안계셨지만 달랏의 아버지로 불리우고 있었다. 대구효성여대 교수로 정년 퇴임한 교수님은 <난의 개화 조절에 관한 연구>로 최초 화훼장식학 박사를 취득하였다고 한다. 퇴임 후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모든 환경조건이 잘 맞는 달낫을 1993년 방문하였고, 1994년부터 달낫에 정착한 후 연구에만 매진하였었다고 한다. 처음 2년간은 현지 사람들이 미친 노인이 라고 비웃었다고 한다. 김진국교수님은 꼼짝 안하고 천오백 고산지구 솔숲에 싸였어도 비옥한 토지위에 풍부한 일조량이 베트남 제1도시로 가는 성장판이 될수 있다고 믿고 연구에만 몰두 하였었다. 비닐을 씌워놓고 농사를 지으니 우기가 덮쳐와도 신기술은 꽃피웠고 일년내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전깃불과 암막으로 개화기를 조정하여 달콤한 딸기와 아름다운 꽃이 사시사철 피는 꽃의 도시로 만들었다. 그제사 현지 사람들이 김진국 교수님에게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농사를 짓는 기술을 배우게 되어 오늘날과 같은 꿈의 도시, 꽃의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고 한다. 꽃의 해외 수출뿐 아니라 달달한 쪽제비똥 커피도 유명세를 타 수출길 열어놓고 해외로 내보내니 사회주의 추종자도 모두 다 허리굽혀 파파여 우리 파파여 칭송하기 바빳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기술로서 부농을 구축하였고 한국어학과를 개설하여 농대를 신설하니 일백년 프랑스 문화가 교수님 덕분에 케이 컬쳐(k – Culture)로 바뀌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며 한국민의 자부심으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15. 커피체험관에서 나와 2시 4분 달랏 고원의 지붕이라 불리우는 랑비앙마운틴에 6인승 승합차를 타고 도착했다. 한참 미군과 베트공들의 전쟁이 치열했을 때 베트공들이 미군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트럭에 올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험준한 산골짜기에서 출몰하는 베트콩들의 출연을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 최신무기를 가지고 싸운다 해도 출현예측을 할 수 없는 베트콩들을 미군이 이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 지형이다.
16. 3시 26분 랑비앙마운틴에서 내려와 베트남의 가우디로 불리는 "당비엣응아"에 의해 설계된 기괴한 건물인 일명 미친집을 방문하였다. 19세기 초반부터 동화속 기범으로 건축, 테마방으로 건축하였으나 2025년 아직도 건축이 끝나지 않았단다. 건물 내부는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고 실제 사용할 수도 있었다. 베트남 2대 대통령의 딸인 응아 여사가 직접 설계해서 유명해진 크레이지 하우스는 달랏 시내관광 명소 중 하나이다. 특히, 미로처럼 괴상하게 지어 놓은 집과 객실마다 동물의 이름을 붙여 꾸며놓아 보는 즐거음이 있다.
17. 16시 22분 미친집을 출발하여 림푸억사원에 도착했다. 림푸억사원은 불교사원으로 모든 외관을 깨진 유리병과 도자기로 만든 일명 쓰레기를 재활용하여 지은 사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웅전 용 몸통은 사금파리, 꼬리는 깨진 병으로 건축하였다. 대웅전옆에 있는 2층의 국화꽃 여래상은 60만명의 시민의 정성을 담아 60만개의 국화곷송이로 만들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불교의 윤회설을 중시해 지하에는 아귀가 들끓는 아비규환의 지옥도 형상화 되어있었다. 지옥을 관람하는 사람들마다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것 같다.
여섯시 한인식당에서 저녁을 마친 후 다시 한번 달랏 야시장에 들렸다. 이번엔 신랑의 모자와 어깨에 메는 조그만 손가방을 샀다. 이번에도 원화가 통용되었다. 착한 가격이기에 부담없이 샀다. 야시장 투어를 마친다음 숙소로 들어왔다.
18 여행 4일째 아침 7시 호텔조식 후 체크아웃을 한 후 달랏의 최대사원인 죽림사에 들려 웅장한 사찰과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을 관람한 후 케이불카를 이용하여 우리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올라오던 곳과 반대 편이다. 고레아나 중식식당에 들려 맛있는 바닷가재와 해산물들로 점심을 먹은 후 12시 10분 달낫에서 출발 나트랑을 향했다. 3시간 정도 소요끝에 15시 20분 나트랑의 롱선사에 도착했다. 짜이투이 산 아래에 자리잡은 사원으로 베트남 독립운동에 개입한 탁응오 선사에 의해 1886년 세워진 사원으로, 거대한 와불상과 고타마 붓다의 거대한 좌불상이 볼 만하다. 평일이였지만 다른 곳 보다 관광객 인파가 많아 보였다. 3시 53분 롱선사를 출발하여 4사부터 맛사지 투어에 들어갔다. 5시 30분 인력거를 타고 나트랑 시내 구경을 하였다. 원동기 자건거를 이용하여 인력거를 끌고 있었다. 간혹 한글 간판이 우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19. 시내관광 후 18:00 식당에 들려 다시 맛있는 해산물들로 저녁을 먹은 후 19:30 나트랑 깜난 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공항 도착 후 비행기 이륙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탑승전 공항의 이곳 저곳을 구경하였지만 역시 우리 인천공항과는 규모나 시설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공항이었다.
20. 23시 05분 아시아나 항공으로 출발 다음날 아침 5시 30분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아무탈 없이 모두가 즐거웠던 여행, 이 또한 살아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의 특권인 것 같다. 감사한 마음으로 울산으로 향하는 리무진 속 남편과 같이 하는 여행이라서 더욱 행복했다.
첫댓글 선생님
베트남 여행글,
떠나는 날부터 돌아오기까지 길게 쓰셨네요.
읽으면서 나눠서 여러편 썼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행복한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상세하게 나열한 덕분에 제가 여행한 기분입니다.
임선빈 문우님,
습작품 창작에 노고가 많았습니다. 늘 모범생이십니다.
다만 이 작품이 원고지 36매에 해당되어
대략 일반 작품 3편에 해당합니다.
수업 중에 합평작으로 다루기에 너무 길어 부득불 1편, 2편으로 나누게 됨을 이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