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점 교수 약력
학력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 학사
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 석사
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 박사
경력
경북대, 덕성여대, 성균관대, 한경대, 한국방송통신대, 한국외국어대, 한세대학교 강사
건국대, 고려대, 동국대, 부산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세종대, 이화여대 특강 강사
경기도청, 경북도청, 구미시청, 용산구청 위탁 강의
한국행정학회 평생회원
(전)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전) 원광보건대학교 공무원행정과 전임교수
(전) 남부행정고시학원, KG패스원 행정학 전임강사
(현) 공단기·숨마투스 공무원 학원 행정학 전임강사
1. 성장과정(배경)
전남 장흥 대덕이라는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친 후 경북 포항에 있는 포항제철공고로 진학하였습니다. 당시 포항제철공고는 3년 동안 기숙사 생활, 학비 감면, 그리고 졸업 후 POSCO 입사 보장 등의 혜택이 있는 특성화 고등학교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유능한 기능인으로서의 삶을 꿈꾸어 왔던 저에게 POSCO에서의 직장 생활은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입사 후 1년 정도 된 어느 날 오십대 초반의 주임(고졸 출신으로 최상급)이 삼십대 초반의 계장(대졸 출신은 3년 후 승진 가능)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고생이 심했습니다. 그 모습이 나의 30년 후의 모습일 수도 있었기에.
그 시점을 계기로 대학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으며, 이후 POSCO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를 다니게 되었습니다(군 복무 문제, 경제적 문제, 학업 문제 동시 해결). 이후 군 복무 문제가 해결되고, 경제적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을 때 사표를 제출하고, 한국외국어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과에 진학하여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1996년 “민영화 정책이 기업의 경영성과에 미치는 영향”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이후 각 대학교에서 시간 강사로 강의를 하면서 2000년에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행정고시와 경찰간부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학원 강의를 시작하였습니다. 중간에 동국대학교 겸임 교수와 원광보건대학교 공무원행정과 전임 교수로 근무한 바 있으며, 현재는 경찰간부, 7급, 9급 수험생을 대상으로 ST Unitas(공단기 학원)에서 행정학 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2. 삶의 자세
저의 삶의 자세는 제가 직접 지은 큰 아이의 이름에 나타납니다. 정철입니다. 바를 정(正), 밝을 철(哲). 바르게 살아라, 그리고 밝게 살아라. 삶의 이치를 알고, 세상을 보다 밝게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2000년부터 10년 동안 출간해 온 『알파행정학』이나 『열린행정학』 교재 머리말 마지막 문구는 항상 ‘밝은 미래와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생각하며’입니다. 바르고 밝게 살자는 삶의 자세이고,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은 삶의 목표에 해당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글귀로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베풀지 말라>. 이는 타인을 대할 때 항상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상은 제가 매일매일 사용하고 생각하는 말들입니다(매일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가치를 계속적으로 추구하고 지키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를 지키는 것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추구할 것입니다.
3, 가족에 대한 단상
어머니?
저는 1963년 전남 장흥군 대덕면 신월리 초당마을에서 4남 5녀 중 8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8살 때 선친이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가정을 꾸리셨기 때문에 가난이라는 놈이 저의 가족과 한 덩어리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난이라는 것을 크게 느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이는 아마 제가 철이 없었기 때문이었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절대 자식들만큼은 굶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치열하게 사셨던 어머니 덕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힘들다는 것을 전혀 내색하지 않으셨던 어머니요.
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다른 사람들도 저와 비슷할 거에요. 저도 저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신 분은 바로 어머니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다닐 때 대덕초등학교의 총 학생 수가 2,400여명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해 5월 어버이날 행사에서 어머니께서 ‘장한 어머니 상’을 받으셨습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이셨던 백기영 선생님께서 저의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교육열을 높게 평가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교육열의 단편을 보면 제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포항제철공고로 진학하여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는 저의 동생을 대전에 있는 누님 댁으로 보내 거기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치도록 하셨는데, 그 열정이 자식 둘을 박사학위 소지자로 키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제 동생 위계찬은 현재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형제?
먼저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누님, 고맙습니다. 제가 포항제철공고로 진학한 후 어머니는 동생을 대전에 있는 누님 댁으로 보냈습니다. 동생은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5년 동안 대전 누님 댁에서 학교를 다녔지요. 당시 저는 대전 누님이 어느 정도는 풍족하게 살고 계실 거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당시 누님네 식구 4명과 동생이 모두 단칸 전셋방에서 1년 이상을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누님의 마음이 너무너무 아름답고 고마워서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더군요. 저는 그 때 뜨거운 눈물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형님, 고맙습니다. 제가 포항제철에서 7년 넘게 근무하다가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사표를 쓰려고 할 때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하시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던 형님, 제가 살고 있던 방의 모든 벽면이 영어 단어와 한자로 채워져 있는 것을 보고 이 정도면 뭐가 되어도 될 것이라며 믿어주셨던 형님. 그리고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학위 논문을 마칠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형님입니다.
아버지가 안 계셨지만 어머니를 중심으로 9남매가 서로를 짠하게 여기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9남매, 정말 사랑합니다.
항상 아쉽고 후회되는 것 하나 말씀 드릴게요. 2009년 12월 23일 당시 85세이던 어머니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라고 했던가요?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 무릎이 아프다고 말씀하셨을 때, 나이 들면 아픈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넘겨버린 일이 지금까지도 가슴을 후비는 것 같습니다. 따뜻한 마음, 따뜻한 말, 따뜻한 손으로 조금만 어루만져 드렸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다음 내용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얼마 되지 않아 유머 관련 서적에서 본 것입니다.
어떤 할머니 : “의사선생님 왼쪽 무릎이 아파요.”
의사선생님 : “할머니, 나이가 들면 다 그런 거에요.”
어떤 할머니 : “야, 이놈아, 내 왼쪽 무릎과 오른쪽 무릎의 나이는 똑 같아. 그런데 오른쪽 무릎은 아프지 않는데, 왼쪽 무릎은 아프단 말야.”
유머를 읽으면서 웃어야 하는데, 무릎이 아프셨던 어머니 생각 때문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아마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to be continued
첫댓글 정말 힘든 생활속에서 열정을 가지고
공부하셔서
지금은 최고의 강사가 되신 위계점쌤의
스토리를 보니 제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네요!
교수님덕분에 행정학에 좀 더 쉽게 다가가고 익숙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해서 꼭 붙어 찾아뵙겠습니다!
좋은 경험은 상호 공유하여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빽샷님도 열심히 하셔서 합격하시고, 좋은 경험 후배들과 공유하여 주십시오. 합격 기원하며, 기다리겠습니다. ^^
찬찬히 읽어보고 좋은 영감 받아갑니다.
그래요. 아무리 평범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읽고 보는 사람의 사고에 따라 좋은 글도 되고 그렇지 않는 글도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영감이 밝은 미래로 연결되었으면 합니다.
제 자신을 한번 더 되돌아 볼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어려움 모르고 자라온 제가 부끄럽네요ㅜ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에 1963년이 163년이라고 오타가^^...
잘 읽어보고 갑니다! 사진 너무 멋있으세요>.<
163년에 태어나다니 ㅎㅎ 오타 수정했습니다. 톱밥님도 되돌아보면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 많이 가지고 계실 거에요.가끔 올려주세요. 그리고 더 감동적인 스토리 만드시길...
이따금 들어오면서도 이 글은 처음 보네요.. 전 이제 돌쟁이 키우고 있는데 내리사랑이라는 것이 참 마음을 후벼파게 되어요.. 아들한테 줄 이유식을 준비할때 내가 부모님 위해 죽 한번 정성들여 끓여본 적이 있나, 아들이 감기걸려서 밤새 기침하며 울때 같이 눈물 훔치며 부모님 감기 걸린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았나싶고요. 어딜가나 애 장난감 애 먹을거 입힐거 눈에 불을 켜고 검색하고 사모으는데 부모님한테는 옷 한벌 사다드리는게 연례행사가 되어버렸죠... 이렇게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나 자신을 보며 느끼면서도 내 자식한테는 아낌없이 쓰게되네요... 부모 자식간이 무언가 싶어요... ㅎㅎ
선생님 안녕하세요 노량진 웅진에서 09년 선생님 강의를 들었던 사람입니다 막 직장 그만두고 공무원 공부 시작하며 어찌해야할지 모를 때 선생님의 열정적인 강의 감동이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선생님 카페를 들어와보네요 선생님 강의덕분에 11년 지방직 공무원
합격하고 같이 직종의 배우자도 만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삶의 여정 또한 제가 마음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글읽는데 눈물이 나네요ㅠ 전 선생님 테이프강의와 인터넷동강보며 2009년에 합격하고 재직중이에요..당시 합격수기도 못적고 이제서야 감사하단말씀 드립니다..ㅠ 결혼하고 아기들낳고 육아휴직중인데 다시 7급공부하러 선생님강의보고있어요..^^ 6년만에 강의로나마 선생님얼굴뵈니 감회가 새롭네요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처음 글 보는데 정말 감동적입니다. 수업 들으면서도 참 품격이 있으신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역시 틀리지 않았네요.
정말 대단하시네요 ㅜㅜ
선생님 존경합니다. ^^
강의 들을수록 교수님이 친근하게 느껴지시고 멋져보이신다는...귀에 쏙 들어오는 예시와 설명 너무 좋아요~☆
선생님 강의 열심히 듣겠습니다 ㅎㅎ
강의 열심히 듣겠습니다!!
많이 느꼈습니다..
행정학을 너무 얕봤던거 같습니다..다시 강의들으며 차근차근 공부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