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성산성주배씨의 시조는 다른 분이 아닐까?| 종사 질문 & 답변
헤켄 | 조회 10 |추천 0 | 2013.12.01. 10:11
고려 이전에
성주지역에 배씨 선조에 관련된 기록이 몇 있습니다.
신라말 성덕왕 대에
현령을 지낸 배영숭의 묘지석도 출토되었고
〈경상도 지리지. 상주도 성주목관조〉의 글에도 나와있죠
후삼국시대는
호족(豪族)이라 지칭되는 지방의 유력자들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시기였다.
이들은 신라에서 고려로 옮겨 가는 시대적 전환기에
새로운 선택을 강요받았으며,
그 선택은 그 지역의 존망과 직결된 것이었다.
나말여초의 전환기에
전국적으로 호족들이 할거하여 세력을 떨칠 때
성주지역에는 이총언(李悤言)을 비롯한
양문(良文), 색상(索湘)등이 태조를 도와 활약하였다.
경산부 장군인 이능일(李能一),
배신(裵申) 또는 배신애(裵申乂), 배최언(裵崔彦) 혹은 배언(裵彦)은
고려 태조의 통합 삼한의 때인 天授 8년 乙酉에
600인을 거느리고 태조를 도와 백제를 이긴 공로로 후한 상을 받았으며,
그가 살던 지역인
성산, 적산, 수동, 유산, 본피의 오현을 합하여 경산부로 승격하였으며,
모두 벽상공신삼중대광에 봉해졌다. 라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 이후 후삼국시대에도 배씨는 여전히 존속하고 있었습니다.
이능일은 성산이씨,
이총언은 벽진이씨의 시조로 이어지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현재 두 분의 배씨를 시조로 모시는 파는 없습니다.
이 글로 보면
성주지역에서 활동하던 삼중대광 벽상공신에 오른 배신.배최언 공이
성주배씨의 시조가 아닐까요?
중간에 계보를 잃어
배위준 이라는 같은 벽상공신에 오른 인물을 만들어
시조로 모신건 아닐까 생각되어집니다.
저 두 분은 가족일 가능성도 높죠.
만약 그렇다면 배신, 배최언 공 중
어느 분을 시조로 모셔야 옳은 건지도 연구해 봐야하겠습니다.
Re: 헤켄 배민규씨에게 답 합니다.| 종사 질문 & 답변
玗岡(裵在基) | 조회 7 |추천 0 | 2013.12.01. 13:24
헤켄 배민규씨에게 답 합니다.
"天授 8 乙酉"는 서기 925년으로
고려가 개국(918)하고 7년 후가 되는 해입니다.
우리 裵姓은 서기 32년(신라 유리왕 9)에 사성하였으며
천수 8 을유(925) 까지는 무려 893년의 년차가 있습니다.
우선, 系代가 산술적으로 이어졌다면
우리 裵氏史에는 이 기간 동안
<1>무려 40 여 계대가 이어져 왔어야 할 공간입니다.
허나, 역사에는
서기 720년 신라 성덕왕 때의 上代等 裵賦공과,
서기 836년 흥덕왕 때의 裵萱伯공,
서기 895년 정강왕때의 城山縣令 裵零崇공,
서기 918년 고려개국1등공신
裵玄慶(初名:白玉衫, 고려태조로부터 裵玄慶으로 賜姓名받았다 함)공,
그리고 고려개국2등공신 裵運泰공,
같은 시대 궁예의 장군이였던 裵悤規공 등
여섯(6) 분 만의 기록이 역사에서 전합니다.
이는
신라 천년과 후삼국 시기에
裵氏 宗史 기록은 <2>未詳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우리나라에서
각 氏族들의 족보 시작은 <3>14세기(1400년대) 경 부터 입니다.
서기 1476년에 수보된
安東權氏 成化譜가 족보의 효시라 전합니다.
이 시기 이후부터
각 호족들은 家乘 또는 世誌 등으로 世系를 적어왔다고 합니다.
우리 <4>星山星州裵氏 문중의 先代에서도
가승으로 가계를 전수한 기록들은 <5>문헌에서 확인되며,
星山星州裵氏 최초 족보를 1800년 庚申에 編修하며
<6>家乘에 따라 上祖 三重大匡 裵位俊공을 <7>始祖겸 1世로 起世하였고,
<8>5世에 興安府院君 裵仁慶공을 <9>星山星州裵氏의 貫祖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繼代承孫하는 전통을 지키는 것 입니다.
星州 鄕土史에서
<10>裵申乂, 裵崔彦공의 기록도 확인됨니다만,
이는 우리 <11>星山星州裵氏의 上祖라는 考證이 없습니다.
덧붙어, 後裔들의 종사연구는
종사 발전을 위해서도 활발하여야 하지만,
<12>先賢들께서 남기신 전통을
계승 발전하는 범위에 머물러야 할 것이라
생각되어 첨언하는 바입니다.
카페지기 / 玗岡 裵在基(星山星州裵氏 29世孫)
☞ 상기 헤켄(배민규)님에게 한
玗岡 裵在基(星山星州裵氏 29世孫)씨의 답변에 대한 오류와 모순점 분석
<1>무려 40여 계대 : 30년(1세대)을 기준하여, 30여 계대가 맞습니다.
<2>未詳이라는 사실 : 고려 474년과 조선 중기(1750년 전후)까지도 미상인 것입니다.
<3>14세기(1400년대) : 1400년대는 15세기가 맞습니다.
<4>星山星州裵氏 : 성주 지명이 <성산성주>라는 복합용어로 사용된 적이 없는 바
관향(본관)의 명칭으로 사용될 수가 없으며
이것이야말로 얼토당토 않은 개관이요 역관인 것입니다.
<본관은 바꾸거나 고치는 전통이 아니다>한 존재는 누구이던가요?
시조라는 位俊의 고향이 성주인지 어디인지가 미상이기에
관향(본관) 미상인 배씨라 해야 하나
득관조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억지를 부려
성산배씨(흥안부원군=인경이 실존인물이라면 흥안배씨여야 함)라 하다가
최근에야 <성산성주배씨>라 하고 있나니
자가당착도 유분수라 할 것입니다.
시조=位俊 위에 또 비조=實이 있나니, 實의 고향은 또 어디일까요?
<5>문헌에서 확인 : 가승으로 가계를 전수한 기록들이 있다면
언제부터 기록된 것이고, 어떤 문헌에서 확인되는지를 밝혀야 함.
참고로 득관조라는 흥안부원군=인경이란 인물이
성산성주배씨 족보 이외의 문헌상 확인되는 자료는
최근에 출간된 성주누정록(2011년 발간)이라는 책자임.
<6>家乘 : 생원공(탄)파 달천처사(경가:1570~1650) 유허비문(비조=位俊)과
진사공(윤순)파 효숙공(흥립:1546~1608) 신도비문(비조=實)일 뿐이며
두 비문 모두 건립 연대와 찬한 연대가 없기에
경신보(1800년)를 만든 후에 그럴듯한 찬자를 도용하여 세워졌다 할 것임.
졸년에 세웠다 할 시에, 달천처사 유허비문이 42년 뒤에 찬한 것인데
비조(=시조)가 효숙공신도비문과 다른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 경신보가 출간되기 전에 족보 책자 형태의 가승(첩)이 전해진 것은 전무함.
<7>始祖겸 1世로 起世 & <8>5世에 興安府院君 裵仁慶
진사공(윤순)파의 비조(시조)=實은 鼻祖(시조 위의 먼 조상)로 하고
생원공(탄)파의 비조(시조)=位俊은 始祖로 하였으며
진사공(현)파 or 서암공(덕문)파의 직계 조상인 흥해배씨 흥해군(배전)을 상징하는
흥안부원군 배인경이란 가공인물을 만들어
이상한 용어인 得貫祖라 하여 짜집기한 것이 (현)성산성주배씨의 상계가 된 것임.
※즉 (현)성산성주배씨(구.성산배씨) 족보 제작의 주체는
진사공(윤순)파+생원공(탄)파+진사공(현)파였다는 것입니다.
<9>星山星州裵氏의 貫祖 : 비조도 있고 시조도 있는 바인데,
따로 득관조(관향을 취득한조상)를 둔 것은
코흘리개 유치원생의 소꿉장난 수준인 것입니다.
관향(시조의 고향)의 의미도 모르는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고증되지도 않는 인물을
한 씨족의 시조도 비조도 아닌 득관조라 하다니
이것이야말로 위조족보란 반증인 것입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대한민국 성씨의 시조나 득(수)관조로 모셔진 분들 중에
역사적 인물이 아닌 성씨는 성산성주배씨가 유일하다는 점입니다.
성산성주라는 4자로 된 관향(본관)을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10>裵申乂, 裵崔彦공의 기록도 확인됨
배신예 . 배최언 두 분은
역사적으로 실존하셨던 성주 출신 배씨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두 분 다 무열공 할배와 동시대인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연유로 이 분들을 시조나 비조로 모시게 되면
무열공 할배의 후손이 될 수가 없기에, 애써 외면하고서
가공인물 내지 특정 파의 계대 불분명한 인물을 짜집기 하여
장기판을 만들듯이 비조.시조에서부터 상계를 날조하였다는 판단입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장난질을 하려고
갑신보가 위조족보라며, 경상감영에 소를 제기하였나 봅니다.
경신보(1800=성산배씨 최초 족보)는 갑신보(1764=최초의 경주배씨대족보)보다
위조족보성 면에서
범죄행각에 가까운 과오를 고의적으로 범한 것이 농후하다 할 것입니다.
<11>星山星州裵氏의 上祖라는 考證이 없습니다
성산성주배씨라는 성씨의 비조=실과 시조=위준, 2세(인익), 3세(양몌), 4세(원서),
5세(득관조=인경), 6세(문적.무적 형제), 7세(용성.용신 형제), 8세(진손.진후 형제)
9세(규.구.현 형제) 등등... 모두 실존 인물이거나 형제인 것이 고증되는 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10세 이하에서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지만 생략함)
<12>先賢들께서 남기신 전통을 계승 발전하는 범위에 머물러야 할 것
족보를 만든 선대가 현인이었다면
후예(손)들이 조상을 상대로 연구(?)해야 할
수고스런 난제를 결코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족보는 수정과 같이 투명할 때 존재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현재까지의 모든 배씨 족보는
존재하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요 치욕인 것입니다.
우강 배재기씨는
그 동안 <갑신보는 위조족보니까 버려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한 존재로서
저런 언행을 하다니, 전형적인 위선자의 본보기라 할 것입니다.
차라리 할 말이 없으면 묵묵부답할 것이지
무슨 보학의 대가인 양 궤변을 늘어놓은 것이
마치 똥을 싼 치매 노인이
더러운 걸레를 세탁해야 한다는 손자에게
회초리를 들고 훈계를 하는 모양새가 떠오른다 할 것입니다.
[흥안부원군이란 배인경]은 [흥해군 배전]이란 궁비의 子를 [성산성주배씨]화시킨 관념의 인물일 뿐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현 성산성주배씨라는 측은 궁비손 출신들과 비양반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기형적인 성씨라 해야 합니다. 삼조개국원훈의 후손인 우리가, 왜 이 누추하고 불량한 가옥에서 살아야 합니까?
저건 답변이 아니라, 옹색하고 구차한 변명입니다. 제게 곤란한 사실은 은폐와 호도를 하고, 유리한 것은 조작과 날조를 일삼는 소인배일 뿐인 게죠.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닌거죠. 정말 역겹고 구역질 나서, 보는 자체가 재래식 화장실의 구더기를 보는 고통 그 자체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자가 뉘우치기는 커녕, 거짓으로 버젓이 선생 노릇을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군요. 이는 한반도 배씨의 지성과 양심을 우롱하고 조롱하는 처사입니다. 특단의 대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또 星山님만 쳐다보고 있어야겠네요......
첫댓글 *역사적으로 고증되는 흥안군(興安君)
1.흥안군 이제(興安君 李濟, ? ~ 1398)는 조선 초기의 왕족으로, 태조의 사위이다.
2.흥안군 이제(興安君 李瑅, 1598 ~ 1624)는 조선 중기의 왕족으로, 선조의 열 번째 아들이다.
*역사적으로 고증되는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 고려말 성주이씨 이인복(李仁復:1308~1374)
자는 극례(克禮), 호는 초은(樵隱). 할아버지는 성산군(星山君) 조년(兆年)이며,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포(褒)이고, 동생이 인임(仁任)이다.
우강이란 개말대로,,,고려시대엔 배씨사가 미상이 아니라면,,,득관조라는 배인경(?)이,,,
흥안부원군에 봉군된 기록이,,,정사인 고려사에 나타나야 함이지요.
이제보니,,,성주이씨 족보를 보고,,,모조품 흥안부원군을 만들었나 보군요.
개들이 밀거래를 통해,,,정절공 할배를,,,성주이씨 외손으로,,,팔아먹은 것 아닐까요?
개들이,,,흥해배씨에서 성산배씨로,,,투탁을 허용하는 조건으로,,,말이지요.
흥안부원군 배인경이란 가공인물이 족보상에 만들어질려면,,,성주유림들의 내락이 있었어야 하는 꺼이지요.
고려시대 성주출신 배씨 중에,,,흥안부원군이란 봉군을 받은 인물은 없다가,,,정답이지요.
星山님 말씀대로,,,개들의 득관조라는 배인경은,,,흥해군 배전을 상징하는,,,
유령인물이라고 봄이,,,타당할 것 같네요.
비조 실은,,,진사공(윤순)파 내지 효숙공(흥립)파의 비조로 만들고,,,
시조 위준은,,,생원공(탄)파의 비조로 만들고,,,
득관조 인경은,,,흥해배씨인 진사공(현)파 내지 서암공(덕문)파의 상징 인물로 만들고,,,
그리하야,,,위조족보인 갑신보를,,,뺨치는 위조족보인,,,경신보가 탄생된 것이고요.
결론은,,,현재의 성산성주배씨는,,,불순물이 뒤섞인,,,잡탕 배씨라는 꺼이지요.
여기에서,,,숭조돈목이란 잣나무가,,,무성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자체가,,,착오인 게지요.
우강이란?,,,(우)스운 (강)아지란 뜻인가??
개와 늑대를 합사하여도 아니될진데개와 호랑이와의 어색한 동거는이제 끝내야 함미다
[흥안부원군이란 배인경]은 [흥해군 배전]이란 궁비의 子를 [성산성주배씨]화시킨 관념의 인물일 뿐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현 성산성주배씨라는 측은 궁비손 출신들과 비양반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기형적인 성씨라 해야 합니다. 삼조개국원훈의 후손인 우리가, 왜 이 누추하고 불량한 가옥에서 살아야 합니까?
우강(玗岡) 배재기(裵在基)씨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충고!
1.영광스럽고 신비한 2천년 한반도 배씨 역사를
당신은 다룰 자격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 검증되었슴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자칭 <배사랑종사연구위원>에 <성산성주배씨상임부회장>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배문의 부흥과 발전을 위하여 기여한 바가 무엇이 있는지, 경건히 무릎을 꿇고 자문자답해보길 권유합니다.
3.다음카페명 <성산성주배씨대종회>와 <명문거족 성산배씨> 등의 카페를
당장 폐쇠하거나, <흥해배씨서암공파>로 명칭을 바꾸어서, 아들이나 손자 등
주변의 젊은 층에게 양도하기를 권유하는 바입니다.
星山님,,,저 지경인 걸 보니,,,백약이 무효인 듯 하네요.
배문 내에서,,,개와 사람을 분리하여,,,개족보와 사람족보를,,,하루빨리 따로 만드는 수밖에,,,없을 것 같네요.
하무요개와 사람은당연히 차이 있어야 함미다우리가 입계되어 있다니우리가 어디 개과임미까 어떻게 화합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지요 유령의 후손이 아니라세계사적으로 유일무이한자랑스런 조개국원훈의 후손임미다
사람의 탈을 쓴 개들의 족보에
처음부터 물과 기름이었는데
우리는
우강은 이 말씀을 명심하렷다.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장 33절)
엉덩이에 뿔난 것들은철 들자 망령 난다는데망령만 나고영영 철 들기는 글렀군요시끄럽기만 할 뿐도둑을 쫓기는 커녕도둑질을 돕는 결과만 초래함미다딱궁비손이요역적손임미다타고난 천성은하늘도 못 바꾸는가 보지요ㅌㅌ
똥개는 아무리 짖어대도
하는 짓이
개 버릇 관 속에 들어갈 때까지 남 주지 못할 겁니다......
저건 답변이 아니라, 옹색하고 구차한 변명입니다.
제게 곤란한 사실은 은폐와 호도를 하고, 유리한 것은 조작과 날조를 일삼는 소인배일 뿐인 게죠.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닌거죠.
정말 역겹고 구역질 나서, 보는 자체가 재래식 화장실의 구더기를 보는 고통 그 자체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자가 뉘우치기는 커녕, 거짓으로 버젓이 선생 노릇을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군요.
이는 한반도 배씨의 지성과 양심을 우롱하고 조롱하는 처사입니다.
특단의 대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또 星山님만 쳐다보고 있어야겠네요......
개 중에서 서당개가 아니라 허위족보개입니다.
개 주제에 족보가 어쩌구저쩌구 하고, 종사가 어쩌구저쩌구 하다니......ㅉㅉ!!
여니 때면저 정도의 곤란한 글은발견 즉시삭제를 해버리고활동중지를 시키는 게암만 생각해두이상하구만요욕을 못 먹어안이 난 걸까요
저 노견의 습성인데
한동안
우강에게 묻노라.
선현들께서 남기신 전통이란 뜻은,,,가공인물.유령인물로 환부역조하여,,,
위조족보를 만드는 것인가요?
계승.발전에 머물러야 하다니,,,위조족보를 저질스럽게 만드는 방법을,,,
계승.발전시키는데 골몰해야 한단 말인가요?
우강 자네가,,,갑신보는 위조족보니까 버려야 한다고,,,거품물고 짖어댄 것이,,,
계승.발전에 머물고자 그랬단 말인가요?
늙고 병든 개가,,,구석에 가만히 쳐박혀 있으면,,,밥이나 얻어먹지,,,그 주제에,,,누굴 가르치려 한단 말인가요?
노망을 부릴려면,,,개집에서나 부리게나,,,고삐풀린 광견처럼,,,여기저기 돌아다니며,,,정승집 대문에까지,,,
똥칠을 해서야 쓰것는가요?
결론: 개는 개!
형편업시 늘그빠진 광견하고대화가 통할리 만무함미다
말을어찌 고하는지나함 지켜봅시다
헤켄님 글 중에
"현령을 지낸 배영숭의 묘지석"은
경주에서 출토된 것으로
前城山令裴零崇(전성산령배영숭)으로 되어 있슴에
여기서 성산(城山)은
성주와는 관련이 없는 사실임을 밝혀둡니다.
점심 맛나게들 드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