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유역의 대표적인 묘제인 옹관묘는 함평 엄다면 엄다리를 비롯 학교면 월호리와 마산리, 나산면 초포리, 월야면 용암리와 예덕리, 함평읍 진양리 등 이 지역에 특히 많이 분포돼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함평의 옹관묘는 나주지역과 달리 학술기관의 정식발굴에 의해 그 성격이 밝혀진 것이 없다. 발굴된 예덕리 고분군조차 아직까지 정식적인 학술보고서를 발표하지 않아 수습된 일부 유물과 외부형태 등으로 향토사학자들에 의해 그 특성을 예견하고 있을 뿐이다.
선사시대와 고대에 걸쳐 엄청난 무덤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함평은 아직까지 문화재당국의 무성의로 체계를 잡지 못하고 있으며 그 가치를 꽃피워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따라 함평지역에 산재한 묘제들을 모아 보존관리하는 ‘묘제공원’ 조성이 절실하다는 여론이 지역에서 비등한 상태다.
학교면 소재지에서 6km쯤 지나 영산강변에 이르면 영산포에서 학교면 석정리 고막천에 이르는 배야마을을 안고 흐르는 곡강이 있습니다. 이 곡강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때 강이 지세에 등져 흐르는 3대 강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강의 배류지에는 용호리라는 유서 깊은 강촌 마을이 평화롭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뒤로는 산명수려한 속금산이 그 위풍을 자랑하며 강건너 서쪽에는 고문산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고문산은 예부터 사람이 하나 들어갈 만큼 굴이 뚫려 있었다고 합니다. 굴의 길이가 몽탄강에 이른다고 하며 먼 옛날 이 굴에는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지상에 내려 온 백년 묵은 이무기 한쌍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비가 오면 굴 앞 강변은 호수로 변했고 본래 용이었던 부부 이무기는 이 호수에 나와 목욕재계하고 다시 용이 되기를 옥황상제께 빌었다고 합니다. 그 정성이 지극하여 마침내 옥황상제의 윤허가 있어 하늘로 승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뢰가 번득이며 소낙비가 쏟아지는 어느날 숫용이 먼저 하늘로 승천을 하고 있을 무렵 마을의 한 여인이 깜짝 놀라 소리치자 암용은 부정한 아낙의 눈에 띄어 그만 승천하지 못한채 땅에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후 이 마을은 질병이 끊어지지 않았으며 가뭄 때문에 흉년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암 이무기의 저주라고 믿어 용신당을 짓고 용신제를 지낸 뒤부터 가뭄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용이 승천하던 그 강을 용연이라고 하고 그 강변마을을 용호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행정구역으로는 학교면 월호리 용호마을로 불리우고 있는 함평군의 최남단에 위치한 마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