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산행일기
지금까지도 상승의 기회를 포착하기위해 노심초사하는 불굴의 동기들이 더러 있는 것으로 안다. 神이 직접 능력을 점지해준 행운아들이리라. 그러나, 대부분은 동력이 바닥나서 퍼덕거리다 이미 차세대에게 인수인계를 마친 상태이다. 그리고는 자식 잘되는 것 보는 것이 마지막 남은 최상의 임무인양 즐거움의 근본이 되어 있으리라. 종묘 앞 광장 노인네들은 모여 앉아 자식자랑으로 하루해를 보낸다고 한다. 모두가 장관, 사장, 검사아들을 두었단다. 일제시대 경성 四大門 안에 “함경도 북청물장수”라는 직업이 있었다. 지금의 생수내지는 정수기 사업이었을텐데 동네어귀마다 설치된 공동수도를 몽땅 독점해서 수입이 짭짤했다고 한다. 없는 집은 우물물 펌프물마시고, 있는 집이래야 물지게로 배달시켜 수돗물을 마셨다. 그런데, 아들이 유학을 마치면 북청사람에게만 독점권을 인계하고 반드시 경성을 떠났단다. 우리 부모님세대의 이야기이다. 우리 세대라고 다를 리 없다. 83기는 유난히 팔도 각지에서 모여든 전국구 기생이다. “애비보다는 잘 되라”는 기대를 저마다 한 몸에 가득 안고 정동언덕에 집합 했었다. 당시 명문고는 경복궁, 덕수궁, 비원, 경희궁, 궁궐 옆에만 있었으니 사대문 안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졸업 때까지도 기차통학시간에 쫏겨서 덕수궁 안뜰 구경 못해 본 서울외곽 촌놈들도 부지기수였다. 세월이 흘러, 이제 그 기대가 한 세대를 또 넘어 우리 자식들에게 현실화 되고 있는 것이다. 거시기 아들은 이태백인데, 우리 아들은 대기업 취직했다, 의사됐다, 고시붙었다, 박사학위땄다 등등이다. 얼마나 대견할까? 그러나, 효도하는 자식 따로 있다는 옛말 틀리지 않으니, 못난 자식 구박말고 두루두루 사랑할찌어다.
2월 산행에는 반가운 얼굴이 제법 보였다. 배산회 창립 발기인이며 정형외과 전문의인 넉넉한 오명환. 이름처럼 얼굴도 곱상한 서울법대 출신 박경희. 올드팝 그룹 “에버그린”의 지존인 젠틀한 이상래. 세명 모두 그동안 엄청 바뻤다고 한다. 공원입구 쉼터에서 잠시 수인사들을 나눈 후, 배산회장의 등반지시에 의거 출발하니 대부대였다. 각자 능력에 맞춰 코스를 잡았는데, 기본 코스 맨 후미는 명환이었다. 평소 후미를 도맡았던 영환이가 보조를 맞춰줬는데 땀이 하나도 안 나서 싱거웠단다. 남청이는 만 5년 전의 자기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아직도 공부중인 경희는 방송대 국문학과 문학탐방동아리 활동 차 공주(공부하는 주부)님들과 산과 바다를 무지하게 누볐단다. 모두들 아리숭이다. 때늦게 공부해보자니 머리가 아플테고, 물 좋은 배움의 터전을 잊자니 아쉬운가보다. 상래는 공연마다 성황을 이룬 덕분에 멋쟁이 사모님들 펜 관리가 무척 피곤하다며, 머리 식히러 나왔다는데 2년6개월만이었다. 세 명을 일일이 소개하는 건, 다음 산행부터는 자주 나오라는 특별배려다. 대남문 입구 양지 바른 곳에서 물마시며 입담들 날리는데, 요즘 들어 등산을 부쩍 열심히 하는 회원 중에 사대부가 몇 명 있다는 말이 돌았다. 그들은 자격유지를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산을 탄단다. 온 몸을 바쳐 산을 사랑한다고 했다. 대부분 회원들은 왠 양반타령이냐고 의아해하며 이참에 사대부의 역사적 고찰을 해보잔다. 믿었던 교장님마저 헷갈렸다. 士大夫란, 고려 말 귀족계급에 불만을 품은 유교풍의 학자적 관료로서 행정실무에 능한 중간층 관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본뜻은 四帶婦인가 보다. 한심한 놈 말고 사심 없이 살고자하는 분들을 지칭하는 거다. 사내대장부의 준말도 결코 아니다. “빈총, 쌍권총”하며 자기들끼리 암호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禮를 두려워하지 않는 급진적 행동주의자들인가 보다. 올라갈 때는 제각각이었지만, 내려가면서는 한 무리가 되어 이야기꽃을 피웠다. 마누라 이야기 꺼내면 바보가 되고 묻지도 않는다. 잘된 자식 이야기할려면 힘이 ??고 부러워 했다. 끊어진 동력줄이 다시 이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은 건 모두 같은가보다. 옛날 집”에서 이화학당 이경표여사님이 일행을 반갑게 맞이 해주셨다. 풍성한 점심상과 따뜻한 웃음을 베풀어주시니 남편님에 대한 내조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배재학당”선창하면“씨스뿌마”답창하며 건배하는 합창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크고 우렁찼다. 일어서려는데 작은 재호가 중대발표를 했다. 큰 아들이 현대아산병원에 치과의사인턴으로 취직했다며 한 번 쏘겠단다. 이래저래, 축하해 줄 일이 계속되니 배산회 나오는 기분이 여러모로 괜찮은 편이다. - 조 성 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