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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잎다리 클로버에 우리 깃발은 순결스런 청춘들의 행운에표상 지덕노체 네향기를 듬뿍 싣고서
(후렴) 살기좋은 우리마을 우리 힘으로 빛나는 흙의문화 우리손으로 |
김갑영작사 김순애작곡 '4H구락부의 노래'이다.
19세기초 미국에서 청소년을 통한 농촌개발운동의 기치를 내걸고 시작된 4H운동은 일제시대에 우리
나라에 보급되었으나 그리 활성화 되지 못하다가, 해방 뒤 미 군정하에서 본격 결성되고 한국동란 후
전후복구운동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함께 어우러지며 범 국민적 지
역사회개발운동으로 그 정점을 맞게 된다.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보급한 시멘트와 슬레트 등으로 초가지붕을 걷어 내고 마을길을 넓히던 주체가
바로 마을의 청소년으로 결성된 4H구락부였다. 이는 급격히 늘어난 전후세대의 성장에 비해 교육기관
등 부족한 제반 여건으로 초등학교이후의 상급학교 진학률이 미미하던 시대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
어져 세계 역사상 유래가 드문 후발국 사회개발운동 성공사례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 4H구락부의 상징로고가 네잎 클로버 였으니 당시의 마을 입구와 눈에 잘 띄는 길목에는 어딜 가나
커다란 자연석을 이용 하거나 시멘트 구조물에 녹색의 네 잎마다 흰색으로 H자를 새겨 넣은 표지석이
전래의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대신했다.
클로버 (학명:Trifolium repens L.)
유럽을 원산으로 하는 장미목 콩과의 클로버(clover)는 이렇듯 격동기시절 농촌개발운동의 상징문양
으로 우리국민의 마음속에 본격적으로 다가왔다.
클로버는 본래 유럽에서 목초나 개간지의 거름용도로 재배되던 것이 전 세계로 이식되었다. 아일랜드
의 국화이기도한 클로버는 433년 성(聖)패트릭이 아일랜드에 카톨릭을 선교할 때, 그리스도교의 삼위
일체신앙을 설명하면서 이 풀의 세잎을 예로 든 것으로 유명하다.
클로버는 콩과식물의 특성대로 뿌리혹박테리아가 공기중의 질소를 토양에 잡아주는 역할을 해 다른
식물들에게도 도움이 되므로 최근에는 토양의 관리나 지피식물(地被植物)로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유
럽에서는 향미채소로 식용하기도 한다. 줄기가 옆으로 기다가 땅에 닿으면 뿌리를 내리는 강한 생명력
을 가진 클로버는 지상부에서도 하늘을 향해 펼쳐진 세장의 잎이 합쳐져 흡사 꽃인 듯 보이는 흰 줄
문양으로 곤충을 유혹한다거나 차례로 피는 통꽃의 다발을 크게 보이기 위해 시든 꽃을 버리지 않고
새 꽃을 윗쪽으로 올려 피우는 생존전략을 구사하며 낯선 이국땅의 산야에 적응해 왔다.
클로버는 트리포리엄(Trifolium)으로 시작하는 학명에서도 알 수 있듯 세잎을 가진 식물이다. 트럼
프의 클럽문양이나 아일랜드의 상징인 샴록'(Shamrock,작은 클로버種)도 세잎이다. 잎의 변이종인
네잎클로버가 행운의 상징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일찌기 기독교 신앙을 상징하는 클로버에 악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고 희귀한 네잎클로버에 더욱 의미를 부여한 유럽사람들의 풍습에서 비롯
된 듯 싶은데 클로버 잎의 변이종은 21장짜리 까지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고 한다.
작물이 아닌 서구 외래종의 역사가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그렇 듯 클로버도 구한말의 개항 무렵 이
땅에 들어 왔을 것으로 추측한다. 일제에 의한 한일합병작업이 차근차근 진행되던 1907년 '수원 권
업 모범농장에 레드클로버( red clover)가 처음 재배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개체가 큰 레드클로
버는 초지조성용으로 도입 된 듯 한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클로버라 부르는 흰꽃의 클로버는 최초 등
장시점이 애매해 아마도 기독교신앙과 함께 관상용으로 들어와 교회나 선교사 사택의 화단을 넘어
야생으로 번진 것으로 짐작해 본다.
큰 가축의 먹이로 이용하기에는 개체의 크기가 작고 수로가나 공터등 집 근처에 왕성한 번식력으
으로 퍼져나간 클로버는 한 몫의 일로 하기엔 시답지 않아 대부분 방과후의 고사리 손을 통해 사
육되던 토끼먹이의 대명사로 굳어져 버렸으니 우리 이름으로 '토끼풀'이 된 연유이기도 하다.
red clover (학명,Trifolium pratense L)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의 새마을노래로 하루일과가 시작되던 내 유년시절 우리집 사랑방은
성황림마을 4H청년회의 모임방으로 사용되었다.
퇴비증산에 마을길 넓히기와 지붕개량 등 낮에는 공동의 개선작업에 힘쓰고 저녘이 되면 모임방으로 모
여들어 회의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기도 하던 형들속에 끼는것이 좋아 4H노래를 따라 부르고 목소리를
높여 선창자의 4H서약을 따라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에는 대학생들의 농활도 활성화 돼 있던 시절
이라 여름이나 겨울방학때엔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나오던 경희대 바인봉사대에서 야학을 열기도 했고
기증한 도서로 4H문고를 만들기도 했으니 어쩌면 그 4H모임방의 최대 수혜자는 내집 사랑방에 문고가 생
긴 나 였는지도 모른다. 적막하고 긴 산촌의 밤을 책을 읽는데 재미를 붙인 나는 중학교 다닐때까지 문고
의 책을 거의 섭렵하다시피 했고 그때 붙인 독서습관과 지식의 자양분 덕택에 이렇게 남 앞에 내 놓을 글
줄이라도 긁적거리게 되었으니...
클로버! 아니 우리 산하에서 슬그머니 들풀이 되어버린 토끼풀!
우리에겐 기나긴 암흑과 절망의 동굴을을 막 빠져나온 역사의 격변기에 신바람을 가미한 에너지의 건설
적인 분출구를 열어주었던 사회개혁운동의 상징으로 다가와, 꽃반지를 만들어 낀 소녀의 고운 손으로 따
서 책갈피에 끼우던 싱그러운 청춘의 상징같은 풀이다.
그러나 본디의 세 잎에 부여한 의미처럼 믿음과 희망과 사랑만으로는 다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남았
던 걸까? 살며 스스로 지은만큼 받을 복(福)정도로는 양에 차지 않아서일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덤
으로 굴러 들기를 바라는 요행수(僥倖數)에 대한 욕심이 가미된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향한 인간들의 기
형적인 열망은 쉽사리 사그라 질 것 같지 않으니...
17세의 견습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크라이슬러자동차회사의 설립자가 된 윌터 크라이슬러의 명언을
떠올리게 되는 풀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출세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회가 문을 두드릴 때 뒤뜰에 나가
네잎 클로버를 찾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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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쌤!
잘 배우고 갑니다.
내가 사랑하는 4-H 표지석과 함께 클로버 잘알게되 고맙습니다.
정말 어린 시절에 네잎 클로버를 보면이 뚝 떨어지는줄 알았어요순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