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둘레길 5구간 (무태팔달길)
이원근
♤ 일정: 2025년 5월 17일(토), 흐림
♤ 코스: 무태교 네거리~연리지~망일봉~조야재~운암지공원
♤ 거리: 5.23km, ♤ 시간: 1시간 57분
바로 이 함지산 산불과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대형산불 사태로 한 달 이상 산행을 자제했다가 오늘 비로소 대구둘레길을 이어간다. 망일봉 자락에 들어서니 초여름의 숲이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시원한 솔향이 가득한 길을 따라 걸으면 더위도 한결 잊힌다.
이 '5코스는 특히 망일봉(279m), 함지산(287.7m) 등 산길 등산 코스가 포함되어 있어서 아주 마음에 드는 둘레길이다. 산 중턱에 올라서니 화근내가 진동한다. 불이 등산로까지 다다랐으나 등산로를 넘지는 못했다. 망일봉에 올라서니 산불 현장이 처참하다. 겨우 망일봉 정상과 함지산 정상만 남고 다 탔다.
도야재에 이르니 조야동쪽과 함지산쪽 등산로가 폐쇄되어 있다. 등산로에 설치된 데크 계단이 모두 불에 타 다닐 수가 없단다. 하는 수 없이 코스를 바꾸어 운암지 공원으로 하산하였다.
처참한 산불 현장을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뇌리를 스친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장마철이 올 건데, 더 늦기 전에 산불의 2차 피해인 산사태를 막기 위한 대비는? 우리나라 산림정책은? 산불이 난 게 오히려 잘된 게 아닐까? 이렇게 상처 입은 산이 산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산은 내 산인데
나는 산을 좋아한다.
걷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가는 곳마다 산을 오르게 되고, 걷다 보면 어느새 산등성이에 올라가 있다. ‘1 대간 9 정맥 6 기맥 162 지맥’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우리나라에는 참 산이 많다. 때로는 ‘이 나라 전체가 산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토의 63.7%가 산지(2015년 기준)라고 한다. 절반을 훨씬 넘는다. 그중에서도 국유림은 24, 공유림은 7% 정도이고, 나머지 69%는 사유림이다. 절대다수가 개인의 소유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상한 건, 그렇게 많은 산이 개인 소유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산을 가진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나무 한 그루를 베려고 해도 허가가 필요하다. 숲속에 작은 길 하나 내려 해도 절차가 복잡하다. 간단한 쉼터 하나 만들고 싶어도 관련 법을 뒤지고 행정기관을 오가야 한다. 내 땅인데,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내 산’이라니. 마치 명의만 내 이름이지, 실상은 아무 권리도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유림을 둘러싼 이런 제한은 처음엔 공익을 위한 것이라 이해했다.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환경을 보전하겠다는 취지는 맞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의문이 생긴다. 과연 지금의 방식이 정말 산을 위한 길인가?
제대로 관리할 수 없도록 막아놓고, 산을 방치하게 만든 결과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간벌을 못 해 빽빽해진 나무들은 햇빛도 바람도 통하지 않게 만들고, 병해충과 산불의 위험도 커졌다. 어떤 산은 산사태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아무도 손을 못 대니,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자연은 스스로 치유하긴 하지만, 방치된 자연은 언젠가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오늘 함지산은 가지도 못하고 망일봉을 넘으며 처참한 산불 현장을 보았다. 온 산이 까맣게 타버린 모습을 보며, 참담함 속에서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산불이 난 게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대부분의 우리 산은 계획된 경제 수림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자란 숲이다. 쓸모 있는 나무라기보다는 손도 못 대는, 손댈 수도 없는 숲이다. 늦었지만, 이런 기회에 경제수를 중심으로 계획 조림을 할 수 있다면, 산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상처 입은 산이 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만약 산주가 자기 산을 조금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어떨까. 나무를 일정 기준안에서 벌목하고, 임산물을 재배하며, 소규모 산림 체험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사람들은 산으로 돌아오고, 지역은 활기를 얻을 것이다. 산을 단지 ‘개발’이 아니라 ‘활용’하는 것이다. 자연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오히려 자연을 더 가깝게 느끼고 아끼는 방식으로.
나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내가 가진 산이 정말 내 산이 되는 날.
주인으로서 책임도 지고, 사랑도 줄 수 있는 날.
그리고 그 산이 나뿐 아니라 이웃과 자연 모두에게 열려 있는 날.
산은 그냥 두면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막는 것도 답이 아니다. 방치도, 규제도, 실효성 없는 보호도 결국은 문제를 키운다.
이제는 사유림을 바라보는 눈을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 자연을 위한 일, 그것은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사유림 정책의 원칙과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때다. 산을 진정으로 살리고 싶다면, 산을 가진 사람이 주체가 되게 해야 한다. 그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며, 산림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지 싶다.
▲ 망일봉에 이르기 전 연리지 사각 목책 안에 서 있는 특이한 형태의 소나무를 만난다. 연리지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연리지 앞에서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사랑이 성취되고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이 연리지는 불길이 등산로를 넘지 못했 안전했지만, 불길에 한쪽 가지는 화상을 입었다.
칠곡 천년 기념비 ▲ 2,018년 고려사에 칠곡이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한 1,018년으로부터 1,000년에 이르렀음을 기념하여 세운 비다.
이를 기념하여 ‘칠곡 천년숲길’까지 조성했었는데 이번 산불로 많은 피해를 본 듯하다.
첫댓글 ㅡ 권수문
우리나라 참 좋은나라입니다. 내 산을 나라에서 통제하고 관리해 주니까 정작 주인은 할 일이 없습니다. 오직 부동산 거시기 목적으로 소유 ㅎㅎ 더운 날씨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ㅡ 김종배
이선생님 변덕스런 날씨가 요즘은 여름 날씨인듯하여
건강 생각해서 조심조심 걸어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ㅡ 김종철
사유림 정책의 원칙과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때다. 산을 진정으로 살리고 싶다면, 산을 가진 사람이 주체가 되게 해야 한다. 그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며, 산림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지 싶다.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저는 평소 산림청의 횡포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정말 쓰레기 같은 일만 하고 있습니다.
ㅡ 김홍기
공곡 선생의 글을 읽으
면서 평소 맘속에얽힌
매듭을 시원하게 풀어
주네 현대판 대동여지도
친구 계속 건강하고
좋은 산행기 남기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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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땔감과 논에 넣을 풀(퇴비)을 구하고 소위 명당이라는 곳을 구해서 산소를 쓰기 위해 필요했는데, 지금은 대도시 근처일부 부동산 ㅇㅇ 외에는 관심없게 방치되고 있지요. 변함없는 산행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