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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백제가 싸우고 있는 모습을 그린 영화 ‘황산벌’의 한 장면.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강 세력을 키우기 위해 남한강 일대인 충주 지역을 차지하고자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씨네월드
충북 충주 장미산성 성벽 아래를 파던 연구원들이 깜짝 놀랐어요. 약 1600년 전 사용했던 나무 물탱크가 그대로 발견됐거든요. 무려 8만3000L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로, 이는 300명이 두 달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랍니다. 이 물탱크는 5세기, 백제가 만든 것으로 밝혀졌어요. 흥미로운 점은, 장미산성이 있는 충주가 백제뿐만 아니라 고구려와 신라의 유물이 모두 발견되는 곳이라는 겁니다. 충주는 삼국 시대 세 나라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던 곳이거든요. 왜 세 나라는 충주를 노렸을까요?
충주는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요. 남한강이 가로질러 농사 짓기도 좋고, 강을 타고 주변 지역으로 이동하기도 편리한 교통의 중심지였죠. 이에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어요. 그러다 4세기, 백제가 충주를 차지했어요. 백제는 남한강을 따라 성장해 갔죠. 하지만 5세기 무렵, 고구려의 장수왕이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면서 충주는 고구려의 영토가 됩니다. 고구려는 충주를 ‘국원성’이라고 부르며 중요하게 여겼어요. 장수왕은 땅을 넓힌 것을 기념해 비석을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한반도 유일한 고구려 비석인 ‘충주 고구려비’예요.
하지만 충주의 주인은 다시 한번 바뀌어요. 551년 신라 진흥왕이 충주 지역을 빼앗았거든요. 신라는 충주에 주민들을 옮기고, 무기를 갖추는 등 중요한 거점으로 삼았어요. 수도 경주를 돕는 ‘소경’으로 삼고, ‘중원경’이라 이름 붙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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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충주는 삼국이 차례로 차지할 만큼 중요한 곳이었어요. 그래서 충주 곳곳에서 삼국의 유물을 모두 찾아볼 수 있답니다. ‘고구려비’부터 백제의 ‘장미산성’, 통일신라 시대의 벽돌과 기와까지. 충주에 남아 있는 다양한 유적은 한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던 삼국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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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三國時代): 한반도에서 고구려·백제·신라의 세 나라가 존재했던 시기. 4세기 이후부터 신라의 삼국 통일까지 의미한다.
소경(小京): 신라 시대의 행정 구역으로, 경주에 수도가 있던 통일 신라가 지방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설치해 경주의 일을 돕도록 한 특별한 지역. 모두 5개의 소경이 있었으며, 그중 ‘중원경’이 지금의 충주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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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에서 최근 어떤 유물이 발견됐나요? 어느 시대에 만들어진 유물인지도 적어 보세요.
고구려, 백제, 신라는 왜 충주를 장악하려고 다퉜나요? 충주의 위치와 자연환경을 생각해 적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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