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일정에 앞서 울릉도에 한번 생각해 보았읍니다.
울릉도는 경상북도로 행정구역이 되어 있고, 국회의원은 MB 큰형 이00가 지역구로 활동
하고 있는 곳 입니다.
국회의원 몇 차레 해 보면서 울릉도를 관관특구로 만들어 볼려고 힘은 많이 쓰신 모양인데
관광 인프라가 아직 미치지 못하고 계속하여 개발중인 도시로 각인 되었습니다.
먼저 비행기를 울릉도에 취항 하기 위해서 공약을 하고서 울릉군 서도에 완만한 해안 계곡을
막아서 비행장을 만들려는 흔적이 보이는데 어디 말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어마 어마한 자금과 기술이 지원 되어야만이 일이 될성 싶었는데 큰 형님은 큰 집에서 잠자고 있으니 어려울 것도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울릉도 탐방은 보통 3박4일은 해야 한 바퀴 제대로 돌아볼 울릉도 탐방을 우리는 2박3일로 거뜬히 소화를 하고(성인봉 등반, 나리분지, 봉래폭포, 내수전전망대 등 육지 A-B코스 일주, 해안행남산책로 등), 게다가 그 어렵다는 독도까지 탐방했으니, 이런 홍복(洪福)이 어디 있을까? 그러하니 ‘되는 집안은 어린애가 시암(우물)에 빠져도 붕어를 입에 물고 나온다’는 속담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와 같은 일행 대부분은 독도 탐방이 다음날로 예정돼 있었는데, 기상 악화로 꿈도 꾸지 못했다는 후문에 웃어야 할까?
3일차 되는 날 아무튼, 이제 가는 길만 남았다.
전날부터 기상악화로 출항이 되지 않는 다면서 모텔방 예약을 연장 하라는 전화와 기상 이변으로 세찬 비바람까지 사람을 긴장 하게 되었다.
잠자리에서 창문을 여러번 내다 보았으나 검은 먹구름은 걷히지 않고 있고, 바람도 계속 싱싱 불어 댄다.
그래도 이른 아침 어시장을 한번 둘러 보고 태양이 오르는 일출을 보수 있지 않을까 이른 새벽에 몸 단장을 하고 저동항 방파제로 나갔다.
이른 아침 저동항 둘레길을 한바퀴 돌고 숙소로 돌아 오니 여하튼 짐을 꾸리고 나오라고 한다. 기상예보와 여객선 터미널에서는 금일 입출항이 잡히지 않는다는 통보다.
하늘을보니 구름도 걷히고, 세찬 바람도 조금 잔잔히 멎어 들은 느낌 이었다.
아침을 먹고 긴장되는 모습으로 먼저 행양 경찰서 울릉 파출소로 찾았다.
혹시 오늘 업무차 경비정이라도 들어 오면 타고 나가려는 정보를 받고자 였다.
해양 파출소 경관에게 해상 기상과 여객선 출항에 대하여 물어 보고 상담을 하였더니
해양 기상이 최악이라 여객선 및 고기잡이 어선 통제가 되어 있는 상태고, 포항에서 금일 13시에 울릉도 출항이 잡혀 있는 정보가 있다고 전달을 해 준다.
이참에 포항으로라도 나가서 서울로 상경을 하려고 먼저 경관에게 표를 2장만 부탁 시켜 놓고 전화 번호를 건네고 일행들이 있는 곳에 가서 오늘 기상 악화로 출항이 되지 않으니
하루 더 숙식하며 울릉도에 머무러야 된다고 전달 하였더니 월요일 일거리 가득하다면서 근심 어린 표정들이 이루 말을 할수가 없었다.
3일차 08시에 귀항으로 예약이 되었는데 입출항이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으니 마음을 굳게 먹고 못다한 여행을 하자면서 울릉도에서 제일 높은 성산봉 등반과 이를 소화 하지 못한 친군는 케이블 카로 등정하는 전망대와 울릉도 박물관 탐방을 할수 있도록 조를 나누게 되었다.
성인봉 등정길에 있었는데 해양 파출소 경관이 전화가 왔다.
오늘 묵호에서 15시에 출항이 잡혀 있고, 그 배가 들어 오면 나갈수가 있다고 말이다.
얼마나 기다리던 전화 였는지 산행한 친구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니 너무 기뻐 어쩔줄을 몰랐다.
독도 주민인 이 사람이 고기를 낚시로 잡아서 선물해 주었다
성인봉까지 왕복 4시간 잡으니 편히 다녀 올수가 있었다.
하산하여 점심을 먹으니 시간이 또 남았다. 그래서 도동에서 저동까지 둘레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걷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안 계곡을 시멘트로 해서 두 사람이 통행할수 있도록 둘레길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는데 정말로 아름 다운 바다와 용암이 흘어 만들어진 자연의 신비 그 자체 였다.
저동항에 도착되어 울릉도 시내 버스를 타고 다시 도동으로 이동하여 입항하는 곳으로 와서
기다리고 있으니 뱃고동이 울려 퍼졌다. 정말 환성이 나오지 않을수가 없었다.
여객선에서 배멀리에 자신 없다면서 인근 약국에서 배멀리약과 방석을 깔고 누워서 이동을 할 것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일행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출발시간만 기다렸다.
도중에 황홀한 동해의 낙조(落照)를 찍느라 동분서주하면서 카메라로 낙조에 빠져 들어 사진을 찍것다며 이곳 저곳 헤매고 다니다가 배 멀미를 하고말았으니 이 노릇을 어쩔 거나.
하기야 공수훈련도 완벽하게 해치운 범같은 나 역시도 무릎을 꿇었으니, 미동도 안한 친구들은 기특할 뿐이다.
그들은 호박막걸리를 오징어 쭉쭉 찢으며 마셨다던가. 심지어 어떤 친구는 배가 고파 깼다며 호박엿 한 봉지를 작살내더니 던킨도너츠까지 ‘폭풍 흡입’하였다는데, 그 자신도 남들 보기에 조금 미안했다던가. 수평선(호라이즌)에 지는 노을은 장관이었다.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이 안될 터.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 바로 이것.
아, 어찌나 배가 너울 대던지 놀이 공원 가면 그네 타는 그 이상으로 배가 요동을 쳤다.
처음부터 자신 없는 사람은 방석에 진작부터 누웠건만, 그 험한 롤링에는 속수무책.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사람이 짐짝에 다름아닌 것을. 곳곳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웨에엑’ 토하는 소리에 정신이 산란하다.
멀미약도 소용없고 얼굴이 노랗게 된 지 오래, 캐콘 유행어처럼 ‘사람이 아니므니다’ 형상이로구나. 심하다. 화장실조차 갈 수 없이 흔들리는 바람에 누구는 벅벅 기어서 간신히 다녀오다, 그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과 머리를 심하게 부딪쳤다던가.
그 남녀는 강릉휴게소에서 우동을 먹다 서로 알아보고 멋쩍게 웃었다는 후문이다.
아무튼 ‘쎘다’ 거의 대부분의 인간들이 상당한 고통이 시달려 파김치가 됐다. 훗날 육지에 와서 들으니, 배멀미를 심하게 하는 어느 여자든, 남편이 아닌 남정네가 손을 잡아주고 등을 조금만 두들겨주면 신기하게도 멀미가 금세 그친다는 것이었다.
그 기똥찬 정보를 몰랐으니, 통재(痛才)라. 그러니 어느 여고생, 꼼짝을 못하고 멀미를 하는데, 남편을 포함한 누구 하나 들여다보지 않았으니, 그 원망이 하늘을 찔렀다. 하여 푸념처럼 하는 말이 “아이고, 친구들이 사람 잡네. 친구들이 나 죽이네”였다. 신랑 하는 말 “나도 죽게 생겼는데, 어떠케 마눌님 챙길 정신이 있었겠냐”고. 그것 참, 잘못했으면 ‘울릉도 독도탐방’ 기획한 사람 누구여, 욕 바가지로 얻어먹을 판이었던 것이었다. 그날의 어록은 확실히 기록해두자. “아이고, 친구들이 사람 잡네.
참말로 아슬아슬한 순간은 지났다. 묵호항 도착 오후 9시, 칠흑같은 밤, 또 악착같이 인증샷을 하고 ‘아까맨치로’ 자기가 타고 온 관광버스를 찾아 나선다.
그 밤에 잠실, 노원, 송내, 세 방향으로 우리는 찢어졌다. 강릉휴게소에서 다시 만날 것을 믿으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런 날씨에 배를 띄운다는 것은 무리였다는 것이다.
나오지 못하고 발이 일주일정도 묶였으면 어쩔 뻔 했나? 친구중에 포스코 중요한 회의에 애를 태운 놈, 수능 앞둔 고3생 책임을 진 군산의 국어선생님, 사건사고 처리 하려고 월요일 미팅 해 놓은 것 하며, 하루가 천년같았을 터. 하늘이 도운 것은 천우신조(天佑神助)라 했던가. 모두, 100%, 완전히, 무사귀환! 악천 기상에 심한 배멀리까지 좋은 추억을 가슴에 새겼으니
마음 한켠에 흐믓하여 기분전환을 해서 좋았다.
이상으로 독도 울릉도 탐방을 읽어 준 친구들에 고맙다. 이상 마치겠다. 끝.
첫댓글구..배멀미..보통이아닌데..나...여름에.홍도에갔다가 ...혼났어요...혼...
10여년전에 울릉고 2박3일 한적이 있었는디 아마도 많이 변했겠지?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나는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