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써야 내 돈"… 무조건 아낀다고 좋은 게 아니다
이경은 기자
입력 2025.12.11. 05:45업데이트 2026.04.30. 10:05
100세 시대 은퇴 자산 현명하게 쓰는 법
日 노후 설계 전문가 요리후지씨 인터뷰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늙어서 주머니가 가벼우면 그만큼 비참한 일도 없다. 병원비가 얼마나 들지 모르니 미리 돈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
“죽는 날을 알 수 있다면 그때에 맞춰 통장 잔고를 조절하면 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85세까지 살 줄 알고 돈을 다 썼는데 95세까지 살면 어떻게 하겠나.”
“노년에는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불안이 배고픔보다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 쓰고 죽자’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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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써야 비로소 내 돈이다. 100억원을 갖고 있어도 쓰지 못했다면 궁핍하게 산 것이나 다름없다. 살아 있을 때 자신을 위해 후회 없이 써야 한다.”
지난 3일 본지가 소개한 요리후지 타이키(頼藤太希) 머니앤유 대표 인터뷰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다. ‘돈을 안 쓰고 죽는 것이 정말 현명한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댓글과 ‘자산을 쌓는 법보다 쓰는 법이 더 어렵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노후 설계 전문가인 요리후지 대표는 인터뷰에서 “노후에 자산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의 안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도하게 아끼며 살다가 죽는다면 과연 행복한 인생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죽기 전까지 지나치게 아껴만 살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남기기 위한 인생’이 되면 정작 본인의 행복은 뒤로 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언제 죽을지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인생 마지막 순간의 자산을 ‘0’으로 맞추는 계획이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거의 제로’에 가깝게 줄여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요리후지 대표에게 인생 후반부 자산을 어떻게 지혜롭게 줄여갈 수 있는지 물었다.
–자산을 ‘전부 다 쓰고 죽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사람의 생애 주기 그래프를 보면, 인생의 흐름에 맞춰 자산을 조금씩 줄여가다가 마지막에 0원이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수명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산을 계속 줄여 쓰는 일은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 특히 노후에는 병원비나 간병비 같은 돌발지출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일정 금액을 남겨두려는 심리가 작동하고, 결국 자산을 계획대로 모두 소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불안에 떨지 않으면서 노후 자금을 쓰려면?
“나이가 들수록 ‘돈이 나가기만 한다’는 잔고 소진 공포가 커진다. 이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현금 흐름(CF·cash flow) 자산을 활용하는 것이다. CF 자산이란 고배당주, 채권, 리츠(부동산 투자 신탁)처럼 정기적으로 현금이 들어오는 구조를 가진 자산을 말한다. 은퇴 자산의 일부를 단순 현금 보유에서 CF 자산으로 전환해 죽을 때까지 보유하면 된다. CF 자산을 보유하면 생활비가 필요할 때 언제든 매도해 현금화할 수 있고, 배당·이자 등으로 잔고가 다시 채워지기 때문에 ‘죽기 전에 돈이 바닥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크게 줄어든다.”
요리후지 머니앤유 대표는 “일본 은퇴자들은 주로 NTT, KDDI, 미쓰비시UFJ파이낸셜, 미쓰비시HC캐피탈처럼 연 4% 안팎의 배당을 주는 종목에 자금을 맡긴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자산으로는 미국 고배당 ETF인 VYM이나 배당 성장 ETF인 VIG 등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머니앤유 제공
–노후 자금은 어떻게 꺼내 써야 효과적인가.
“인생 후반기에 자산을 인출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매달 같은 금액을 꺼내 쓰는 정액 인출, 둘째는 매달 자산의 일정 비율을 인출하는 정률 인출이다. 정액 인출은 매달 들어오는 금액이 일정해 생활비 계획을 세우기 쉽지만, 자산이 더 빨리 소진된다는 약점이 있다. 반면 정률 인출은 자산 수명이 비교적 길다는 장점이 있지만, 해마다 받을 금액이 달라져 예측이 어려운 것이 단점이다.”
–각각 방식에 장단점이 뚜렷해 보인다.
“노후 초기처럼 체력과 의욕이 충분한 시기에는 오히려 돈을 더 적극적으로 쓰겠다는 관점이 필요하다. 아무리 자산이 있어도 ‘건강’이 받쳐주지 않으면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노후 후반에는 자산 잔액이 다소 줄어들더라도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건강 수명이 지나면 활동 범위가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지출도 함께 감소하기 때문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인출 방식에 따라 생활비는 어떻게 달라지나.
“노후 자금 2000만엔을 가진 은퇴자를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이 돈을 은행 통장에 넣고 매달 16만엔씩 꺼내 쓰면 약 13년 만에 모두 소진된다. 그러나 연 4% 수익이 나도록 운용하면서 같은 금액을 인출하면 자산 수명을 18년까지 늘릴 수 있다. 반면 매년 자산의 8%만 인출하는 정률 방식으로 관리하면 30년이 지난 뒤에도 약 500만엔의 자금이 남는다.”
–건강할 때 돈을 더 많이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액 인출과 정률 인출의 단점을 보완한 방식이 바로 ‘전반기 정률, 후반기 정액’이라는 반반 조합이다. 은퇴 직후처럼 건강하고 활동적인 시기에는 정률 인출을 적용해 자산 규모에 맞춰 탄력적으로 더 많이 쓸 수 있다. 여유 있게 소비하며 경험과 추억을 쌓는 데 유리하다. 이후 자산 잔액이 일정 수준 이하로 줄어드는 시점부터 정액 인출로 전환하면, 매년 받는 금액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남은 자산을 끝까지 활용할 수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반반 조합으로 뽑아 쓰면 얼마나 버틸 수 있나.
“자산 2000만엔을 인출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다. 먼저 연 8%씩 정률로 인출하다가 자산이 절반인 1000만엔 아래로 떨어지는 시점에서 연 100만엔 정액 인출로 전환한다. 계좌가 연 4% 수익률로 운용된다고 가정하면, 정률 인출로 18년 차까지 연간 약 80만~160만엔을 받을 수 있다. 자산이 1000만엔 아래로 내려간 이후부터는 매년 100만엔씩 정액 인출한다. 이렇게 29년 차까지 매년 100만엔씩 뽑아 쓰면 30년 후에 자산을 0으로 만들 수 있다. 70세에 인출을 시작했다면, 30년 후는 정확히 100세다.”
–노후 자금 인출 계획을 세울 때 주의할 점은?
“예시는 연 4% 수익률을 가정해 계산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매년 같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없다. 시장 상황이 나빠져 자산이 줄어드는 해도 당연히 있다. 이런 시기에도 동일한 금액을 정액 인출하면 자산 수명이 더 빠르게 짧아질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지나치게 아끼기만 하며 현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손해다. 쓸 수 있을 때, 필요할 때 적절히 지출하며 현재를 즐기고 현명하게 자산을 줄여가는 것—이것이 가장 행복한 노후를 만드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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