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콩트] 술을 끊어?

[시공간]

참 술을 많이도 마셔왔다.

지금까지 마신 진로 소주병을 팔아도 진로 회사 하나 차렸을 걸?

난 술 그 자체도 좋지만 그보다는 술이 있는 분위기와 그 활기참이 더 좋다. 술 마시는 사람들 모두 목소리에 힘이 넘치고 웃음소리도 호탕하다. 때로는 소인배처럼 꽁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대인이 된다.

삶의 얘기를 진솔하게 나눌 수 있어 좋고, 미래의 희망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좋다. 평상시에는 할 수 없는 얘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낼 수 있어서 좋고, 지위나 연령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친구처럼 마음을 터놓을 수 있어 좋다. 물론 태어나기를 음흉하게 태어난 사람들과 마시다가 큰 낭패를 보는 수도 가끔은 있다. 자칫 잘못하면 뒤통수 맞고, 싸대기 맞는다. 그러지만 대부분의 술자리는 분위기가 좋다.

그래서 난 술 마시는 것이 좋다. 어제도 마시고 오늘도 마시고 내일도 마실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조석세끼 제때먹자”가 아니라 “조석세끼 술로 먹자”가 생활신조였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물론 한번 마실 때 초죽음이 될 정도로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예외다. 이런 분들은 대체로 술 마시고 난 후 하루나 이틀은 쉬어 주신다. 침대에 누워있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그게 가능한건지 난 솔직히 이해가 안된다.

난 그래서 결코 많이 마시지 않는다. 낼도 마셔야 하기 때문에 늘 적당히 마신다. 가끔씩은 돼질 정도로 마실 때도 있지만 모 선ㆍ후배들을 만나지 않는 한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난 폭주 스타일이 아니다. 최고의 술맛을 즐기기 위하여, 저녁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안주발로 배를 채우면서 첫잔부터 한 대여섯 잔까지를 빠른 속도로 마신다. 안주가 흡수되는 것보다 술이 흡수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적당한 취기가 금방 오른다.

그 다음부터는 마시는 속도를 천천히 하여 안주에 술이 스며들 시간을 주어 술이 취하는 것을 최대한 늦춘다. 초반에 반짝 취했다가 서서히 깨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그래야 오랫동안 술마시는 사람들과 술익는 마을에 오래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ㅋ

속도를 늦추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 마실 때 안 마시는 것이 아니라 반잔씩 꺾어 마시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보다 덜 마시는 것은 아니다. 똑 같이 마시되 소주 반잔, 안주 두세 점(메인 안주 한 점 원칙은 꼭 지킨다), 그리고 다시 소주를 마시는 식이다. 시루떡 쌓듯 안주 사이사이에 술이 스며들게 하여 술이 취하는 속도를 최대한 늦춘다. 모 돈이 없어 그렇지 고기안주라면 훨씬 더 좋고, 이른바 웰빙안주는 거의 듁음이다.

이렇게 마시다 보니, 서너 가지의 후유증을 겪는다. “재수 없게 꺾어 마신다”느니, “천천히 마셔라”느니 등 욕도 무지 많이 쳐먹을 수밖에 없고, 술과 안주를 섞는 고도의 음주법으로 체중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무쟈개 쳐먹어 체내에 칼로리 엄청 쌓는 꼴이 된다. 대신 안주 없이 술만 마시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위장질환은 없다. 다만 안주 사이사이 술이 스며들게 마셨으므로 많이 마신 경우 술이 깨는 속도도 느려 다음날 늦게까지도 술 냄새가 난다.

술냄새 풀풀 풍기면서 몰골도 처참하여 전날 밤 중원을 호령하던 호방함과 천년기생 품던 그윽한 품위란 찾을 수도 없다. 마누라는 이미 사정거리 밖으로 도망쳐 있고, 애 새끼들도 술냄새 난다고 현관에 나가 신발을 신은 채 빠이빠이를 한다.

하긴 애들 탓 할 필요 하나도 없다. 어쩌다 한번이면 모르까 허구헌날 그 지랄이니 솔직히 할말이 없다. 그러니 “아~ 시파! 술 끊어야지~~~~~!”라는 생각이 절로 나지 않겠는가!

그래서!!! 술을 줄여볼까 한다!!!

술을 끊겠다고 하면 여태 같이 마시던 사람들이 섭섭(하긴 어떤 넘은 잘됐다고 박수를 치기도 하더만...씁)할테고, 솔직히 “작심삼일! 지랄하네”라고 욕할 게 뻔하기 때문에 슬쩍 돌려 말하는 것이다.(...흐흐.... 얍쌉!)

취생몽사(醉生夢死)라 했던가! '취한 듯 살다가 꿈꾸듯 죽는다!'라는 그 말이 내 경우엔 딱 들어맞는 듯싶다. 풍류의 맛을 즐기는 것이 하룻밤이고, 그 허무함과 처참함에 괴로워하는 것은 남들 다 깨어있는 한낮 왼 종일이니 이거 어디 이래서 술을 계속 마실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마실 때 확 마시고 3, 4일 안마시는 것이 내 스탈은 아니어서 그렇게 할 수도 없고...ㅠ

오늘로 3일째 술을 안마시고 참고 있으니 계속 참아볼 생각이다. 금연한지 5개월짼데 모 술 또한 끊지 못할소냐! 비록 지하에서 잠자던 주자(酒子)께서 일어나시어, "술이란 천지간의 현묘한 기운이 뭉쳐 생겨난 것으로 비록 이름은 있되 그 형태가 없으며 시작과 끝이 없고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술로 변화가 천의무봉한지라 끊는 것이 가능하지 않도다. 술을 끊으려거든 밥숫가락을 놓아야 할 것이니라."라고 겁박을 하신다 한들 한번 시도해 볼 생각이다.

그렇다고 굳이 딱 끊겠다는 것은 아니다. 찾아 마시지 않겠다는 것이다. 주자(酒子)께서 말씀하기시를, “유붕자원방래권주(有朋自遠方來勸酒)하니 불역락호(不亦樂乎)!”라 하셨다. “멀리 벗이 있어 찾아와 술 권하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벗이 찾아와 술 한잔 하자 하는데 매정하게 물리친다면 이 또한 소인배의 행동일 것이다.

이런 경우는 할 수 없지 않겠는가! 홍~ 홍~ 홍~!

알콜 중독자의 뇌는 술을 시각적으로 느끼자마자 스파크처럼 반응한다고 한다. 정상인과 알콜 중독자에게 같은 술 이미지를 보여주자 정상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나 알콜 중독자의 뇌에서는 반응이 일어나더라는 아주 흥미로운 실험결과 얘기이다.

이런 상황까지는 가지말자는 얘기이다!!!

혹시, 어스름 저녁때가 되면 허기를 느낌과 동시에 술 이미지가 떠오르거나 자기도 모르게 살찐 아랫배에 손이 자꾸 간다면, 위의 경지에 오를 가능성이 크니 지금부터 조심해야 한다. 일찍이 시인 조지훈은 주도십단(酒道十段)을 아래와 같이 말하였으니 어느 경지인지 참고하여 보기를 바란다.

제1단은 술의 참다운 맛을 배우기 위해 마시는 술(學酒)이니 주졸(酒卒)이며, 제2단은 술맛을 깨닫기 시작하는 애주(愛酒)의 경지로 주도(酒徒), 제3단은 술의 진미에 반한(嗜酒) 사람 곧 주객(酒客), 제4단은 술을 탐하는(眈酒) 사람인 주호(酒豪), 제5단은 술을 보는대로 마시고 찾아서 마시는(暴酒) 단계인 주광(酒狂), 제6단은 주도 삼매에 빠진(長酒) 사람인 주선(酒仙)이다.

제7단은 술도 아끼고 인정도 아끼는(惜酒) 경지인 주현(酒賢)이며, 제8단은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함께 유유자적(樂酒)한 주성(酒聖)이고, 제9단은 술을 보면 즐거우나 더 이상 마실 수 없는(關酒) 단계인 술의 왕 주종(酒宗)이다. 그리고 제10단은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는(廢酒) 단계, 곧 술로 인해 죽는 열반주(涅槃酒)의 단계이다.

대체로 7단을 넘어서면서부터 스스로 주의하여 양을 줄이게 된다고 하니 나를 포함하여 저녁때만 되면 스파크처럼 술 이미지가 떠오르는 사람들 모두 해당된다 할 것이다. 혹시 필름이 끊긴 적이 있거나 술 마시고 통산 20일 이상을 외박한 경우, 앉은 자리에서 소주 3병과 입가심으로 맥주 2,000CC 이상을 꿀꺽하시는 분들, 해장술의 양이 전날 밤 마신 술과 동일하신 위대한 분들, 끼니마다 소주 반병씩을 반주로 마시거나 술집을 그냥 지나치면 두드러기가 돋는 분들은 십중팔구 7단을 넘어선 것이다.

이런 분들은 오늘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술의 양을 필히 줄여야 한다.(별안간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꼬?) 줄이는 방법을 모르시면 텔레뽕 때리시라. 내 이제야 술을 줄이고자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술의 도를 터득하고, “술을 끊을 자신은 없으나 술을 끊겠다는 의지는 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게 되었으니 술과 관련한 덕을 베풀고자 한다.

물론 술 한 잔 앞에 놓고 그간의 연구를 전수하되, 술값은 대신 내야 할 것이다. 예로부터 “가을비는 떡 비요 겨울비는 술 비”라 했다. 술 마시기 좋은 겨울이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크하하하!

훔쳐 마시는 술이 제일 맛있고, 다음은 기생 끼고 젓가락 두드리며 마시는 술이요. 세 번째는 혼자 사는 과부와 생각 없이 마시는 술이고, 네 번째가 좋기도 하고 뒤가 걱정스럽기도 한 처녀와 마시는 술이며, 마지막은 집에서 처와 함께 마시는 술이라 했다.

내 어찌 가장 맛있는 미주를 사라 할까. 기생을 끼든 말든 젓가락술로 만족할 터이니 부담 없이 텔 때리시라. 술은 마실 탓이요, 길은 갈 탓이다. 술 마시고도 술 안마신 척, 호방함과 사람의 향기가 넘칠 수 있다면 그 어찌 진정한 주신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하지 않겠는가! 우훼훼훼!

오랜만에 한가하니 씰데 없는 생각이 넘치넹...흐미~!

[sense]

주광아저씨 이름 여서 딴건가?? 술을 보는대로 마시고 찾아서 마시는 단계인 주광...ㅋㅋ

[시공간]

주광이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네...

[맥가이버]

그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