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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힘들게 돈벌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이먹고 궁상맞게 살지는 말자는 것이 저의 철칙입니다. 이를 위해서 젊었을 때 부지런히 돈을 모아두어야 하는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저만의 강한 신념 때문에 집사람에게 골프장 캐디 일을 주선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 사연을 통해 당시 절박했던 제 자신의 모습과 지금 생각하면 약간은 무능력해 보였던 제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힘들게 맞벌이 하시는 분들에게 제 글이 다소나마 격려나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오늘도 자판 앞에 앉았습니다. |
01. 처음 맞벌이에 뛰어든 아내 골프장 캐디로 돈 긁어모아 |
처음 캐디라는 직업을 제안했던 것은 저였습니다. 사실 그 전에 경리직으로 사무 경력만 10여년 이었는데, 월급도 월급이지만 스트레스도 엄청 받았던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 왔습니다. 그런 저였기에 감히 공백기간 동안에 다시 경리직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일을 계속 시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캐디를 제안했던 이유는 밖에서 운동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거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힘들더라도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보다는 땀흘리며 뛰어다니는 일이 차라리 건강에 더 나을 수도 있을꺼라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 후 아는 누나 중에 캐디를 하는 누나와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름과 가을에 특히 돈벌이가 좀 쏠쏠한데 잘 하면 연봉 4~5천까지도 된다는 누나의 말에 집사람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캐디라는 직업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도 있지만, 골프장에서 캐디일을 하는 누나의 얘기를 듣고서야 저도 집사람도, 그간의 캐디에 대한 편견이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골프장 입사를 위한 기본적인 캐디 교육(골프 룰)을 집사람 스스로 하면서 제2의 직업을 위한 새로운 도약의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은 당시 지하철 8호선 명일역 근처였는데 집사람의 출퇴근 거리를 감안해 골프장에서 가까운 분당쪽으로 이사까지 갔습니다.
그렇게 골프장일을 하면서 어느새 1년이 지났을 때에는 정말로 돈을 좀 만졌습니다. 성수기에는 이틀만 일을 해도 하루에 20만원씩 이틀에 40만원이 들어오는 것은 보통이었습니다. 평일날 은행에 갈 시간이 없어서 혹시라도 집안에 도둑이 들까봐 만원짜리 지폐를 부채처럼 넓게 펴서 장판 밑에 숨겨 놓고 서로 맞벌이 출근길을 떠나곤 했습니다. 그렇게 2년을 모아서 처음에 단칸방 전세, 두 번째는 방 두개 짜리 전세, 세 번째는 방 세칸짜리 전세로 계속 넓혀나갔고 지금은 경기도 외곽에 작은 집을 하나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의 맞벌이 덕에 그만큼 빨리 집을 살 수 있었던 것이지요. 쥐꼬리 연봉으로 생활비하랴, 돈모으랴~ 그냥 그렇게 2~3년 동안 저 혼자 외벌이를 했다면 역시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02. 나에게 맞벌이가 간절했던 이유 |
제게 맞벌이가 간절했던 이유는 젊은 시절이 아니면 돈 벌 기회가 없을 꺼라는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일 할 수 있을 때에 돈을 벌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돈을 벌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젊은 시절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버지가 주식투자로 돈을 많이 날리셔서 돈을 많이 모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집사람과 결혼을 했을 때 제게 쥐어진 돈은 고작 400만원이 전부였습니다. 그 돈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고 약간의 대출을 받아 단칸방 반지하 전세부터 시작했지만, 평생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장마 때 비가 오면 장판 밑으로 물이 주~욱 차올라왔습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르는 싸구려 커피의 가사처럼 정말이지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는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지하실 단칸방을 전전하며 살 수는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젊은 시절 일 할 수 있을 때 돈을 버는 일은 일생에 있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맞벌이가 그만큼 절실했고, 필요했습니다. 제 글 장기하와 얼굴들 '싸구려커피'에 열광하는 이유 를 못 보신 분들은 아래 제 글을 참조하세요.
장기하와 얼굴들 '싸구려커피'에 열광하는 이유 <- 내용을 보시려면 클릭해주세요
03. 돈벌이 부추긴 무능했던 남편
캐디일도 겪어보니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더군요. 집사람 얘길 들어보니 거기에도 텃새가 심하다는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그야말로 군대만큼 수직적인 조직 체계도 그렇고, 그곳은 그야말로 선배가 될 때 까지는 귀머거리요 장님이 되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나운 세계였습니다. 힘들어 하는 집사람을 옆에서 그냥 무능하게 보고있을 수밖에 없는 제 자신이 지금 생각하면 참 무능했던 것 같습니다.
새벽 4시에 눈을 떠 집사람이 일어나기 전에 새벽일을 나가는 집사람을 위해 김밥집으로 달려가 따끈한 김밥을 사다줬습니다. 저녁에 9시에 퇴근하는 집사람을 위해 저는 먼저 퇴근해서 집에서 저녁을 준비하기도 했구요. 휴일과 주말에는 제가 직접 집사람을 골프장까지 출퇴근을 시켜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집사람이 돈벌어오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완벽 지원을 해주었지요. 그야말로 최고의 서비스였습니다. 솔직히 챙피한 얘기지만 연봉으로 따지면 집사람의 연봉보다 약간 못미치는 정도였기 때문에 자존심 상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설거지며 빨래며 가정일은 거의 제가 도맡아서 해야 했습니다. 힘들게 밖에서 일하고 들어오는 아내가 집에서만큼은 편하게 쉬어야 제 마음도 편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04. 힘들고 외로워 했던 아내
2년 반을 골프장에서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집을 장만했고, 이제는 더이상 전세를 알아보러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그게 지금에 와서는 유일하게 저희 집사람과 저의 낙이네요. 하지만, 그렇게 되기 까지 집사람의 고생은 정말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한 겨울에는 눈 속을 뛰어다니면서 일을 해야 했고 여름엔 화상을 입지 않기 위해 가만히 있어도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무더운 날에도 긴 소매 옷을 입고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기들도 힘이들어 한 명 두명 그만두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집사람만 혼자 버텨냈네요. 그렇게 1년이라는 세월을 외롭고 힘들게 견뎌낸 후에야 밑으로 후배를 몇명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집사람이 그 힘든 일을 견뎌왔던 것은 그만큼 삶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고 얘기하더군요. 그렇게 일을 하다가 이제 선배 캐디로서 좀 편해지는가 싶더니만 퇴근하면서 눈길에 집사람이 운전하던 차가 미끄러져 전복되어 병원에 실려갔고, 그 이후로 캐디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사고 당시 차량. 목격자에 따르면 골프장 퇴근길에 눈길에 미끄러져 전복, 3미터 언덕에 차가 굴렀다고 한다.
집사람은 자동차를 폐차할 정도로 전복사고가 크게 났는데도 기적 같이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당시 응급실로 택시를 잡아타고 급히 달려가면서 짧은 시간 동안 차안에서 느낀 생각은 '이제 더이상 돈 많이 안벌어도 좋으니 제발 집사람만 살아있었으면'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다행이 멀쩡하게 서 있는 집사람을 부축해 다음날 병원으로 입원을 시켰고 두달 만에 퇴원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기 까지가 저희 집사람과 맞벌이 부부로서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05. 미안한 나, 그리고 달라진 우리 |
집사람이 다시 골프장에서 제 연봉보다 더 많은 돈을 받으면서 일하겠다고 해도 지금은 오히려 제가 집사람을 말릴 것입니다. 이제는 결코 집사람을 일터로 내몰고 싶지 않군요. 정말이지 두번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대신 저 혼자 벌어서 그것도 평생을 가정을 위해 돈을 벌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오늘도 부지런히 돈을 벌고 있습니다. 지금은 집사람이 맞벌이 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습니다. 고생할만큼 고생했으니 이제는 따뜻한 햇살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채광 좋은 집에서 향기로운 헤이즐럿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커피 메이커도, 커피 세트도 마련했고, 제가 일 나가고 혼자 있을 때 심심하지 않도록 구피, 체리새우, 시크리트, 니그로, 초록복어 등 관상어 취미를 위해 4개의 어항도 들여놓았습니다. 평화롭게 물 속을 노니는 물고기 떼를 바라보면서 여유와 즐거움을 느끼는 집사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제 마음이 평안해짐을 느낍니다. 이제는 더 이상 집사람이 밖에서 돈을 벌어오지는 않지만, 대신 지금은 삶과 인생을 더욱 풍요하게 만드는 더 큰 마음의 재산은 오히려 불어나는 것만 같습니다. 어쨋든 맞벌이 하시는 분들 많이 계실텐데, 부디 와이프 되시는 분들이 힘들게 맞벌이 하실 때 항상 옆에서 먼저 챙겨주시고, 힘들지 않게 잘 돌봐주셨으면 좋겠네요. 저처럼 나중에 후회로 남지 않도록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