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인의 화술의 기준은 상대방이며, 결정에 따른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시키는 고도의 화술이다.
다음은 중국의 대학에서 상담 기술을 가리키는 내용으로, 14가지 기법이 있다.
▶ 휴회 기법
상담 중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여유를 갖고 대책을 논의한다.
▶ 데드라인 기법
상담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최종시한을 정해 놓고 상담을 시작하다.
▶ 가정용 탐문 기법
'우리측에서 일주일 정도 인도 시기를 앞당기면 귀측에서는 어느 정도 가격을 올려주시겠습니까?' 라는 식으로 상대방의 의향을 알아보고 상대방을 유도 심문에 걸려들게 한다.
▶ 오픈 카드 기법
상대방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을 때, 먼저 우리측 카드를 상대방에게 노출시킴으로써 상대방의 성의 있는 협력을 요청하는 기법이다.
▶ 윤활유 기법
상담에 임하면서 상대방에게 적당한 선물이나 기념품을 전달하여 환심을 사는 기법이다.
▶ 미적미적 기법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더라도 한꺼번에 들어주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승낙을 하고 승낙에 따른 상대방의 양보를 하나씩 하나씩 얻어내는 기법이다.
▶ 막후 접촉 기법
상담이 중지된 시간을 이용, 의식적으로 상대방에게 말을 걸면서 접근하여 우호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도록 한다.
▶ 지원팀 활용 기법
전문가들로 지원팀을 구성하여 막후에서 이들을 시기 적절하게 이용한다.
▶ 성동격서 기법
상담 과정 중 의식적으로 상담의 주제를 우리측에게 중요치 않은 분야로 집중시킴으로써 상대방의 주의력을 분산시킨다.
▶ 선고후락(先告后樂) 기법
상담 개시 벽두에 강경한 조건을 제시한 후, 상담을 진행하면서 요구 조건들을 조금씩 조금씩 악화시켜 최종적으로 당초 예상한 것보다 유리한 조건을 얻어낸다.
▶ 김빼기 기법
상대방이 의기양양하고 뻐기는 타입인 경우 밀고 당기는 과정을 계속하면서 상대방의 김을 빼고, 상대방의 예봉이 꺾이면 그 때 부터 반격을 시도한다.
▶ 가격 함정 기법
상대방이 가격 조건에만 집착하는 것을 역이용하여 가격 조건 쪽에서는 양보를 하되, 그 대가로 여타 조건에서는 상대방으로부터 최대한 양보를 얻어내어 결과적으로 득실을 자신의 플러스로 만든다.
▶ 질문 반박 기법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하여 상대방이 어느 문제에 대해 비교적 취약하며 쉽사리 양보를 할 것인지 또는, 어느 문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법이다.
▶ 무선례 기법
상대방의 요구에 대해 선례가 없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점을 들어 거절하는 기법이다.
나라가 크고 인구가 많아 지역마다 상거래 관행에 차이가 있음.
일반적으로 북쪽은 스케일이 크고 남쪽은 세심하다고 함.
[ 중국인의 상거래 대화술 ]
중국인들은 상담시 먼저 상대방을 치켜 세우거나, 거래의 장밋빛 전망을 설명하여 상대방의 호감을 산 후 상담을 진행함. 따라서 외국인은 냉정한 태도유지하에 철저한 사업준비와 계획서를 갖고 거래에 임해야 함.
[ 인간관계 우선 ]
아직 많은 기업인들이 시장원리보다 인간관계를 우선하는 관습이 농후함. 최근 들어 중국 자체에도 상거래에 문제가 많이 발생하자 끼리끼리 모여 하나의 단체를 형성하여 단체 내 회원간 거래는 신용 중심으로 하고, 단체 외부와의 거래는 철저한 경제원리에 의존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음.
[ 외상결제 선호 ]
계획경제 관념과 상업활동의 위험성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직 외상결제를 선호하지만 외상거래의 위험성 때문에 '현금거래'도 점차 확산되고 있음.
[ 대금회수 어려움 ]
중국 수입업체와 은행들이 신용장에 의한 수입액 지불을 거부하는 등의 국제금융 관행에 어긋나는 사례가 일부 있음.
중국업체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신용장이나 계약서, 원산지 증명서의 잘못된 부분과 오타를 문제 삼아 계약내용을 변경한 다음에 가격요구조건이 수용될 경우에 거래대금을 지불하는 것임. 이와 같은 사례는 주로 선적 후 국제가격이 인하되어 중국수입업체가 손해를 입게 되는 경우 자주 발생함.
[ 상담시 인정은 배제 ]
중국인들은 거래만큼은 냉정하게 임하며, 이해 득실의 계산에도 빠름. 친한 사람과도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으며, '내가 생각해 주는 만큼 상대방도 알아주겠지'하는 우리식의 정서는 아주 친한 친구관계가 아닌 한 통하지 않음.
담담한 마음으로 대상을 주의 깊게 살필 수 있는 자세가 기본적으로 요구됨.
선물 중시의 전통…공자의 제자도 드려
뇌물성 특수품목서 '전자수첩'까지 다양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선물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기록에 의하면 공자(孔子)의 제자가 명절을 맞아 스승에게 잘 말린 건육(乾肉)을 선물로 드렸다는 얘기가 있다. 공자가 노자(老子)를 알현할 때도 큰 기러기 한 마리를 선물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선물증정은 중국에서 교제의 중요한 수단으로 예의문화의 한 요소가 돼 왔다.
선물은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에게 보이는 관심을 표시할 뿐 아니라 주는 사람의 품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선물을 주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며 동시에 선물의 내용에 따라 자신의 생활상태를 점검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어떤 선물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품과 취향을 나타낸다. 무슨 선물을 어떤 방법으로 선물하느냐 하는 문제는 바로 얼마나 오래 깊은 인상을 남기느냐 하는 문제와도 직결되는 것이다. 어쨌든 선물의 왕래는 우리 생활 중 이미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 화교는 중국에 들어올 때마다 선물 선택에 가장 고심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제 중국인의 눈에 별반 진귀한 것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그 화교는 고국에 올 때마다 들고 오는 선물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고 말한다. 처음 몇 십년간은 의복·약품·재봉틀·유채유 따위가 주류였다. 당시는 물자가 귀한 시절이라 돈이 있어도 물건 구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그래서 이러한 생활용품을 선물했고 이를 받는 사람들도 만족했었다.
개혁개방 후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이러한 선물은 '사절'을 당하게 되고 집안에 연못을 만들어 주거나 축재에 도움을 주는 행위 등이 선물로 환영받게 됐다. 이같은 시대적 추세로 볼 때 선물의 선택은 한 개인의 몫이 아니고 변천하는 시대의 몫이 된 것이다.
선물의 내용은 시대상을 표방한다. 노인들은 50∼60년대에 소박한 공책 한 권, 펜 한 자루가 선물로 유행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얼마 후에는 혁명서적이 진귀한 선물로 등장했다. 다시 '배급표'를 가져야 물건을 구입하던 시절에는 TV 구입권·자전거 구입권 등이 좋은 선물로 각광을 받았다.
80년대 외국문물이 쏟아져 들어오자 각종 서양물건이 대환영을 받았는데 어떤 사람은 선물 받은 초콜릿을 먹기가 아까워 두고두고 보기만 했다고 한다. 동시에 술과 담배도 인기가 좋아 가장 보편적인 선물이 됐다.
시대변화와 함께 선물의 내용도 꾸준히 변화했다. 90년대 이후 선물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 국제교류가 빈번해지자 중국인은 우호적인 눈으로 외부를 볼 줄 알게 됐고 상품도 국산과 수입품을 가리지 않고 진열대에 놓여졌다. 이제 중국인의 눈에 더 이상 신기하다고 할만한 물건이 없어졌다.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는 말처럼 생활이 풍족해지자 이제는 문화적인 상품이 사람들의 중시를 받기 시작했다.
날로 개성을 추구하는 사회는 예술성을 감상할 수 있는 상품을 중시하게 됐는데 이는 물질적 추구가 정신적 추구로 변이됐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전아한 도자기, 아름다운 장미꽃 한 다발, 정교한 엽서 한 장 등은 비록 실용성은 없지만 보내는 이의 마음을 기탁할 수 있고 독특한 개성을 지지고 있어 현대사회의 훌륭한 선물이 되는 것이다.
사람마다 선물에 대한 기호가 다르기 때문에 최근에는 특정 부류의 사람에게 실용적인 선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예컨대 화이트칼라에게 전자수첩을 선물하는 따위이다.
정보사회의 도래로 현대인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해 다시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현대인의 주된 생활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자수첩은 현대인에게 더없이 좋은 선물로 각광받고 있다.
무선호출기·이동전화기와 더불어 현대인의 3대 휴대품으로 등장한 전자수첩은 작고 가벼워 휴대가 용이할 뿐 아니라 전화번호 메모리·스케줄 관리·외국어 번역·간단한 메모 등의 기능이 있어 누구나 선물로 받고 싶은 품목이 됐다.
전통적인 명절 춘졔(春節)가 다가오고 있다. 중국인들은 벌써부터 선물 선택에 고심 중이다. 받는 이에게 새로운 생활·새로운 세상을 열어 줄 수도 있는 선물. 중국인들은 또 한 차례 자신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선물을 주고받는 계절을 맞았다. (科技日報)
1999년 9월 9일 나는 집에 틀어박혀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이 다른 날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전혀 느끼질 못했다. 그날 저녁신문과 이튿날 신문을 보고서야 비로소 범상치 않은 날인 줄을 알았다.
이날은 '9'라는 숫자가 다섯 개나 들어있어 대길대리(大吉大利)의 날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날 결혼한 청춘남녀들은 길일의 덕을 노린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결혼등기소와 술집은 손님이 너무 몰려 비명이었다.
어떤 신랑은 TV에 나와 '9가 다섯 개 겹친 날을 택한 것은 부부가 백년해로하자는 소망에서입니다. '9'는 바로 '오래다' '久'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지요' 하고 말했다.
여기에서 나는 '황도일일(黃道吉日)'이라는 낡은 단어를 연상하게 된다. 예전에는 청룡(靑龍)·명당(明堂)·금궤(金 )·천덕(天德)·옥당(玉堂)·사명(司命) 등 '육진'을 모두 길한 신(神)으로 여겼다. 이들 길한 신이 당직하는 날이 바로 길일이라 무슨 일을 하든 흉사를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은 '황력(黃歷=책력)'에 기재된 것으로서 후대에 미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배척되었다.
몇 해 전부터 이 '황력(黃歷)'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상인들이 돈을 벌려는 한낱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소수의 사람들은 믿었지만 대부분이 이를 비웃었기 때문에 얼마 못가 사라졌다.
근래 숫자 또는 동음어의 물체를 숭배하는 세태가 유행하고 있다. 사람들이 어떤 길한 것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 숫자를 좋아하는 것은 그다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유행하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빠져있다면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다. '8'이나 '9' 같은 날과 '황도길일'과는 별로 다름이 없다. '황도길일'이 사라진 후 더 '길하고 이로운(吉利)' 숫자가 나타났다면 현대인의 관념과 미개한 시대 조상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즐거운 생활을 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 추구는 건강한 기초 위에 건축돼야지 소원만으로는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사실 1년 365일 어느 하루든 모두 길일이 될 수 있다. 필자는 흥미가 있는 분들에게 9월 9일에 결혼한 사람들 가운데 백년해로하는 부부가 몇 쌍이나 되는지 알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는 절대로 신혼부부를 비난하자는 뜻이 아니다. 그저 미신을 흠모하는 세태를 반대하는 것일 뿐이다. 王乾榮/北京靑年報
1. 가족제도
전통 중국사회에서는 가족이 사회의 중심축이었는데, 세대간에 가족을 구성하고 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가족간의 존경과 사랑을 국가에 대한 충성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전통적인 중국사회에서 가족의 크기와 구조는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라졌는데, 농촌의 대토지 소유자와 정부관리는 대가족을 구성하고 있었던 반면에 가난한 농부들은 소가족을 구성했다. 대개 가정은 세 세대 - 할아버지, 그들의 자식, 그리고 손자들 - 로 확대된 가족을 구성했다.
그러나 현대에 특히 공산주의 정권하에서 가족의 전통적인 형태가 급격하게 변했다. 첫째는 국가가 인정한 조직체가 가족 구성원들의 강한 유대감을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조직체로는 아이들을 위한 젊은 선구 집단과 십대·노동단체·47백만 명의 공산당 당원을 위한 공산당 청년연맹 등이 있다. 두번째는 가족은 더이상 가족 구성원에 대해 경제적 보장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가는 공장이나 노동일선, 주식회사에 일하는 노동자에 대해 그들이 가족이 없을 경우에 각종 혜택과 지원을 제공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세 세대가 한 가정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지역에서도 볼 수 있는데 점차적으로 핵가족화되어 부모와 지식은 한 가정에서 살고 할아버지는 다른 곳에 사는 형태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여전히 중국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특히 농촌지역에서는 가족이 노동력의 중요한 원천이 되기 때문에 법으로 1979년까지 법으로 농부들은 노인과 아이들을 돌보도록 규정했다. 1979년에 가족들은 국가로부터 토지를 임대하는 것이 허용되었으며, 그들의 수입은 그들의 산출과 연결했다. 이 변화는 정부의 30년간 대가족 제도로의 노력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87년 현재 전형적인 중국의 가족의 형태는 다섯 명 내지 여섯 명인데 이것은 전통적인 중국에서의 부유한 가족형태와 유사하다. 이 수치는 도시지역이 농촌지역보다 다소 낮은 편이다.
2. 가족계획
중국은 전 세계 경작가능면적의 7%에 불과한 땅 이 위에 세계인구의 20%가 오밀조밀 모여살고 있다. '인민이 가장 귀중한 자원' 이라고 한 모택동주석의 인구정책 실패의 후유증으로 가성(可姓) 여성수가 급속히 증가하므로써 중국정부가 시행중인 1자녀 갖기 운동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을 경우 오는 2000년의 인구억제목표인 12억명은 상향조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같이 가성여성수가 요즘들어 급증하는 이유는 모주석통치당시인 50년대초부터 76년 그의 사망때까지 무분별한 인구증가정책이 추진됐기 때문이다.
인구증가가 중국의 경제발전의 혜택을 나눠먹어야 할 입만 늘려놓은 셈이라는 판단 아래 산아제한을 주장한 것은 모의 사후에나 가능했다. 모주석 재임 당시 출생한 여아들이 80년대부터 2000년까지 사이에 가성여성으로 진압하게 되기 때문에 또 한차례의 베이비 붐이 불가피한 것이다.
이에따라 중국정부는 교육과 선전 및 상벌을 통해 1자녀갖기 운동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으나 도시지역을 제외한 농촌에서는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재 중국정부당국은 1자녀만 갖겠다고 맹세하는 신혼부부에게는 돈과 토지를 주고 있으며 불임수술을 할 경우 추가로 현금을 지급한다. 2명 이상 자녀를 낳을 경우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10년동안 임금의 10%를 깎는다.
민주화요구로 갈등을 겪고 있는 티베트를 제외한 중국 전역에서 이같이 1자녀갖기 운동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출생률은 계획목표를 40%나 초과하고 있고 시골 지역에서는 가구당 평균자녀수가 2.8명에 이른다. 가장 큰 요인으로는 사람들의 무지를 들 수 있으며, 두번째는 대를 이을 후손을 낳아야 한다는 남아선호사상 때문이다.
중국정부는 지방관리들에게 가족계획에 대한 상벌집행을 강력히 시행하도록 하고, 1자녀 가정의 이점에 대해 집중교육을 하는 한편 두번째 아이부터는 유산시키도록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중국은 많은 인구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연자원 개발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결국 자원환경의 훼손이라는 반대급부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삼림의 파손, 초원의 사막화, 수분과 토양의 유실 및 환경오염 등은 모두 경제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에 중국이 가족계획을 기본 국가정책으로 삼게 된 것은 바로 이같은 사정에서 비롯됐다.
중국정부에 의해 의욕적으로 추진된 가족계획은 진부한 구식관념에 부딪쳤을 뿐만 아니라 사회와 가정 및 가치관 등에 새로운 변화를 초래하기도 했다. 도시의 경우, 모든 인구억제조치가 순조롭게 실시됐는데 이는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 도덕관 및 인생관이 나날이 새롭게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즉 모든 어려움을 참아가면서 후대자손을 위해 살 가던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즉 자기 개인의 행복과 즐거움 그리고 여유를 희생하면서까지 대를 잇는 일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 중국인의 사고방식.
1) 국민성과 역사, 지리와의 관계에 대한 간략한 고찰
중국인은 예로부터 많은 특징을 가진 국민이었다.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자긍심이 매우 강하고, 제도보다는 인관 관계(關係)를 우선시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제도가 아닌 '關係'가 일을 한다는 말이 있다. 특히 중국인을 사귀려면 제일 먼저 ' 신뢰'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 서양인이 중국인을 비하시키는 데 주로 사용하는 말의 하나가 유교의 영향으로 인해 '체면 을 매우 중시한다'는 것이 있다. 또 우리의 생각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자신의 이익과 관계가 없거나 친구 사이가 아니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인정이 많은 우리로서는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다. 외적 환경이나 외모보다는 실력과 실용을 중시하며, 결과를 보고 판단한다.
중국의 역사와 지리는 그들의 국민성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끼쳤다. 장구한 역사 속에서 그들은 내란을 비롯해 이민족의 침입을 많이 당했다. 그래서, 쉽게 상대방에게 마음을 내어 주지 않는다. 그리고,(3)체면 중시 사상에서 설명이 있을 것이지만 역사적 배경에 의해서 명분을 중요시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사상이 널리 유포되었다. 역사에 의해 지배 계층은 근 만년 가까이 지배의 위 치에 있으면서 생긴 특성으로서 지배 계층은 귀족 의식, 예의 의식, 중화사상, 인내력, 절개를 중시하는 편이고, 피지배 계층은 전제정치 하에서 시달려 오면서, 농사나 자신들의 앞날을 전적으로 황제나 그들을 다스리는 관리들에게 의존함에 따라 일반 계층 은 소극적이고 체념적 성향을 지니며, 이기주의, 이치에 밝게 되었다.
지리도 그들의 국민성에 영향을 끼쳤는데, 그걸 보면, 황허강 이북의 사람들은 정통 한족이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그래서, 한 예로 북경인은 학벌이 높고 권력욕 및 명예욕이 많으며 예의를 존중하는 편이다. 황허강 이남의 민족, 아니 양자강 부근의 민족 은 바닷가와 가까이 있어서 아주 무역이나 상업에 밝다. 한 예가 상해인인데, 상해인은 국제적인 감각이 발달되어 있으며, 머리 회전이 빠르고 실용적이며 외관과 디자인을 중시한다. 그리고, 산동인은 몸집이 크고 성격이 단순하며 사람을 사귈 때 처음에는 경계하지만 일단 친구가 되면 의리가 변하지 않는다. 한편, 절강인은 계산이 빠르고 저축율이 높으며 추진력이 강하나 손해보는 장사는 절대 하지 않는다.
사천 지방과 복건 지방은 험난한 산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개척 적이고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래 서, 복건성은 원래 산악 지역에 거주하여 가난하지만 근면하고 부지런하다.
동북3성은 술을 좋아하며 성격이 직선적이고 적극적이다.
2) 관습
음식 문화에서 식사 초대는 최고의 호의이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으며, 초대에 참석시 주인과 안내의 인도에 따르는 것이 예의 이다. 초대시에는 반드시 주인에게 감사 표시를 해야 한다.
우리 나라와 많이 다른 부분의 하나가 음주 문화와 흡연에 관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첨잔하는 관습이 있어 그만 마시고 싶을 경 우에는 잔을 엎어 놓던지 의사를 명확히 하는 것이 좋으며, 잔을 돌리는 습관은 없다. [술에 취한다]는 것은 곧 이미지의 실추로 인식된다. 담배는 중요한 사교의 수단이며 초면에도 자연스레 담배를 권하며 이야기를 나누므로 비흡연자라도 예의상 상대방이 권하는 담배는 받는 것이 좋다. 이처럼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담배는 서로의 대화와 인사의 매개물로 간주하며, 담배를 돌려 피움 으로써 공유감과 소속감을 느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교통 문화에 관한 것으로는 우리가 책에서 보아서 아는 것으로 자전거가 있다. 이 자전거는 가까운 거리나 통근 수단으로 이용 하고 특히 북경의 경우 3명당 2대꼴로 소유하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대중 교통 수단으로는 기차가 이용되고 있다. 항공의 이용 시엔 공항에서 직접 항공권 구하기는 힘드므로 여행사나 판매소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3) 체면(面子)중시 사상
중국인과 대면 중에 특히 조심해야 할 점은 절대로 중국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약점을 들추어 중국인의 목슴 만큼이나 중 시하는 '面子(미옌즈:체면)를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중국인의 체면 중시 사고는 과거 중화사상에 젖어 있던 향수 와 함께 사회주의 혁명에 의한 평균주의 사고 방식에 의해 심화되었으며 각 국에 거주하는 화교들의 집단거주의 형성 등에서 찾 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체면 중심 사상이 왜 생겨났는지 잘 모르는데 그것은 역사적인 배경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은 주·춘추 전국시대를 통해 이 명분중심사상·체면 중심 사상이 발생하였다. 패자(覇者)가 되고자 하는 많은 무인들 은 천자를 옹립하는 목적으로 천자의 수호(守護)라는 명분을 외쳤다. 그리고, 그 후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계속 민중을 지키 고, 국가를 편히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며, 명·청 시대에는 외세를 물리친다는 명분이 있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만 년 가까이를 지속해 온 그들의 사상 속에는 명분을 중시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사상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4) 현세주의적 경향
중국인들은 세상 모든 일을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추상적인 개념까지도 인간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이해하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근대 서양에서 취하는 태도와는 달리 편의주의적 이며 실용주의적이다. 중국의 민족성이 상식적이고, 중국인 들이 연구하는 학문은 실천 중심이라는 점은 고대 중국의 제자백가 및 공자, 맹자 사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5) 중화사상.
주(周)의 문왕(文王)이 은(殷)을 멸망시키고 건국할 당시에는 호경을 수도로 하는 서주였으나, 주(周) 유 왕(瑜王)에 이르러 북방 민족에 의해 뤄양(洛陽)으로 수도고 천도함으로써 동주(東周)가 되었다.
중화사상이라는 말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사상이며 모든 것이 중국을 중심으로 하여 전세계에 퍼져 나간다고 믿는 중국의 민족 사상이다.
중화사상이라는 말은 <삼국지>등에서 처음 나타났다. 과거의 한족(漢族)은 이 사상을 통해 자기 민족의 우월성을 자랑해 왔다.
과거 한족이 황허강 유역에서 농경 생활을 하면서 문명을 개척해 나갈 무렵 그 주위에는 여러 민족이 살고 있었다. 한족은 다른 민족과 접촉하면서 자신들의 문화를 발달시켰는데, 문화가 무르익은 서주(西周)시대. 중국은 자신을 중화(中華), 동쪽의 우리 나라를 동이(東夷), 서쪽의 민족을 서융(西戎), 남쪽의 민족을 남만(南蠻), 북쪽의 민족을 북적(北狄)이라 하였다.
에 이르면서 주위의 민족들에 대한 문화적 우월 의식을 가지고 스스로를 선민(選民)이라고 믿었고, 굳건한 중화사상을 가졌다. 당시 중국의 통치자들은 하늘의 아들이라는 천자(天子)로 칭함으로써 우월 의식을 더욱 고취하였다. 중화사상은 그 배후에 이민 족을 천시하는 개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화이(華夷) 사상이라고도 한다.
춘추 전국 시대를 거쳐 진·한·당대에 이르러서는 중화사상이 극을 이루고 있다. 그들의 문화유산이 충분히 그들이 중화사상을 가지게 끔하고 있는데 진의 만리장성, 한의 서역길(실크로드) 개척. 서역길은 한무제때 장건에 의해 개척되었다. 당시는 흉노 의 침입을 막기 위해 월지국과 동맹을 맺기 위해 장건을 파견했으나, 흉노에 의해 장건이 포로가 되고 17년간의 탈출을 시도해 성공한 장건의 이야기를 들은 한무제가 개척.
, 당의 세계 제국이 그것이다. 특히, 한과 당은 세계적인 대제국으로서 한의 서역길 개척으로 동·서의 교역이 처음으로 이루어 져 로마의 사신을 받아들였고, 당의 장안은 당시 이미 백만을 넘어서는 세계 최대의 도시였으며, 종교 또한 국제적인 제국답게 다양한 종교. 네스토리우스교, 기독교, 불교, 라마교, 조로아스트교 등 거의 모든 종교가 유포되었다. 그들은 예교가 없는 이민족을 성인의 도에서 벗어난 금수로 취급했다. 그래서, 중국의 천자가 모든 이민족을 덕 화(德化)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6) 중국의 종교
중국인들은 문화혁명이 끝난 1976년에 진정한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1982년의 헌법에는 「어떠한 국가기관·사회 단체 또는 개인도 공민(公民)에게 종교의 신앙 또는 종교의 불신앙을 강제고 제압해서는 안되며, 종교를 믿는 공민과 믿지 않는 공민을 차별해서도 안된다.」라고 규정하였다. 따라서 이 이후 불교·회교·기독교(구교·신교)·도교의 각계대표들은 조직을 재건하고, 출판물을 발행하면서 종사자와 연구자를 양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중국의 종교를 크게 나누어 보면, 여러 가지 다양한 사상이 파생된 토착적인 원시종교, 과연 종교냐 하는 논란도 있지만 종교적 요소 및 색채가 뚜렷한 유교, 중국에서 발생한 유일한 종교인 도교, 외래종교인 불교·회교, 티베트의 라마교, 보다 후대에 중 국에 전래된 기독교 등으로 나눌 수 있다.
※ 중국인의 종교관
중국인들의 종교관은 천지 우주간에 있어서 사람의 위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인에게 천인합일은 최고의 이상이며 인간이 그것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보았다.
그래서 종교에서도 중심은 사람이다. 즉 중국에서의 종교란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에 불과하다. 사람이 사람을 믿고 섬기는 것이 다. 앞의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이고 뒤의 사람은 죽은 사람, 곧 조상인 셈이다.
중국 사람들에게 있어 조상은 가족과 죽은 자외의 관계를 말한다. 그래서 늘 조상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 은 혹 병이라도 나면 먼저 조상의 위패부터 살피곤 했다. 위치가 잘못되었는지, 불효를 했는지를 반성했던 것이다.
인간간의 조화는 더 나아가 자연과의 조화로 안전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천(天)·지(地)·신(神)·귀(鬼) 등 초자연이 모두 해당 된다. 특이한 것은 중국인의 귀신 관념은 인본주의(人本主義)라는 데에 있다. 유가의 성현이든 도교의 신선이든, 아니면 불교의 보살이나 귀신 등은 모두가 인격화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가 한층 밀접해지며 부탁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 사람들이 귀신을 대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관계의 연장에 불과하다. 이는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창조주로, 예 수를 구세주로 받들면서 사람은 예배만 가능할 뿐 그 이상은 불가능한 것과는 다르다.
이처럼 중국에서의 종교란 조상, 즉 인간을 섬기는 종교가 일찍부터 뿌리를 내렸으므로 우리가 말하는 종교는 그다지 성행하지 않고 있다. 가장 성행했다는 불고도 그들이 주장하는 내세관이나 윤회론이 조상 섬기는 것과 흡사했으므로 수용이 가능했을 뿐이 다. 그래서 중국에서 기독교는 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주어야 함(三思而行과 貨比三家). 의심이 많은 중국인에게는 '自己人'이 되야 함 : 朋友→好朋友→老朋友. 三顧草廬의 끈기
- 關係를 이용할 것. 연줄만 찾으면 불가능은 없다. 한국업체들이 고위직 관리나 퇴직자를 고문으로 많이 둠(월급 주고).
- 조바심은 금물, 의연하게 임할 것. 절대로 1곳에만 매달리지 말 것.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을 알면 상대방은 절대 양보 안함.
- 자신이 중국어를 못하면 가급적 한국인 통역 활용. 상대방 통역이나 조선족을 통역이 우리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의사전달도 제대로 안됨. 특히 제 마음대로 오역하는 경우가 많음. 한국인 통역은 중국어를 잘 못해도 정확하게 하려고 하고 이 쪽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하려고 노력함.
- 적당한 선물 준비는 필수. 선물의 종류에는 별로 상관없음. 우리쪽에서 선물을 주면 꽌시를 만드는데 많은 도움. 좋은 선물은 1대1로 전달, 선물 주고 나쁜인상 만들 필요는 없음. 공짜 좋아함.
- 술좌석에서는 최대한 호탕하게 하고 업무애기는 낮에 사무실에서 하는 것이 효과적. 술좌석을 통해 진짜 친구를 만들 수가 있음. 술주정은 무례. 깐베이와 쉐이를 명확히 구분 할 것.
- 담배는 인정을 느끼게 하는 윤활유. 중국인은 담배를 돌려 피움으로서 공유감과 소속감을 느끼려고 함.
- 끝까지 확신하지 말 것. 계약까지 체결해 놓고도 취소되는 사례가 부지기수임.
- 자신의 답변은 애매모호하게, 상대방의 답변은 정확하게 이해할 것. 중국말 자체에 애매모호한 단어가 많다(可以, 應該沒問題라고 하지 절대 沒問題라고 안한다). 이런 말은 우리측에서 많이 사용하자.
- 분쟁해결은 가능한 협상이나 關係를 이용할 것(소송하면 불리)
1)가장 먼저 꽌시를 이용해서 해결
2)좀 손해를 보더라도 협상
3)돈을 주고 경찰(公安)이나 고위관리를 산다
4)시간도 있고 돈도 있고 포기해도 좋다---- 재판
- 말로 중국사람을 이기려 들지 말 것. 한국인은 감정이 격하면 주먹을 사용하는 데 중국인은 손을 쓰는 경우 지는 것으로 간주.
- 중국인 부인을 칭찬하지 말 것. 허례성 인사 자제 요망.
(1) 中華思想
- 中華民族優越主義(Sinocentrism) :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자 우주의 중심. '仁'이나 '德'으로 무장된 중화사상이 '法'이나 '力'보다 우선
- 중화사상의 특징은 자부심, 체면, 인내와 情誼 등 4가지
·자부심 : 중화민족의 우월감에서 비롯됨
·체 면 : 목숨보다 중시
·인내심 : 臥薪嘗膽, 捲土重來(복수나 은혜 : 상당기간 참고 재기를 노림).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재물을 모으는 데도 신용과 함께 중시되는 덕목
·情 誼 : 의리, 자신과 관계없는 남은 의심하고 배척하나, 관계를 맺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신의가 필요함
(2) 자기중심적 경향이 강함(문화적 우월감)
- 宴會 개최시 우리나라 사람은 '오셔서 자리를 빛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상대방 중심의 표현을 사용하나 중국인은 '연회를 베푸니 참석하십시오'라고 주인 중심의 표현을 사용
- 물건을 팔 때 우리는 '賣買', 중국은 '마이마이(買賣)'로 내가 필요한 물건을 산 연후에 남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팔겠다는 자기중심적인 사고
- 상점에서 물건을 파는 종업원의 자세를 보면 '물건을 팔아 준다'는 의식이 강하고 상대(고객)가 '물건을 사준다'는 의식은 거의 없으며, 감사표시를 하는 경우는 별로 없음
- 자기 것은 소중하게 여기지만 남의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음
(3) 규율이나 법개념이 약함
- '法治'보다는 '德治'나 '人治'가 중시되며, 대부분의 문제는 법대로 하기보다는 당사자끼리 해결하거나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 제3자의 개입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큼
- 지방정부, 특히 하급단위는 내부에서 자체 해결. '按法'보다는 '按關係' 중시. 有案企業不報, 上有政策 下有對策
(4) 現實主義와 實用主義
- 실용성과 현실성 중시태도는 유가사상의 영향과 의심많은 중국인의 뿌리깊은 불신감에서 비롯됨
- 중국인을 외모나 명함에 쓰여진 직함이나 직책으로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은 방법임.
- '衣食住'와 '食衣住' : 중국인은 衣와 住보다는 食을 중시하는 생활습관을 가짐. 겉보다는 실속, 바깥보다는 안을 중시
(5) 전통적으로 體面과 關係를 중시
- 給面子와 不給面子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해 이를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경우도 있음.
- 중국인의 체면은 단순한 자존심에 관한 문제라기 보다 위신과 존엄에 관한 문제
: 차별을 해서는 안됨
- 통상적으로 외국인은 무엇이 중국인의 체면을 손상했는지는 알 수 있으나 어떻게 하는 것이 체면을 세워 주는 것인지는 알지 못함
- 꽌시는 불가능하거나 특별한 부탁에 대한 우호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실성을 내포하는 마술과 같은 것
(6) 四M(沒法子, 沒有關係, 沒有, 明天再來)의 중국인
- 중국인은 매사를 부정적으로 표현. 웬만큼 친숙한 관계가 아니면 십중팔구 '沒法子' 즉 방법이 없다고 말함
(7) '慢慢的'의 느긋함
- 중국인들은 '빨리빨리'의 한국사람을 '想得快 作得快 後悔得快 改得快'라고 흉을 봄
- 상담이나 계약시 한국인 특유의 조급함이나 서두름은 협상에서 오히려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똑같이 느긋해져야 함
- 그러나 자기에게 이익이 되거나 반드시 필요할 때는 절대로 '慢慢的'가 아니며 우리보다 더 '빨리빨리'임(철저한 프로 비즈니스) : 공산주의를 할 수 없는 사람
(8) 외국인은 봉
- 외국인은 부자니까 존경한다? NO, 그러나 사실은 인정. 부자는 못 사는 사람 먹여살려야 한다는 사고
- 거짓말, 사기 치고도 당당(시장 저울). 투자시 돈만 들어오면 완전 180도로 달라짐. 자동차 사고, 일반 사고로 손해(경찰 등 모두가 한 편)
- 우리쪽에서 과시하면서 (졸부) 돈 쓰면 밖으로는 칭찬, 속으로는 비웃음
- 이중가격 : 과거에는 항공임, 기차요금 . 공원 입장료
백두산 입장료(외국인 8배), 인력거 (1사람, 2사람)
- 상대방 약점 철저 간파하고 이용(외국인 아파트)
예 ; 우리는 수입 할 때도 상대 대접, 수출할 때도 상대 대접
중국인은 짝수를 좋아하며 그 가운데서도 특히 8이라는 숫자를 선호. 이는 발음이 發字와 유사한데 기인(發財 : 재산이 발전한다. 즉, 돈을 많이 번다는 의미)
선물은 상대방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으나 대체로 고급 손목시계, 넥타이 핀, 홍삼, 인삼, 한국특산품 등이 무난
거래선 방문시 선물은 소형계산기, 손목시계, 녹음기 등 가볍고 실용적인 것이 좋음
선물증정시 주의할 사항은 괘종시계(종말 의미)나 거북이(욕을 상징)는 반드시 피해야 함
선물포장은 길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붉은색이나 숭고함을 나타내는 황색을 사용하는 것이 좋고 축의금을 줄 때도 흰봉투에 검은 글씨는 피해야 함
* 단, 부의금은 흰 봉투를 사용
■ 선물은 이렇게...
- 비싸지 않은 개인신변용품 등이 좋다
- 상대방 참석자 모두에게 전달함이 좋음 (직급별 차등 무방)
- 포장지는 빨간색 계통이 좋음.
- 선물준비시 여성용을 30% 정도 준비할 것 (각 기관/거래선에 여성이 많음)
■ 이런건 좀...
- 비싼선물(홍삼,고급시계,사진기 등)은 개인소유가 어렵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
외엔 피함이 좋다.
- 흰색과 검은색은 慶事에서 피하는 것임
선물포장지나 축하금 등은 봉투로 사용치 말것
- 중국인들에 있어 선물은 생활화 되어있기 때문에 잊지 말도록 할것
■ 선물로 금해야 할 것들
- 시계
: 이것은 중국 민간에서 제일 금기시 되는 선물 중의 하나다. 축하할 때, 친구를
찾아갈 때를 막론하고 시계를 선물한 다는 것은 실례로 여겨진다. '送鐘(s ngzh ng-시계를 선물하다)'은 '送終(s ngzh ng-임종을 지키다)'과 음이 같아 받는 사람이 그 뜻을 오해하기 쉽다. 그런 이유로 중국에서 선물을 할 때는 '掛鐘(gu zh ng-벽시계)''鬧鐘(n ozh ng-알람시계)'등의 선물은 피하는 것이 좋다.
- 손수건
: 이것은 프랑스, 이탈리아, 파키스탄 등의 나라에서 굉장히 꺼리는 선물 중의
하나다. 이 나라 사람들은 손수건을 눈물과 서로 연관해서 생각하는데, 그래서 슬픔과 아픔을 상징하는 물건인 동시에 분쟁과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것을 뜻한다. 대만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만 풍습에 따르면 상(喪)을 치르고 나서 문상객들에게 기념으로 손수건을 주는데, 이는 문상객들과 죽은 이 사이에 교류를 끊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대만 속담에는 '수건을 선물하여 뿌리를 뽑다.(送巾斷根)'라는 말이 있다.
- 칼, 가위
: 중국에서는 '단칼에 두 동강을 내다(단호하게 관계를 끊다 - 一刀兩斷).'는 말이
있듯이, 이런 것들을 선물하는 것은 상대방을 위협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선물로는 상당히 기피하는 물건이다. 쿠바, 베네수엘라, 칠레 등의 나라에서도 칼을 선물하는 것을 우정을 끊는 의미이기 때문에 선물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 우산
: '雨傘(y s n-우산)'의 '傘(s n)'은 '散(s n-흩어지다)'와 발음이 같아서 우산은
중국 민간에서 비교적 꺼려하는 선물이다. 우산을 친구에게 선물하면 그 사람과의 우정을 끊는다는 뜻이고, 신혼부부에게 선물하면 금술 좋은 부부를 갈라놓는다는 의도가 된다. 그래서 우산을 선물하는 것은 상대방이 오해할 소지가 많아지는 것이다.
- 부채
: 대만에서 부채는 상당히 민감한 선물이다. 부채는 더운 여름 동안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지만 가을이 되면 쓸모 없는 물건이 되기 때문이다. 대만에는 '부채를 선물해 다시 보지 않는다.(送扇,無'相見)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부채는 선물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물건이다.
― 국민성격
: 자존심이 매우 강하고 체면과 명분을 중시하면서도 매우 실리적임
북경 : 학벌이 높고 권력욕 및 명예욕이 강하며 예의 존중
상해 : 국제적인 감각이 뛰어나며, 두뇌회전이 빠르고 실용성 추구, 외관과 디자인 중시
동북3성(길림, 요녕, 흑룡강) : 술을 좋아하며 성격이 직선적이고 적극적임
산동 : 몸집이 크고 성격이 단순하며 교제시 의리를 매우 중시, 한국인 성격과 가장 유사
광동 : 상술과 이재에 밝고 두뇌회전이 빠름, 정교한 작업에 능하고 사치스러움
절강 : 계산이 빠르고 추진력이 강함
복건 : 근면하고 부지런함
[北京사람, 文化를 重視]
베이징(北京)의 고색창연한 골목과 성벽, 정원이 증명하듯 베이징사람은 문화를 중시한다. 근래 들어 나타난 베이징적 문화의 특성은 베이징사람의 문화바탕을 드러낸다. 혹자는 농담 삼아 '베이징사람은 재채기나 땀에도 문화적 냄새가 풍긴다'고 말한다.
사실 베이징의 문화적 특성은 위진(魏晉)시대 '청담(淸談) 풍속'에서 기원해 천 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은유적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위진시대 사람들이 녹차를 마시며 공리공담을 한 데 반해, 현 베이징사람들은 서양음료와 '어구어토우(二鍋頭)'라는 백주를 마신다. 특히 여름철 담소를 나눌 때에는 어김없이 재담꾼이 나타나 정치, 경제, 역사, 지리, 문학, 예술 등 모든 분야와 관련해 언변을 다양하게 구사한다. 그러면서 그는 '난 아무 것도 할 줄 모르오, 그저 근거 없이 마구 지껄이는 거요'라고 대꾸하며 겸손해 한다.
현대 베이징 여성들은 나날이 아름다워져 가고 있다. 오랜 베이징 문화와 자신감, 낭만 등의 영향으로 베이징 여성들은 당당한 기백과 시원시원한 일 처리, 시야가 넓고 호쾌하면서 진실하다.
물론 베이징사람의 문화적 특성에도 약점은 있다. 즉 은유가 심해지면 허풍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上海 사람, 계산에 밝은 국제인]
서양자본이 최초로 탄생한 곳이 샹하이(上海)라는 말이 있듯이, 샹하이는 중국에서 가장 먼저 서구의 영향을 받은 도시이다. 베이징에 '출국붐'이 불고 있다면, 샹하이에서는 '일본 취업붐'이 일고 있다.
도시인의 특성은 여성들의 치장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즉 샹하이 사람의 '국제성'은 여성들의 치장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샹하이여성의 국제 브랜드 소비율은 전국 1위로서, 타 도시에서는 물어보는 사람도 없는 수백위안 짜리 립스틱 구매가 샹하이 화이트칼라 여성들에게는 이미 보편적이다.
샹하이식 문화의 오랜 영향으로 샹하이 사람들은 섬세하고도 우수하며 노련한 특징을 형성하게 되었다. 특히 여성들은 견식이 넓고 단아하며 아름답다.
샹하이 사람들은 계산이 철저해 손익을 따져보며 경제를 매우 중시하고, 검소하게 생활하지만, 경쟁소비심리와 허영심은 큰 편이다.
샹하이 사람들은 겉치레를 중시, 혼례를 성대하게 치른다. 샹하이 <해방일보>의 혼례비용조사에 따르면, 샹하이 사람의 평균혼례비용은 9만 3천 9백 위안이며, 15만 위안이 든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소비수준은 선진국 수준이며, '국제사회와의 접목' 결과를 여실히 보여준다.
[廣州 사람, 실력을 중시, 유행을 선도]
광쩌우(廣州) 사람의 생활지수는 전국에서 높은 축에 속한다. 자료에 따르면 광쩌우 사람은 교육과 오락면에서 전국 평균수준의 2배에 달한다. 1인당 도서구입비용은 50위안으로 전국에서 1위였으며 오락소비 역시 1위이다.
그들은 결혼비용이 가장 높아 홍콩, 동남아 국가로 신혼여행이나 국제적 합동결혼식을 치르기도 한다.
합동결혼식은 새로운 행사이지만 결코 적은 비용이 아니다. 많은 신랑신부들이 이 행사에 참가한 후에도 다시 각종 전통 혼례의식-결혼차량행렬이나 성대한 연회, 악대연주, 특별 영화상영, 신방 엿보기, 결혼 비디오 찍기 등을 치르기 때문에 비용이 적지 않은 데다가 신방을 꾸미기 위해 가구와 가전제품 구입, 신혼여행 등으로 최소한 50만 위안 이상을 쓴다.
한편 '광쩌우식' 표준어가 유행, 각종 TV프로 진행자들은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데, 이 역시 유행이 되었다.
광쩌우 여성 중 여사장과 공공기관의 여성들이 가장 드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겸손하고 예의바르다.
광쩌우의 '유행'은 상업문화를 기초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들은 돈에 관한 이야기를 꺼리지 않기로 유명하다. 튼튼한 경제적 기초 위에 전국의 패션과 여가, 오락의 새로운 조류를 이끌고 있다.
[天津 사람, 순박하며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티엔진(天津)은 경제가 발달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북쪽 지역의 전통적 영향을 많이 받은 도시이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고유의 '순박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티엔진 사람은 도시의식과 농촌의식의 중간쯤에 위치해 경박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질서정연하며 편안하고 건실하다. 남여를 막론하고 향토애가 높다. '상업열풍'과 '주식 투자붐', '우표 구매붐'이 전국을 강타할 때에도 티엔진은 동요되지 않았다.
티엔진 여성은 독특한 풍채로 근심 없이 생활하는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미녀라 해도 그저 유행을 좇는 수준에 그치며, 단순히 남쪽 지방과 샹하이의 유행을 모방할 뿐 독창적인 유행을 창출해내지 못한다.
[深 사람,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규칙을 중시]
션쩐(深 )의 '특구적 특성'은 일조의 표준적인 역할 모델을 제시해 주어, 모든 사람의 행동과 신분이 천편일률적으로 표준적인 역할모델에 따를 뿐이다.
션쩐 사람들은 새로운 유행을 좇고 사치풍조를 유행시킨다. 일례로 결혼식에서의 인력거꾼은 이미 특구 결혼식의 주요의식으로 자리잡았으며 봄, 가을 주말이면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신혼차의 긴 행렬이 온 거리를 메울 지경이다.
션쩐 사람들은 주택 구입에 가장 많은 돈을 쓴다. 통계에 따르면 션쩐에서 1인당 주택에 소용되는 비용은 월 2백 16위안으로 전국 수준의 5배 이상에 달한다. 현재까지 션쩐은 주택의 상품화 정도가 가장 높은 도시로, 주택 임대료와 수리비용은 전국 1위이다.
이와 같이 특구 사람의 문화성에는 물질적 기초와 능력이 많은 영향을 준다.
중국유학과 놀이문화
98년 IMF사태 당시 한국의 어느 신문사에서는 나라가 어려운데에도 불구하고 유흥비로 흥청망청 돈을 쓰는 유학생들을 비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기사에 실린 사진의 배경은 바로 중국의 비교적 유명한 나이트였고 사진 속의 인물들은 바로 중국에서 유학하는 한국 학생들이었습니다.
나라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철없이 나이트나 가고 술이나 마시는 유학생들에게도 분명 문제가 있겠지만 조금 더 살펴보면 그 기사의 내용과 사진에 어느정도 형평성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서 유학생사회의 분노를 샀었습니다.
IMF사태 때에도 한국의 각 대학에서 기말고사가 끝난 뒤 과연 뒷풀이를 하지 않는 과나 동아리가 있었을까요?
뒷풀이를 하는 과정에서 술먹고 나이트 가는 것이 과연 지탄의 대상이 될까요?
그 기사에 실린 사진이 찍혔을 때가 바로 중국에서는 본과생들의 모든 기말고사가 끝나고 단기로 어학연수 온 학생들이 귀국할 시점이었습니다. 정들었던 친구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자리에서 술 좀 마시고 나이트를 가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한국의 각 대학 유흥가도 기말고사 이후 대목을 맞는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유흥비 문제도 그렇습니다. 사진에 찍혀 있던 나이트는 중국인들에게는 입장료로 9,000원 가량을 받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무료로 입장을 시켜주는 곳이 었습니다. 안에 들어가서도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단지 춤을 추며 젊음을 발산할 뿐 나이트 안의 비싼 술은 사먹지를 않습니다. 계산을 해보면 1인당 들어가는 경비가 택시비로 1,000원도 안드는, 그야말로 저렴한 가격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곳이지요. 한국의 나이트나 기타 선진국의 나이트 비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중국으로 파견나온 기자분들이 맘먹고 하루동안 마시는 술값이 우리같은 유학생 2~3달 생활비라는 것도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중국에까지 유학을 온 이상 공부에 주력을 해야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없는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공부만 할 수는 없겠죠. 한 주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해소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일도 공부 못지 않게 중요한 일입니다.
북경에서 한국유학생들이 즐길 만한 유흥가나 업소를 몇군데 꼽아보면...
1. 유흥가
五道口(우다오코우) : 어언문화대학교 부근에 있는 가장 유명한 對한국인 유흥가입니다. 98년 대대적인 철거사태 이후 규모는 예전만 못하지만 아직까지는 북경 한국유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거리로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호프, 레스토랑, 주점, 당구장, 한글 윈도우가 까린 PC방, 노래방(한국의 노래방과 별차이 없음)이 있습니다. 연경맥주는 싼 편이지만 소주나 한국의 맥주들은 중국물가를 생각해 볼 때 비교적 비싼 편이고 막걸리를 판매하는 업소도 있습니다.
酒빠街(지우빠지에 - 빠는 '巴'字 앞에 입구(口)변) : 대사관촌 부근(三里屯(싼리툰))에 있는 카페 거리입니다. 개성있는 술집 분위기와 각 나라의 음식, 술을 맛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단점으로는 가격이 비싸다는 것. 유학생들이 자주 찾아 갈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燕沙(옌샤) : 5성급(한국으로 치자면 무궁화 다섯 개짜리) 호텔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입니다. 양식은 매우 비싼 편이지만 커피와 같은 음료수는 일반 레스토랑과 별 차이 없습니다. 연인들끼리 특별한 날 기분낼 수 있는 곳입니다. 곤륜호텔의 경우 29층에 회전식 스카이라운지가 있어 북경시 야경을 한눈에 살펴 볼 수 있습니다.
2. 나이트클럽
Night Man : 국제전람중심 부근에 위치해 있고 외국인에게는 입장료를 받지 않습니다. 단, 외국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합니다.
JJ Rock & Roll : 조양공원 내에 위치한 특이한 실내장식이 돋보이는 나이트입니다. 입장료는 내외국인 모두 인민폐 30원씩(주말에는 50원)을 받고 있습니다.
Banana : 실크시장 부근의 나이트로 현재 북경에서 젊은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명소 중 하나입니다. 입장료는 인민폐30원(주말에는 50원).
열심히 공부하고 적당히 놉시다.
접대시의 예절
중국방문시에는 일반적으로 식사향응을 받게 되는 바 비슷한 수준으로 접대가 필요하다. 접대받을 때, 참가한 중국인사들은 추진중인 상담과 대체로 종적·횡적 관계가 있음을 주의하여 접대시 모두 초청토록 해야 한다.
중국인들은 상호 체면중시를 감안하여 상대측의 인간관계를 면밀히 파악, 관계되는 자들에게 모두 공평하게 선물을 주거나, 기념조로 참가자 중 형식적인 최고직위자 1명에게 간단한 기념품 등을 주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다. 선물은 자연스런 자리에서 주도록 해야 한다.
1. 음식점에서 식사 초대를 받을 경우 중국인이 지정하는 자리에 앉는다. 왜냐하면 음식값을 지불하는 호스트가 좌석으로 결정되기 때문이 호스트가 착석후 앉는다. 또 식사중 호스트가 건배를 청하기 이전에는 건배 제의를 삼가해야 한다.
2. 식사할 때는 짝수인 8, 12가지나 16가지 요리가 상에 오르기 마련인데 (통상 12가지 ), 찬 요리가 먼저 나오며 가벼운 요리부터 시작해 여러 요리가 나오기에 되도록 자신의 식욕을 조절해서 먹어야 한다. 메인요리로는 생선찜이나 튀김이 많이 나오는데, 생선이 나오면 끝나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3. 우리나라에서 반찬을 제외한 국과 밥은 개인별로 나누어 상을 차리는 것과는 달리 중국은 일반적으로 회전이 가능한 원탁에 한가지 요리를 한접시에 모두 담아 판을 돌려 가며 나누어 먹는 것이 외관상 눈에 띄는 습관의 차이 중의 하나다. 만약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경우 대개 채소 (쑤차이 : 素菜)와 육고기, 해산물 요리를 조합을 하고 냉채 (량차이 : 凉菜)와 더운음식을 적절히 조정하고 간단히 밥이나 면을 곁들여 주문하면 무난한 편이다.
4.식사중 정치이야기는 금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손님을 초대할 경우 손님에게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를 권하며 많은 음식을 준비하여 접대한다.
음식을 맛있게 많이 먹어주며 음식이 맛있다는 칭찬을 함이 좋다. 준비 된 음식에는 적어도 한 번씩 손을 대는 것이 예의이며, 밥을 많이 먹는 것은 아직 양이 차지 않았다는 뜻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중국인은 손님이 다 먹지 못하고 음식을 남기는 것을 자신이 음식을 충분히 준비한 것으로 간주하므로 굳이 음식을 비울 필요는 없다. 그래서 그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인은 깨끗하고 정갈하게 먹어야 예의인 줄 알지만 그들은 최대한 난장판이 되도록 먹어야 주인에 대한 예의가 된다. 그래서 식사가 끝난 뒤 탁자를 보면 마치 전쟁이 지나간 폐허와도 같다.
중국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광경은 왁자지껄하다. 워낙 먹는 것을 즐기는 민족이고 보니 먹는 장소가 가장 즐거운 곳이 된다. 그래서 열심히 요리를 즐기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래서 점심시간도 중화민국의 경우는 두 시간이나 되며 저녁시간은 물론 제한이 없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즐기는 것이다.
식사를 오랜 시간에 걸쳐 하다보니 여러가지 놀이가 생겨났는데 「魚頭酒·魚尾酒」 라는 것도 그러하다. 종업원이 주빈에게 魚頭가 돌아가게 놓으면, 주빈은 魚頭(주로 魚眼)를 안주로 술을 한 잔 할 수 있고, 魚尾가 향한 손님은 꼬리를 맛보며 반 잔을 마실 수 있다. 이를 魚頭酒와 魚尾酒라 하는데, 주빈이 魚眼을 다른 사람에게 집어주면 그 사람이 魚頭酒를 마실 수 있고, 魚尾酒를 마실 사람이 생선꼬리를 접어서 권하고 싶은 사람을 향하게 하면 그 쪽에 앉은 사람이 魚尾酒를 마시게 된다.
◎ '하오커 (好客)'
중국인은 '하오커(好客)', 즉 손님 접대를 좋아한다. 만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중국인이 자기집으로 초대하는 것은 상대방과의 우의를 더욱 발전시키고 싶다는 의미가 있다.
중국에서는 공석(公席)이나 직장단위의 정식 초청을 할 때는 초청장을 사전에 보내는 것이 관례이며, 일반적으로 사적인 자리는 전화로 알린다. 그러나 어떤 초청이든 하루나 이틀 전에 통보하는 것이 예의이다. 중국인들은 연회에 참석할 때 다른 나라와는 달리 복장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일반 가정에서 손님을 초청할 때는 상당히 신경을 쓴다. 우선 요리의 가짓수가 중요한데 중국인들에게 홀수는 불길한 조짐을 의미하므로 요리가 아무리 많아도 가짓수에 대해서는 꼭 신경을 써야 한다.
식사를 초대한 주인은 푸짐한 식사와 좋은 술을 대접하는데 중국인들은 음식과 술을 적게 내놓으면 손님들이 배부르게 먹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손님에 대한 성의가 부족하다고 여긴다.
음식점에서 식사 초대를 받을 경우 중국인이 지정하는 자리에 앉는다. 왜냐하면 음식값을 지불하는 호스트가 좌석으로 결정되기 때문이 호스트가 착석후 앉으며 호스트가 건배를 청하기 이전에는 건배 제의를 삼가해야 한다. 음식을 맛있게 많이 먹어주며 음식이 맛있다는 칭찬을 함이 좋다. 준비 된 음식에는 적어도 한 번씩 손을 대는 것이 예의이며, 밥을 많이 먹는 것은 아직 양이 차지 않았다는 뜻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손님의 접시에 음식이 비었을 경우 주인은 좀더 드실 것을 손님에게 권하는 것이 예의이고, 혼자 음식을 먹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실례이며,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담배를 서로 권하는 것도 친밀함의 표시이므로 피우지 못하더라도 권하는 사람의 성의를 최대한 존중하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좋다.
주인은 손님과 함께 식사를 천천히 해야 한다. 손님과 함께 식사를 끝마치는 것이 예의지만 주인이 먼저 식사를 마치게 될 경우, 손님에게 『미안합니다. 저는 다했습니다. 천천히 많이 드세요.』라고 말하며 끝까지 동석한다.
먹는 순서도 상당히 중요하다. 대부분 냉채, 야채 볶음요리, 고기 볶음요리 순으로 먹는 것이 일반적이며, 맛도 끝으로 갈수록 맛깔스럽고 고급인 경우가 많다.
또한 물고기 요리를 준비하게 되면 물고기의 머리는 항상 손님 쪽으로 향하게 하고, 또 생선을 먹을 때는 생선을 절대로 뒤집지 않는다. 이는 배가 뒤집어진다는 생각 때문에 특히 연해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철칙처럼 통한다.
손님을 초대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술과 음료이다. 중국에서는 요리와 함께 술을 마신다. 술잔에 술이 완전히 비어있지 않아도 중국인들은 가득찬 상태(滿)를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 잔을 채운다. 연회를 시작할 때는 일반적으로 깐뻬이(乾杯-건배=원샷)라고 한다. 그리고 남은 음식과 술을 가져가는 것은 초대한 사람을 무시한다고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많이 바뀌는 경향이 있다.
중국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광경은 왁자지껄하다. 워낙 먹는 것을 즐기는 민족이고 보니 먹는 장소가 가장 즐거운 곳이 된다. 그래서 열심히 요리를 즐기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래서 점심시간도 중화민국의 경우는 두 시간이나 되며 저녁시간은 물론 제한이 없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인은 깨끗하고 정갈하게 먹어야 예의인 줄 알지만 그들은 최대한 난장판이 되도록 먹어야 주인에 대한 예의가 된다. 그래서 식사가 끝난 뒤 탁자를 보면 마치 전쟁이 지나간 폐허와도 같다.
◎ 중국인의 식사 습관
중국에서는 요리가 한국처럼 한꺼번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순서대로 하나씩 나오는데 그야말로 세숫대야만한 접시에 요리를 내놓는다. 이것을 탁자 가운데 올려놓으면 탁자의 중앙은 회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자기 앞으로 돌려놓은 다음 적당한 양을 덜어 먹는다. 물론 맨 마지막으로 나오는 것이 탕(국)과 과일(디저트)이다. 그러므로 한 가지 요리를 너무 많이 먹으면 그 다음의 요리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되고 만다.
우리나라에서의 반찬을 제외한 국과 밥은 개인별로 나누어 상을 차리는 것과는 달리 중국은 일반적으로 회전이 가능한 원탁에 한가지 요리를 한 접시에 모두 담아 판을 돌려 가며 나누어 먹는 것이 외관상 눈에 띄는 습관의 차이 중의 하나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경우 대개 채소 (쑤차이 : 素菜)와 육고기, 해산물 요리를 조합을 하고 냉채 (량차이 : 凉菜)와 더운 음식을 적절히 조정하고 간단히 밥이나 면을 곁들여 주문하면 무난한 편이다.
중국인의 주식은 쌀과 밀가루이다.
남방 사람들은 미판(米飯-쌀밥), 니앤까오(年 -중국식 설떡) 등과 같이 쌀로 만든 음식을 즐겨 먹는 반면, 북방 사람들은 만토우(饅頭-소 없는 찐빵), 라오빙(烙餠-중국식 밀전병), 빠오즈(包子-소가 든 찐빵), 화쥐앤(花卷-둘둘 말아서 찐 빵), 미앤티아오(面條-국수), 쟈오즈(餃子- 밀가루를 반죽하여 엷게 민 다음, 잘게 저민 고기나 야채 따위를 넣어 싼 것) 등과 같은 밀가루 음식을 즐겨 먹는다.
부식으로는 돼지고기, 생선, 닭, 오리, 쇠고기, 양고기와 채소, 콩으로 만든 식품을 위주로 하며, 주식과 부식의 조화와 영양의 균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중국요리의 대단한 명성과 화려한 외양과는 대조적으로 실제 중국인민들의 식생활은 그리 화려하지도 대단하지도 못하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아침을 집에서 만들어 먹기보다는 밖에서 사먹는 것이 보통이다. 아침식사로는 요우티아오(油條), 지앤빙(煎餠)같은 밀가루 음식과 죽, 또우지앙(豆醬) 등을 주로 먹는다. 점심 때는 딴웨이(직장) 주변 혹은 구내의 식당에서 한끼를 해결하게 되는데, 양철 밥그릇과 숟가락 하나 달랑 들고 길게 줄지어 늘어 섰다가 밥 한 그릇씩 받아들고 삼삼오오 길을 걸어가면서 밥을 떠먹는다. 저녁은 대개 각자의 가정에서 요리하여 먹게 되는데 맞벌이가 대부분인 중국 가정에서는 먼저 귀가한 쪽이 식사 준비를 한다. (先來先作)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대도시에서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식생활 문화에도 많은 변화를 가지고 왔는데, 그 중의 하나는 대도시에 외식 산업이 성업 중인 것이다.
첫댓글 역시 때국넘이 네 ㅋㅋ 머리가 도네 조은 글인듯 한데 하하 ...오늘 은 반만 읽죠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