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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 3주차(백령고개 - 인대산 - 이치)
2005년 1월 16일(일요일) 흐린 후 맑음 *개요 -.05:00 : 울산 구 코리아나 앞 고수부지 주차장 출발 -.09:15 : 백령성 고개 소공원 주차장 도착 -.09:27 : 백령성 고개 출발 -.09:58 : 440봉 -.10:20 : 473봉 -.10:47 : 622.7봉(삼각점 확인) -.11:09 : 590봉(헬기장) -.11:16 : 640봉 -.11:30 : 인대산(665.8m) -.12:26 : 590봉(헬기장) -.12:45 : 495.8봉 -.13:10 : 석막리재(春耕亭 정자) -.13:34 : 450봉 -.13:47 : 570봉(국기봉 갈림길) -.14:18 : 515봉 -.14:41 : 이치고개 *산행후기 아직도 캄캄한 이른 새벽, 택시를 잡아타고 태화강 고수부지 주차장에 당도하니 도시의 불빛이 광장을 밝히고 회장님이 먼저와 기다리고 계신다(04:50). 1월, 2월중에는 현지 금남정맥구간이 폭설이 많은 지역이라 방학을 하기로 하였다가 예상외로 눈도 오지 않고 무엇보다 장기간 정맥 산행을 쉬어야 한다는 안타까움에 결정을 번복하고 갑자기 출발을 하다보니 성원이 많이 부족하지만 강행하기로 하고 애마를 출발 시킨다. 지난 차주에 백암산에서 본인의 재킷 분실사건으로 별다른 인연을 맺은 ‘원주백두대간산악협회’가 마침 1월 9일 100명산 산행을 가지산으로 원정을 왔을 때 회장님과 함께 산행을 하고 작은 성의 표시로 오뎅 탕으로 뒤풀이를 대접하였고, 더욱 공고한 정을 다지기 위해 오늘은 금남정맥의 같은 구간을 함께 산행해 보려고 평소보다 2시간이나 이른 시간에 출발을 하다보니 더욱 성원이 모자라나 보다. 어렴풋이 잠결에 전화를 받으니 오늘 회사에 비상이 걸려서 함께하지 못하고 출근을 하는 광율 대장이다. 지금 출근중 인데 눈이 많이 내려서 차가 움직이질 않고 있다며 이곳의 형편이 궁금하다는 안부 전화다. 우린 새벽에 울산을 빠져 나왔으니 우리가 출발을 하고나자 내리기 시작 했나 보다. 애마가 금산 톨게이트를 빠져 나가고 있는데 폰에서 원주 백산회 대장님의 굵은 목소리가 반갑게 들려온다. 벌써 들머리인 백령성 고개에 당도하여 산행을 시작 한단다. 우리와는 약 1시간 정도 차이가 난다. 백령성 고개에 도착하니 가는 눈발이 날리며 백령성 고갯마루 한쪽에 있는 백령정(柏嶺亭)자는 제빛 하늘아래 추위에 을신년 서럽다. 이곳 백령성 고개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탄현 또는 탄치로 되어있고, 청구도에는 백자령으로 되어 있다고 하나, 이곳 현지 주민들은 배티재, 잣고개 또는 잣 ‘백(柏)’고개 령‘(嶺)’즉 백령고개라고 부른단다. 중리와 역평리를 잇는 고개마루이다.
<백령정 앞 들머리> 고개를 뒤로하고 야트막한 절개지를 오르니(09:27) 이동통신사의 작은 안테나가 있고 잡목사이로 낙엽이 쌓인 등로는 또렷하며 완만한 오르막이다. 날리는 눈가루가 제법 쌓이기 시작한다. 산행이야 어떻게 진행하겠지만 혹여 돌아가는 찻길에 눈이 쌓여 방해를 놓지나 않을는지 은근히 걱정도 된다. 철수가 앞서가는 백산회를 따라 잡으려고 혼자 행하니 달아난다. 왼쪽의 계곡아래 중리마을 쪽에서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놈들 귀도 밝다. 추위로 얼었던 몸이 풀리며 탄력이 붙는다. 덤숭덤숭 바위군 사이로 서서히 오르막을 올라서니 440봉이다(09:58). 다소 급하게 내려서니 왼쪽계곡으로 하개직 마을과 흰눈으로 덮여있는 소로가 연실처럼 널어져있다. 작은 안부를 지나 낙엽송 조림지를 지나는데 오늘 구간은 크게 촬영할 것도 많지는 않을 것 같다며 김내곤 선생이 촬영을 부탁한다. 사진을 찍어주고 돌아서니 전나무의 초록이 눈에 들어오고 잠시간 오르막을 올라서니 473봉이다(10:20). 왼쪽으로 옹기종기 하개직, 중개직 마을이 조망된다. 마루금은 인대산 까지는 거의 북진에 가깝고 금산군 남이면의 상금리를 지나는 중이다. 방금 내린 하얀 눈이 낙엽에 쌓이고 얼마 전에 지나간 원주 백산회의 흔적으로 등로는 갈색으로 또렷이 구분된다. 상개직 마을이 가깝게 내려다보이는 안부를 지나 오르막을 올랐다 여느 야산의 산책로 같은 구부정한 등로를 마저 올라서니 622.7봉 이다(10:47).
봉우리 주변에는 벌목이 되어 있고, 눈을 쓸어내고 삼각점을 확인하니 ‘304 복구 건설부 749’란 하얀 글씨가 나타난다. 뒤돌아보니 지난 차주에 지났던 백암산이 흐린 날씨 탓에 어렴풋이 잡혀 사진기를 눌러 보지만 사진으로는 나타날지 모르겠다. 등로는 이곳을 기점으로 금산군의 남이면과 진산면 두개의 면 경계를 잠시 따르다 진산면으로 덜어 설 것이다. 평탄하던 등로가 갑자기 급한 내리막으로 변하고 다시 얌전해지며 호젓하다 못해 삭막한 등로를 따르니 무덤을 한기 지나고 참나무 가지를 엮어서 나무아래에 평상을 하나 만들어 놓았다. 천연 삼림욕장으로 제격인가 싶지만 주위의 나무 종류를 보니 그저 더위를 피하는 그늘막이 아닌가 싶다.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니 헬기장 표시의 벽돌위에 눈이 내려 쌓여 있어서 확연히 덜어난다(590봉 11:09). 다소 가파른 내리막을 짧게 내려서서 잠시 얌전하던 등로가 가팔라진다. 640봉우리를 지나치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다. 몇 안 되는 대원들이 참여한 관계로 대오를 이루지 못하여 조용히 걷기만 한다. 평소 지금쯤 이면 웃고 떠들며 시걸 법적 할 텐데 조용하다 못해 고저녁 하다. 조용히 올라서니 인대산(665.8 11:30)삼거리에 모두들 쉬고 있고 많이 앞섰던 철수도 합류를 해서 쉬고 있다. 왼쪽 등로로 내려서야 했으나 직진 등로를 따르다 알바를 하고 뒤돌아 왔단다, 조금 전 오르막을 오르며 앞선 백산회의 인기척을 듣고는 욕심을 내 따라 잡다가 무심결에 등로를 놓쳤단다. 숨을 고르고 왼쪽으로 내려서 무덤이 있는 안부에서 점심을 먹는다. 잔뜩 찌푸린 날씨와 조촐한 참여인원 덕에 식사와 휴식시간을 짧게 가지고 여흥을 갖지 못하고 곧장 일어난다(12:18). 인대산을 지나니 등로의 진행 방향은 서진이다. 안부를 지나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니 여기도 헬기장이다(590봉 12:26). 오른쪽 계곡아래에 작은 마을이 조망된다. 20여분 만에 다시 작은 봉우리에(500봉) 오르니 왼쪽으로 삼포가 개간된 오항동 마을이 내려다 보인고 잠시 후 고동색의 ‘지적경계’말뚝을 지난다. 495.8봉을 지나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내리막을 내려서는데 큰 볼일이 생긴다. 좌우를 살피며 터를 잡고 앉는데 앞선 선두가 등로를 확인하느라 부산을 떠는 소리가 조용한 겨울 산에 가깝게 들려온다. 볼일을 마치고 내려서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가는 오항동 고개다. 지도에는 나타나 있지 않는 것을 보면 임도를 확장 했나 보다. 가로질러 또렷한 등로를 따라 오르막을 오르지만 선두도 보이지 않고 표지기도 정맥의 표지기는 보이지 않는다. 고함을 쳐서 선두를 불러 확인을 하니 고개 마루에서 등로를 따르지 않고 오른쪽으로 임도를 따라야 한단다. 다시 뒤돌아 내려와서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오른쪽에 채석장이 있고 다시 오른쪽 숲 속으로 마루금은 연결된다. 숲을 내려서니 석막리 돌맥이 마을과 봄가리골을 잇는 635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석막리재 이다(13:10). 도로를 횡단하니 춘경정(春耕亭)이라는 정자가 있고 정자 왼쪽으로 금산군 진산면 오항리‘산벗꽃동산’이라는 안내 간판에 나뭇가지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계단을 올라서니 두런두런 인기척이 들려서 반갑게 인사를 하며 조우를 하니 산책을 나온듯한 내 또래의 부부다. 벤치도 몇 개보이고 오른쪽에는 검은 천막을 두른 삼포다. 왼쪽으로 봄가리골 마을을 내려보며 오솔길 같은 등로를 걷는데 폰이 울린다. 백산회 대장이다. 여전히 1시간정도의 차이를 확인하고 오늘은 얼굴을 보는 게 어렵게 되겠다는 안부 전화다. 별 특징 없는 등로를 오르내리다 조금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데 오늘 처음으로 햇살이 퍼진다. ‘국기봉 1,920m 지점’이라는 말뚝을 지나 봉우리에 올라서니 570봉 이다(13:57).
대둔산이 장엄한 안벽군의 병풍에 쌓여서 구름을 쓰고서 모습을 덜어내고 있다. 여기서부터 마루금은 다시 전북과 충남의 도경계를 따른다. 조망을 즐기고 숨을 고르며 잠시 쉰다. 대둔산과 그 아래 시설지구들을 바라보며 이제는 하산이다. 편안하게 내려서서 515봉을 지나(14:18) 임도를 건너고 이동통신 기지국을 왼쪽에 끼고 도니 진천 김씨의 큰 무덤이 나온다. 잠시 가파르게 봉우리를 넘어서 전적비가 웅장한 소공원에 내려서니 이치(배티재)이다(14:41). 고개 마루는 전북 완주군과 충남 금산군의 경계를 이르며 17번 국도가 지나간다.
이치는 대둔산 중허리를 넘어 전북 완주군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며 전략상 중요한 곳이다. 임진년 7월 경상도와 충청도를 휩쓴 왜적이 군량미의 현지보급을 꾀하여 이 배티재를 넘어 호남평야로 진출하려고 적장 고바야가와가 거느린 2만 병력을 이끌고 이 재를 넘으려 했다. 이보다 앞서 권율(權慄) 장군은 동복현감 황진과 1,500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이재를 지켜 왜적의 호남진출을 막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왜적은 수의 우세함과 승승장구한 힘을 믿고 단숨에 이 재를 넘으려고 덤벼드는 것을 장군은 전 병력을 독려하여 결사전을 벌려서 적을 섬멸하여 대첩을 올리니 왜적이 다시는 호남에 진출할 엄두도 못 내게 되었다. 이치대첩(梨峙大捷)은 행주대첩, 진주대첩보다 앞서는 임진왜란 최초의 육전승전지로 국가사적지로 지정 추진 중이며 그에 앞서 도기념물 154호로 지정, 성역화 사업을 통하여 새롭게 단장할 전망이란다.(전라북도 사이트에서 퍼옴) 그 싸움의 흔적이 ‘권율이치대첩비’외에 대둔산 여기저기에 여러 가지 지명 또는 전설로 남아 있단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애마에 올라 백산회에서 두고 갔다는 원주 막걸리와 약주로 목을 축이고 오늘 하루의 원행을 마감한다. 울산에서 전해오는 소식에는 40여년만의 폭설로 인해서 완전히 교통이 두절 되었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돌아갈 길이 걱정도 되지만 한 구간을 마친 성취욕과 적당한 취기로 내가 이 세상을 다 호령할 것 같은 착각으로 억지로 잠을 청하며 하루를 접는다. *PS : 사진속의 시간 셋팅이 2시간 늦게 되었읍니다. 혼돈 없어시기 바람니다. |
첫댓글 수고했소이다.. 이렇게 족적을 남겨놓아야지 산행의 가치가 있은기 아이가?? 차기자가 아니면 누가 할끼고 ..존경스럽소. 본인은 글솜씨가 업서서 써볼라카도 잘 않되네 그려.. 그라고 석막리재에 있는 정자는 춘경정이 아이가??오타인지 확인필요..
==>보잘것 없는 능력을 이쁘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본문에는 '춘경정'이 그렇케 오타가 되었네요. 즉시 수정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