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틀어주랴 배달 가랴 ‘바쁘다 바빠’
설날을 앞두고 재래시장이 분주해졌다. 모처럼 맞은 대목이다. 이 대목장을 그리다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다. ‘홍애아제’다. 홍애아제는 목포 자유시장 도깨비방송국의 음반지기(DJ)다. 시장에서 홍어를 팔며 방송시간이면 가벼운 이야깃거리와 함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지금도 계속 하고 있을까? 이번 대목장 분위기는 어떨까? 그것이 궁금했다. 목포 자유시장으로 향했다. 1월의 마지막 날 오전이었다.
시장에 들어서니 음악이 먼저 반겨준다. 그것도 목포내음 짙게 묻어나는 노래였다.
‘구름속에 묻혔더냐 안개속에 싸였더냐/님 오시는 목포항에 갈매기도 노래하네/인동초 한세월에 서리서리 맺힌 사연/님이시여 모두 잊고 세월속에 묻어주오/님을 향한 일편단심 세월 간들 잊으리오.’
고 김대중 대통령을 추모하는 노래로 재탄생한 남진의 ‘님 오신 목포항’이었다. 상인들은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손님을 맞고 있었다. 모두가 흥에 겨운 표정이었다.
할인판매 등 시장소식 얘깃거리
시장 옥상에 있는 방송국을 찾았다. 이른바 ‘도깨비방송국’이다. 컨테이너를 개조해 방송국으로 만들고 방송장비를 갖췄다. 겉보기에 2년 전과 다를 바 없다. 트로트 풍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도 똑같았다. 그 안에서 김용희(53) 씨가 이야깃거리를 전하며 음악을 틀어주고 있었다.
‘님 오신 목포항’이 끝나자 김 씨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세일정보 전해드리겠습니다. 대양식품에서는 까만콩 1㎏에 5000원하던 것을 3500원에 팝니다. 나래김치에서는 특품 창란젓 1㎏ 2만원 짜리를 1만3000원에 드립니다. 단골상회에서는 참바지락 1㎏ 4000원 짜리를 3000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할인판매 정보가 한참동안 이어진다. 그리고 송대관의 노래 ‘분위기 좋고’가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온다. 노래가 시작되자 김 씨가 곧바로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를 한다. 그 사이 방송국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요즘 통 장사가 안돼요. 세일 안내가 많은 것도 그 이유고요. 처음에 한두 군데서 시작을 했는데, 지금은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죠. 이런 몸부림이 시장 활성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이번에는 상인들의 자녀 결혼 등 애경사 소식이 전해진다. 스마트폰 분실소식과 쓰레기 배출시간 안내도 잇따랐다. 점포 청소와 관련된 당부도 이어진다. 추운 날씨에 점포 입구가 얼어붙지 않도록 물청소를 할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설날을 앞두고 원산지 표시단속이 강화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실수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상인들의 소소한 일상이면서도 결코 등한시해선 안될 정보였다.
음악다방DJ 경험 진행솜씨 탄탄
그의 시장 음반지기 생활은 2년 전 시작됐다. 2011년 4월이었다. 재래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하나로 도깨비방송국이 설치되고 상인 음반지기로 뽑히면서부터였다.
그날 이후 오전 10시만 되면 방송을 했다. 출연료도 따로 없다. 그럼에도 젊은 시절 해본 음악다방 DJ 경험을 토대로 탄탄한 진행솜씨를 뽐내며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시장스타’가 됐다.
“바쁘죠. 오늘처럼 주말을 앞두고선 더 바빠요. 그래도 한 번 시작한 일인데, 내가 바쁘다고 대충 할 수 없잖아요. 빼먹어서도 안되고요. 재밌어요. 상인과 손님들의 격려도 큰 힘이 되고요.”
김 씨의 말이다.
그의 방송준비는 하루 일과를 끝내고 퇴근한 이후 집에서 이뤄진다. 몸은 피곤하지만 다음날 방송을 위한 자료를 챙겨놓고 잠자리에 든다. 방송을 여는 말(오프닝 멘트)도 따로 메모해 둔다.
새벽이면 또 어김없이 시장에 나가 가게 문을 연다. 그리고 다른 점포를 돌아다니며 상인들과 인사를 나눈다. 방송 때 내보낼 세일정보도 이때 수집한다.
“휴대폰 문자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로는 솔직히 부족해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면 제가 직접 들어야겠더라고요. 그래야 더 알차게 구성할 수도 있고요.”
그가 상인들을 직접 만나 생활정보를 수집하는 이유다. 방송은 매주 월∼목요일 오전 10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다. 프로그램 이름은 ‘홍애아제의 활기찬 아침’이다.
앞치마 두르고 다시 도마 앞에
방송이 끝나면 김씨는 음반지기 ‘홍애아제’에서 홍어장사로 돌아간다. 자신의 점포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다시 도마 앞에 선다. 냉장고에서 홍어를 꺼내 자르고 껍질을 벗기며 손질을 한다. 주문받아 놓은 물량도 포장해야 한다. 배달도 직접 나간다.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어요. 다른 상인들과 소통하는 재미가 쏠쏠해요. 보람도 있고요. 저한테도 생활의 활력소가 돼요. 젊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제 방송이 자유시장을 알리고 시장을 활성화시키는데 작은 보탬이 됐으면 좋겠어요.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서 장사도 잘되고. 그래서 우리 상인들 얼굴도 활짝 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홍어를 썰던 그가 잠시 손을 놓고 밝게 웃는다. 홍어냄새도 짙게 묻어난다.
녹색의 땅 전남새뜸
첫댓글 멋지네요~~~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삶의 여유가 느껴져서 좋습니다^^
우덜도 요런 빛깔이여야 할낀디 ㅎ
새해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