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불평등 지대, 학습지 교사
이제 직업에 있어서 남녀 간의 장벽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지만, 이 장벽이 허물어진 건 얼마되지 않았다. 금녀의 구역
이라 불렸던 군대라는 조직조차도 여성에게 문을 개방해 많은 여성들이 군복을 입고 생활하지만, 내가 군생활을 했던 20여 년 전에는 단 한 명의 여성군인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제는 많은 수의 여성군인이 활동하고 있다지만 아직까지도 전투병과에는 드문 것 같다. 간호병과나 정훈, 정보와 같은 남성과 동등한 체력을 요구받지 않는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 30kg이 넘는 군장을 메고, 들판을 뛰어다니며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전투병으로 여성은 신체적 불리함을 지니고 있어 등용되기 어려운 분야인 것이다.
이처럼 아무리 남녀평등의 시대이고, 직업에 있어 남녀의 구분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분명 성별에 따라 활동하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그런데 반대로 남성이 차별 받는 직업도 있다. 단적인 예로 내가 몸 담고 있는 가정방문 학습지 시장이다.
내가 입사할 당시인 17~8년 전 만 해도 지점을 구성하는 비율에 있어 남성이 50% 가까이 차지하는 경우도 많았고, 소비자 특히 어머님들은 남자교사를 선호해서, 학습지 신청 전화를 하시면서도 우리집에는 남자 선생님을 보내달라고 요구하시기도 했다. 이유는 아이들에게는 남자 선생님과의 학습이 긴장감을 유발하고, 남자 선생님의 엄한 꾸지람 한 마디가 아이들의 학습이나 태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여성, 특히 전업주부들이었던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다 보니 가정에는 아이들 혼자 있거나, 할머니 등의 노인들과 함께 있는 상황들이 빈번히 발생하게 됐다.
각종 흉악범죄들이 늘어나면서 가정에서 혼자 있는 아이들이나 노인들과 함께 있는 경우도 범죄의 표적이 됨에 따라 가정 방문 학습지 시장에서 남성들의 수요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해 지금은 남자교사가 단 한 명도 없는 지점이 여럿된다.
내가 근무하는 이곳도 33명의 방문교사 중 남성의 비율은 딸랑 2명이다. 비율로 따지면 겨우 6% 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는 학습지를 신청하시면서도 그 지역의 교사가 남성이라면 안하겠다는 어머님들이 계시고, 다른 곳에서 이사 오시면서 이사 온 지역의 방문교사가 남성이라하여 학습을 중단하거나 여성이 방문하는 다른 학습지로 옮기는 경우도 많다.
사회 환경이, 소비자의 경향이 바뀌었다고 해서 남성이 학습지 교사로 활동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학습지 교사는 일정한 자격 요건(대부분 신체 건강한 4년제 대졸 이상의 학력과 45세 미만 연령 정도) 만 갖추면 특정한 자격증이나 자기 자본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기에 쉽게 입사할 수 있다.
요즘처럼 청년 백수가 넘쳐나는 시대에, 구직난이 심각한 경제 상황에 의지만 있다면 선택 가능한 직업군이 학습지 교사인 것이다.
이런 조건으로 많은 수의 남성들이 학습지 교사에 도전하지만 면접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소비자가 남성의 가정방문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남성이 홀대 받는 분야가 생겼다는 것이.
그렇다면 가정방문 학습지 시장에서 남성이 살아남는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실력이다. 고정관념인지는 모르겠지만 수학이나 과학 같은 분야는 남자 선생님의 실력이 더 우수하다는 소비자(대부분이 어머님이기에)의 인식이 있다.
처음에는 남자라서 꺼렸지만 전문적인 지식으로 아이가 어려워 하는 문제를 척척 풀어주는 모습을 보면 아마 어머님들도 남자 선생님을 만난 걸 다행으로 여기실 것이다.
다음으로는 아이들과의 친화력과 학부모와의 상담력이다.
아이들과의 친화력에는 무엇보다도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선생님이고, 너는 가르침을 받는 교육생이다 라는 인식은 곤란하다. 함께 놀아줄 수도 있어야 하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줄 아는 귀를 가져야 한다.
내 주변에서도 아이들과의 친화력을 형성하기 위해 마술이나 구연동화를 배우기도 하고, 초중등 회원들의 은어를 이해하기 위해 부지런히 인터넷을 뒤져 메모하는 남자 교사를 보았다.
학부모 상담력 강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지도 관리하는 교재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다. 학습지 회사에서는 입문 교육을 통해 이를 습득시키지만 몇 박 며칠의 짧은 시간 안에 습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자신이 나머지 공부를 해야하는 것이다. 그 정도의 성의도 없다면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이 좋다. 애꿎은 아이들만 상처 받는다.
남자 교사들은 반드시 화법話法에 대한 공부를 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여성인 학부모들과 대화한다는 것 자체가 껄끄러운 일인데, 상대방과 대화하는 방법조차 익히지 않는다면 말 로써 영업하고 관리하는 학습지에는 남자가 설 자리가 없다.
셋째, 정보에 민감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
전업주부이건 맞벌이 가정이건 자녀 교육에 대한 지역적 정보는 물론 앞으로의 교육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 있는 형편이다.
교육정보를 제공하는 건 회사에서도 하고, 여자 교사도 한다. 하지만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남자 교사는 남성이라는 차별성 때문에 보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같은 정보라도 남자 교사가 제공하는 정보의 무게는 다르다. 예컨대 정권이 바뀌면서 앞으로의 교육은 어떤 부분에 초점이 맞춰지는가, 그에 따라 우리 아이에게 적합한 교육 방법이나 추가해야 될 과목은 무엇인가에 대한 어머님의 궁금증에 남자 교사가, 구체적인 자료(신문 스크랩, 교육 정보지, 인터넷 기사 등등)를 펼쳐보이며 상담했을 때 상당한 신뢰를 얻는다.
내가 겪은 교사 중 한 분은 인근 학교의 몇 년 치 시험지를 스크랩 해두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 이를 복사해서 회원에게 제공해주기도 했다. 어머님들의 신뢰도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었다.
넷째, 외모 관리다.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 라는 속담이 있다. 그 지역을 담당하는 교사의 성별이 남자이지만 실력이나 학습 관리 능력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사탕발림으로 어머님을 설득해서 회원 가입을 받았는데, 첫 수업 후 바로 휴대전화를 받아야 했다.
이유인 즉슨, 이렇게 나이 든 교사인지 몰랐다는 둥, 온몸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는 둥, 교사면 교사 답게 입고 와야지 넥타이도 없이 허름한 잠바를 입고 와서 아이에게 이런 선생님을 붙여준 엄마가 다 창피했다는 둥 온갖 불평을 쏟으시면서 나머지 회비에 대한 환불을 요구하셨다.
나도 회원 관리를 하면서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 하절기 복장 규정 기간 이외에는 반드시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을 한다는 것과 같은 양복을 두 주 연속으로 입고 가지 않는다는 것, 같은 요일에 같은 넥타이를 매지 않도록 신경 쓰고, 어떻게 든 젊어보이려 애쓴다는 점이다.
연예인들 처럼 피부관리를 받거나 고가의 옷으로 세련미를 내거나 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조금만 신경 쓴다면 회원이나 회원 어머님께 단정한 남자 교사로 인식될 수 있다.
그까짓 회비 몇 푼 받자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면, 일 년에 한 번이나 갈까말까한 음식점에 가서 머리카락 하나 빠진 요리 접시 때문에 사장 나와라, 지배인 불러달라 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
그에 비하면 우리 회원들은 매달 꼬박꼬박 회비 낸다. 교재가 잘못 되어 다시 방문해도, 시간이 조금 늦어도, 심지어는 내 사정 때문에 방문 요일을 바꿔도. 그런데 외모에 조금 신경써 달라는 것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끝으로 남자 교사라면 열정이 남달라야 한다.
분명 열정이라는 마음 가짐은 밖으로 보이는 것이다. 은퇴한 야구선수 양준혁의 말이다.
'내야 땅볼을 쳤으니까 당연히 아웃될 줄 알죠. 하지만 1루까지 전력질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열심히 뛰다보면 상대방이 당황해서 실수를 할 때도 있거든요.'
내 회원은 꼭 만족시키겠다. 내 지역은 우리 회사 학습지 왕국으로 만들겠다. 반드시 뛰어난 학습 효과를 보여주겠다.
열정 넘치는 남자 교사는 분명 관리자(지점장, 팀장)를 피곤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지원해달라는 업무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리자는 그 남자 교사의 실적을 자신의 실적으로 인정 받는 존재다. 기꺼이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남자 교사는 어느 때가 되면 가가호호 방문하는 입장에서 교사를 매니지먼트 하는 관리자로 직책을 바꿀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분명 학습지 시장에서 남자 교사는 불리한 위치에 있다. 그런데도 몇 년이고 계속해서 현장 교사로 남아있겠다는 마음은 마치 시장 환경과 싸우려는 무모한 일인 것이기 때문이다. 점점 나이 들어가는 남자 교사를 어느 학부모가 좋아하겠는가? 다년 간 관리 받은 회원이라면 모르지만, 계속해서 신규 회원을 만들어 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래저래 가정 방문 학습지 시장에서 남자의 존재는 작아지고 있다.
하지만 소수의 남자 교사들이 살아남아 있다는 건, 그들이 노력이 남달랐다는 것이고, 또 성공 확률도 높다는 반증인 셈이다.
나와 같은 부류의 남자들이여, 힘 내자. 변화에 적응하며 보다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한 생물학적 조건은 오히려 남성에게 유리함을 상기하며.
첫댓글 여자로태어나세요~~여자라서행복해요~ㅋㅋ
집사람 보면 여자로 태어나기 싫어요. 나 같은 남편 만날까봐. ㅋ ㅋ
지금부터라도잘하세요~나중?곰국잔뜩끓여놓은거혼자드시고싶지않음ㅋㅋ
방문 교사로 남자가 부담이 많은건 사실인 듯해요. 그래도 실력이 뒷받침되면 학부모님들이 남자 선생님을 더 신뢰할 수도 있는 듯해요. 몇년 전이지만 수색 지역의 모건일(?)선생님 아직도 칭찬하시는거 보면.....^^
남자교사의장점과거기에조금부드러움을 잘섞어논다면?좋은결과가있을듯?정말?남자선생님들이필요한데?점점?자리를잃는다는게안타까울뿐!어쨌든모두힘든시기각자가잘조절해서슬기롭게나가야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