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 부문 심사평
모든 글은 ‘나’를 드러내는 그릇이다. 하지만 문학적인 글은 아무런 계획 없이 무턱대고 자신의 감상을 쏟아 놓기만 해서는 잘된 글이라고 할 수가 없다. 좋은 글은 감정과 언어의 여과 과정 속에서 태어난다. 자기 고백적 양식에 가까운 시라고 해서 거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그대로 털어놓는다고 다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를 읽는 사람은 한 편의 짧은 시를 통해 크건 작건 감동의 세계로 빠져들고 싶어한다. 그러니까 시의 독자는 시를 대하는 순간 마음을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타인을 향해 한 번도 열지 않았던 가슴을 시한테 내어준다는 것은 시를 읽으면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은 본능 때문이다. 시가 자신을 좀 더 높은 세계로 끌어당겨 주리라는 고전적 기대가 있기 때문에 시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들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4.8 독립만세운동 기념 전국백일장의 운문 부문 수상작들은 그 수준이 가히 ‘전국적’이라는 수사를 붙이기에 손색이 없다. 수상작들에 대한 소감을 짧게 덧붙인다.
<중등부>
김혜령(목포항도여중)의 「꽃」은 밤늦게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화자의 현실을 매우 긴장감 있게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가족을 ‘꽃’으로 표현한 것도 재치가 있다.
안정빈(목포항도여중)의 「꽃」은 약간 불투명한 이미지가 마음에 걸리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막힘없이 술술 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민경(목포중앙여중)의 「강」은 감상적인 면이 언뜻 보이지만 구체적인 일상에서 시의 소재를 찾고 있다는 점에서 우수상을 주기로 했다.
<고등부>
대상으로 뽑은 김민빈(광주경신여고)의 「꽃」은 고등학생의 작품으로 믿기지 않을 만큼 시상의 전개가 안정되어 있고, 표현방법 또한 예사롭지 않다. 능소화 때문에 골목이 빨갛게 물들고, 솜틀집 골목 어귀에는 기계 소리가 쌓이고, 골목길에 그림자를 좁게 건다는 표현들이 그렇다. 아주 오랫동안 습작을 해온 학생인 것 같다. 후반부에서 앞에 했던 말을 반복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작품이어서 믿음직스럽다. 대상 수상을 축하한다.
서아라(전남여고)의 「꽃」을 최우수상으로 골랐지만 대상 작품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뱃고동 소리가 달려와 간을 보는”으로 시작하는 첫 행의 묘사부터 독자의 눈길을 잡아끈다. 다만 이 시의 핵심어인 ‘소금꽃’이 세 차례나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약점을 노출하고 말았다.
장보연(청주양업고등학교)의 「일」은 마지막 두 행이 압권이다. ‘기억’ ‘세월’ ‘고통’ 같은 시어로 인해 의도가 지나치게 노출된 점이 아쉬웠다. 이유란(광주살레시오여고)의 「꽃」은 소재가 싱그럽고 어떤 서사를 만들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다만 이 시에 등장하는 ‘안개꽃’ ‘다육식물’ ‘벚꽃’ ‘달리아’ ‘풀꽃’ ‘장미’가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제각각 노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왜일까 생각해보기 바란다. 두 작품을 우수작으로 민다.
안도현(시인,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