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관문, 프랑크푸르트 '뱅
크푸르트(Bankfurt)'라고 불리우는 프랑크푸르트는 금융과 상업의 도시로 독일 최대공항이 있고 현대적인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이다. 8세기 샤를르마뉴 황제에 의해 많은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하여, 12세기에 들어서 유럽 각국의 상인들이 모여들어 견본 시장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독일 역사를 짊어진 역사적 관광지로 프랑크푸르트의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올렸으며, 파울스 교회에서는 독일 제 1회 국민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또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등의 작품을 남긴 세계적인 문호 괴테의 생가가 있다. 신성로마제국의 52명의 실물크기 초상화가 벽에 장식되어 있는 구시청 건물 뢰머(Romer)와 오페라하우스가 인상적이다. 매년 많은 세미나와 국제회의가 개최되는 등 독일 최대이 회의 센터이기도한 프랑크푸르트는 유명한 Book Fair가 열린다.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깊은 도시로 외환은행등 6개의 금융기관, 대한항공, 여러 종합상사와 건설회사들의 지점이 자리하고 있으며, 교포상사들이 상업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괴테하우스(Goetheha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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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시민의 위대한 아들'이라는 호칭을 받았던 대문호 괴테가 1749년에 태어나 대학 입학까지 16년을 보낸 집이다. 전쟁후에 재건된 것으로 괴테가 태어난 방은 기념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집필하던 방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집필됐던 괴테하우스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파괴되었으나, 전후 충실히 복원돼 현재는 자필원고와 초상화를 전시한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괴테는 이 집을 자유형의 계단, 정원의 아름다운 전경을 갖춘 밝고 즐거운 넓은 집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갖게된 오스트리아에 대한 동경과 사랑, 가족들간의 애정을 엿 볼 수 있기도 하다. 이 곳에는 괴테의 생애에 관한 서류와 작품들, 유명한 예술가들의 조각과 회화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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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머(Roem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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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머 광장에 위치하고 있는 시청사, 뢰머는 프랑크푸르트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2차 대전이후 손상된 청사를 원형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원래 귀족의 저택이었던 것을 15세기 초에 시가 사들인 것으로 도시의 생성과 동시에 지어진 뢰머의 2층에는 신성 로마제국의 대관식을 기념하는 축하연을 베풀던 방, 카이저자르가 있다. 유럽 최고 권력을 자랑하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뢰머 광장앞 정의의 여신 분수 또한 유명한 관광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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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렐라이 언덕(Lorel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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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크트 고아르하우젠(St. Goarhousen)이라는 도시 위쪽으로 라인강의 오른쪽 절벽에 위치한 로렐라이 언덕은 133m로 수면위로 깎아세운 듯하다. 유럽의 3대 썰렁 명소중 하나에 꼽힐만큼 직접 가서 보면 절벽밖에 없어 실망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 경관이 매우 아름다우니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본다면 아름다운 경치에 푹 빠질것이다. 로렐라이 음악을 들으며 감상하면 더 운치있을 듯하다. 로렐라이 언덕을 볼려면 유람선을 타고 관광하는 것이 제일 좋지만 기차안에서 보는 경관 또한 멋지다.
로렐라이에 관한 전설은 여러개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가장 유명한 전설은 다음과 같다. 로렐라이란 이름을 가진 긴 금발머리의 소녀가 저녁마다 라인강의 절벽에 앉아 금발머리를 빗으며 사랑스런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모습과 노래는 너무도 유혹적이어서 라인강을 지나는 배에 탄 사람들은 마법에 걸린듯 모두 로렐라이를 쳐다보았고 위험한 암초와 절벽에 부딪쳐 라인강의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로 인해 많은 뱃사람이 죽어 지금까지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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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로 가득찬 대학 도시, 하이델베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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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녹색의 숲을 배경으로 고풍스러운 옛성들의 모습이 인상적인 낭만주의의 중심지 하이델베르크는 넥카르 강과 라인강이 합류하는 독일의 서남쪽에 위치해 있다. 1142년 쇠나우 수도원을 세우면서 보름스성곽을 발판으로 조그만 촌락인 하이델베르크로 발전하게 되었다.
1196년 처음으로 쇠나우 수도원의 문서에 하이델베르크라는 말이 나타났다. 1386년 제국의 7대 선제후 중의 하나였던 궁중백 루프레히트 1세가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설립하기 시작하면서 하이델베르크는 젊음의 도시 대학가가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중 폭격을 면할 수 있어서 아름다운 고성들을 고스라니 보전하고 있다. 따라서 하이델 베르그를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낭만적인 독일의 숨결과 청춘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인구는 약 13만명 정도이며 이중 27,000명 이상이 대학생이다. 젊은 도시 하이델 베르그는 밤마다 학사주점에는 청춘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으며, 반투명한 하늘과 숲의 조화가 특히 매력적인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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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만나는 중세도시, 로텐부르크
로만틱 가도의 하이라이트로, 산 위에 성벽으로 둘러싸인 거리가 즐비하여 마치 중세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도시의 약 4할정도가 파괴되고 소실되었으나, 완전하게 중세도시를 복원시켜놓은 곳으로 오랜 시간을 뛰어 넘어 근세에 그 가치를 인정받은 '중세의 보석'이라 칭송되는 고도이다. 납작한 돌을 깐 구시가와 성벽 위로의 산책, 타우버 강을 따라 내려가는 하이킹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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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tische Strasse, 로맨틱 가도(街道), Romantic Road 어느 여행자에게나 잊을 수 없었던 경험을 한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아우토반을 들어서면서 느끼는 전율이 그러한 순간이 아닐까? 로맨틱 가도는 독일 중남부 뷔르츠부르크(Wuerzburg)에서 남쪽으로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에 근처의 퓌센(Fuessen)까지의 약 360km에 이르는 휴양 도로로 중세 때 무역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중세의 분위기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 우리가 현재 로맨틱 가도라고 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관광객 유치를 위해 개발되었다. 이 가도를 따라서 고딕풍의 성당과 통나무집 등 로텐부르크(Rothenburg) - 뇌르트링겐(Nordlingen)을 비롯한 바로크, 르네상스 양식의 중세풍의 모습이 남아 있는 소도시들이 잇닿아 있으므로, 여행자에게 유럽풍이라는 느낌과 더불어 정갈하고 인상적인 독일을 심어 놓는다. 동화 속에나 나올 듯한 아름다운 성,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대는 분수와 푸른 정원, 실외 까페와 레스토랑 오래된 호텔이 늘어서 있다. 퓌센 근처에는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가 건조한 노이슈반슈타인성(城)이 있다.
뷔루츠부르그(Wurzburg) -> 바트메르겐트하임(Bad Mergentheim) -> 바이케르하임(Weikersheim) -> 뢰팅겐(Rottingen) -> 크레글링겐(Creglingen) -> 로덴부르그(Rothenburg) -> 포이흐트방겐(Feuchtwangen)-> 딩켈스부르(Dinkelsbuhl)-> 뢰르트링겐(Nordlingen)-> 하르부르그(Harburg)-> 도나우베르트(Donauworth)->아우그스부르그(Augburg)-> 란츠베르그(Landsberg)-> 호엔후르흐(Hoenfurch)-> 로텐부흐(Rottenbuch)-> 뷔르트슈타이그(Wildsteig)-> 슈타인가텐(Steingaden)->슈방가우(Schwangau)-> 퓌센(Fussen) | |
쾰른 대성당
독일 쾰른시에 있는 고딕식 성당. 총길이 144 m, 나비와 높이 각 61m로 독일 최대 성당이다. 1248년 기공, 1322년 완성·봉헌되었고, 그 뒤 증·개축하여 창건 때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오랑식(五廊式)으로, 신랑(身廊)과 이중측랑의 나비가 같으며, 서쪽 정면에 높이 157m의 거대한 쌍탑이 세워져 있다. 입구가 있는 익랑(翼廊)은 프랑스 아미앵성당을 따른 것이며, 주보랑(周鎧廊)에 7개의 방사상 제실(祭室)이 있다. 최종공사는 1880년에 끝났다. 전체적으로 수직성이 강하며 내부장식으로 14∼16세기의 스테인드글라스, 14세기의 성모·사도상, 로흐너의 제단화 《동방 3 박사의 참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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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역사의 현장, 베를린15
베를린은 15C 브란덴부르크 제국의 수도였으며 이후 18C초 프로이센 왕국, 19C 후반 비스마르크의 제 2독일제국의 수도였다. 2차 세계 대전이후 페허가 된 베를린은 프랑스의 꼬르뷔지 등의 유명한 건축가에 의해 이루어져 현대적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20C 들어 학문 예술의 전성기를 맞아 유럽 최대의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독일 통일과 더불어 다시 독일의 수도가 된 베를린은 신생 독일의 중추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주요 산업은 기계 엔지니어링, 화학, 안경공업, 의류 등의 경공업이 이며 패션 중심도시 중의 하나이다. 중부 유럽의 여러 인종이 뒤섞여 있는 도시로 게르만족, 프랑스이 위그노, 롤란드인, 보헤미안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내심과 희생정신, 풍부한 유머와 위트를 지니고 있는 베를린인들은 동서 통일의 감격을 경험하면서 더욱 성숙된 시민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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