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30도를 넘나드는 여름날...
16km 40리의 강화 나들길 도보여행을
위해 강화버스터미널에 집결 능묘가는 길을 찾는다.
"능묘가는 길"은 강화군 길상면 온수버스터미널에서 시작...
삼랑성 북문 아래 상가지역을 지나 고구려...아니 그보다 더
거슬려 올라간 역사의 숨결을 찾아 전등사 동문 매표소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땀은 여름날의 소낙비처럼 주럭주럭 흘러내린다. 각자 전등사 경내 관람을 위한 매표를 하고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 동문을 지난다.
명품으로 만들어진 시루떡 같은 정족산의 삼랑성 돌담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삼랑성(정족산성) 동문을 지나
경내로 바로 갈까.. 이참에 삼랑성의 달맞이 길을 둘러볼까.. 망설이다 어렵게 낸 시간이 아닌가...또 욕심을 내본다...
나들길을 살작 벗어나 2.300m에 이르는 삼랑성곽중 동문에서 남문까지 발품을 파는 아래로
천년고찰 전등사 경내와 길상면 신현리 들판과 멀리 희미하게 다가오는
염화강의 물줄기.. 그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산등성 바람이
도보여행의 힘듬을 잊게 해 준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 삼랑성...
정족산성이라고도 하며 (강화산성과는 별개임) 전체 둘레가 약 2.300m나
된다하니 만산홍엽, 가을날 낙엽을 밟으며 산사와 정족산을 둘러보는 것도 참 좋을것 같은 생각을 해 보면서
남문으로 향하다.
남문에서 전등사 경내로 접어들었다
남문을 지나 우거진 노송 사잇길로 접어드니 윤장대가 보이고
그 위로 산사의 찻집이 우거진 녹음속에서 길손을 반겨준다.
삼랑성(정족산성)안에 자리잡고 있는 전등사...
고구려 소수림왕 때 진종사라고 했던것을 고려 충렬왕 때,
정화공주가 옥등을 이 절에 바친 후 전등사라 고쳐 불렀다 하며
외침이 있을 때 사고를 지키는 사찰로서 국방의 임무도 담당했던 유서깊은 사찰,
그 경내를 둘러보는 것은 나들길의 또 다른 선물...
대웅전을 벗어나 스님들의 참선방을 돌아 나들길은 북문으로 향한다
경내를 벗어나 북문으로 가는 길...
지금까지 전등사 관광을 해 보았지만 그 뒤편으로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숨겨져 있었다니... 역시 도보여행자만이 볼 수 있는
명품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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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정족산성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장서각을 지나니
나들길 이정표는 북문으로 길 안내를 한다
북문으로 오르는 오솔길은 풍경의 유희...
갈림길...
온수리로 가란다. 가슴한켠 아쉬움이 남는다. 여기까지 왔는데,
삼랑성 정상은 밟아 보고 가는 것이...
북문으로 빠져 나가지 않고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서 온수리 시가지를 내려다 보니
운무에 가려 희미하게 다가오는 풍경이지만 힘듬을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삼랑성 정상...
해발 113m... 그러나 높이에 비해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그래, 올라 오기를 잘했어 였다
삼랑성 성곽이 마치 만리장성처럼 살아 꿈틀대고 멀리 펼쳐지는 농촌과 산촌, 어촌의 풍경은
113고지에서 주는 선물치고는 넘 좋은 선물이였다.
시원하게 조망되는 풍경 앞에서 어찌 그냥 갈 수 있으랴...
가져온 음식으로 새참을 대신하니 이만한 차림상이 어디에 있을까...
이노다지님~ 김밥 팔은 돈으로 다음에 막걸리를...ㅎㅎㅎㅎㅎ
정상에서 조망된 풍경에 취한채 다시 북문으로 돌아와
( 나들길에서 삼랑성 달 맞이길.. 정족산 정상..을 보탰으니 약 1시간여는 지연 된것 같다)
우거진 솔밭길을 따라 온수리로 향한다. 때묻지 않은 원시림은 생태자원의 보고...
산속에 있는 갖가지 생물들을 보면서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고.. 기겁을 하기도 하고..ㅎㅎㅎ
그렇게 정족산 산속을 이리저리 돌고돌며 산림욕으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저만치 온수리 온수교회가 비워낸 마음을 더 비워내라 한다.
온수교회를 지나 온수리 마을로 내려오니 아니, 이것은 또 무엇인가...
사전 3코스 길 조사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연꽃 단지가 저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여름날의 꽃...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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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를 되새김 해 보며 갈길을 재촉한다.
강화도의 상징 인삼밭도 지나고...
길에서는 자전거도 풍경이 되는 길을 지나고...
강화도의 상징 강화쌀 논길도 지나고...
아마도 벼 잎도열병... 누런 벼 만큼이나 농부의 마음도 타들어가겠지...
삼랑성을 넘고, 산과 들과 연꽃밭과 마을을 지나 길정저수지 잔물결에 또 한번 취하는 나들꾼...
길섶의 모든것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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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등선원을 지나 산 모퉁이 돌아서니 저만치 이규보묘가 눈에 들어온다
백운이규보선생대학비
이규보 (1162 ` 1241) 고려의 문장가...
어려서 부터 시와 문장에 뛰어났고 1191년(명종20년)진사과에 급제하였으나
이듬해 아버지가 죽자 철마산으로 들어가 호를 백운거사라 하고 글을 쓰며 지내다가
1199년 경주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자원종군하여 병마녹사겸 수제가 되어 다시 정계에 입문...
우리나라 역대 작가 중 최고는 누구일까...
신라는 최치원, 고려는 이규보, 조선은 박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규보는 16년 연상인 당대 최고의 선배 이인로를 극복하기 위해 익숙함을 버리고 낯선 길로 나아가 최고의 문장가가 되었다.
백운정에서 바라본 이규보묘
이규보묘를 지나니 양도면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인삼꽃도 보이고...
세월을 낚은 오이도 보인다
이제 3코스의 하일라이트 능묘가는 길로 가기 위해 길정리로 접어들었다.
자연은 사람이 되고 사람은 자연이 되어 길을 걷는다.
길은 걷기만 위한 수단이 아님을 도보여행의 댓가로 얻는다
길과, 나무와, 숲과, 강과, 바다와, 마을과, 산촌과, 어촌과, 그곳의 사람들과, 동행하는 사람들과의 소통하는 것임을...
숲속길을 돌고 돌아 곤릉에 오르니 왠지 모르게 싸한 아픔이...
강화로 천도하여 고향(개성:개경)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낮선곳에 자신을 묻어야 했던 한맺힌 인생...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덕장산 자락에 있는 곤릉은...
사적 제371호로 고려 강종(1211 ~ 1213, 재위)의 비 원덕태후 유시의 능.
왕비 원덕태후는 언제 사망하였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이 능의
봉분과 석축의 곡장은 붕괴되고 각종 석조물은 없어진채 페허이였던것을 1974년에 정화 하였다.
곤릉을 지나 석릉 가는 진강산 오솔길을 따라 30여분...
석릉이다...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진강산 자락에 다시 개경으로 돌아가리라는
한을 품고 누워 있는 고려 21대 왕인 희종(1204 ~ 1211, 재위)의 무덤이다.
희종은 최충헌의 힁포가 심해지자 그를 제거 하려다 실패하고 재위 7년(1211년)페위되어
교동도로 유배 되었다가. 고종 24년(1237년) 8월 용유도에서
세상을 떠나 이곳 진강산 자락 빈숲에 안장 되었다.
능의 지름은 8m의 원형 봉분과 주위에 ㄷ 자형의 석축으로 낮게 둘러 싸여있으며
묘비 1개와 문인석 2구가 있다. 2002년 발굴조사를 통해
청자상감국화문작탁등 12 ~ 13세기 상감청자
전성기에 만들어진 유물이
출토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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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릉을 지나 얼마을 걸었을까... 이미 35여리를 걸었으니~
그것도 작열하는 팔월의 태양 아래... 모두가 지치고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다.
이쯤에서 여정을 접고 싶은 마음이 꿀덕 같았으나 계획된 길을 그만 두기에는 아쉬움이 발걸음을 제촉한다.
카톨릭대학건물이 보이자 그의 다 왔겠지 하는 마음이 앞선다.
그러나 나눠준 유인물을 펼쳐보니 아직도 갈길은...
숲속의 풍경이 함게하지 않았다면
더이상 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저만치 릉이 보인다. 가릉인가 했더니 석실분 이란다.
이것은 강화 진강산 남쪽에 있는 고려시대의 무덤으로 아마도 왕실과 관련된 인물의 무덤으로 추정 된다고 한다.
무덤은 지하에 석실을 만든 후, 그 위에 흙을 쌓아올린 봉분과 그 바깥쪽에 난간석과
석수를 배치하고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곡장(무덤 뒤에 둘러쌓인 나지막한 담)
으로 이루어진 구조이다.
강화 능내리석실분 바로 앞쪽에 있는 가릉...
고려 원종(재위, 1259 ~ 1274)의 왕비 순경태후의 무덤.
순경태후는 장익공 김약선의 딸로서 고종 22년(1235년)원종이 태자로 책봉되자
태자비가 되었으며 그 다음해에 충렬왕을 낳았다. 그리고 고종 31년(1244년) 무렵에 사망하여
이곳에 안장되었다. 그 후 충렬왕이 즉위(1274년)하자 순경태후로 추존되었다.
무덤 주변의 석조물은 파괴 되어 없어졌고 봉분도 무너진 것을
197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보수하였다.
가릉을 지나 탑제삼거리에서 제 3코스 "능묘가는 길" 여정을 접으니
진강산 산자락엔 아픈 역사를 말해주는듯 한서린 아픔을
운무가 가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