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국물요리의 양대 산맥은 짬뽕과 돼지국밥. 아랫장 짬뽕이냐, 웃장 돼지국밥이냐! 만약 순천에 간다면, 당신은 이 어려운 선택 앞에 놓이게 될 것이다. 밥이냐 면이냐, 육지냐 바다냐, 개운함이냐 얼근함이냐! 아, 어렵다…. 하지만 장담컨대 당신이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그날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는 11월, 가을·사랑·단풍말고 남도의 뜨끈한 국물로 이 가을을 갈무리한다.
[왼쪽/오른쪽]아랫장 시장통 짬뽕 / 웃장 돼지국밥
맛으로, 정으로 기억하는 아랫장 짬뽕
첫 번째 국물 순례지는 아랫장 ‘시장통짜장’이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맛으로 또 인정으로 기억되는 순천의 새로운 명소로 급부상하는 집이다. 큼지막한 아랫장 간판 안으로 들어간다. 지붕을 씌워 마치 체육관 같은 장터 구석에 실내포장마차 같은 짜장면집이 보인다.
‘대도무문’인가? 큰 점포에 문이 없다.
‘대도무문’이라 했던가. 대인배의 가게에는 문이 없었다. 시장통 느낌 충만한 테이블에 앉은 다음,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메뉴판으로 짐작되는 간판 겸 메뉴를 올려다본다. 호기롭게 9,500원짜리 임금님짬뽕을 주문한다. 그러나 대인배 사장님이 한마디로 정리한다. “임금님짬뽕말고 그냥 짬뽕도 맛있어요.” 아! 이육사의 시구,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이래 가장 강렬한 이 역대급 반전을 무엇으로 설명하리. 손님이 그냥 짬뽕을 시키면 주인이 초특급 프리미엄 짬뽕으로 유도하는 것이 식당의 정석 아니던가. 진정 대인배의 식당 맞다.
[왼쪽/오른쪽]가격 대비 최고의 만족도를 자랑하는 시장통 짬뽕 / 6년 전 개업할 때 ‘10년은 착한 가격을 유지하리라’ 다짐했다는 대인배 사장님
짬뽕이 나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수북한 홍합의 당당한 비주얼. 홍합은 맛도 맛이거니와 짬뽕을 풍성하게 보이게 하는 일등공신이다. 홍합을 까먹다 보니 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젓가락으로 크게 집어 위아래로 들었다 내리면서 적당히 식힌 뒤 후루룩후루룩 고속으로 흡입한다. 소리를 크게 낼수록 식감은 배가된다. 걱정 마시라! 당신이 면발 흡입하는 소리는 오일장 시장통에서는 흠이 될 수 없다. 그러기를 몇 번, 국물 역시 적당히 식었다. 두 손으로 짬뽕그릇을 정성스럽게 잡고 국물을 마신다. 역시 소리를 크게 내주어야 시장통 짬뽕의 프리미엄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특유의 국물 맛이 입속과 뱃속을 장악한다. 얼큰한 국물이 들어가니 몸이 훈훈해지며 이마엔 땀도 송송 맺힌다. 국물을 맛본 뒤 시장통 짬뽕의 화룡점정인 새우로 입가심을 한다.
물부터 잔반 처리까지 풀코스 셀프서비스! 수북이 쌓인 검은 무더기는 홍합껍데기
대인배의 업소답게 시장통짜장은 요리 말고 모든 것이 셀프다. 여느 식당에 붙어 있는 ‘물은 self’ 수준이 아니다. 물은 기본이고 수저 세팅에 단무지, 양파, 춘장 담기까지 손님 몫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식후에 잔반과 홍합껍데기까지 처리해야 비로소 식사가 완료된다. 퇴식대 옆 수북이 쌓인 검은 무더기의 정체가 홍합껍데기였음을 그제야 인지한다. 바닥 청소 안 하는 것이 다행인가? 농담이다.
짜장 2,500원, 짬뽕 3,500원. 명실공히 착한 가격 맞다.
이러한 셀프서비스는 2,500원이 준 행복에 대해 손님들이 기꺼이 지불하는 팁이다. 3,000원도 안 되는 이 착한 가격에는 대인배 사장님의 초심이 담겨 있다. 6년 전 아랫장에 자리를 잡을 때 ‘이 어려운 시기, 10년은 이 가격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단다. 대인배를 넘어 진정한 성인의 마음이다.
사장님의 애교 넘치는 당부. “자기야~ 빨리 먹고 기다리는 분한테 자리를 비켜주자~”
시장통짜장에서는 술과 요리를 팔지 않는다. 그렇기에 경영 전략은 박리다매. 장날 점심때는 아랫장도, 시장통짜장도 사람들로 가득찬다. 장날 점심에는 얼른 먹고 일어나주는 것이 착한 가게의 착한 손님이다. 단골들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식사 후 지체 없이 일어나 다음 손님을 위해, 그리고 사장님을 위해 자리를 비켜준다. 이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장님께 주는 두 번째 팁일 것이다.
구경하고 쇼핑하고, 아랫장 100배 즐기기
싼값에 점심을 해결했으니 굳은 돈은 장에서 쓰자. 그것이 진정한 여행자의 의리다. 하지만 바로 웃장으로 가 돼지국밥을 먹을 수는 없는 일. 우선 호떡을 하나 물고 북적이는 아랫장을 둘러본다.
주전부리는 오일장 구경의 큰 행복이다. [왼쪽/오른쪽]시장 건물 안팎으로 장이 서는 아랫장은 제법 규모가 크다.
아랫장은 끝자리가 2, 7일인 날에 장이 열리는 오일장이다. 장의 규모는 생각보다 크다. 할머니 몇 분이 쪼그리고 앉아 나물을 파는 시골장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시장 안팎으로 싱싱한 채소와 생선은 물론 국밥·순대·호떡·뻥튀기 등 갖가지 주전부리와 먹거리, 온갖 농기구와 잡화 등 누구 말대로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아랫장은 긴 통행로 좌우에 상점이 쏙쏙 들어가 있는 도시의 전통시장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어디든 궁둥이 붙일 만한 자리가 있으면 여지없이 고만고만한 좌판들이 펼쳐져 있다. 그래, 이게 장이지. 아랫장은 복작대는 삶의 현장과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전통장을 100배로 즐기는 방법, 소박함을 소박함 자체로 즐기기
카트도 없고 주차도 힘든 오일장 쇼핑이 안락하지는 않겠지만, 마치 미션을 수행하는 예능인처럼 현지 소비여행을 즐기는 것도 의미 있는 추억으로 남으리라. 그래서 권한다. 물건을 살 때는 괜한 인사도 건네고, 아주머니께 너스레도 떨어보자. 그리고 마치 남도 사람인 것처럼 사투리도 따라 해보자. 여행지에서 서로 하나가 되며 내가 넉넉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단, 흥정은 하되 물건은 제값을 주고 사자. 백화점과 마트의 정찰가격보다 아주머니, 할머니의 말이 더욱 믿을 만하다면 말이다.
국밥을 시켰더니 수육이 서비스! 웃장 돼지국밥
순천 국물여행의 두 번째 순례지인 웃장 돼지국밥골목으로 간다. 순천시 동외동에 있는 웃장은 5, 10일 장이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순천웃장은 197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 밥집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 30여 년 전부터 국밥집이 들어서기 시작해 지금은 15개 식당이 성업 중이다. 그중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향촌식당으로 향한다.
국밥 두 그릇을 시키면 푸짐한 수육이 서비스
국밥을 주문했는데 시키지도 않은 수육이 먼저 나온다. 웃장 돼지국밥의 최대 경쟁력이자 역시 순천 대인배의 풍모를 느낄 수 있는 차별화 포인트는 바로 국밥 두 그릇을 주문하면 푸짐하고 야들야들한 수육이 서비스라는 점이다. 수육의 양과 품질도 체면치레나 마케팅 차원이 아니다. 정말 서비스 받는다는, 손님으로 대접받는다는 정성이 팍팍 느껴진다.
살짝 데친 싱싱한 부추로 수육을 싸악 말아 새우젓에 살짝 찍어서 입으로 쏙! 크아~ 막걸리 한 잔이 자동으로 생각난다. 수육에 탁배기 한 잔 걸치고 나면 오늘 하루의 모든 피로와 근심이 탁배기와 함께 싹 쓸려 내려갈 것만 같다.
전혀 느끼하지 않고 깔끔한 맛을 자랑하는 웃장 돼지국밥
수육의 감동이 채 식기 전, 소담한 뚝배기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돼지국밥이 나온다. 순천 돼지국밥의 우월함은 순대국밥이나 다른 돼지국밥에 비해 느끼하지 않다는 점이다. 비결은 두 가지. 첫째, 곱창이나 내장이 아닌 머릿고기를 쓴다는 점이다. 순천 돼지국밥은 삶은 머릿고기에서 살코기만 발라내 국밥과 함께 끓여낸다. 그래서 국물 맛이 전혀 느끼하지 않고 깔끔하다.
깔끔한 국물 맛의 비결, 콩나물과 머릿고기
깔끔한 국물 맛의 두 번째 비결은 푸짐한 콩나물이다. 담백한 콩나물이 머릿고기에 남아 있는 마지막 느끼함을 한 번 더 잡아주면서 깔끔하면서도 개운한 순천 돼지국밥의 고유한 맛을 낸다. 취향에 따라 칼칼하고 얼큰한 맛을 느끼고 싶다면 양념을 추가해도 좋다. 함께 나온 큼지막한 깍두기나 양념과 간이 센 남도 특유의 배추김치를 뚝배기에 과감하게 투하하면 나만의 명품 돼지국밥이 완성된다.
30년 전통의 웃장 돼지국밥집은 15곳 정도. 그중 입구 첫 집 혹은 마지막 집인 향촌국밥
웃장 돼지국밥의 경쟁력은 뒤늦게 축제로도 인증되었다. 순천시는 2012년부터 매년 9월 8일 순천 웃장에서 국밥축제를 개최한다. ‘9. 8.=국밥’에서 창안한 관공서 스타일의 썰렁한 ‘드립’이지만, 기획은 대성공! 2012년 축제 당시 준비한 국밥 1,500여 그릇이 반나절 만에 동날 정도로 대박을 쳤다. 매년 9월 8일 축제가 열리면 관광객이 3,000여 명이나 몰리는 등 전국 유일의 국밥축제로 명성을 얻어가고 있다. 겨울의 문턱에 선 당신에게 순천의 ‘찐~한’ 국물을 강력 추천한다.
첫댓글 짜장,짬뽕가격은 정말 놀랍습니다.
국밥 두그릇에 수육이 서비스라니...절로 막걸리가 생각나네요.근처가면 꼭 들러서 먹고싶네요
감사합니다 ㅋ
짜장면 가격이 2.500원 정말 착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