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버스터미널에서 7시30분에 도착하여 일행을 만났다.
일행중에는 처음보는 사람도 있었고,전에 월출산 사자봉 릿지등반을 함께한 분도 있었다.
그중에는 여성도 있었으며, 낯짝이 구릿빛을 띄우며, 건장한남자 서너명 정도 상대할수 있을 정도의 매우 강인해 보이는, 특히 도라지 캐러가는 복장을 하고 있어 순수함을 엿볼수 있다. 2박 3일 따뜻한밥을 맛있게 지어서 대령 하겠구먼…..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2박3일분에 해당하는, 식량을 분배하여 베낭가득히 빵빵하게 채워 넣었지만, 베낭이 작아서 많이 넣지를 못해 동지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한사람이 아직 도착하지않아 확인결과 이미 새벽에 집을 나서 터미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혹시나 하고 개찰구에 가보니, 적잖은 나이에 샌달을 신고, 적당한 베낭을 메고 서있는모습은 너무나도 당당한 모습이어서 보는이가 미안할 뿐이다
저것이 2박3일 지리산 산행 복장 맞는가?
아주 오래전 내가 처음 산에갈 때 멋모르고 따라갔을 때는 미안해서 짐은 다지고 갔는데, 두번째갈 때는 옆구리에 도끼차고 수통차고 갖은 멋은 다부리면서도, 짐을 솔찬히 지고 끝까지 따라다녔다. 왜냐면 다음에 산에 안대리고 갈까봐서. 그런데 요즘 많이 변해 부럿구먼.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요금이 얼마인지,어디를 경우하는지 도착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궁금한 사항이었지만, 회장이 총무겸을 하였으니 모든것은 그가 시키고 하는대로 움직이면 그만이다.
버스에 몸을 싣고, 어젯밤 기분에 들떠 밤잠을설쳐 자지못한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을것 같은 기분으로 깊은잠에 빠져들었다.
“한참동안 한 여인에게 쫓겨 다니다가, 갑자기 그물에 걸려 그녀에게 잡히고 난후, 나는 그녀의 요구를 모조리 들어 줘야하는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는데” 어디쯤에서 잠이 그만 깨어 버렸다. 곡성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여인이었는데” 이렇고 여복이 없는가 실소를 금하며, 뻐근한 목을 바로 세우고, 그~여인의 요구는 나중에 밝히기로 하자.
태몽은 아니고 개꿈인 것을……
어느새 노고단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연휴여서 그런지 수많은 학생들로 붐비었고, 빈자리가 없어 통로에 서서 버스가 움직이는 대로 몸을 흔들기만 하면 되었다.
요즘 학생들은 자리양보를 할줄 모른는것 같구먼.
일행중 한사람이 그랬다.
공부못한넘은 자리 양보할줄 모른다나.
그~래 맞는 소리여. 느자구 없는놈들. 생긴것하고는 눈탱이는 밤탱이고,주둥아리는 하마같이 생기고, 그옆에 앉은 계집애는 얼굴이 민주주의 아닌가.
간신히 성삼재에 도착하여 짐을 챙겨본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는 비교적 넓은 길이고, 처음 20여분은 평평한 길이나 노고단 산장 아래에서부터는 가파른 오름길이다.
어느새 몸에는 많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이쯤되어서 화엄사코스와 만나는 곳인데”하고 멈칫거리는데, 화엄사에서 먼저 출발했던 우리의 유능한 포터들이 도착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물속에서 금방 나온듯 하다.
조금전 도착 하였다니,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빨리 도착할줄 몰랐다.
내가 그~옛날에 화엄사코스를 무지하게 힘들게 올랐는데,
그래서 나는 그때의 고통을 잊지못해 곧바로 성삼재로 왔는데,
힘든코스를 1시간30정도 걸렸다나. 기가막혀서 말이 안나오네.
하기사 담박질 선수들 아닌가.
아뭍은 대단한 친구들이다.
그이름 서 0 0 ,이 0 0 그래! 빨리도 도착했다.잘했다.장하다.
그렇지 않아도 회장이 짐이 많아서 낑낑거리며 올라올 것인데, 느그들이 그짐을 덜어줘야 할 것 아니냐. 뒈지게 지고 힘들게 가줘야, 네가 느그들 편하게 따라가지, 이쁜넘들!
반가운 해후를 하고 노고산장에 도착하였다.
성삼재(00:00 출발) - 노고단(00:00 도착/3.5km/1시간 소요 (식사 및 짐정리 포함)
노고단 산장은 지리산 주능선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140명 수용가능하며, 전화는(061)783-1507) 이고, 주위에 대규모 야영장, 매점, 샘터가 있고, 노고단의 오른쪽 산기슭에는 송신소, 왼쪽에는 돌탑, 입구에는 화장실 이 자리하고 있어 이곳을 지나는 등산객은 이마를 찌뿌리고 지나가는 곳이다.
아주 오~랜옛날에 있었던 구산장은 허물어지고, 구노고산장의 관리인은(함태식옹)오래전에 피아골 산장으로 옮겨 가셨다. 당시기억으로 2층침상으로 되어있어 1층은 남자,이층은 여자가 사용하고 건물 내에서는 라디오는 사용금지, 음주금지,커피 및 약간의 간식외에는 판매되지 않았다. 불편했지만 당시 산행이 그리워 진다.
우리나라의 초대 선교사들의 별장이 있었으며, 큰길을 낸후로 많은사람들이 찾아와 결국은 갈수록 자연훼손이 심각해지고 있을뿐이다.
나는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힘들게 짐을지고 올라온 회장은 등짐을 재분배하는데, 서로 자기짐이 무겁다고 아우성이다.
2박3일동안 걸어 갈려면 꾀병이라도 부려서 짐을 덜어야 할것이다.
어느덧 정리를 마치고 케른(돌무더기)과, 반야봉이 보이는 가파른 고개에 힘들게 올라섯다.
노고단을 오르기 위해 대기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2시간마다 250명 입장)
노고단은 자원의 보고다.
특히 지리산 3대 주봉의 하나인 노고단 정상 일대(해발 1,507m) 넓은 고원지대에는 원추리의 전국 최대자생 군락지대이며, 수백종의 야생화가 집단서식하고 있으며, 고향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기도 하다.
노고단은 일명 고선봉으로 불리며, 다도해에서 실려온 운무가 산허리를 감싸고 흐르면서 운무가 구름바다를 이루다 다시 점점히 흩어지는 비경에 넋을 잃게하는 지리산 10경중의 하나인 '노고운해(老姑雲海)'로 유명하며, 지형은 서남방향 완만한 경사지대로 약 35만평 규모의 고원지대로 되어 있다.
또 신라시대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셔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행정구역은 전남 구례군이다. 몇 해전만 해도 군사기지가 있어 정상을 오를수 없었으나,철거후 많은 유산객들이 몰려들어 몸살을 앓고 있는중이다.
구례와 멀리 무등산이 어렴풋이 보이며,구례하늘에 구름이 낮게 드리우면, 나는 마치 하늘나라에 서있는 착칵이 들정도로 운해의 장관을 연출한다.
건너편의 봉우리는 어머니의 젓무덤 같은 형상으로, 이곳을 찾은 등산객들의 마음을 편한하게 해주는 반야봉이다.
언제나 묵묵히 서있는 봉우리, 반야봉이 나를 반긴다.
언제 올지 모르니 반야봉을 배경으로 기념찰영이나 하고가세. 하나,둘,찰칵.
출발하여 몇일간 고생해보세.
연휴여서 그런지 산행객이 많이 몰렸다.
길은 좁은데 한줄로 서서 따라가지니 답답하고 그래서, 한명씩 추월하여 앞서 나갔다.
그래도 속도를 낼수 없었다.
한참 열나게 가다가 입이~떡 벌어지게 하는 사람을 만났다. 넝마중이도 아니고 베낭에다 주렁주렁 메달고 더군다나 신발도 없이 맨발로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네팔에서 포터가 왔다냐? 중무장하고 지나가는 등산객이 오히려 이상할정도다.
정작본인은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 없이 잘도 걸어간다.
그래!!!! 맞다. 등산은 편안한 마음으로 하면 되는것이다.
맨발로 백두대간의 기를 받아 좋은곳에 쓰려하는 집이의 마음을 누구 알리오.
모든장비 갖추고 산에 오르면 속세에 있는 것이나 다를바 없지.
“나약 해져가는 나자신을 스스로 채칙질 하여 강해지기를 바라며, 이산을 찾았는데 먹을 것,잠자리를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왔으니, 당신옆을 지나가는 나자신이 부끄럽소.”
어~이 맨발의 청춘이여! 미안 하오이다. 나~먼저 가네 그~려.
20여분 오솔길을 벗어나니 어느덧 돼지평전.
봄에는 철쭉으로도 유명한 이곳은 산사진 전문가들의 발길을 부르는 곳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곳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배경에, 아름다운 철쭉꽃이 빚어내는 풍광은 좋은소잿거리이기 때문이다.
혹시~이곳의 이름이 돼지평전인 이유가 삼겹살에 또는 스카프살(목살)에 쇠주한잔 걸치고 딴따라 하는곳 아닌가비어. 설마 그것은 아니것제. 당연이 아니지라.
이유는 마늘모양의 원추리 뿌리를 멧돼지들이 파먹기 위해서 출몰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뿌리맛은 멧돼지만이 알것이다.
지금도 가끔 나타난다고 하는데, 00 이와 00 눈에 보이는 날이면 너는 바로 제삿날이다.제발 오지 말거라. 니가 나타나지 않아도 돼지평전 인줄 앙께.
울창한 숲길을 한참가다 헬기장이 나타나고, 따가운 햇살에 숨을 헉헉거리며,활엽수 숲길을 막 벗어나니 임걸령이었다.
노고단(00:00 출발)- 돼지평전-임걸령(00:00 도착/4km/1시간10분 정도)
임걸령은 조선 명종때의 초적 두목 임 걸년의 이름에서 유래되어 아늑하면서도 맑은 물이 솟아 야영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야영취사금지 적발시에 50만원벌금” 플랑카드가 위협하고 있어,
야영은 절대금하며,혹 시험삼아서 해보실분은 50준비하시고 알아서….
임걸년에 관한 자세한 내력은 알수 없지만, 이곳에 진을 치고 말을 길럿다고 하는데,
실제로 일걸령 부근에서 마구와 활촉이 발견된적도 있었다고 한다.
임걸령 샘터에서 피아골 쪽 암벽 밑에는 황호랑이 막터라는 곳이 있다.
옛날 약초꾼 황장사가 겨울에 이곳에서 자다가 기발한 지혜을 발휘하여 큰 호랑이를
잡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주능선 등반구간 중에서 노고단-임걸령 4km가 가장 편한 코스에 속하는데 옛날 화랑들
이 말을 타고 달려 화살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는 과장된 전설이 있을 만큼 순탄한 편이다.
우리 일행은 숲속의 옴팍진 곳에서 간단하게 쇠주를 곁들여 점심으로 라면과 밥으로 끼니를 해결하였다. 다음 목적지는 노루목이다.
노루목 이란 지명의 유래는 노루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이란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반야봉의 지세가 피아골 방향으로 가파르게 흘러내리다가 이곳에서 잠시 멈춰,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형상의 바위모양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행정구역은 전남 구레군이다.임걸령에서 노루목에 이르는 길은 오름길과 완만한 내림길이 반복되고, 등산로 주위에는 산죽과 수목이 짙은 숲속길이다. 노루목은 반야봉을 오르는 길과 종주길에 삼도봉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헉헉거리며 마지막을 올라채고 삼거리에 이르면 시원한 바람이 우리 일행을 맞이해준다. 아직 후미는 도착하지 않았지만 기다릴 겸 베낭을 내려놓고 등짝을 통풍시키니 피로 가신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장거리코스에 지쳐서 반야봉을 거치지않고 삼도봉으로 곧장 가게된다.
나역시 마찬가지로 올해초 겨울등반을 큰애와 함께 반야봉을 오른적이 있어 생략하고 바로 삼도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임걸령(00:00 출발) -노루목(00:00 도착/3.5km/30분)
그러나 여기서 반야봉 설명이 필요하다.
반야봉(1,732m)의 유래는 천신의 딸인 마고(麻姑)할미가 지리산에서 불도를 닥고있는 반야(般若)를 만나 결혼해서 딸을 8명을 낳고 천왕봉에서 살았다. 그뒤 반야는 깨우침을 얻기 위해 반야봉으로 떠나서 백발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자, 딸들을 8도로 하나씩 내려보내고, 남편을 기다리며 나무껍질로 지은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숨지고 만다. 그 뒤 갈기갈기 찢긴 옷이 반야봉으로 날아가 풍란이 되었다고 하며,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 이라 불렀고, 그 딸들은 팔도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반야봉은 지리산의 천왕봉 다음으로 높은 제2봉이며, 주봉(1,732m), 중봉이 절묘하게 빚어낸 봉우리로서, 천왕봉에서도 선명하게 조망돼 두봉우리의 정다운 모습이 쌍둥이처럼 다정스럽다. 반야봉은 지리산 10경중의 하나인 '반야낙조(般若落照)'로 유명한데, 작렬하는 태양이 하루를 보내고, 서녘하늘을 온통 진홍빛으로 붉게 물들이는 낙조가 일품이다. 또 산 아래에 운해를 거느리고 우뚝 솟아 있는 반야봉의 비경은 정말 장관이다. 정상에는 돌탑이 있고, 동쪽으로는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연봉들이 조망되고, 서쪽은 노고단, 북쪽은 달궁계곡이다.
달궁계곡에서 반야봉을 오르는 산행코스가 가장 좋으며, 왕복 16km 쯤 된다.
언젠가 00 이와 뱀사골 일박하고 뱐야봉 꼭대기 에서 비바람을 맞아가며 쏘세지에 쇠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등산객 눈을 피해가며, 달궁계곡으로 도둑산행을 한적이 있다.
물론 걸리면 시치미 뚝떼고 노고단을 향해 가고 있다고 서로 약속하면서 속아 넘어가줄 멍충한 관리원을 생각하며 키득키득 거리면서 오붓한 산행을 했었지.
모자를 분실하여 속상하기도 했지만, 무수히 발자국 내어 정들었던 코스이기도 하다.
더욱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원정 나간답시고 속살깊숙히 감추고 있는 얼음골에서 힘들게 훈련하던 기억과 함께 아침이슬에 젖어있는 산죽을 스치다 보니 바지가 걸리적거려 팬티만 입은채로 내려가다가 정령치가 보이는 큰뫼똥 있는데서 어느일행과 마주쳤는데 일행중 한여성이 나의 거시기를 뚫어지게 쳐다본 후로 양기가 빠져 종주산행을 어렵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코스의 특징은 줄지어선 암봉들을 오르내리며 아름드리 노송과 암릉의 절묘한 조화와 매혹적인 능선길을 계속 오르며,또한 하산시는 계속 내려가는 아기자기한 코스이며, 멀리서 바라보면(노고단,돼지평전,토끼봉,정령치), 중봉은 마치 중년여인의 둔부 모양중 조금낮은 곳이며, 높은 곳이 반야봉의 정상이다.
툭 트인 반야봉에 오르면, 지리산의 모든 연봉들을 조망할 수 있으며, 5월이면 두 봉우리는 철쭉잔치가 베풀어지고, 이름모를 야생화가 바람에 실려 넘어오는 운무와 함께 뒤섞여 탄성과 괴성을 자아낸다.
지금은 휴식년제에 묶여 산행은 할수 없으나 간혹 용기있는자 에게는 한번쯤 권해보고 싶은 코스다. 행정구역은 남원시 산내면이다.
아쉽구나 반야봉. 너는 나를 아쉬워 마라.
이쁜아짐과 함께 내~언제 너를 꼭 찾아 올 터이니……
등짐을 둘러메고 돌무더기를 지나서 많이 본듯한 지형이 눈에 들어온다.
삼도봉에서 반야봉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이다.노루목 같은 곳이지.
언젠가 돌쇠에게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지나쳐서 반야봉을 오르지 못하고 노고단으로 향했던 생각이 난다.
그친구는 머리가 영특한데 길눈이 어두운 것이 흠이다.
특히 맥주캔은 최고로 잘지고 간다.
그리고 본인은 하나도 안먹고 일찍잔다고 나에게 양보하는 미덕은 어디 에서도 찾을수 없는 훌륭한 인간성을 지니고 있다.
과거 이길을 함께 걸었던 어떤 아짐씨 생각을 하다보니 금방 삼도봉에 도착 하였다.
삼도봉은 역시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삼도봉(1,550m)은 전북, 전남, 경남의 3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돌팍으로 엉기종기 더덕더덕 이루어진 봉우리 아닌 봉우리지만 화개제에서 올라온 등산객이면 가쁜숨을 몰아쉬며 휴식을 취할수 있는 아주 조망이 좋은 장소이다.
물이 없어 다소 아쉽지만 남부 지리산을 쉽게 바라볼수 있는 곳이다.
1998년10월에 삼도의 기관장과 도민들이 모여, 바위위에, 3도 화합을 상징하는 삼각형의 상징탑을 세워놓았다. 얼마나 화합을 원했으면 이런산중에 신주로 탑을 세워 났을까?
손때묻어 번질번질한 삼각형탑 끝으머리에 다리 뻐치다고 넓떡치 걸치는 날에는 똥꾸녕이 으~이구 생각만해도 더위가 가신다.
많은 등산객이 상징탑 앞에서 노고단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00 이와 00 이가 쇠주를 한잔 준비한다.
곧바로 반평도 않되는곳에 잔을놓고 절을하니 주위에서 쉬고있는 사람들이 쳐다본다.
그들이 알턱이 있나.이무덤의 주인공은 나와 함께 원정을 성공하게 했던 훌륭한 후배였다.어쩌다가 운명이 다해 이곳에 자리하고 있어 이곳을 지날때마다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삼도봉은 지리산의 연봉들을 조망할 수 있는 훌륭한 망루로 손꼽힌다. 눈앞을 가로 막는 반야봉과 천왕봉에서 연하봉, 촛대봉을 잇는 천하제일경의 파노라마가 남부능선의 아기자기함이 다가오는 장관이 있고, 뒤로는 임걸령과 노고단이 손에 잡힐듯이 다가온다.
삼도봉의 유래는 3도가 만나는 지점이라 해서 석삼(三), 길도(道)를 써서 삼도봉이다. 그러나 삼도봉은 원래 정상의 바위가 '낫'과 같은 모양이라서 '낫날봉' 또는 '날라리봉', '닐리리봉'으로 불리어 왔으나,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삼도봉으로 고쳤다. 삼도봉 보다는 왠지 날라리봉이 정겹지 않는가.행정구역은 전북 남원시, 전남 구례군, 경남 하동군이다.
노루목(00:00 출발) – 삼거리-삼도봉(00:00 도착/1km/20분)
갈길이 멀다.
삼도봉에서 부터는 급경사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훼손을 방지하기위해 나무와 철을 이용하여 계단을 화개재까지 만들어 놓았는데 내리막이 장난이 아니다.
오래전 하동과 남원 사람들의 교역장소였던 화개재 에 도착하여 나머지 일행을 기다리면서 간식으로 배를 채웠다.
뱀사골 형님을 뵙고 갈려다 팀에서 이탈하면 아니될까 싶어 그냥 지나치기로 하고 기다렸으나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혹시 반야봉을 경유 하고오나 추측했으나 한참후에 나타난 일행의 말을 들어보니 역시나 반야봉을 경유 했단다. 정말 잘났어.
이렇게 늦을줄 알았으면 뱀사골이나 다녀올걸 인사드린지도 오래 되었는데 하는수 없지.
북쪽 뱀사골 계곡쪽으로 200m쯤 내려가면 뱀사골산장과 샘터가 있다.
삼도봉 에 묻혀있는 후배도 이산장에서 잔뼈가 굵었는데, 사람이 죽으면 흔적까지도 가져 가는가 보다 .하지만 그의 가식없는 특유의 웃음은 나의 마음속에 남아서 항상 웃고 있구나.
화개재에서 남쪽방향으로 희미한 길은 막가지몇개로 막아놓아 통행금지라는 것을 알수 있다.
계속내려가면 목통마을에 닿는 이길은 옛날에는 뱀사골 산장의 물품을 나르는 길로 이용되었으나 지금은 휴식년제로 통제되고 있다.
과거 빨치산들이 활발하게 활동했으며,그흔적이 여러군데에서 발견되어 그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지형을 얼마나 유효적절하게 이용하였는지 무너진 도피처를 보면 알수 있으며,음산함을 느끼게 한다. 수량이 풍부하며, 아주 깨끗하게 보존된 계곡이다.
시간을 내어 동지들과 반드시 이계곡을 안내등반 하리라.
관리인에게 들키면 노고단을 다시한번 팔아먹고 히히낙낙 거리며 즐거운 산행을 하리라.
뱀사골산장은 (061-626-1732)원래 1978년에 '반야봉산장'으로 조립식 철제 건물로 지었으나, 1989년에 80여명을 수용하는 149평의 아담한 건물로 개축하여 '뱀사골산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관리인은 전주 개척산악회 소속 고영국씨이다.
이분은 유달의 젊은 아가씨를 통째로 업어간(?) 도둑님이시다.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코피 쏟아가며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토끼봉은 진달래 밭으로, 5월쯤이면 온통 붉은 꽃이 만발한다.
화개재에서 토끼봉쪽으로 오르는 길은 점차 경사가 심한 길이지만 울창한 구상나무, 전나무숲이 계속되고, 쉬었다 오르니 더욱 숨은 가빠 오르고 느닷없이 확 트이더니 토끼봉이다. 토끼봉의 유래는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모양이라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고,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정동(正東)에 해당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한자로 토끼묘(卯)를 써서 토끼봉(묘봉/卯峰)으로 부른다. 그리고 토끼봉 정상의 초원에 지보초가 군생하고 있어, 일명 '지보등'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여기서 지보초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으나 자료가 없어 다음으로 미루자.
행정구역은 전북 남원시와 경남 하동군이다.
삼도봉(00:00출발)-화개재-토끼봉(00:00도착/4km/ 1시간20분)
토끼봉에서 숨을 몰아쉬며 휴식을 취할려 했으나 화개재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낭비하여 그대로 지나쳤다.구상나무 숲을 내려서면 갖가지 잡목숲을 지나 완만한 능선안부가 이어지다가 고사목이 쓰러져 나뒹구는 경사길을 오르게 되고, 그 뒤 평평한 능선길이 한동안 계속되다가 돌밭 너덜길을 오르니, 총각샘에 다다른다.오늘의 숙박지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도착하여 좋은장소를 차지하고 비박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일행도 주위를 둘러보고 큰바위및을 찾아 내려갔다.
다행히도 장소는 굉장히 좋은 편이다. 바위뒤로 돌아가면 똥깐있제, 큰바위가 바람 막아주제, 바닥 평평하제,이보다 더 좋은자리 있으면 나와 보라구 그래.
일행은 일사 불란하게 두패로 나뉘어 빈통을 들고 총각샘을 향하였고 나머지는 비박 준비를 하였다.
나와 00 이,00 이와 함께 물통을 모아 샘을 향했다.
총각샘은 남쪽 언덕너머 50m 아래 숨어있는데, 커다란 벼랑밑에서 신기하게 솟아나며, 갈수기때는 말라버린다.
역시 물사정은 좋지 않았다.쫄쫄흐르는 물이 인내심을 요구 하게 한다.
먼저 물을 담고 있는 사람이 뒷사람에게 미안해 할정도로 쬐끔 나온다.그러나 할수 없이 기다려야 한다.한참동안 기다렸다 우리차례가 되어 열심히 잎사귀를 이용하여 담았다.
이많은 수통을 다채울려면 날 새겠다.그래서 음수용만 채우기로 하고, 나머지 는 아래쪽에 고여있는 물을 담기로 했다.어차피 끓여 먹을것인데 설마 죽기야 하겠는가. 3사람만 입다물면 되지. 모두 채워서 의기 양양하게 캠프로 넘어가고, 나는 고여있는 물로 발을씻고 나니 시원함에 피로가 풀린다. 가늘게 나오는 샘이지만 이곳을 지나는 많은 등산객들의 목을 축이는 오아시스 아니더냐. 그런데 왜 총각샘이야?
총각샘의 유래는 옛날 심마니 총각이 처음알고 이용하여 샘이라서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으나, 장터목의 산희(山姬)샘이 여성의 상징이라서 이와 대비시킨다는 뜻에서 총각샘이라 했다고 한다. 음양의 조화 이렸다.
행정구역은 전북 남원시와 경남 하동군이다.
토끼봉(00:00 출발) -총각샘(00:0 도착/3km/50분)
텐트후라이로 기둥을 이용하여 설치하니 산장보다도 더훌륭하다.
움푹한곳에다 지붕을 덮으니 아늑하고 잠자리치고는 제법 그럴싸 하다.각자 지고왔던 짐을 풀고 음식을 조리한다. 그동안 야영 생활에 익숙해져 고여있던 맑은물로 재빨리 밥을 앉혀놓고 돼지찌게를 안주 삼아 쇠주잔이 돌고 돈다.여러 경험담과 세상살이의 생활고에다 온갖얘기가 시간가는줄 모른다.야영의 묘미가 이맛 아닌가.
엄청 시간이 지난줄알았는데 10시도 않되었다. 아이고메 큰일낫네.긴긴밤을 어떻하라고….
이쯤되어서 노래방가면 재미는 두배일터인데, 앵간히 멀어야지.
그래도 할수 있나,잠자리를 들어야지.
경사진곳이라 그런지 움직이면 흘러내린다. 꿈지락 거리면서 어렵게 자리를 제대로 잡았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텐트내피만 가져 왔는데 그런대로 훈기가있다.
저들은 종일무거운 짐을 지고 어깨짝이 뻑쩍지근 할것인데, 동지들이 노친네라고 예우해줘서 나,자판기사장,철물사장 3명이,텐트을 이용하고 있음을 고맙게 생각하고 한숨 청해보자.
내일 뺑이칠려면 잠을 자야한다. 안녕! 드르릉,드르릉.크르르릉.큭큭 크~크르릉,
한발늦었구나. 자판기사장이 먼저 코를 골아 버린것이다.간발의 차이로 나는 긴밤을 서성거려야 했다,철물점 사장은 잘도 잔다.하는수 없이 짐을 챙겨들고 동지들이 있는곳으로 삐집고 들어갔다.계주가 뿌시럭 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 것 같다.
들어누었다 머리위에는 00 이가 쉬고 있다. 누워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달빛이 쏟아진다. 달빛이 마음을 음산하게 한다.
술기운에 아가씨 놀래케줄라고 귀신얘기 한 것이 생각나고, 뱀사골산장 첫번째 똥통에 빠져죽은 젊은이도 생각나고,완주 만덕산 빙벽훈련중 금방있던 젊은이가 상단에서 추락하면서 온몸이 부서진채로 떨어졌을 때 살려보겠다고 노력했지만 결국 가버린 그모습도 생각나고,몇 년전 총각샘 주위에서 추위를 이기지 못해 불귀의 객이된 2명의 전주 아가씨들이 생각났다.어디선가 노래소리가 가늘게 들려온다.깊은산속 깊은밤에 누가 노래를 부르는가.
갑자기 오싹해진다.흐느끼는듯한 여자의 못소리는 커지면서 다가온다.
비박지 위부분에서 멈춰 계속 부르고 있다.
제목은 모르지만 적막을깨우고 울려퍼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고운 목소리다.
이승에서 풀지못한 여자의 한을 노래에 실어 보내는듯 그녀의 목소리는 42세정도 되어보인다.
완숙한 여인의 노래소리가 지리산에서 죽어간 원혼들을 달래는 소리인가.
고요해진다. 옆에서 쳐놓은 비닐이 바람에 움직이는 소리가 더욱 음산하게 한다.
내가 자고 있는 이자리가 사실은 2명의 그아가씨들이 마지막으로 쓰러져 누운 자리인지도 모르는데 동지들은 잘도 잔다.00 는 아가씨옆에서 잘도잔다.
밤은 깊어간다. 18년만에 다시맞은밤 …….
다시오지 않을 첫째날이 깊어만 간다.
첫댓글 여취행님을 몰라뵙습니다. 쥐송!!!!!!